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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페리얼 가드 1권 (11화)
Chapter 4 (2)
“마리 소위, 왜 이곳에 왔는가? 부대는?”
“부대는 일단 쉬라 명령하고 왔습니다.”
마리 소위는 데네브의 옆에 서서 같이 걸었다.
“지난번 첩자 건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데네브는 마리 소위에게 집무실에서 들은 것을 설명해 주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중대장님. 원어민처럼 말을 할 순 없지만, 제가 드리지아 어를 틀릴 이유가 없습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렇다면 자네는 분명 이 성안에 간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확신합니다. 이 판단은 절대 틀리지 않습니다. 만약에 그것이 아니라면 옷을 벗고 다니겠습니다.”
그렇게까지 강경하게 나오는 마리 소위 때문에 데네브는 당혹스러웠지만, 사실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대령이 아니라고 했는데 일개 소위인 그가 뭐라고 해 봤자 아무 소용 없는 것이다.
결국 마리 소위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게 분노했다.
“그만하고 포병대원들에게 연락해서 3파운드 포를 반납하라 하고, 병사들을 북쪽 보루로 집합시키게. 우린 이제 보루를 맡을 거야. 그리고 포병대는 96파운드 포사격 연습을 할 것이고.”
“보루를 맡는단 말입니까?”
“그래.”
“전투에서 우리가 제일 먼저 죽겠군요.”
그녀의 목소리가 침울해졌다.
“그래, 딱 죽기 좋은 자리지.”
담담하게 맞장구치는 데네브의 말에 마리 소위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녁 식사 후 북쪽 보루에 도열한 병사들을 점검한 후 데네브는 곧장 96파운드 포를 보았다.
거의 반 톤 가까이 나가는 그 대포는 철판으로 보강된 육중한 참나무 포가 위에 얹어져 있었다.
“대포가 너무 무거워서 9명으론 어림없습니다. 적어도 대포 하나에 7명은 붙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반동으로 뒤로 밀린 대포를 앞으로 끌려면 6명이 달려들어야 합니다.”
육중한 96파운드 포를 살펴본 고참 병장이 보고했다.
“좋아. 부족한 인원은 공병대에서 차출하도록 하지. 원하는 숫자만큼 차출하게.”
사실 96파운드 포는 육군에서 제식으로 사용하지 않는 무지막지하게 큰 대포인지라 포병들은 과연 이 대포를 사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지경이었다.
그들이 교육을 받을 때 보았던 대포 중 가장 큰 것은 64파운드짜리였는데, 그것과 32파운드 포는 공성전에만 사용하는 대포였고, 일반 전투 중에 사용하는 대포는 9파운드, 12파운드, 18파운드, 24파운드짜리 포들이었다.
“해가 지기 전에 포사격 훈련을 해야 한다. 장전이나 발사는 포병들이 맡고 포신 소재나 대포를 앞으로 미는 것은 공병들이 해라. 그리고 나머지 병사들은 지금의 훈련 장면을 잘 지켜보도록. 만에 하나 전투에서 포 운용 인원들이 죽으면 그 자리를 그대들이 차지해서 해야 하니까. 자, 준비.”
데네브의 호령에 차출된 공병과 포병들이 각자 자리를 잡았다.
“포구 개방!”
데네브의 명령에 따라 포병들이 대포의 마개를 열었다.
잘 관리한 덕분에 마개는 쉽게 빠졌다.
“화약 장전!”
포병들이 캔버스 천으로 된 주머니에 정량을 담아 둔 화약을 대포 주둥이에 넣고 짚단을 넣어 장전봉으로 꾹꾹 다졌다.
대포알과 대포가 그리 정밀하게 만들어지지 않아 유극이 발생하는데, 이에 따라 짚단 같은 침전물을 넣어야 했던 것이다.
“포탄 장전!”
무거운 대포알을 공병들이 들어서 대포 주둥이에 넣었다.
“점화 화약 삽입!”
대포의 포신 뒤쪽에 있는 점화구 구멍으로 포병이 송곳을 찔러 넣어 장전된 화약의 캔버스 주머니의 구멍을 뚫고 물소 뿔로 만들어진 화약통을 통해 고운 점화 화약을 넣었다.
“발사 준비 완료!”
“각도 최대!”
고참 포병이 포신 뒤에 달린 나사못을 돌려 각도를 최대로 하였다.
“귀를 막는 것을 추천합니다.”
고참 포병의 말에 그와 데네브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귀를 막았다.
그사이 고참병은 불이 붙은 화승이 매달린 T자형 막대를 가지고 왔다.
“왼쪽 먼저 발사!”
명령과 함께 데네브도 귀를 막자 고참 포병이 대포를 발사했다.
점화 화약에 불이 붙으면서 공중으로 연기를 뿜어냈고, 이내 포탄이 발사되었다.
3파운드 포 이상의 굉음과 함께 데네브는 전신의 살이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육중한 대포가 어마어마한 불꽃과 불똥을 토해 내며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뒤로 튕겨 나갔다.
그리고 그 거대한 포환은 1.2킬로미터 떨어진 숲의 거대한 나무에 부딪쳐 나무를 관통하고 그 뒤에 있는 나무의 밑둥마저 박살 내었다. 그리고는 그것으로 멈추지 않고 튕겨 올라 그 옆에 있는 나무도 무너뜨리고 나서야 멈추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첫 번째로 관통된 나무의 상단도 무너져 내렸다.
장거리에서, 그것도 나무에 맞으면 튕겨 나가는 다른 대포들과 달리 매우 위력적인 광경이었지만, 그것을 망원경으로 지켜보는 데네브는 별로라고 생각했다.
대포가 발사되었을 때 느낀 전율과 지옥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그 불덩어리를 토해 낸 것에 비해 고작 나무 몇 그루 부순 거라니,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던 것이다.
“계속해서 오른쪽, 발사!”
시시한 게임을 하듯 지루한 어조로 말하자 포병들이 짐짓 놀랐지만 이내 발사했다.
다시 한 번 더 엄청난 굉음이 났고, 이번에도 같은 결과를 만들어 냈다.
“대포 앞으로. 다시 발사한다.”
공병들이 달려들어 무식하게 무거운 대포를 끙끙거리며 앞으로 밀었다.
“이번에는 산탄 장전.”
그는 문득 왱왱거리는 귀를 통해서 주변에서 재잘거리던 새들의 울음소리가 없어졌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이 굉음 속에서 울려고 하는 새들은 없겠지.’
그러고 보니 대포 소리에 도망가는 새들마저 없다는 사실에 얼마나 겁을 먹었으면 날아오르지 않는지 알 수 있었다.
“좋아. 마리 소위, 보루에 경비를 설 병사를 차출해서 2시간씩 교대할 수 있도록 하게. 취침 시간은 9시이고, 기상 시간은 6시다. 모두들, 오늘 하루 수고했다. 내일이나 모레에는 아마 큰 싸움이 날 테니까 마음을 단단히 먹도록. 현재 시각 7시 40분, 취침 시간 전까지 개인 정비를 취해라.”
포병들의 훈련이 끝난 후 데네브는 화약 연기로 검댕이가 잔뜩 묻은 그의 얼굴을 망원경의 몸통으로 비춰 보았다.
‘목욕을 해야겠군.’
퇴각을 위해 수십 킬로미터를 걸었고, 그리고 힘든 대포 훈련까지 해서 그를 포함해 병사들은 매우 지쳐 있었다.
때문에 이제 목욕을 하고 빵이나 조금 뜯으며 일찍 자야 할 것 같다.
그가 숙소로 왔을 땐 사환인 고든 이등병이 이미 방 안을 정리해 놓은 덕분에 매우 깨끗했다.
고든에게 휴식을 취하라 말한 그는 직접 물을 길러서 끓인 후 욕탕의 도자기로 된 욕조에 채워 몸을 담갔다.
따뜻한 물속에 들어가자 긴장으로 뭉쳤던 온몸의 근육이 풀리면서 남녀 간의 사랑을 나누는 그것처럼 엄청난 쾌락이 전신을 뒤덮었다.
때문에 그는 몸을 작게 떨었다.
그는 그렇게 물이 미지근해질 때까지 물속에 있다가 올리브기름으로 만든 비누로 전신을 문지르고 머리를 감았다.
그 후 목욕용 솔로 온몸을 문대고는 거품을 미지근해진 물로 씻어 내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 낸 후 속옷을 갈아입었다.
그 후 물을 배수구 쪽으로 부어 버렸다.
“휴.”
데네브가 자신의 방으로 다시 들어갈 무렵,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양동이를 든 마리 소위를 볼 수 있었다.
“마리 소위도 목욕하려고요?”
“네.”
그녀의 대답을 들은 데네브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미리 준비해 둔 두 주먹만 한 빵을 5조각으로 나누어 부스러기를 흘리지 않게 먹어치웠다.
그러다 문득 생각났는지 데네브는 자신의 군도를 뽑아 물 묻힌 수건으로 닦아 내고는 숫돌에 대고 칼을 갈았다.
그 모습은 마치 무슨 종교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엄숙했다.
‘내일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숫돌에 갈린 날이 시퍼렇게 반짝였다.
‘살아남기 힘들겠지.’
아무리 최신 방어 시설이라지만, 저쪽은 최소한 여단 규모의 대군이고, 이쪽은 고작 1개 연대가 있을 뿐이었다.
아마 전투가 시작되면 하루 만에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도망을 칠 생각은 하지도 않는 스스로의 상태를 보고 웃음이 났다.
그는 원래 명예는 생각도 않고 오직 출세만을 위해 군에 입대했지만, 이제 와서 그런 비겁한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너무 멍청해 보이잖아.’
군도 손질을 마치고 다시 칼집에 넣은 후 그는 침대 위에 누워서 눈을 감았다.
오늘 하루 동안 많은 일을 겪어서인지 무척이나 피곤했다.
내일을 위해서…… 혹시 살아남을지 모를 내일을 위해서 일찍 자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 순간, 갑자기 노크 소리가 났다.
“누구야?”
그가 상체를 세우고 물었다.
창밖으로 비치는 하늘의 색이 어둡게 변한 것을 보아 자던 중에 누군가의 노크로 깬 것이었다.
시계를 보니 시간은 어느새 10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접니다.”
마리 소위의 목소리였다.
‘이런. 무슨 일이지?’
그는 정신을 또렷이 하기 위해 손으로 양 볼을 두드리고는 슬리퍼를 신고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그러고 보니 그는 잠옷 차림인 데도 불구하고 나이트 캡―잠잘 때 쓰는 모자―을 쓰지 않아 머리가 헝클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얼른 빗으로 대충 빗었다.
이 모든 일은 빨리해야 했는데, 밖에 있는 그녀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것은 대단한 무례였던 것이다.
“들어오게.”
겨우 정리를 마친 데네브가 말했다.
그리고 잠시 후 데네브는 자신의 두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마리 소위는 얇은 천으로 된 원피스 형태의 잠옷을 입고 있었는데, 양손에는 그녀의 군복과 장화, 곰털 모자, 군도, 권총, 그리고 와인 한 병이 들려 있었다.
그는 순간 저것들이 자신의 것인지 착각을 했지만, 그의 군복은 옷걸이에 걸려 있고 나머지 장비들도 잘 정돈되어 한쪽 구석에 있었다.
“와인 한잔하시겠습니까?”
그녀가 가진 와인은 도수가 높은 포트와인이었다.
“그러지.”
데네브는 그녀의 분위기가 왠지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일단 자신의 군용 양철잔을 꺼냈다.
마리 소위도 자신의 잔을 따로 가져왔기에 둘은 이내 와인을 따랐다.
“내일을 위해.”
그녀가 잔을 높이 들어 올리자 데네브도 잔을 들어 부딪쳐 주었다.
그리고 이내 데네브는 그녀의 속옷이 가슴이 깊게 파였다는 것과 평소에 보았던 것과 다르게 커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 잠잘 시간이니까 저 옷을 입은 거겠지. 나도 잠옷 차림이잖아? 아마 잠이 안 와서 같은 장교인 나와 술을 나눠 마시고 이야기도 나눌 겸 온 거겠지.’
“이 술은 프리오라토 포트와인입니다. 몸에 좋은 강장 음료지요.”
남은 빵 조각 2개를 안주로 삼으며 둘은 계속 잔을 비웠다.
‘생각해 보니 마리 소위는 능력이 뛰어난 군의 유망주나 다름없잖아.’
그녀와 같이 다니면서 데네브가 느낀 것은 그녀의 능력이 그보다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빠른 판단과 용기, 그리고 예리한 상황 파악 능력은 장교로서 훌륭한 자질이라는 것과 운만 좋다면 장성이 될 만했다.
‘그런데 그런 유망주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투에 참가한다라…… 이건 군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이야.’
그는 그녀에게 몰래 도망가라고 말하려다가 이내 다물었다.
그녀의 성격상 절대 그렇게 행동할 리 없었다.
아마 그녀 또한 그처럼 비겁한 짓을 하기 싫어 그냥 있는 것일 것이다.
“중대장님.”
“왜?”
드디어 그녀가 본론을 꺼내는 거라고 생각이 든 데네브는 얼른 답했다.
하필이면 그때 그녀의 상체가 살짝 숙여지면서 가슴의 굴곡이 더욱 도드라지게 보였다.
‘스위첸 사람들이 역시 아름답긴 아름답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