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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5권(109화)
Part 4. 포로가 되다(2)


“엇! 우영. 어디 갔다 왔냐, 쉬익!”
“엉. 잠시 볼일이 있어서 말이지. 근데 세영이하고 케브라는 임무 마치고 돌아왔냐?”
“저쪽 방에 있다. 근데 세영의 표정이 별로 안 좋다, 쉬익!”
“그래?”
란슬링의 말에 난 고개를 갸웃하면서 방문을 열었다.
“임무는 잘 수행한 거냐?”
“나 참 세상에……. 기가 차서!”
어랍쇼?
세영이 이 녀석이 왜 이렇게 열이 받아 있는 거지?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너, 왜 그러는 거냐?”
“흥, 정말…….”
가만 보니 케브라는 멀쩡한데 세영이 녀석만 그러는군. 그렇다는 것은…….
“세영아, 그만 흥분하고 오빠한테 말해 주겠니? 거기서 뭔 일이 있었는지.”
“흑! 옵빠!”
허걱!
세영이가 몸을 던져 내 품에 안기며 훌쩍거린다.
근데 별로 므훗하지도 않군.
역시 절벽 가슴인 녀석은 이게 문제라니깐.
하지만 지금 그런 거 신경 쓸 때가 아니지.
“녀석,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해 보라니까.”
“그게 말이죠…….”

“뭐? 블랙 파운딩 기사단장이 너한테 성희롱을 했다고?”
“네……. 나를 보더니 대뜸 하는 소리가 쓰리 사이즈가 어떻게 되느냐, 남자 친구는 있느냐? 혹시 내가 가뎀 왕국의 왕이 되면 열두 번째 후궁이 안 되겠느냐, 열한 번째까지는 다 정해 뒀으니 안 되고, 열두 번째로는 첩으로 삼아 줄 수 있다. 히프하고 허리는 괜찮은데 가슴이 왜 그렇게 처참하냐 등등……. 내 속을 뒤집는 소리는 다 하지 뭐예요!”
으음, 이건 엄밀히 말하면 성희롱이라기보다는 세영이 녀석의 자존심에 기스 내는 말을 한 거로군.
“게다가 날 보는 눈이 어찌나 느끼한지 토 쏠리는 거 참느라고 어찌나 애먹은지 아세요? 도대체 오빠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사람한테 날 사신으로 보낸 거예요?”
“…….”
무슨 생각으로 보내긴, 무슨 생각으로 보냈겠냐. 머리 꼭대기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은근히 여자 밝히는 버릇이 있어서 그것 땜시 보낸 거지.
그래야 그자식이 내가 보낸 제안을 정신 못 차리고 덥석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즉, 세영이를 일부러 보낸 목적은 훌륭하게 달성된 거다. 재경이가 내 제안을 받아들인 것 같으니까.
하지만 그런 앞뒤 사정을 세영이한테 다 말해 줄 필요는 없겠지.
“그래, 어쨌거나 내 제안을 그자가 받아들이겠다고 하더냐?”
“네……. 약속한 시간에 그 장소로 가겠대요.”
“그럼 됐군. 두 사람 다 수고했다.”
“그런데 말이죠…….”
세영이는 머리를 갸웃하며 심상치 않은 눈으로 날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 자식이 왜 이러지?
“그 기사단장, 가만 보니 오빠하고 무지 닮았던데…….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닌가요?”
“닮아 보이디?”
“네. 지금의 오빠한테 싸가지하고 개김성, 왕재수에, 밥맛없는 것만 조금 더 보태면 바로 그 사람이에요. 정말 똑같다니까요?”
“…….”
젠장! 세영이 이 자식 엄청 예리하군.
이 정도면 99.99%의 정확한 관찰이다.
“뭐, 이 게임하는 사람이 백만 단위인데 어쩌다 보면 형제처럼 닮은 사람도 있을 수 있는 거지 뭐. 그런 거 신경 쓸 시간 있거든 어떻게 하면 날 잘 보좌할까 그런 거나 신경 쓰렴. 그럼 가서 일들 봐.”
“지금 할 일 별로 없는데……. 아, 알았어요. 나가요, 나간다니까요. 그러니 등 좀 떠밀지 마요!”
세영이 녀석을 내보낸 다음 난 땀을 쓸어 내렸다.
휴우, 하마터면 둘이 인척 관계인 거 들킬 뻔했네.
그때였다.
조핀이 불쑥 나타났다.
“우영 님?”
“아니, 조핀 님. 갑자기 웬일이세요?”
“블랙 파운딩 기사단장과 다시 만나실 거라면서요?”
“아니, 그걸 어떻게…….”
“파티원들한테서 들었습니다…….”
제길, 세영이 녀석이 조핀한테 말해 줬나 보군. 입단속을 시켜 놓는 건데…….
근데 조핀은 어째 걱정되는 표정을 짓고 있다.
“우영 님, 우리가 모르는 장소에서 단둘이서 그자와 만난다고 하셨는데……. 어쩐지 걱정이 됩니다.”
“에이, 걱정은 무슨……. 염려마세요. 제가 누굽니까? 조핀 님은 지금까지 제가 실수하는 거 본 적 있으세요?”
“네, 꽤 여러 번 본 거 같은데요?”
“…….”
근데 이 아저씨가 왜 이러나 모르겠네.
적당히 장단 맞춰 주면 좋겠구먼. 꼭 이렇게 쪽을 줘야겠냐고.
내가 인상을 쓰고 째리자 조핀은 씨익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농담이구요. 좌우간 뭔가 대비를 해서 가세요. 상대도 만만찮은 지략가일 텐데 두 번씩이나 우영 님을 만나면서 똑같이 대처할 거란 보장은 없지 않습니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을 테니까요.”
음, 듣고 보니 그것도 그러네.
재경이 이 자식이 사실 여간 얍삽한 놈이 아니라서.
나한테 당한 뒤에는 반드시 보복을 하곤 했다. 그것도 제 나름대로 머리깨나 굴려 가면서 말이지.
“알겠습니다. 조핀 님의 말씀을 참고해서 저도 뭔가 대비책을 세우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안심해도 되겠군요. 역으로 우영 님이 그자를 제거할 수 있기를 빌겠습니다.”
말과 함께 조핀은 눈을 찡긋하며 나갔다.
노회한 중년 아저씨답게 내 마음을 읽고 있었군, 후후후훗!

저벅저벅!
동굴 속에서 발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저번보다 더 크군. 당연한 게 이번은 나 혼자가 아니니까 그렇지만.
파티원들을 함께 데리고 가고 있거든. 그것도 중무장을 시켜서.
재경이 녀석이 내 뒤통수를 칠 경우를 대비하려고 말이지.
오히려 녀석이 어설프게 개길 경우에는 파티원들과 합세해서 다굴을 해 줄 작정이다.
재경이의 레벨이 상당히 높긴 하지만 파티원들과 함께라면 승산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블루 울프 기사단도 함께 데려오려고 했는데 그 많은 인원들과 함께 움직이면 재경이가 낌새를 챌 수 있을 것 같아서 그건 포기해야 했다.
이윽고 동굴의 연못에 도착했다.
재경이는 그때처럼 폼 잡은 채로 그곳에 이미 와 있었다.
“삼촌, 이제 와?”
허걱!
“헛! 아니, 이게 뭐야, 삼촌이라니?”
“설마 블랙 파운딩 기사단장이 조카였냐, 쉬익!”
“어머, 세상에…… 어째 하는 꼴이 비슷하더라니. 우영 오빠, 근데 어째서 모르는 사이라고 나한테 뻥을 친 거죠?”
젠장…….
재경이 이 눈치 없는 자식.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함께 있을 때는 삼촌이라고 부르지 말아야 할 거 아냐.
난 찝찝한 기분이 되었다.
하지만 이미 파티원들이 다 알아 버렸으니 어쩔 도리가 없군.
“소개하지. 이쪽은 니들도 알다시피 블랙 파운딩 기사단장이자 내 조카 전나세다!”
“그러고 보니 닮았다, 쉬익!”
“특히 얍삽하고 치사스런 인상을 주는 저 눈매가 아주 똑같군.”
란슬링과 다쓰가 재경이와 날 번갈아 보며 말하자 다음에는 세영이가 재경이를 째려보며 입을 열었다.
“세상에 기가 막혀. 너 저번에 나한테 한 거 말 좀 해야겠다. 너는 어떻게 된 애가 니 삼촌하고 사귀는 여자한테 추파를 던지니? 아무리 개념 없어도 그렇지. 너 그러는 거 아니다?”
“…….”
파티원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에 재경이의 얼굴이 붉어졌다.
열 받은 거지.
아무리 내 조카라고 해도 지금은 상대하는 적국의 기사단장으로서의 대우를 해 줘야 하는데 말이야.
이건 무슨 동네의 철딱서니 없는 코흘리개 취급이잖냐고.
“훗! 아주 죽고 싶어서 몸부림들이구나.”
“…….”
재경이가 서늘한 살기를 풍기며 하는 말에 파티원들은 움찔해서 입을 닫았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파티원들을 타일렀다.
“니들 좀 조용히 하고 가만있어라. 괜시리 우리 대화하는데 끼어들지 말고.”
“…….”
내 명령에 파티원들이 입을 다물자 재경이는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짝다리를 짚고 팔짱을 낀 채로 말이지.
“뭐야, 삼촌. 왜 또 나를 보자고 한 거지? 내가 전에 말한 대로 나하고 손잡기로 마음먹은 거야?”
“응, 그걸 내가 진지하게 생각해 봤었거든?”
“정말 나하고 한편이 될 거야? 잘됐다. 난 사실 삼촌이 왕싸가지에 재수가 없지만 그래도 같은 편이 되면 무지 든든하긴 할 거 같거든.”
근데 이 자식이 말하는 꼬락서니가 뭐 이래?
난 내심 이를 아드득 물면서 말을 이었다.
“근데 그 전에 뭐 하나 물어보자, 재경아.”
“뭔데? 뭐든지 마음대로 물어봐. 다 얘기해 줄게.”
“너 여기 올 때 혼자 왔냐?”
“혼자 왔는데.”
“아무한테도 안 알리고?”
“응, 내가 여기 온 거 가뎀 왕국에선 아무도 몰라.”
“그렇구나.”
“…….”
나와 재경이의 두 눈이 마주쳤다.
물론 내 눈에서는 회심의 빛이 번득였다.
그리고 당연히 재경이는 나의 사악한 속셈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천진난만한 눈빛……은 전혀 아니로군.
저놈의 자식은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천진난만한 적이 없었던 거 같으니까.
좌우간 재경이가 혼자 왔다는 사실을 확인한 나는 어깨를 활짝 펴고 말했다.
“근데 재경아. 가만 생각해 보니 내가 너하고 한편이 되는 건 문제가 많아서 안 되겠다. 삼촌이 자존심이 쪼끔 상하거든? 그러니 니가 내 밑으로 들어오렴. 그게 훨씬 더 낫겠다.”
“뭐라고?”
“니가 내 밑으로 들어오라고, 짜샤.”
“…….”
내가 유들유들하게 말하자 재경이는 열 받은 표정으로 날 째려보았다.
하지만 그런다고 쫄 내가 아니지.
아무리 재경이보단 레벨이 낮아도 내 파티원들과 난 나름대로 아수라장을 돌파하고 여기까지 왔단 말이다.
힘을 합치면 재경이 하나 해치우는 건 사실 불가능한 건 아니다.
내가 눈짓을 하자 파티원들은 일제히 무기를 꺼내고 자세를 잡았다.
나도 물론 메이스를 꺼내서 재경이를 겨냥했다.
그러자 재경이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이제 보니 삼촌이 날 로그아웃 시킬려고 여기로 불러낸 거네? 나하고 한편 먹겠다는 말을 하려고 부른 게 아니고 말이지.”
“이제 알았냐? 알았으면 순순히 말 들어. 니가 아무리 개겨 봐야 삼촌을 굴복시킬 순 없으니까. 좋게 말할 때 삼촌 하란 대로 해라.”
“싫어!”
“뭐라고?”
“싫다고 했어.”
“…….”
난 고개를 갸웃했다.
이 녀석이 내 말에 개기는 거야 워낙 많아서 셀 수도 없으니 놀랄 것도 아니다.
근데 어째 싫다고 말하는 표정이 너무 태연하네?
현재의 상황에 전혀 위기감을 못 느끼는 표정이란 거지.
난 쪼끔 불안해졌다.
이 자식이 뭔가 믿는 구석이 있어서 저러는 것 같은데 설마 지 부하들을 이 근처에 숨겨 뒀나? 아니라고 제 입으로 말하기는 했다만.
내 표정을 읽은 듯 재경이는 얄미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 혼자 여기 왔다는 건 뻥 아니거든. 그러니까 삼촌, 그런 표정 짓지 마.”
“정말이냐? 그럼 이제 아무 문제없구나. 재경아, 삼촌이 지금 널 로그아웃 시켜 줄 테니 기대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