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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페리얼 가드 1권 (13화)
Chapter 4 (4)
북소리가 얼마나 큰지 1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데네브의 귀에 일정한 템포의 소리가 똑똑히 들릴 정도였다.
그것을 시작으로 요새 쪽에서도 나팔 소리를 시작으로 북소리가 들려왔다.
“각 중대 전투 준비 신호입니다.”
마리 소위가 말했지만, 데네브 또한 알고 있었다.
숲에서 병사들이 나오고 수많은 깃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중대 깃발을 뜻하는, 상대적으로 작은 왕실 문양과 노란색 좌우로 붉은색이 있는 삼색기 모양의 깃발, 조금 크면서 소속 연대 문양을 가진 대대 깃발, 그리고 거대한 연대의 깃발들이 펄럭이며 앞으로 나아갔고, 그 밑에서 대오를 갖춘 병사들이 발을 맞추어 앞으로 행진했다.
그중 정예군을 뜻하는 사자 머리 형태의 깃봉을 가진 깃발들도 보였다.
드리지아 왕실의 상징은 왕관을 움켜쥔 사자였다.
반면, 레기움 제국의 상징은 독수리였다.
‘엄청나군.’
데네브가 본 연대 깃발만 하더라도 벌써 4개―8천 명 가까이 된다는 소리였다―가 넘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보병들 틈새로 기병들이 나오고 말이 끌던 대포가 적 포병들에 의해 앞으로 나왔다.
‘것보다 이미 사정거리에 들어왔는데 왜 사령부에선 공격 명령을 내리지 않는 거지?’
드리지아 왕국군는 이미 96파운드 포의 포격 범위 안에 들어와 있었다.
‘적들이 전열을 정비하길 기다리는 건가?’
마르찬 대령은 적이 대오를 정비해야 적 병력이 한 덩어리로 모일 수 있고, 그래야 대포의 살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데네브가 보기에는 전장에 비해 이미 적이 너무 많아서 그냥 아무렇게나 쏴도 맞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 번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바로 데네브가 원하던 공격 명령이었다.
“대포 준비! 목표, 전방의 적 보병대!”
병사들이 대포를 끌어 포안 밖으로 주둥이를 내밀었다.
그 순간, 나팔 소리가 멎었다.
“발사!”
뒤에서도 발사 명령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요새 북쪽에 설치된 약 40여 개의 대포가 일시에 불을 뿜었다.
데네브는 그의 병사들의 발사한 대포가 1열에 정렬한 적 중대 병력을 볼링 핀처럼 뭉개 버리고 물수제비처럼 2열, 3열까지 튀어 나가 병사들을 죽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병사들이 그 모습을 보며 함성을 질렀다.
“재장전하고 별도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계속 발사!”
“고든, 레구스! 화약을 옮겨라!”
마리 소위도 거들며 두 사환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런 멍청이들이! 그만 어린애처럼 환호하고 성첩 밑으로 숨지 못해! 적 포격에 머리가 날아가고 싶으면 알아서 하라고!”
데네브가 아직도 환호하는 병사들에게 호통을 치고는 밑으로 숨게 했다.
“울리비 상병, 그대가 관측을 맡게. 적의 병력이 강선총 사거리에 들어오면 보고하도록.”
“알겠습니다, 중대장님!”
울리비 상병이 귀상어의 머리처럼 생긴 거리 측정기를 꺼내서 적과 아군 간의 거리를 쟀다.
“무기 점검! 각자 무기 점검!”
마리 소위가 소리쳤다.
그 순간, 드리지아 진영에서도 수많은 회색의 연기와 진홍색의 불빛이 보였다.
“적의 포격이다!”
데네브의 경고에 모든 이들이 엎드렸다.
데네브는 강철과 바위가 부딪치거나, 흙에 부딪치는 묵직한 소리가 연발적으로 울려 퍼지며 동시에 보루 바닥이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다.
포탄 하나가 성첩의 모서리 부분을 파괴하고 지나가면서 돌 파편이 어지럽게 날아들었다.
데네브는 급히 성첩 위로 올라 밑을 살펴보았다.
보루의 바위들은 대부분 멀쩡했다.
다만 한 개가 살짝 움푹 파여 있었는데, 그리 신경 쓸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 앞으로 대략 10발이 넘는 대포알이 굴러다녔다.
다행히 보루는 설계자의 의도대로 내부의 흙과 진흙들이 충격을 잘 흡수해 주고 있었다.
“재장전을 서둘러! 서두르라고!”
포병들은 괜찮았지만 대포를 운용하는 공병들이 겁을 먹자 데네브가 그들을 발로 걷어차며 닦달했다.
그리고 이내 다시 대포 주둥이가 밖을 내밀었을 때였다.
다시 한 번 드리지아 진영에서 진홍색 불꽃들이 일어났다.
“뭐지?”
그건 대포의 발사광이 아니었다.
데네브는 망원경을 꺼내 불꽃 중 하나를 보았다.
장교 모자를 쓰고 붉은 망토를 두른 인물이 사람 머리만 한 불덩어리를 양손을 뻗어 만들어 내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젠장! 마법사잖아!”
망원경을 도로 집어넣으며 데네브가 고함을 쳤다.
고대에는 흔했지만, 마법이 퇴보한 지금은 귀하디귀한 존재였다.
마법의 시대였던 고대 트리니다드 제국이 멸망한 후 여러 개의 작은 나라로 찢어진 왕국들은 제국이 멸망한 이유가 마법의 발전으로 인해 인간이 나태해지고 쉽게 힘을 얻어 교만에 빠져 전쟁을 일삼아 신께서 저주를 내린 것이라 생각했다.
하여 마법사들을 붙잡아 죽이고 마법서를 불태우는 마법 탄압기가 도래했는데, 이때 마법사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갑옷을 입고 마법을 물리칠 수 있는 마나가 담긴 검을 휘두르며 마법사 탄압에 선봉을 선 자들이 바로 기사들이었다.
이후 그들이 신흥 세력이 되어 검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최근 들어 옛 마법 문명을 되찾으려는 르네상스 운동이 일어나 다시 마법을 연구하고 국가에서 마법사를 양성하려고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마법 탄압기를 거치며 철저히 은둔하며 지내는 마법사들의 패쇄적인 문화와 자국의 마법 기술을 유출하려고 하지 않는 국가들 덕분에 서로 교류가 없어 뚜렷한 발전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귀한 마법사들을 무려 20명 가까이 전투에 투입한―데네브가 얼추 세어 보았다―드리지아의 전술에 데네브는 기가 질리고 말았다.
고작 국지적인 전투에 20명을 투입했으니 여유 마법사의 숫자는 얼마나 되겠는가?
혹여 저게 드리지아 왕국의 모든 마법사라고 해도, 그들의 지원을 받은 드리지아 왕국군의 화력은 또 얼마나 발전하겠는가?
“저 불꽃을 조준해!”
데네브가 왼쪽의 대포를 맡고 있는 이들에게 명령했다.
“대포를 빨리 돌려, 돌리라고!”
무거운 대포를 미세하게까지 조준해서 발사하는 것은 무리였다.
바퀴를 돌리는 공병들은 만족스럽게 대포를 운용하지 못했다.
“발사!”
포탄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오른쪽 대포에서도 포탄이 발사되어 2개의 포탄이 마법사들을 노리고 날아갔다.
하지만 첫 번째 포탄은 허무하게도 마법사의 머리 위로 지나갔다.
그저 포탄의 풍압으로 마법사를 포함, 병사들이 뒤로 밀려 나가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두 번째 포탄은 마법사의 옆에 있는 병사들을 휩쓸었다.
이에 놀란 마법사가 마법 주문을 외우다 만 덕분에 마법이 사라지고 말았다.
사실 첫 번째 포탄 때도 마법사가 주문을 외우는 도중 뒤로 넘어지는 바람에 마법이 사라지긴 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마법사들을 죽이지는 못했다.
그리고 이내 정신을 차린 마법사들이 만들어 낸 불덩어리들이 요새 쪽으로 날아왔다.
“마법 공격이다!”
다시 한 번 병사들이 엎드렸다.
마법으로 만들어진 불덩어리들이 보루와 요새에 작렬하면서 끔찍하게 뜨거운 불꽃을 일으켰다.
“아악! 아!”
그와 함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데네브가 얼른 일어나 눈을 떠 보니 병사 하나의 발에 불이 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보루에 작열한 화염이 총안을 통해 들어와 그의 발을 태운 것이었다.
데네브는 얼른 포신 소재용으로 놔둔 물통을 그의 발에 들이부었다.
치직거리는 매우 역겨운 소리와 냄새가 귀와 코를 찌르자 그는 인상을 마구 찡그렸다.
“부상자 발생! 레구스! 고든! 후방으로 옮겨!”
마리 소위의 명령에 따라 부상병들이 착실하게 옮겨졌다.
마법이라는 것은 정말로 가공했다.
방금 마법사의 마법 공격으로 보루의 바위들이 시커멓게 타거나 일부는 녹아서 흘러내린 것이 보였다.
‘이런 걸 사람이 할 수 있다니.’
데네브는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포병들에게 대포알을 3중 장탄 하라고 명령했다.
“적들이 강선총 사거리에 들어왔습니다!”
순간, 울리비 상병이 보고를 해 왔다.
“들었지? 유격병들은 전부 적을 사살하라! 마법사를 찾아라! 마법사를 찾아 죽여!”
마리 소위의 명령에 따라 유격병들이 움직였다.
“적의 포격이다!”
총안을 통해 총을 쏘려던 유격병들이 다시 엎드리기도 전에 포환이 작렬했다.
“으아아!”
성첩 한 개가 박살 나고 병사 3명이 돌 파편과 함께 뒤로 날아가 성첩 밖으로 떨어졌다.
“발사!”
이에 맞서 오른쪽의 96파운드 포가 불을 뿜었고, 3중 장탄된 포탄이 적병들에게 날아들었다.
한 개의 포탄을 쏘는 것에 비해 초구 속도는 느렸지만, 무거운 무게와 한층 더 가까워진 적을 죽이는 데 지장은 없었다.
“다음 탄은 산탄으로 장전!”
데네브는 이제 군도를 뽑아 들었고 마리 소위와 유격병들은 적들을 향해 총을 쏘았다.
“왼쪽 포도 준비되었지? 발사!”
왼쪽의 대포는 이번에도 마법사를 향해 조준하고 발사했다.
3개의 포탄이 마법사를 향해 날아갔고, 그중 한 개는 마법사의 머리를 부숴 버리고 지나갔다.
“좋았어!”
포병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잘했다! 이제 너희도 산탄을 장전해!”
산탄의 장전이 끝난 때 즈음이면, 적들은 머스킷 사격권 안에도 들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적의 마법사들도 마법을 남발하지 않을 것이다.
“2중 장탄!”
머스킷 볼이 들어 있는 주머니를 채워 넣는 포병들에게 데네브가 소리쳤다.
적이 너무 많아서 이번엔 2중 장탄이 유리할 것 같았다.
“척탄병도 사격!”
적이 사거리에 들어서자 마리 소위가 척탄병들을 전투에 투입시켰다.
그러자 중대의 대다수였던 척탄병들이 그제야 나서며 각자 총구에서 불을 뿜었다.
“중대장님! 놈들이 사다리를…… 억!”
말하는 도중 거리 측정기의 2개의 렌즈 중 하나가 깨지면서 울리비 상병이 뒤로 넘어졌다.
마리 소위가 얼른 달려가 그를 일으켜 세웠다.
“괜찮나?”
“괜찮습니다.”
그리고는 울리비 상병도 강선총을 잡아 전투에 임했다.
그의 보고대로 적병들 사이로 사다리를 든 병사들이 보였다.
“오른쪽 포대, 발사!”
이제 데네브는 귀가 먹어 크게 소리를 질러야 했다.
수백 발의 총알들이 포구 밖으로 퍼지면서 드리지아 군 병사들을 수십 명씩 쓰러지게 만들었지만, 그들의 후속 부대가 너무나도 많았다.
보루의 사방으로 사다리가 걸리고 적병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적들은 해자와 제방이 있는 사예르 성채의 성벽보다는 성문과 다리로 연결된 보루를 노리고 있었다.
“적이 올라온다! 공병대! 놈들을 막아!”
“척탄병! 수류탄 발화!”
데네브와 마리 소위는 각자 명령을 내렸다.
전투용 도끼와 보호용 흰색 가죽 앞치마, 가죽 장갑을 낀 도살자들이 도끼로 적의 이마를 정확히 잘라 내는 사이에, 마리 소위는 불이 붙은 화승을 불씨 삼아 척탄병들의 수류탄에 불을 붙였고 척탄병들은 오랜만에 자신들의 보직의 이름에 걸맞은 공격을 했다.
수많은 폭발 소리와 비명 소리가 난무했고, 몇 개의 사다리가 부서져 도로 밑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그런 숫자만큼 다시 사다리가 올려졌다.
“적이 너무 많다! 총격전은 포기한다! 전원 착검!”
그 순간, 왼쪽에 있던 대포가 불을 뿜었다.
하지만 전투공병들은 더 이상 대포를 밀지 않고 저마다의 무기를 든 채 성첩에 있는 동료들을 향해 달려갔다.
포병들은 그런 그들을 제지하지 않은 채 뒤로 물러난 대포에 재장전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