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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5권(110화)
Part 4. 포로가 되다(3)
내가 사악한 미소를 가득 머금으면서 파티원들에게 재경이를 사정없이 다굴하라는 명령을 내리려는 순간이었다.
재경이는 피식 웃더니 품에서 작고 동그란 물체를 재빨리 꺼내서 우리 발아래로 던졌다.
“내가 혼자 왔다고, 아무 생각 없이 온 거 아니거든?”
퍼엉!
둥근 물체가 폭발하는 순간 삽시간에 노란 연기가 동굴 안을 감쌌다.
우리들은 서둘러 입과 코를 막았으나 흐려지는 의식을 바로잡지 못하고 하나둘 쓰러지고 말았다.
망할…….
난 의식을 잃으면서 내 어리석음을 탓했다.
지금의 재경이라면 이 정도 아이템은 분명히 가지고 있을 거라는 걸 생각해야 했는데…….
“으음……. 억! 여기는!”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의식을 되찾은 나는 벌떡 일어나서 사방을 살폈다.
단단한 돌로 만들어진 감옥이었다. 전면이 쇠창살인 10평 정도의 방에 파티원들과 함께 구금된 거다.
의식을 잃게 하는 가스탄을 터뜨려서 우릴 제압해서 이곳에 /처넣은 거로군.
보나마나 가뎀 군의 감옥이겠지.
“…….”
근데 어째 나한테 뭔가 날아와서 꽂히는 기분이라서 쭈욱 둘러보니 파티원들이 아주 못마땅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니들 왜 그러냐. 나한테 뭔 불만 있니?”
“몰라서 묻냐, 쉬익! 하필 그런 조카를 둬서 우릴 이 꼴로 만드냐, 쉬익!”
“아무리 숙질이 닮은 꼴이라 해도 참 심합니다. 우영 형님.”
“딴 사람은 몰라도 지 숙모 될지도 모르는 나를 이런 곳에 가두다니. 이건 인간 말종이나 할 짓 아닌가요, 우영 오빠!”
젠장…….
나도 심란해 죽겠는데 이것들은 한 술 더 뜨고 자빠졌네.
어쨌거나 내 실수다. 확실히 재경이를 너무 깔본 것 같다.
그저 파티원들만 데려가서 힘으로 제압해서 로그아웃 시킬 생각만 하고 있었으니.
쩝…….
파티원들한테 욕먹어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막 드는군.
그때였다.
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우리가 있는 방 쪽으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내 재경이가 부하의 안내를 받아 모습을 드러냈다.
“어때, 삼촌. 지낼 만해?”
“나쁜 놈 같으니…….”
“그게 지금 삼촌이 나한테 할 소리야? 야비하게 내 뒤통수 때리려고 한 인간이 누군데?”
내가 삐쳐서 말하자 재경이 녀석이 비웃으며 반박했다.
뭐, 니 말이 맞기는 하다만 그래도 삼촌 체면이라는 게 있잖냐고 이 자식아!
“재경아, 날 풀어 달라고까진 안 하겠다. 하지만 아무리 삼촌이 잘못이 있어도 그렇지 이따구 비위생적이고 불편한 곳에 삼촌을 모시면 되겠냐? 내 좋게 말할 때 다른 곳으로 옮겨 주라. 좀 때깔 나고 아늑하고 지내기 좋은 곳으로 말이다.”
내 말에 파티원들도 기대하는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재경이는 매정하게 거부 의사를 표시했다.
“그렇겐 안 되겠어. 딴 데 옮겼다가는 삼촌이 또 잔머리 굴려서 튈 거잖아. 그걸 뻔히 아는데 내가 어떻게 다른 곳으로 옮겨 줄 수가 있겠어. 이곳은 탈옥이 불가능한 방이거든?”
“헉! 그렇다면 설마…….”
불안한 예감에 내가 비명처럼 말하자 재경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벽과 바닥이 딱딱한 암석으로 되어 있어서 절대로 안 무너지고 뚫기도 불가능할 거야. 그리고 설사 로그아웃 할려고 일부러 자살을 해도 재접속하면 이곳에만 재접속이 되거든? 그러니까 이곳을 나가는 방법은 딱 두 가지뿐이야.”
“니가 풀어주든가…… 캐릭을 지우든가…….”
“그렇지. 잘 아네? 그러니까 순순히 내 말을 듣든가 아니면 이곳에서 게임 생활 끝마치든가 알아서 해. 그럼 난 가 볼게…….”
재밌다는 듯 킥킥대면서 재경이 녀석은 나가 버렸다.
빌어먹을 저 얄미운 녀석.
하필이면 이런 고약한 곳엘 가두다니…….
근데, 이런 특별한 감옥을 손에 넣으려면 엄청난 권력이 있어야 하는데 재경이 녀석은 그걸 얻었단 거군.
확실히 녀석은 지금 무시 못 할 상대로 성장한 게 분명하다. 옛날의 재경이가 아니라는 거지.
어쨌거나 내가 재경이한테 아무런 양보도 얻어 내지 못하자 파티원들은 참 한심하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젠장, 재경이 놈한테 비웃음 당하는 것만 해도 그런데 이것들까지…….
열 받은 나는 빽 소리 질렀다.
“야! 니들 지금 그 표정이 뭐냐? 니들 지금 날 비웃는 거냐? 그런 거야!?”
“잘 아네, 쉬익!”
“알면서 뭐하러 물어보세요?”
“조카가 저렇게 개기는 데도 꼼짝 못 하는 삼촌은 아마 오빠가 이 세상에서 유일할 거예요.”
젠장, 이거 정말 미치겠군.
하도 열이 뻗쳐서 그냥 모포나 뒤집어쓰고 바닥에 누우려는데, 케브라가 나를 향해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설마…….
나는 벌떡 자리에 앉아서 밖을 살폈다.
밖에 경비병도 안 보이고 아무도 없는 게 확실했다.
하도 튼튼한 감방이라 아예 경비병을 세울 필요를 못 느끼는 게 틀림없다.
난 안심하고 케브라에게 물었다.
“어떠냐? 케브라 너라도 이곳 바닥을 파는 건 불가능할 거 같은데…….”
그렇다.
땅파는 재주가 있는 케브라가 있긴 했지만 이곳 바닥이 워낙 단단한 돌로 되어 있어서 난 케브라가 땅굴을 파서 탈출하는 것도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던 거다.
그러나 케브라는 뜻밖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영 님께선 절 과소평가하시는군요. 섭섭합니다!”
말과 함께 케브라는 품에서 삽을 꺼냈다.
재경이 놈은 우리한테서 무기를 하나도 빼앗지 않았다.
니들이 무기를 갖고 있어 봐야 이 감방 안에선 아무 소용없다는 자신감의 표시인거지.
하지만 그게 우리로선 희망을 걸어 볼 계기가 된 거다.
케브라가 삽을 휘휘 세 번 돌리자 삽이 곡괭이로 변신했다!
“모르셨겠지만 저의 삽질 스킬은 1단계 삽질계의 새싹, 2단계는 삽질계의 기린아, 3단계 삽질계의 대스타를 거쳐서, 4단계는 삽질계의 영원한 오빠, 즉 삽질 마스터에 도달한 상태입니다. 삽질 마스터에게 파지 못할 지형이란 절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아!!”
오오, 이럴 수가 있나.
우리가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이 생겼다니!
파티원들은 일제히 환성을 울리며 박수를 치고 케브라를 칭찬하기 바빴다.
젠장, 이거 방금 전까지 날 찬밥 취급하던 거 하곤 영 대조적이구먼.
괜히 질투가 나려고 한다.
하지만 지금 그런 거 따질 때가 아니다. 어서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아무리 경비병이 안 둘러본다고 해도 그래도 그렇지, 불쑥 누가 들이닥칠 수도 있는 거니까.
“케브라 서둘러라. 파고 파고 또 파서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자. 지금 이러고 있는 동안에도 가뎀 군이 마토스 군을 몰아붙이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푸파파파파파파파!
케브라의 손에 드린 네 자루 삽과 곡괭이가 바람개비처럼 현란하게 돌아가며 춤을 추었다.
순식간에 방 안은 파낸 흙과 돌로 가득 차기 시작했고, 이내 땅굴이 만들어졌다.
나는 크게 소리쳤다.
“뭐하고 있냐! 어서 빠져나가자! 어서!”
Part 5. 동맹을 맺는 두 나라(1)
“아니, 우영. 도대체 어디서 뭐하다가 지금 오는 거요? 전황이 이렇게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땅굴을 뚫어서 마토스 군 진영으로 탈출한 우리는 다시 본 투르펜으로부터 책망의 소리를 들어야 했다.
“면목 없습니다. 사실은 블랙 파운딩 기사단장을 사로잡아 보려고 시도했으나 놈의 함정에 빠져서……. 잡혔다가 가까스로 탈출했습니다.
“음, 그랬군…….”
그제야 투르펜은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어째 내가 없는 새에 엄청난 전투가 있었던 것 같다.
투석기에서 날린 바위만 한 돌덩이에 깔린 시체가 즐비하고, 화살과 창에 찔려서 쓰러진 자들은 부지기수였다.
우리가 재경이를 만나 구금당하고 있는 사이에 적들의 대대적인 공세가 있었고 지금은 잠시 소강상태라고 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게임은 너무 리얼하군.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피비린내와 시체들의 타는 냄새까지 너무 실제와 비슷해서 구토가 나올 것만 같으니까 말이지.
그때 전투를 마치고 돌아오는 한 무리가 있었다. 아주 친근한 무리들이…….
“선생님, 돌아오셨습니까!”
“흐흐흐. 우영 왔냐? 햄 다 떨어져 가는 거 알고 있냐. 흐흐흐.”
“저, 우영 님. 약속한 기간이 끝나 가는 거 같은데 이사도라 님한테 연락을 하고 우린 돌아가 봐야 할 거 같은데요.”
우리 부대원들이다.
쩝…….
전투를 한 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런 소리들이 나오는군.
그나저나 보급 문제하고 미라쥬 길드원들을 더 부리는 건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다.
피그몽들한테는 햄과 베이컨을 마음껏 먹게 해 주겠다는 구실로 전투로 내몰고 있고 미라쥬 길드원들은 이사도라한테, 짧은 기간 동안이면 길드원들을 빌려 주겠단 허락을 받아서 부리고 있는 거니까.
난감하군.
베이컨과 햄은 마토스한테 부탁해서 보급을 타내긴 했지만 이미 거진 다 소모한 상태다.
피그몽들이 좀 많이 먹어야 말이지.
그렇다고 마토스 군부터가 보급이 부족한 판인데 더 달라고 요구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미라쥬 길드원들을 더 싸우게 하려면 이사도라한테 부탁을 해야 하지만 그것도 껄끄럽다.
내 얼굴을 보면 이 아줌마가 또 야리꾸리한 소리하면서 자신과 내가 한 아이를 만드는 작업을 한 사이임을 강조를 할 테니까 말이지.
젠장, 골치 아픈 거 생각하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 전쟁이 빨리 결판이 나 줬으면 좋겠는데.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총 지휘관 랑케의 지시가 있었다. 적의 공세가 일단 끝난 것으로 보이니 전군은 경계병을 제외하고 휴식 상태로 들어가도 좋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파티원들과 함께 막사로 돌아가서 피곤한 몸을 뉘였다.
“우영 오빠. 이거 어떻게 된 걸까요?”
재경이한테 탈출해서 돌아온 지 사흘째 되는 날의 오전이었다.
세영이 녀석이 사뭇 궁금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다.
“난들 알리요.”
그러나 난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지금 우리 전면에는 마토스 군 진영이 보인다. 근데 어쩐지 무척 조용하다. 이게 벌써 나흘째인데 살기가 흐르고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흐를 때와는 사뭇 다르다.
다쓰도 한마디했다.
“이 일대가 온통 피바다가 될 때하고는 전혀 딴판이니 정말이지 이상하긴 합니다.”
그때 투르펜을 호위하는 기사 하나가 다가와서 말했다.
“우영 님, 국왕 전하께서 와 달라고 하십니다.”
“무슨 일이라도?”
“자세한 건 모르겠습니다. 가셔서 알아보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