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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5권(112화)
Part 5. 동맹을 맺는 두 나라(3)


“어머, 조핀 님!”
“아니,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나는 당황성을 발했고 파티원들도 놀란 빛을 감추지 못했다.
조핀이 내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조핀은 무릎을 꿇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하면…… 어떻게 하면 우영 님의 화를 풀 수 있겠습니까? 제게 말씀해 주세요. 우영 님의 화를 풀고 마음을 돌리게 할 수 있다면 이 자리에서 내 배라도 갈라 보이겠습니다.”
“…….”
조핀은 마치 자신이 할복하는 사무라이라도 된 양 비장한 어조로 말했다.
근데 중년 아저씨 배 가르는 심란한 꼴을 볼일이 뭐가 있다고 배를 가르겠다는 건지 모르겠네.
그딴 소리 하려면 차라리 위로비 조로 현찰을 안겨 주든가 할 것이지.
어쨌거나 어색한 침묵이 계속되었다.
나는 여전히 고개 돌리고 삐친 척을 계속하고 있었다.
근데 파티원들이 슬슬 나한테 안 좋은 눈빛을 던지기 시작한다.
중년 아저씨한테서 절 받으면서 뻗대고 있는 내 모습이 지들이 보기에도 꼴사나운가 보다.
제길…….
좀 더 삐친 척을 하고 싶다만 어쩔 수 없군.
이쯤에서 슬슬 화가 풀린 척하는 수밖에.
“조핀 님.”
“네?”
“조핀 님한테 화난 거 아니니까 할복하실 거 없습니다. 정 갈라야겠다면 폴크하고 챈들러 경의 배를 가르시죠. 그건 반대 안 할 테니까.”
“…….”
내 말에 조핀은 당혹스런 표정이 되었다.
인정한다.
내 말이 좀 황당하긴 했다. 괜히 한 말이 아니다만.
“못 하시겠습니까?”
“우영 님, 그건…….”
“좋습니다. 그건 제가 생각해도 조금 지나친 것 같긴 하니까. 그러나 그 두 사람은 저를 모욕했습니다. 저는 그걸 절대로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그 문제가 해결 안 되면 절대로 마토스를 위해서 다시 일할 수는 없다 그 말이죠.”
“그럼,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셋 중에 하나를 고르세요. 그 두 사람을 궁형에 처하든가, 작위를 박탈해서 영지와 사병을 모조리 빼앗고 평민으로 만들든가, 아니면 나한테 와서 삼천 배 사죄의 절을 올리게 하든가요.”
“으음, 저 근데 궁형이라는 건 무언지요?”
조핀은 상당히 곤혹스러워하면서도 질문을 던졌다.
아니, 이 아저씨, 옛날의 그 유명한 사마천이 당한 형벌도 모른단 말야?
나는 슬며시 그의 귀에 대고 궁형이 뭔지 말해 주었다.
“허억!”
조핀은 기겁을 했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는 태도로 다시 말했다.
“아셨죠? 셋 중에 하납니다. 그 외의 다른 선택은 있을 수 없습니다. 투르펜 전하께 가서 말씀드리세요. 두 사람에게 셋 중 하나를 택하게 하지 않으면 내일부로 영영 제 얼굴을 다시 볼 수 없을 거라고요.”
“아, 알겠습니다.”
내가 절대 양보 불가임을 분명히 하자 조핀은 맥없이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다.
쪼끔은 시끄러워지겠군.
폴크와 챈들러가 반항을 할 건 뻔하다. 즉, 이건 그 두 사람의 세력을 완전히 무너뜨려야 하는 일이니까.
뭐, 랑케 경이 알아서 하겠지.
밤이 깊었으니 자야겠군.
내일 아침에 상황이 다 정리되어 있으면 좋겠구먼.

“구백구십구…….”
“구백구십팔…….”
“천일…… 천이…….”
“구백구십구…….”
“아니, 시끄럽게 이게 뭔 소리야?”
막사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나는 짜증을 내면서 침상에서 일어났다.
이미 해가 떠 있었다.
슬쩍 막사 밖을 보니 폴크와 랑케가 멍석 깔고 내 쪽을 향해서 삼천 배를 올리고 있었다.
그걸 파티원들과 부대원들이 다 나와서 보고 있다.
절하는 폴크와 챈들러의 뒤에는 랑케와 조핀이 그걸 지켜보고 있는데 모습이 꽤 준엄하다.
난 피식 웃었다.
랑케와 조핀이 투르펜한테 강력히 주청해서 저 두 사람에게 나한테 가서 절을 하게 한 게 틀림없군.
지들도 궁형을 당하거나 귀족 작위 빼앗기는 건 죽기보다 싫을 테니까 비교적 만만한 삼천 배를 택한 거로군. 뭐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다만.
그렇다면 내가 그 선택의 의미를 좀 더 각별히 깨닫도록 해 주지.
난 일어나서 하품을 하면서 밖으로 나갔다.
“두 분 아침부터 수고가 많으시네요?”
“…….”
“…….”
내가 정겹게(?) 아침 인사를 건네자 폴크와 챈들러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온몸이 땀에 젖고 다리가 풀려 비틀거리면서도 날 째려보았다.
어쭈?
지들이 잘못해 놓고서 도리어 나한테 억하심정을 품고 있다 이거지?
그렇다면 가만있을 수 없지.
난 란슬링한테 물었다.
“지금 이 두 분께서 절을 하는데 이마와 무릎을 제대로 땅에 안 닿고 하시는 것 같은데 처음부터 그랬냐?”
“처음에는 제대로 하는 것 같더니 횟수가 많아지니까 귀찮아서 그런지 대충하더라, 쉬익!”
“이거 곤란하네. 랑케 경, 제가 이야기한 삼천 배를 이렇게 대충하시면 곤란한데요. 아무래도 제가 떠나 주길 바라시는 겁니까?”
“천만에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랑케는 기겁을 하면서 손사래를 치더니 폴크와 챈들러에게 근엄하게 소리쳤다.
“두 분 지금까지 천 번 절한 건 모두 무효요! 절할 때마다 이마와 무릎이 정확히 땅에 닿게 하시오. 자, 처음부터 내가 세겠소!”
가까스로 천 번 절한 게 다 무효가 된 폴크와 챈들러는 흙빛이 된 얼굴로 치를 떨었다.
그러나 별 수 없지. 거시기를 자를 수도 없을 테고, 귀족 작위와 영지를 빼앗기기는 더 싫을 테니, 절로 때우는 수밖에.
확실하게 개고생하게 만들어 주겠다 이거다.
그들은 눈물인지 콧물인지 땀인지 구분이 안 되는 액체를 마구 흘리면서 다시 삼천 배를 시작했다.
음, 보고 있자니 조금 불쌍하다.
난 불난 집에 화염병 투척하는 심정으로 정겹게 그들에게 말해 주었다.
“근데요, 두 분. 삼천 배는 한 번 절할 때마다 이마가 땅에 닿기는 닿는데 그렇게 부드럽게 닿으면 무효거든요. 경쾌하게 이마와 땅이 접촉하는 소리가 들려야 한답니다. 아시겠죠?”
“…….”
둘은 다시 이를 악물고 부르르 치를 떨며 ‘퍼석!’하고 소리가 나게 이마를 땅에 박았다.
그리고 일어서서 절하면서 다시 땅에 박고 또 박고 박고…….
음, 벌써 이마가 까지고 불그스름해지는 게 얼마 안 있어 좀 더 심란한 광경이 연출될 것 같다.
이마에서 피가 펑펑 쏟아질 것 같다는 말이지.
하지만 내가 그렇게 하도록 시켜 놓고도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사실은 이마가 땅에 소리 나게 안 닿아도 됩니다!’라고 말하면 내가 우스운 놈이 되니까 한 말을 취소할 수도 없지.
어쨌거나 저 상태로 삼천 배 다 하면 한 일주일간은 침대 신세만 져야 할 게 틀림없다.
그러니 상대를 봐 가면서 건드릴 것이지 말이야.
난 하품을 하면서 다시 두 사람을 격려(?)를 해 준 다음 막사로 돌아가서 늘어지게 잤다.

이틀이 지났다.
재경이와 가뎀 국왕 세력과의 갈등이 심한 때문인지 가뎀 군은 여전히 공격할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투르펜에게 우리가 먼저 선제공격을 해 보자고 했으나 응하지 않았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뭐 있냐는군.
돌아 버리겠다.
긁어 부스럼?
지금 가뎀 군이 버티고 있는 곳이 당신네 마토스 국의 땅인데 그걸 보고만 있겠다면, 나라를 되찾지 않겠단 소리 아니냐고.
옆에서 보고 있다가 민망해진 랑케가 변명하듯 말했다.
“국왕 전하의 말씀은 좀 더 공격하기 좋은 때를 기다리자는 말씀입니다.”
네, 네. 어련하시려고요.
괜히 나서서 주제넘게 이럽시다 저럽시다 한 내가 바보지.
그때였다.
밖에서 경비를 서던 녀석이 들어와서 투르펜에게 전했다.
“국왕 전하! 가뎀 왕국의 사신이라는 자가 전하를 만나고자 하옵니다.”
“그래? 들여보내도록 하라.”
이건 뜻밖이로군.
가뎀의 국왕이 사신을 보내다니…….
난 사신이 뭔 소리를 하나 들어 볼려고 랑케 옆에 서 있었다.
그리고 사신이 상기된 표정으로 들어와서 투르펜에게 인사를 했다.
형식적인 인사치레의 말이 서로 오간 다음 사신은 나와 랑케를 힐끗 보고는 다시 투르펜을 보았다.
그러자 투르펜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두 사람은 내가 모든 것을 터놓고 의논하는 사이니까 걱정하실 것 없소. 귀국의 국왕이 나에게 전하는 말을 해 주시기 바라오.”
그러자 사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러시면 허심탄회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은 우리 가뎀의 알카노이드 국왕 전하께서는 마토스 국과 동맹을 맺기를 원하십니다.”
“…….”
“…….”
잠시 기이한 침묵이 감돌았다.
도대체 이게 뭔 소린지 모르겠네.
A라는 나라와 B라는 두 나라가 있다.
근데 B가 A를 침공해서 나라를 빼앗았다.
쫓겨난 A는 나라를 되찾으려고 병력을 규합해서 B와 전쟁을 시작했다.
근데 갑자기 B국의 사신이 와서 A국에 동맹을 맺자는 제안을 하다니…….
‘너, 지금 여기 와서 개그 콘서트 하니?’라는 표정을 나와 투르펜, 그리고 랑케가 짓자 사신은 민망한 듯 얼굴을 붉혔다.
“사실 여러분들께서 어이없어 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를 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가뎀의 내부 사정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어서 그러니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그러면서 현 가뎀 왕국의 내부 사정을 상세하게 털어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