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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5권(117화)
Part 7. 엘프들의 배신(3)
퍼퍼펑!
와르르!
메이스에서 쏟아져 나온 한 줄기 화염이 직격하자 나무 벽은 삽시간에 터져 나가 지붕째로 우르르 무너져 버렸다.
순식간에 마을 회관 한쪽 벽이 사라져 버린 거다.
그러자 회관 밖에서 불을 지르고 화살을 쏘아 댄 자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마을 촌장, 그리고 코란! 당신들 이따위 짓을 하고 무사할 거 같아!”
울화통이 터진 나는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나의 압박에 엘프들이 반감을 품은 걸 짐작하긴 했지만 그래도 촌장은 판단력이 있으니 나에게 잘 협조할 줄 알았는데…….
믿음을 배반당했다는 분노에 내가 펄펄 뛰었으나 의외로 촌장은 태연했다.
“너무 흥분할 거 없네. 피차 받은 대로 돌려주는 법 아닌가?”
“아, 그래요? 후환을 감당할 자신이 있는 모양 같은데 그렇다면 어디 한 번 해 봅시다. 제자들아, 뭐하냐? 저 엘프들 모조리 때려잡아라! 늙은 엘프건 젊은 엘프건 봐줄 거 없다!”
내 말에 제자들은 함성을 지르며 우르르 달려 나갔다. 흥! 이 망할 엘프 녀석들. 니들은 이제 모조리 다 죽었…… 엉? 저, 저게 뭐야?
엘프들 뒤쪽에서 함성과 함께 검은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허억! 저, 저건 블랙 파운딩 기사단 아냐?
그렇다는 건 엘프들이 재경이와 손을 잡았단 소리다. 나는 어째서 촌장이 그렇게 여유 있는 표정을 짓고 있었던 건지 이해가 갔다.
좌우간 블랙 파운딩 기사단이면 정면으로는 무리다.
나는 제자들을 향해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얘들아, 후퇴해라. 맞싸우지 말고 후퇴하라고! 어서!”
그러나 이미 블랙 파운딩 기사단은 정신없이 말을 몰아대면서 제자들을 마구 쓰러뜨리고 있었다.
제자들은 필사적으로 상대를 해 보려고 했으나 자다 일어나서 정예 중의 정예인 블랙 파운딩 기사단의 예리한 칼을 상대하는 건 무리였다.
순식간에 삼십 명의 제자들이 쓰러져서 로그아웃당했다.
“이런 제길…….”
나는 메이스를 빼 들고 눈앞의 블랙 파운딩 기사를 향해 휘둘렀다.
어쭈, 피해?
나는 그 자세 그대로 몸을 한 바퀴 돌려 백핸드로 놈의 머리를 적중시켰다.
퍼석!
“윽!”
보기 좋게 기사 한 녀석이 쓰러졌다.
하지만 쉬고 있을 틈이 없었다. 계속해서 달려드는 두 명의 블랙 파운딩 기사들에게 메이스를 휘두르며 제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곁눈으로 보니 파티원들도 제자들과 함께 블랙 파운딩 기사들과 난전을 벌이고 있었다.
근데 엘프 녀석들의 화살이 문제군.
블랙 파운딩 기사들과 싸우기에 정신없는 제자들한테 예리한 화살 공격을 날려 대는 바람에 피해가 제법 크다.
그러자 세영이 녀석이 랑기스의 숏 보우를 꺼내더니 한 발 한 발 엘프들을 향해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피슝! 퍼억!
“우욱!”
피융!
“케액!”
일발필살이로군.
세영이 녀석의 화살 솜씨가 저렇게 위력적이었던가?
난 좀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어째 화살이 날아가는 게 보통 화살과는 좀 다른 것 같은데…….
허억! 저거 뱀파이어의 이빨로 만든 화살촉을 단 화살이잖아!
저게 얼마짜린데…….
난 돈이 아까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젠장, 고작 엘프들 따위를 해치우려고 준비해 준 화살촉이 아니란 말이다.
어쨌거나 나름 필사적으로 싸웠지만 블랙 파운딩 기사단에게는 아무래도 역부족이었다.
피그몽들하고 미라쥬 길드원들이 도대체 어디서 처자빠져 있는지 모습도 나타내지 않는 이 상황에선 더더욱 그렇고 말이지.
가만 보니 벌써 제자들 중 절반 정도는 블랙 파운딩 기사들한테 당해서 로그아웃당한 거 같다.
나는 이를 부드득 갈면서 고함을 질렀다.
“후퇴한다! 모두 2차 집결지로 후퇴한다! 부상자는 포기하고 알아서 몸을 빼라!!”
Part 8. 불륜의 증거(1)
“헥헥헥헥…….”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숲속을 뛰고 또 뛴 나는 가까스로 2차 집결지에 도착했다.
이곳은 만약의 돌발 사태 때 모이기로 약속했던 장소다.
젠장, 자다 말고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모르겠네.
좌우간 조금 더 있자니, 부대원들이 하나둘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비틀거리면서 모습을 나타냈다.
다행히 파티원들은 다 무사하다.
난 란슬링과 다쓰를 시켜서 부상을 당한 제자들을 치료하고 포션도 나눠 주게 했다.
그러고 있자니 어느새 아침 해가 떴다.
깊은 숲속 한쪽에서 패잔병 꼴이 되어 바라보는 아침 해라니……. 참 처량하다.
하지만 이런 꼴이 됐다고 처진 모습을 보이는 건 리더로서 자격이 없단 소리가 된다.
나는 이를 악물고 피로를 참으면서 부대원들을 모두 집결시켜서 인원 점검을 하게 했다.
그 결과는…… 비참했다.
제자 120명 중 80명이 로그아웃당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네 형제는 무사하다는 거…….
미라쥬 길드는 더 비참하다 못해 참담했다.
200명 중 무려 180명이 당했다.
그도 그럴 만한 게, 들어가 자고 있는 엘프의 집에서 뭔가 이상한 것을 얻어먹고 푹 잠에 곯아떨어졌다가 한 칼씩 맞은 거다.
대부분 그런 식으로 당했다는 게 간부1의 증언이었다.
쩝, 이건 내 실수라면 실수로군.
엘프들의 집에서 분산해서 자게 하는 게 아니었는데…….
가만있어 보자. 근데 피그몽들은 어떻게 된 거지?
싸울 때 피그몽들의 모습을 전혀 못 봤던 거 같은데? 근데 지금 여기서도 한 마리도 안 보이고 말이지.
어떻게 된 건가?
내가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데 숲 한쪽 구석에서 피그몽들이 제자 중 한 명의 안내를 받아서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바투르!”
내가 반가움에 소리를 지르자 피그몽들 중 선두에 서 있던 바투르가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이거 어찌 된 거냐, 흐흐. 왜 자다 말고 여기 다 모여 있는 거냐, 흐흐.”
“…….”
난 기가 차서 잠시 말문이 막혔다.
왜 자다 말고 여기 다 모여 있는 거냐고?
근데 이 돼지 대가리가 나하고 농담 따먹기를 하자는 건가…….
“바투르, 너 지금 돌았냐?”
“내가 왜 도냐, 흐흐…….”
“설마 니들 피그몽들은 자다가 아무 일 없었던 거냐? 기습당해서 싸우지 않았냐고?”
“아무 일이 왜 있냐? 원래 자려던 곳이 불편해서 숲속의 동굴로 모두 옮겨서 잔 거 말고는 아무 일 없었다. 흐흐.”
음, 그랬구먼.
원래 자려던 곳을 떠나서 동굴로 이동한 바람에 엘프들과 블랙 파운딩 기사단의 기습을 피할 수 있었군.
우리들이 당할 때 안 도와주고 달콤하게 쿨쿨 디비 잔 건 괘씸하다만…….
그래도 3백 명이나 되는 피그몽들이 한 마리도 안 다치고 모두 무사한 건 다행이다.
전력이 그만큼 보존된 거니까.
그리고 길드원들이나 제자들이야 대부분 유저니까 로그아웃당했어도 다시 들어 올 수 있지만 피그몽들은 한 번 죽으면 그걸로 영원히 끝이니까. 죽은 인원이 없었던 건 큰 다행이다.
어쨌거나 엘프들이 배신으로 ―엘프들 입장에서 보자면 배신이 아니겠지만― 치명타를 당한 나는 맥이 빠졌다.
한참 싸울 때는 몰랐는데 정작 싸움이 끝나고 긴장이 풀어지자 말도 못하게 피곤하다.
“귀환한다…….”
“뭐라고 그랬냐, 쉬익!”
“귀환한다고 했다. 최단시간 내에 귀환해서 휴식을 취하고 로그아웃당한 인원이 재접속하기를 기다렸다가 재충원되면 다시 전나세 일당을 소탕할 거다.”
“…….”
내 말에 부대원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상태로는 어차피 더 싸우지 못 한다는 건 뻔하니까.
그때 세영이가 앙칼지게 목청을 높였다.
“그건 그런데, 분명히 해야 할 게 있을 거 같은데요!”
너 왜 그러냐? 피곤해 죽겠는데 이 상황에서 왜 또 까칠하게 그러냐고.
근데 세영이가 가리키는 손가락은 에이프릴을 가리키고 있었다.
에이프릴 자신도 당황한 얼굴이군.
“우릴 몰살시키려고 한 엘프 촌장의 딸을 어떻게 계속 같은 동료라고 데리고 다녀요! 이번 기회에 없애든가 아니면 인질로 삼아서 엘프 마을에 보복하는 데 써야죠!”
“…….”
그래, 그 말은 일리가 있군.
너의 행동이 질투심에 나온 게 아닌지 의심이 되기는 한다만 말이지.
근데 이번엔 에이프릴이 발끈했다.
“내가 왜 엘프 마을 사람들하고 같은 취급을 받아야 하죠? 난 그 엘프들이 싫어서 여러분들하고 같은 편이 된 건데! 엘프 마을을 싸그리 불 지르든 몰살시키든 난 반대할 마음이 전혀 없거든요?”
“…….”
에이프릴의 단호한 태도에 부대원들은 쪼끔 감동 먹은 듯했다.
하지만 내가 입을 열자 에이프릴은 당혹스런 표정이 되었다.
“그럼 니 아버지인 촌장을 내가 없애 버려도 아무 문제없겠네?”
“그…… 그건…….”
그것만은 괜찮다는 소리가 선뜻 못 나오는군.
당연하지 에이프릴 입장에선 자기 아버지가 다른 엘프들하고 같을 순 없을 테지.
어쨌거나 이걸로 분명해졌다.
“세영이 말이 맞다. 에이프릴 넌 우리와 한편이 될 수 없다. 그러니 엘프 마을로 돌아가라.”
“싫어요. 난 절대로 그렇게 못 해요! 차라리 절 인질로 쓰세요. 그렇게 해서라도 여러분들하고 헤어지고 싶지 않아요!”
“…….”
음, 여러분들하고 헤어지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나하고 헤어지기 싫은 거겠지.
내 두 눈을 똑바로 보면서 말하는 거 보니까 말이지.
어쨌거나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거절할 수도 없군.
“그러냐? 그럼 앞으론 에이프릴은 인질로 쓰기로 하자. 세영아, 에이프릴을 단단히 묶도록 하렴. 절대로 도망가지 못하도록 신경 써라.”
“네, 오빠!”
대답하는 세영이의 얼굴에는 가학적인 미소가 가득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