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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5권(108화)
Part 4. 포로가 되다(1)


“아니, 그게 무슨 소린가? 그럼 블랙 파운딩 기사단장은 우리를 물리친 다음에 가뎀 왕국까지 꿀꺽 삼킬 속셈을 품고 있다는 그 말이오?”
“그렇습니다, 전하. 제가 블랙 파운딩 기사단장한테 직접 들었으니까요. 아주 야심이 크고 속이 시커먼 자입니다.”
“으음, 그렇군. 어쨌건 그자를 만나고 오자마자 이렇게 알려 주어서 고맙소이다.”
투르펜이 나한테 감사의 뜻을 표하니 내 기분이 쪼끔 좋아지려고 하는군.
사실은 재경이 녀석한테 그 말을 듣자마자 결심했었거든. 사방팔방에 이 사실을 떠벌리고 다녀서 재경이를 온 세상의 주목을 받고, 급기야 왕따를 당하게 만들어야겠다고.
물론 내가 재경이와 숙질간이라는 사실만은 밝히지 않으면서 말이지.
뭐라고?
심보가 왜 그러냐고?
분명히 말 안 한다고 약속하고서는 들은 이야기를 그렇게 마구 떠벌리는 게 인간적으로 할 짓이냐고?
아니, 그게 어때서?
내가 지금 그런 거 꺼리게 됐냐고.
수단 방법 안 가리고 재경이한테 패배의 쓴잔을 안겨 주고 현실로 데리고 나와야 하는데 말이야.
그걸 위해서라면 재경이가 날 치사하고 신용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몹쓸 삼촌으로 본다고 해도 개의치 않는다.
짜식이 오랜만에 삼촌인 나를 만났으면 사근사근하게 굴 것이지, 감히 나한테 마구 개기고 맞짱을 떠보자고 건방을 떨어? 그래서 내가 열 받아서 이렇게 고자질을 하고 있다는 건 물론 밝힐 수 없는 일이다.
옆에 서 있던 랑케가 골똘히 생각한 끝에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를 가뎀의 국왕에게 알려 주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가뎀은 내부에서 자중지란을 일으키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조핀이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소용없을 겁니다. 증거가 없으니 가뎀 국왕이 믿으려고 하지 않을 테니까요. 어쨌거나 아쉽네요. 블랙 파운딩 기사단만 없어도 가뎀 군과 승부를 걸어 볼 만한데…….”
“…….”
투르펜과 랑케, 조핀, 이 세 사람은 매우 아쉬워하면서 동시에 뭔가를 간절히 바라는 눈빛을 나에게 집중시켰다.
아, 이 사람들 참……. 저 눈빛이 의미하는 바는 ‘어떻게 해서든 당신이 블랙 파운딩 기사단을 아작 내 주면 안 될까? 당신 말곤 우린 믿을 데가 없는데…….’라는 걸 강력히 암시하고 있구먼.
좋아, 그렇다면 기대에 부응해 주도록 하지.
그러나 날름 ‘그렇게 해 주마’라고 하려니 내 자존심에 쪼끔 손상이 가는 것 같다.
“그것참……. 물론 내가 나서면 해결이 되긴 하겠지만……. 마토스 군이 날 제대로 지원만 해 줘도 무슨 수가 날 텐데……. 저번 전투처럼 날 적진에 고립시키는 등으로 찬밥 취급하면 참 곤란한데…….”
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투르펜과 랑케, 조핀은 정색을 하면서 나에게 다가와서 다시 그런 일이 벌어지면 지휘관들의 목을 치겠다는 둥, 그런 천인공노할 일은 두 번 다시없을 테니 안심하고 싸워 달라는 둥 마구 아양을 떨어 댔다.
난 그들이 아부 떠는 걸 이십 분쯤 더 보고 있다가 느긋이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알겠다구요. 그럼 내가 한번 수를 써 보죠. 블랙 파운딩 기사단장을 제거하도록 해 보겠습니다.”
“오오…….”
“역시 우영 님밖에 믿을 데가 없습니다!”
“근데 무슨 수로 블랙 파운딩 기사단장을 제거하실 건데요?”
이 중년 아저씨가 답변이 곤란한 질문을 하는군.
‘사실 걔하고 내가 숙질간이니까 그거 이용해서 아작 낼려고 하거든요?’라는 말을 내가 여기서 할 수 있겠냔 거다.
“그건 조핀 님은 모르셔도 됩니다. 투르펜 전하나 랑케 경처럼 나중에 그냥 감탄만 터뜨리시면 됩니다.”
“이잉~ 알고 싶은데!!”
“후훗! 기다리세요. 멋지게 처리해 보일 테니까.”
나는 가슴을 두들기며 호언장담을 했다.

“얘들아 좀 모여 봐라!”
우르르~
헉! 전 부대원들이 삽시간에 다 나한테 달려드는군.
당황한 나는 급히 말했다.
“아니, 피그몽들하고 미라쥬 길드원들, 그리고 제자들은 그냥 있어도 된다. 파티원들만 모이란 거다.”
내 말에 파티원 외의 존재들은 툴툴거리며 원위치했다.
파티원들이 내 앞에 모여서 ‘이 인간이 또 무슨 귀찮은 거 시킬 건가’라는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젠장, 믿을 놈들이 이것들뿐이라는 게 짜증 나긴 한다만 어쩔 수 없군. 그래도 심복들이니까.
“잘 들어라. 비밀 임무를 맡기려고 하는데 누가 자원할래?”
“비밀 임무요?”
“그래, 비밀 임무!”
내 말에 파티원들은 별로 내키지 않는 표정들이다. 비밀 임무라니까 상당히 위험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죽을지도 모르니 그럴 테지.
“없냐?”
“제가 하겠습니다.”
케브라가 성큼 앞으로 나섰다.
역시 몸을 사리지 않는 건 케브라밖에 없군.
그리고 나로서도 너한테 임무 맡기는 게 좋다.
그래야 위험한 임무를 맡다가 사망해서 내 잠자리가 편해질 테니까……라고 대놓고 말은 못 하겠다만.
“한 명 더 있어야 하는데……. 내가 원하는 사람한테 가서 내 말을 전해 줄 사람이……. 그렇지 세영이 네가 케브라하고 함께 가라.”
“제가요?”
“그래, 아무래도 여자가 가면 상대가 좀 귀담아서 무슨 소리를 하는지 들을려고 할 테니까.”
“그런가요? 그럼 할 수 없죠. 별로 내키진 않지만 오빠가 엎드려 부탁하니 해 보죠, 뭐.”
“…….”
웬 건방이냐고 한 소리 해 줄까 하다가 관뒀다.
좌우지간 난 세영이와 케브라에게 임무를 내렸다.
블랙 파운딩 기사단장에게 가서 내가 저번에 만났던 그 장소에서 내일 정오에 만나자는 말을 전하라고 말이지.
만나자는 이유는 저번의 그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이 있으니 좀 더 의논을 해 보고 싶기 때문이라고 하기로 했다.
“알겠냐? 그자가 꼬치꼬치 캐묻거든 그렇게 말하면 된다.”
“정말 그렇게만 하면 돼요? 딴 건 필요 없구요?”
“응, 그것만 전하면 돼. 그리고 돌아오면 된다.”
“근데 그 기사단장은 오빠하고 어떻게 되는 사이죠? 지금 오빠 말로는 매우 가까운 사람인 것처럼 들리는데…….”
헉!
세영이 녀석이 뭔가 눈치를 챘나 보다.
그렇다고 ‘걔하고 나하고 숙질간이야. 걔가 바로 재경이야.’라고 말할 순 없지.
말해 줬다가 이게 새 나가면 여러모로 안 좋을 수가 있으니까.
적군의 최강 기사단장하고 친척 관계인 게 밝혀지면 말이지.
그래서 나는 시침을 뚝 뗐다.
“너 그게 뭔 소리니? 그 사람하고 내가 가까운 사이라니? 전혀 그런 거 없거든. 그러니 자꾸 엉뚱한 소리 하지 말고 후딱 가서 전하고 와.”
내 말에 세영이는 궁시렁거리면서도 케브라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그럼 두 사람이 재경이 녀석의 답변을 받아 올 동안, 난 잠시 로그아웃을 해야겠군…….

* * *

방 천장의 벽지가 눈에 들어오자 난 헤드셋을 벗고 침대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대충 세수를 하고는 옷을 입은 다음 대문 밖을 나섰다.
거리는 어느덧 가로수의 낙엽이 떨어지며 가을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쩝, 게임에 몰두하다 보니 계절이 바뀌는 것도 모르고 있었군.
버스에 타고 창가에 앉아 거리를 바라보았다. 무심한 사람들이 거리를 바쁘게 걸어 다니고 있었다. 거리의 상점과 간판의 모습까지 어딘가 생경하다.
이러다간 게임이 나의 실제 생활이 되고, 현실이 부가적인 생활이 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런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형의 집 부근에 도착했다.

“형~”
“우영이냐? 그래 어떻게 돼 가고 있냐? 재경이는 언제쯤이나 찾는 거냐?”
“응, 그거 때문에 왔어. 사실은 어제 드디어 재경이를 게임 속에서 만났어.”
“그게 정말이냐?”
“어머! 그게 정말이에요, 삼촌? 우리 재경이 무사한 거죠?”
내 말에 형과 형수는 얼굴에 희색이 감돌았다.
“정말이고말고요. 아주 멀쩡합니다. 평소에 나한테 하듯이 게임 속에서도 마구 개겨 대는지라 좀 두들겨 줬어요.”
“그러냐? 그렇다면 진짜 멀쩡하구나. 고놈의 자식이 예의 바르게 굴면 뭔가 이상이 생긴 거겠지만.”
형은 이마의 땀을 닦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형수도 적이 안심이 되는 표정이었다.
“삼촌, 그럼 만난 김에 당장 현실로 돌아오게 하지 않으셨어요?”
“그게 좀 난감해졌는데……. 그놈의 자식이 지금 당장은 게임에서 나오기 싫답니다.”
내 말에 형과 형수는 망연한 표정이 되었다.
곧 형수는 울먹이려고 했고, 형은 버럭 화를 냈다.
“아니, 뭐라고? 게임 관두고 나오기가 싫어? 내 이놈의 자식을!”
“형, 너무 그러지 마. 형이 그러니까 걔가 안 나올려고 그러는 거 아냐. 그러더라고 나가면 아빠가 다시는 게임 못 하게 할 거니까 절대로 못 나가겠다는 거야. 즉, 걔가 그러는 건 형과 형수한테도 책임이 있다고.”
“으음…….”
“…….”
내 말에 형과 형수는 할 말이 없는지 대꾸를 못 했다.
“하지만 너무 걱정들 말아요. 내가 어찌해서든 그놈의 자식을 현실로 나오게 할 테니까.”
“그래, 우영이 너만 믿는다…….”
“흑, 정말 우리 삼촌이 없었으면 우린 누굴 의지했을지…….”
두 사람이 나한테 공치사를 마구 하자 난 거북스러워져서 몸을 일으켜 재경이 방으로 갔다.
침대에는 재경이가 헤드셋을 쓴 채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짜식…….
어째 전에 봤을 때보다 입가의 미소가 더 사악해진 느낌이다.
마치 ‘용용 죽겠지? 삼촌이 날 어떻게 하지 못 하니까, 약 올라 미치겠지?’라고 말하는 듯하다.
흥, 짜식아. 이제 곧 어떻게 되는지 두고 봐라.
나는 마음속으로 말해 주고는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