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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5권(111화)
Part 5. 동맹을 맺는 두 나라(2)


“전하, 부르셨습니까?”
투르펜의 막사로 들어선 내가 인사를 하자 랑케, 조핀 등을 옆에 세우고 있던 투르펜은 묘하게 흥분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거 뭔가 심상치 않은데…….
“우영, 어서 오시구려.”
“뭔가 제게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지요?”
그러자 랑케가 대답을 대신했다.
“우영 님, 이거 상황이 흥미롭게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근데 이 아저씨도 어쩐지 예사롭지 않은 표정이다.
“무슨 말씀인지?”
내가 의아해 하자 조핀이 입을 열었다.
“지금 마토스 군 내부에서 자중지란의 조짐이 일어나고 있답니다.”
“자중지란이요?”
내가 어리둥절하자 랑케가 자세한 설명을 해 주었다.
지금 가뎀 군에서는 국왕을 위시한 대신들과 재경이의 블랙 파운딩 기사단과 거기에 동조하는 세력들간에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는 거였다.
“오호라! 그래서 가뎀 군의 공세가 없는 거군요. 난 또 왜 그런가 했네. 근데 왜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겁니까?”
“사실 블랙 파운딩 기사단장 전나세가 가뎀의 실권을 점차 장악하던 중이었습니다. 많은 귀족들도 포섭해서 자기 사람을 만들고 말이죠. 그래서 가뎀 국왕과 국왕을 지지하는 귀족들은 거기에 은근히 그를 견제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죠. 이대로 가면 전나세가 가뎀 국왕을 몰아내고 나라를 차지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공공연히 돌던 참이었으니까요. 사실 어떤 계기만 있으면 양 세력이 충돌할 조건은 마련되어 있었던 셈입니다.”
랑케의 설명에 난 쪼금 짜증을 냈다.
“아, 그러니까 그 갈등을 폭발시킨 계기가 뭐냔 말입니다.”
“허허, 너무 조급해 하지 마세요. 말씀드릴 테니. 다름이 아니고 전나세가 우리 마토스 군과 내통하고 있다는 소문이 쫘악 퍼졌다고 합니다. 아, 글쎄 황당무계하게도 우영 님과 전나세가 친척 관계라는 헛소문이라더군요. 그래서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반역할 음모를 꾸미려고 한다고 말이죠. 허허허.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그걸 사실로 믿는 사람들이 꽤 있는가 봅니다.”
“으음…….”
난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거 뭐가 이렇게 되는 거지?
나하고 재경이가 친척 관계라는 게 어떻게 소문이 났지?
가만 생각해 보니 파티원들이 떠들고 다녀서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우선 마토스 군 내에서 소문이 돌다가 가뎀 군에게까지 흘러들어 간 걸지도…….
근데 이거 문제군.
나와 재경이가 손을 잡고 반역을 도모를 해?
그렇다면 어느 쪽에 대한 반역이 된단 말이지?
아직 랑케는 그걸 분명히 말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이거 가뎀 측뿐만 아니라 랑케나 투르펜도 나를 의심할 수 있다는 거 아냐?
가뎀 국왕이 재경이를 의심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말이지.
그런 생각이 미치자 어쩐지 랑케하고 투르펜의 미소조차 섬뜩하게 느껴진다.
이 사람들 지금 마음속으로 ‘우리가 네 속을 모를 줄 알아?’라고 생각하는 거 아닐까?
제길…….
그렇다면 이쪽에서 먼저 물어보는 게 낫지.
결심한 나는 질문을 던졌다.
“나하고 전나세가 반역을 꾸미고 있다라……. 근데 그 반역의 상세한 내용은 뭡니까?”
그러자 랑케가 대답을 해 주었다.
“둘이 손을 잡고 현 가뎀 국왕과 그를 지지하는 귀족들을 다 제거하고 왕국을 차지하려 한다는 겁니다.”
음, 그런 내용이라면 뭐 내가 괜히 쫄 거 없군. 안심했다.
내가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려 하기도 전에 투르펜이 한마디를 더 보탰다.
“그렇게 두 사람이 가뎀을 장악한 다음에는 그 여세를 몰아 우리 마토스까지 집어삼키려 한다는구려. 나를 몰아내고 말이지.”
“…….”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다가 다시 얼어붙었다.
젠장!
소문이라는 건 30%쯤의 진실에 70%의 과장이 추가될 때 그 효과가 극대화되는 법인데 바로 그 케이스로군.
나하고 재경이가 가뎀을 집어삼킨 다음에 마토스까지 꿀꺼덕하려고 한다니…….
재경이는 그렇다 쳐도 나까지 그렇게 속이 시커먼 놈으로 보였다는 말인가?
하긴 스스로 생각해도 내가 뭐 그렇게 양심적인 놈은 아니다.
하지만 암만 그렇다고 해도 그렇지, 이런 식으로 의심을 받는다는 건 정말 기분 더럽구먼.
“설마 국왕 전하와 랑케 경도 그 소문을 믿는 건 아니시겠죠?”
“…….”
“…….”
내 말에 투르펜과 랑케는 빙긋 미소만 지어 보인다. 이거 어째 대답이 없어?
투르펜이 말을 하기 거북해하는 것 같자 랑케가 입을 열었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전나세와 우영 님께서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하셨는지……. 그건 저도 좀 궁금하군요.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시겠죠?”
허어, 이거 어째 어조가 죄인을 취조하는 수사관 비슷하다.
슬슬 울화가 치밀어 오르려고 한다.
응?
가만있어 봐라. 막사 밖을 언뜻 보니 어째 중무장한 병력이 잔뜩 모여 있잖아?
그것도 칼과 창을 들고 중무장을 한 채로.
이거 혹시 날 체포하려는 거 아닌가?
설마 정말로 내가 재경이와 손잡고 마토스를 집어삼키려 한다고 믿고 있다는 건가…….
이거 정말 심하군.
아무리 내가 속이 시커먼 놈이라고 해도 그렇지.
이 정도로 자신들을 위해 싸워 왔고 헌신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나를…….
허허허허허.
분노와 설움이 가슴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려고 한다.
쾅!
“허억!”
내가 두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자 투르펜은 놀라서 뒷걸음쳤고 랑케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우영 님!”
“마토스 국에 얼마나 헌신해 왔는데 나를 반역자로 몰아서 처단할 생각을 하고 있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투르펜 전하, 그리고 랑케 경. 당신들은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분들이었습니까! 나를 체포할 준비를 끝내고 이 자리에 불러내다니!”
내가 삿대질을 하며 분노를 터뜨렸으나 정작 랑케는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우영 님. 우리가 우영 님을 반역자로 몰아 처단하다뇨? 그리고 체포할 준비를 끝내다뇨?”
“그럼 아니란 말씀이오! 날 의심하지 않았다는 말입니까!”
내가 거칠게 추궁하자 투르펜은 겁이 나는지 날름 랑케 뒤에 숨었다.
어이구, 국왕이란 작자가 하는 꼴이 참 폼 난다.
어쨌거나 랑케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영 님이 전나세와의 회동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궁금한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영 님이 전나세와 손잡고 우리 마토스까지 무너뜨리려 한다는 말을 어찌 믿겠습니까. 천부당만부당합니다!”
“그럼 날 반역자로 의심하지도 않고, 날 체포할 생각도 전혀 없다는 말이오?”
“아, 그럼요. 그걸 말씀이라고 하십니까?”
“그럼 막사 밖에서 칼과 창을 들고 떼로 모여 있는 저 인간들은 도대체 뭡니까?”
내 말에 랑케는 막사 밖으로 나가더니 화가 나서 크게 소리 질렀다.
“아니, 폴크 경, 챈들러 경, 그리고 그 외의 귀족 여러분. 도대체 병력들을 다 끌고 와서 이게 무슨 짓이오! 여기가 국왕 전하께서 계신 곳이란 걸 잊으셨소!”
그러자 병사들의 앞에 서 있던 챈들러와 폴크는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국왕 전하께서 계신 곳이라서 이러는 겁니다!”
“지금 그게 무슨 소리요?”
“무슨 소린지는 랑케 경께서도 근자의 소문을 들어서 잘 아실 거 아니오?”
훗, 이 인간들 봐라?
이제 보니 챈들러와 폴크, 이 두 인간이 날 그토록 제거하고 싶어 했었군.
어쩌면 그 소문을 확대 재생산한 것도 이 두 인간의 짓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좋다. 이쯤 되었으면 나도 가만 앉아서 엿 먹을 수는 없다고.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폴크와 챈들러를 잡아먹을 듯 째려본 다음 말했다.
“랑케 경! 나는 도저히 이런 상황에서 계속 전투를 할 수 없소. 지금 이 시간부로 내 부대를 모두 마토스 군에서 빼서 돌려보내겠소. 그리고 나도 마토스가 가뎀 군에게 무너지든 말든, 마토스 국이 나라를 되찾든 말든 상관 않고 떠날 테니 그리 아시오!”
말과 함께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 막사로 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나를 만류하는 랑케와 투르펜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이제 우린 어떻게 되는 건데요?”
막사로 돌아온 나는 부대원들을 다 불러 모아 놓고 상황을 설명했다.
‘그럼 우리 햄과 베이컨은 어떻게 되는 거냐?’는 건 피그몽들의 걱정이었고, ‘미라쥬 길드로 돌아가도 되겠군요.’라는 건 물론 미라쥬 길드원들의 말이었다.
하지만 나와 헤어질 일 없는 제자들이야 별 반응 없었다.
근데 파티원들은 앞으로의 상황이 사뭇 걱정된다는 얼굴들이다.
“오빠가 행여 잘못하면 우리가 또 개고생하게 되잖아요.”
“내가 니들을 그리도 고생을 시켰었냐?”
“아, 말이라고 해요?”
“…….”
내가 인상을 쓰자 세영이는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렸다.
그때 조핀이 얼굴 가득 아부성 미소를 지으며 들어왔다.
“우영 님, 아까 있었던 일은 랑케 경한테서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더 들을 거 없습니다. 나 이런 상황에서 마토스를 위해 싸울 마음 정말 없거든요? 사람을 감히 반역자 취급하고 체포해서 목을 치려고 해요? 조핀 님이 나 같으면 그래도 마토스에 충성하겠냔 말입니다!”
내가 핏대를 세우며 을러대자 조핀도 상당히 당황한 눈치다.
“저…… 목까지 치려고 하진 않았잖습니까?”
“흥, 그 인간들이 내 목을 안 치려고 했으면 그 많은 병사들은 왜 막사 밖에 대기시켰겠습니까!”
“아니, 그래도 그건 좀……. 우영 님의 억측이신 것 같은데…….”
“이제 보니 조핀 님도 그자들을 편들려고 날 찾아오셨군요. 헛 참! 내 조핀 님은 그렇게 보지 않았는데…… 이거 정말 섭섭하네요?”
“아니, 그럴 리가 있습니까. 저야 우영 님의 심정을 다 이해하죠.”
조핀은 연신 허리를 굽히며 나의 화를 풀려고 애를 썼다.
그러고 보니 좀 안 됐기도 하네.
중년 아저씨가 새파란 나한테 허리 굽히며 아부해 대는 게 말이다.
나는 어조를 다소 누그러뜨렸다.
“어쨌거나 돌아가세요. 조핀 님한테 더 드릴 말씀 없습니다.”
털썩!
허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