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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페리얼 가드 1권 (10화)
Chapter 3 (5)


“포는 어찌할까요?”
포를 잃어버렸다가는 군법회의감이었기에 데네브는 주저없이 명령을 내렸다.
“포는 전부 다 챙기도록. 물론 조립을 한 상태에서 끌고 가는 게 좋을 것 같군. 나귀들이 각자 하나씩 들게 하고, 나머지 인원들은 탄약을 챙겨라.”
데네브는 이때 자신의 돈으로 사 온 식량의 대부분을 버릴 수 밖에 없었고, 아까운 포트와인들은 병사들에게 하사해 줘야 했다.
병사들은 긴장감을 풀기 위해 그 술을 각자 한 모금씩 마셨다.
가져가지 못하는 탄약이나 식량은 전부 물가에 집어 던져 버렸다.
“어서 가자.”
알렉스 중사가 명령을 복창하려는 순간이었다.
여기저기서 화약이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주변의 땅이 뒤집히며 흙이 튀어 올랐다.
순간, 데네브는 고개를 숙였고, 알렉스 중사는 목을 잡은 체 쓰러졌다.
총알이 동맥을 건드린 듯 그의 군복 상체가 순식간에 피에 젖었다.
“적이다!”
마리 소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살펴보니 개활지 너머로 남색의 군복을 입은 기병들이 보였다.
“이런, 드리지아 군 용기병대다! 부대, 정렬!”
데네브가 얼른 척탄병들을 향해 걸어가자 유격병들은 흩어져서 2인 1조로 자세를 잡았다.
적의 숫자는 대략 20명이었다.
유격병들의 총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오자 몇몇 용기병이 말에서 떨어지거나 말과 함께 넘어졌지만, 그들은 용의주도하게 숲 속에서 숨어 버리는 바람에 대부분의 총알이 나무에 박혔다.
“2열 횡대! 전원 착검! 서둘러!”
척탄병과 전투공병들이 침착하게 대오를 갖추었다.
전투공병들은 자신들의 보조 무기인 권총을 꺼냈다.
데네브 또한 권총을 꺼내서 부싯돌 콕을 뒤로 당겼다.
하지만 사격할 필요성은 전혀 못 느꼈다.
그들은 유효사거리 내에 있긴 해도 명중률을 보장하기 어려운 거리―20명가량이 총을 쐈는데 알렉스 중사만 쓰러진 것이 그 증거―였고, 나무 뒤에 숨어 있으니 유격병들의 전장식 강선총의 놀라운 명중률로 제압해 주면 될 것이었다.
그리고 무턱대고 사격을 하는 것은 적 용기병대 지휘관의 작전에 말려드는 것이니 굳이 사격할 필요성은 전혀 없었다.
한데 누군가가 사격을 했다.
어떤 겁먹은 멍청이가 쏜 것이겠지 생각하며 데네브는 사격 중지 명령을 내리려 하였다.
그 순간, 50여 개의 총구에서 동시에 불꽃과 연기가 뿜어져 나오며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첫 총성을 시발점으로 병사들이 막무가내로 쏴 버린 것이었다.
“야, 이 병신들아!”
데네브의 목소리는 거의 비명에 가까웠다.
용기병들이 있던 숲은 나무에 구멍이 나거나 잔가지가 잘려 이리저리 튀어 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을 기다린 적의 용기병대 지휘관이 기병도를 뽑아 돌격 명령을 내리는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결국 적 지휘관의 작전이 먹혀 든 셈이었다.
“저놈들을 저지해!”
데네브가 유격병들에게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이미 총을 쏴 버린 유격병들은 탄환을 장전하기 위해 장전봉을 가지고 씨름을 하는 중이었다.
총이 발사되려면 구경에 맞는 총알을 넣어야 하는데, 총구를 통해 장전하는 강선총의 특성 때문에 총알이 잘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 사이에 있던 마리 소위가 뒤로 돌아 달려갔다.
아마 도망치는 것이겠지.
‘저 망할 년.’
뒤로 뛰어가는 그녀를 차가운 눈으로 노려본 데네브는 다시 앞을 보았다.
겁쟁이는 필요없다.
죽는 것은 두렵지만, 만약에 죽을 때가 온다면 그땐 싸우다 죽을 것이다.
활강식 머스킷을 장전하자니 이미 때는 늦었다.
적과의 거리와 그들이 달려오는 말의 속도가 장전할 시간을 안 주었다.
이제 데네브에게 남은 최선의 방법은 오직 하나만이 남아 있었다.
“사각 대형!”
70명도 채 안 되는 인원으로 사각 대형을 구성한다는 것은 남이 보면 우스운 이야기였지만, 남은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다.
데네브는 권총을 발사했다.
운 좋게 지휘관의 옆에 있던 기병 하나가 말에서 고꾸라졌다.
“사각 대형을 하라니까?!”
“모두 거기서 비켜!”
그때, 사라졌던 마리 소위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병사들이 그녀의 명령에 따라서 옆으로 피했고, 뭔가 하고 바라본 데네브도 얼른 옆으로 뛰었다.
“일열 발사! 왼쪽, 발사!”
마리 소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포병이 화승이 매달린 T자 모양의 막대를 뇌관에 넣었다.
그러자 쉬익― 하며 뇌관화약이 타오르는 소리 뒤로 굉음이 울렸다.
그와 함께 산탄 조각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돌격하던 용기병들의 중앙에 있던 4명과 말의 몸에 총알이 박혔다.
어떤 기수는 기병도가 총알에 부러져 버렸다.
“오른쪽, 발사!”
다시 한 번 굉음과 함께 기수와 말들이 피떡이 되어 쓰러졌다.
그들 중에는 용기병 대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쯤 되자 용기병들의 돌격이 어느새 멈추어졌다.
전투공병들이 명령을 하지 않았는데도 자신들의 권총을 장전해서 쏘았다.
그와 동시에 지휘관을 잃은 용기병들이 말 머리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유격병들의 총성이 울렸는데, 가까이 있던지라 그들의 조준은 매우 정확했다.
하나둘씩 기병들이 말에서 떨어져 나갔고, 쓰러진 말에서 뛰어내린 자들도 등에 총알이 박혀 쓰러졌다.
결국 몸이 성한 채 도망간 자는 고작 넷밖에 안 되었다.
“만세! 만세!”
병사들이 모자를 벗고 흔들며 환호성을 질렀다.
“좋아, 얼른 이곳을 떠나자!”
데네브는 병사들을 수습하며 소리쳤다.
그리고 마리 소위에게 다가가 그녀의 두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그녀에 대해 차가워진 마음은 이미 봄바람에 녹듯 사라져 버렸다.
“잘했습니다, 마리 소위. 잘했어요. 포병대도 수고했다.”
마리 소위의 기지 덕분에 모두 다 살아남을 수 있던 것이다.
작은 구경이라 그토록 경멸했던 3파운드 포가 이토록 놀라운 전과를 세울 줄은 미처 몰랐다.
“뭐, 뭘요. 포병대가 침착하게 명령을 들어줘서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양 볼에 홍조를 띠며 말하는 마리 소위를 보며 데네브는 정식으로 중대 일지에 이 일을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서둘러 퇴각을 해야 하는 중요한 순간임에도 깃펜과 일지 잉크를 꺼냈다.
“피해 상황 보고!”
중대 일지를 정리한 후 데네브가 소리쳤다.
잠시 소란이 있는 후, 마리 소위가 명령에 답했다.
“전사 1명, 그 외 나머지 이상 무!”
알렉스 중사는 결국 숨을 거둔 것이었다.
하지만 나머지 병사들은 전부 놀라울 정도로 무사했다.
“그의 시신은 놔두고 총은 챙겨 간다.”
데네브는 알렉스의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휘하 중 첫 전사자였다.
그간 죽은 이들을 많이 봐 와서 아무렇지 않게 볼 수는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가셔야 합니다.”
뒤에서 마리 소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가지.”



Chapter 4 (1)


그 이후 데네브의 중대는 아무런 공격도 받지 않고 사예르 성채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성채에 들어서자마자 요새 사령부에서 호출 명령이 내려와 그는 쉬지도 못한 채 사령부로 출두해야 했다.
요새 수비대는 모든 성문을 잠그고 도개교를 올렸으며, 무기고에서 탄약과 대포를 꺼내고 부대의 인원 점검을 하느라 부산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은 일절 보이지 않았다.
‘젠장, 빌어먹을 뚱땡이가 위급한 순간에도 격식을 차리라는 건가?’
데네브는 연신 투덜거리며 대기실의 의자에 30분가량 앉아 있었다.
그 덕분에 조금은 쉴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계속 투덜거렸다.
마침내 문이 열리더니,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지은 기사 제복을 입은 중년의 남자가 나왔다.
그는 중령의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음?”
그는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는 데네브를 발견하고는 다가왔다.
그가 미소를 짓자 그의 멋진 콧수염이 움직였다.
“이게 누구신가? 요즘 화제의 인물인 데네브 소위가 아닌가? 반갑네. 34연대 제3기사대대 대대장 에른스트일세.”
“네.”
형식을 갖추기 위해 데네브는 자리에서 일어서야 했다.
그러자 마르찬 대령의 부관이 데네브를 빤히 바라보았다.
“자네를 만나서 뭔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있지만 상황이 여의치가 않군. 그러면 전장에서 보세.”
부관의 시선을 의식한 에른스트 중령은 그 말만 하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저놈 뭐야?’
그런 에른스트를 데네브는 무신경하게 한 번 힐긋 보고는 집무실로 들어갔다.
“옷이 많이 더럽군, 소위.”
마르찬 대령이 데네브의 위아래를 훑어보다가 진흙투성이인 장화를 보고 이내 인상을 팍 찡그렸다.
그 진흙 묻은 장화가 최고급 로소 알리칸테로 이루어진 자신의 집무실 바닥을 더럽힌다 생각한 것이다.
“급히 후퇴하느라고 체면을 따질 여유가 없었습니다.”
기분이 불쾌해진 데네브는 지금 전쟁보다 자신의 집무실 바닥이나 생각하는 인간의 비위 따위를 맞출 생각이 전혀 없었다.
“좋아. 여튼 자네의 보고서대로라면 드리지아가 불법으로 우리 영토에 침략해 온 것에 따라 우린 일단 이 요새에서 농성하기로 마음을 먹었네. 후방에서 대기 중인 지원군들이 오길 기다릴 거야.”
‘그건 당연한 거지. 적은 숫자로 정면에서 싸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데네브는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불법이라 말하는 마르찬 대령의 모습에 드리지아가 선전포고를 안 했거나 선전포고가 전해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 이틀은 여길 지켜야 한다네. 자네의 중대는 북쪽에 있는 보루를 맡아 주어야겠네. 3파운드 포는 병기고에 반납하게. 북쪽 보루에는 보기만 해도 든든한 96파운드짜리 대포가 2문 있거든.”
보루는 철저히 고립된 삼각형의 구조물이었는데, 거기로 통행하는 방법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거나 성문 쪽에 설치된 나무로 된 다리를 건너는 것밖에 없었다.
“보루를 수비하란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대의 부대는 직접적인 내 지휘하에 없으니 보루 하나만 맡아 주면 아주 좋을 거야.”
북쪽의 보루는 암벽을 깎아 만든 네모난 바위로 쌓고, 내부를 진흙과 흙으로 채워 대포에 의한 충격을 막아 주도록 설계되어 매우 튼튼해 보였지만, 적의 집중포화를 받기 딱 좋은 자리였다.
그러니까 제일 먼저 죽을 자리였다.
“만약 보루에 적이 침입하여 여의치 않는 상황이면 후퇴해도 괜찮겠습니까?”
“괜찮네.”
“그런데 제가 척후를 나간 지 하루 만에 사살한 첩자는 어떻게 된 것입니까? 드리지아 어를 할 줄 아는 마리 소위의 말에 따르면, 이 성안에 고정간첩이 있다고 하는데요.”
“아, 그건 별로 신경 쓸 내용은 없었네. 분명 그 소위가 드리지아 어를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해. 자네도 아까 보았던 에른스트 중령은 드리지아 사람처럼 드리지아 언어에 통달한 인물이거든. 그는 그 일지에 첩자라는 단어는 없다고 했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그에 따른 공한을 마르티네즈에 보냈네. 운 좋으면 이 전투에서 살아남아 상을 받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오늘 저녁 중으로 96파운드 포의 사격 연습을 할까 하는데, 되겠습니까? 전 96파운드 포의 성능을 잘 몰라서 미리 알아 둬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네. 조금 있다가 정식 명령서를 보내 주겠네.”
그리고는 마르찬 대령은 이만 나가 보라고 손을 휘저었다.
데네브가 집무실을 나와 계단을 통해 1층 홀에 내려오자 거기에는 마리 소위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