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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5권(107화)
Part 3. 드디어 만난 재경이(3)
쩝, 이거 어쩐다.
재경이 놈의 말이 맞긴 하다.
이 녀석이 가뎀 왕국의 최강 기사단을 이끌고 있는 걸로 봐서 지금까지 이 이케루스라는 게임 속에서 이루어 놓은 게 엄청 많은 건 틀림없다.
하지만 이 게임을 중지하게 되면 그게 모두 다 날아가 버리니 녀석으로서는 절대로 이 게임을 그만둘 순 없겠지.
“재경아, 니 말이 일리가 없는 건 아닌데……. 삼촌이 잘 말해서 게임 계속하게 해 줄게. 그러니 일단 로그아웃하고 만나서 안심시켜 드리자.”
“아, 글쎄 싫다니깐! 삼촌이 가서 아빠, 엄마한테 말하고 안심시켜 드려! 난 절대 로그아웃 안 해! 아니 못 해!”
“아니, 근데!!”
나는 완강한 재경이의 태도에 화가 나서 버럭 울화통을 터뜨리려다가 참았다.
여기서 계속 화를 내고 윽박질러 봐야 역효과니까.
만나자마자 반가운 김에 마구 두들겨 준 것 때문에 이미 삐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면 작전을 좀 달리해야겠다.
나는 덥석 재경이를 껴안았다.
“엇! 이거 뭐야? 삼촌, 지금 왜 이래?”
“훗, 재경아……. 그동안 삼촌이 너 땜에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니? 넌 삼촌이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르지?”
“응, 몰라. 전혀, 모르겠는데?”
헉, 아니 이 자슥이!
내가 이렇게 말하면 성질 누그러뜨리고 삼촌이 하자는 대로 하겠다고 할 것이지!
“내가 지금까지 세상에 태어나서 이날 이때까지 삼촌한테 겪은 일은, 날 갈구고 놀려 먹은 거뿐이거든? 근데 사랑은 무슨 얼어 죽을 사랑이야? 분명히 말하는데 삼촌이 이래 봐야 난 절대로 로그아웃 안 할 거야. 분명히 알아 둬!”
재경이 녀석이 단호하게 말하자 나는 품에서 녀석을 떼 내고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눈에 힘을 주고 잡아먹을 듯 째려보며 말했다.
“이거 정말 안 되겠군. 재경이 너 진짜 이따구로 놀 거냐? 어른 말씀이 우습게 들리는 거냐? 너 정말 오랜만에 삼촌한데 제대로 한번 쥐어 터져 볼래, 앙!!”
“…….”
엇, 아니 이거 뭐가 이래.
내가 제대로 기합을 넣어서 겁을 주는데 이노무 자슥이 피식 웃네?
“삼촌이 아무리 그래 봐야 겁 안 나거든? 그리고 아까 삼촌이 때릴 때 일부러 맞아 준 건데 이제부터 안 그럴 거거든? 나도 안 참을 거라고. 그러니까 삼촌도 까불지 말고 내가 좋게 말할 때 들어.”
허거거거걱!
아니, 이 자슥이 지금 뭐래는 거냐?
까불지 말고, 좋게 말할 때 들으라고?
이게 지금 나를…… 그러니까 지 삼촌인 나한테 협박을 하고 자빠졌네?
나는 열불이 치솟아서 잠시 숨이 거칠어졌다.
재경이 놈은 그런 나를 향해서 얄미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지금 삼촌 다굴해서 로그아웃 시켜 줄 수도 있거든? 근데 오랜만에 만났으니까 그냥 봐 줄게. 그러니 오늘은 그냥 돌아가. 나한테 고맙게 생각하고.”
이것 봐라?
이 자식이 이거 완전히 날 가지고 노는 태도로구먼.
어휴, 정말 주먹이 운다, 주먹이!
근데 가만 보니 이 녀석 말이 그냥 뻥 같지만은 않다.
몸에서 풍기는 관록과 포스가 대단하다.
정말로 맞짱 뜬다고 해서 내가 이긴다는 보장이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메이스도 안 가진 지금 상태에선 더더욱 그렇겠지.
쩝, 이거 진짜 울화 터지네.
이 게임을 하는 가장 중요한 목표를 달성하기 일보 직전에 이렇게 맥없이 물러서야 하다니…….
기분이 나빠진 내가 째려보자 재경이는 얄미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근데 삼촌 입장도 이해는 가거든? 아빠, 엄마한테 날 데리고 나온다고 약속을 한 것 같으니까……. 그래서 말인데, 이렇게 하면 어때?”
“뭘 어떻게 한다는 거냐, 짜샤.”
내가 퉁명스레 대꾸했으나 재경이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이 게임 속에서 삼촌이 날 꺾어 봐. 그러면 내가 패배를 인정하고 로그아웃하고 현실로 돌아갈게.”
“뭐시라?”
난 고개를 갸웃했다.
음, 그거 말 된다.
그러니까 실력으로 꺾어서 자신을 납득시키면 그때는 내 뜻을 따르겠다는 말이군.
제법 남자다운 말이다……라고 내가 칭찬을 해 주려는 순간이었다.
재경이는 피식 썩소를 날리며 말했다.
“근데 아마 삼촌이 날 꺾으려면 백만 년은 더 있어야 될 걸? 삼촌 지금 레벨이 200도 안 되지? 그리고 부하들 수준도 아마 내 부하들의 발가락에도 못 미칠 걸? 그런데 어느 세월에 날 꺾을 수 있겠어? 안 그래? 오크가 단신으로 드래곤의 레어를 몽땅 때려 부수겠다고 쳐들어가는 거하고 비슷하지.”
“…….”
아니, 근데 이 자식이…….
그럼 지금 한 소리는 결국 나를 조롱하고 약 올리려고 한 소리였다는 거냐?
이 자식이 현실에서도 꼴 뵈기 싫게 놀더니, 게임 속에선 한 백배는 더 밉살스럽게 처놀고 자빠졌네?
“재경이 너 쪼끔 심하구나. 네 눈에는 삼촌이 그렇게 우습게 보이냐?”
“응, 우습게 보여. 현실에선 아니었는데 이 게임 속에서는 아주 같잖게 보이는데?”
“…….”
나는 다시 열이 치솟는 걸 꾸욱 눌러 참았다.
어른이 되어 가지고 이 건방진 초딩 녀석의 격장지계에 넘어간다는 건 너무 한심한 일이라고 자신을 타이르면서 말이지.
“훗, 녀석. 좋다. 그럼 삼촌의 진정한 능력을 보여 주마. 기필코 널 꺾어서 로그아웃하고 현실로 돌아오게 만들어 주마.”
“정말로 해 볼 거야? 자신 있어?”
“이 자슥아. 자신이 있으니까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냐? 어쨌거나 너 그때 지금 건방 떤 거 뼈저리게 후회하게 될 줄 알아라.”
“그래, 그럼 열심히 해 보셔. 난 그만 돌아가 볼 테니까.”
“잠깐!”
나는 동굴을 나가려는 재경이를 불러 세웠다.
“근데 너 어떻게 블랙 파운딩 기사단을 가뎀 왕국에서 이끌고 있는 거냐? 블랙 파운딩 기사단은 가뎀 왕국 최강 기사단이라며?”
내 말에 재경이는 피식 웃으며 설명을 해 주었다.
간단했다.
게임 시작하면서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사고란 사고, 말썽이란 말썽은 다 치면서 악명을 쌓아서 자기 세력을 구축해 나간 거였다.
그래서 자신을 따르는 세력을 만들고 그중 가장 강한 자들을 추려서 블랙 파운딩 기사단을 만들었다는군.
“근데 잘못 알고 있는 게 있어. 블랙 파운딩 기사단은 가뎀 왕국에 소속된 게 아냐. 어디까지나 내 개인의 기사단이라고. 내 명령에 죽고 사는 기사단 말이지.”
“그럼, 지금 블랙 파운딩 기사단은 가뎀 왕국에 용병으로 싸워 주고 있는 거냐?”
“응, 그게 아니면 싸워 줄 이유가 없지. 근데 블랙 파운딩 기사단이 처음 싸워 주는 싸움이라서 아직 우리 정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우릴 가뎀 왕국의 소속이라고 착각을 한 거지.”
“으음…….”
재경이 말에 나는 잠깐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뚫어져라 재경이를 응시하면서 입을 열었다.
“재경아, 그러면 말이다…….”
“싫어!”
“응, 무슨 소리냐? 싫다니. 아직 내가 말도 안 했구먼.”
“삼촌이 지금 뭔 소리 하려는 건지 다 알아. 가뎀 왕국보다 돈 더 줄 테니까 삼촌이 가담한 마토스 왕국 쪽에 붙으란 거잖아.”
“…….”
젠장, 짜식이 눈치 하난 빠르네.
“뭐, 아니라곤 못 하겠구나. 근데 그게 왜 안 된다는 건데?”
“용병이 그렇게 쉽사리 돈에 매수당하면 신용이 떨어지거든? 그건 가급적 피해야 해. 돈이 중요하긴 한데 그게 전부는 아냐. 악당 짓도 원칙이 없으면 오래 못 해.”
“그건 그렇지…….”
“그리고 삼촌도 지금 퀘스트 때문에 마토스 왕국 도우는 거지? 근데 나도 그렇거든? 지금 가뎀 왕국 도우는 거 포기하면 아주 중요한 퀘스트가 그대로 날아가 버려. 그러니 삼촌 말대로는 못 해.”
“그러냐? 그럼 어쩔 수 없지.”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재경이를 만나긴 했지만 중요한 목적은 다 이루지 못하는군.
이 녀석을 로그아웃 시켜서 현실로 끌어내는 것. 그리고 마토스 국 쪽으로 끌어들여 내 퀘스트를 빨리 성공시키는 것 둘 다 말이지.
하지만 게임 속에서 분명히 무사하게 잘 활동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 건 소득이다.
로그아웃 시키면 아무 일 없이 현실 세계로 복귀시킬 수 있다는 걸 확인한 것도 그렇고…….
내가 체념하고 동굴을 나서려는데 이번에는 재경이 녀석이 날 불러 세웠다.
“삼촌…….”
“왜 임마?”
“삼촌이야말로 나하고 한편 안 먹을래?”
“뭐라고?”
난 재경이의 말에 어리둥절해졌다.
“너 그게 뭔 소리니?”
“나하고 한편 먹으면 무지 세지고 게임도 잘 진행될 거야.”
“임마 그래 봐야 용병 생활이잖아.”
“아니, 이 이케루스 속에서의 내 목표는 그 정도가 아냐.”
“뭐라고?”
근데 이 녀석이 지금 뭔 소리 하는 거지?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재경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재경이는 조금 망설이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 절대로 다른 사람한테 안 한다고 맹세할 수 있어?”
“맹세하마.”
“정말로?”
“아, 그렇다니까. 언제 삼촌이 널 속이는 거 본 적 있냐?”
“너무 많아서 셀 수도 없지.”
난 잠시 머쓱해졌다.
짜슥, 그냥 넘어가면 좋겠구먼. 지가 나한테 당했던 걸 모조리 다 기억하고 있었구먼.
난 애써 미소 지으면서 대답했다.
“그래도 이번은 믿어 봐. 현실이 아니고 게임 속인데 설마 여기서까지 내가 널 엿 먹이겠냐?”
“…….”
재경이는 ‘정말 믿어도 되나?’ 하는 눈으로 날 의심스럽게 보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나…… 가뎀 왕국을 도와서 마토스를 물리친 다음에 가뎀 왕국을 접수할 거야.”
“허걱!”
이 자슥이 지금 뭐래는 거야? 가뎀 왕국을 접수한다고?
“니가 가뎀 왕국을 접수해서 뭐할 건데?”
“아, 왕 한번 해 봐야지! 내 왕국을 가지고 왕 노릇 해 봐야 할 거 아냐. 그런 꿈도 안 꿀려면 내가 여기서 나가지도 않고 아빠, 엄마도 안 보고 이러고 있겠어?”
하긴 그것도 그렇구나.
짜식, 어찌 보면 대견하네.
게임일 망정 그래도 한 나라를 홀라당 뒤엎고 왕이 되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었구먼.
아마 왕이 돼서 후궁이나 몇 백 명 거느리고 싶어서 자신만의 할렘을 만들려고 그러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남자로 태어나서 그 정도 꿈을 꾸고 있다는 건 칭찬해 주고 싶군.
하지만…….
“근데 그렇게 되면 삼촌이 이루어야 하는 퀘스트가 물 건너가 버리거든?”
“응, 그건 그렇지. 그럴 거라는 건 알고 있는데……. 그건 아깝지만 삼촌이 포기하면 안 될까?”
“포기하라고?”
“응, 날 위해서 포기하고 그냥 나랑 한편 먹어. 그럼 좋잖아.”
“누구 좋으라고 그걸 포기하냐?”
“나 좋으라고. 지금까지 삼촌이 날 얼마나 많이 엿 먹였어? 사실 삼촌처럼 조카한테 못되게 군 사람도 별로 없을 거야. 그러니 이번만이라도 나한테 좋은 일 한 번 해 봐.”
재경이는 제법 진지하게 날 설득하려고 들었다.
쪼끔 양심에 찔리기는 하는군. 녀석의 말대로 난 전혀 좋은 삼촌이 아니어서 말이지.
하지만…….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녀석 때문에 내가 목표하는 것을 그리 쉽게 포기하라는 게 말이 되냐고.
나도 남자란 말이다!
나는 배에 힘을 주고 단호히 말했다.
“훗, 거절한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박 터지게 싸우는 수밖에.”
“그래, 어디 한번 해 보자고. 누가 이기는가. 후후후.”
“삼촌 나한테 깨지고 나서 후회하지 마. 내 바지 붙잡고 징징거려 봐야 그때는 이미 소용없으니깐.”
“짜식, 너야말로 나중에 울지 마라.”
우리는 서로를 향해 썩소를 날린 다음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