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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페리얼 가드 1권 (14화)
Chapter 4 (5)
“기사다!”
누군가 소리쳤고, 데네브가 달려들었다.
비록 총에는 덧없이 약하지만 기사들의 갑옷은 발전이 절정에 이르러 모든 부위가 보호가 되었다.
갑옷의 철판마다 둥근 모양을 띠어 적의 도검을 미끄러지게 해 근접전 방어에 유리했다.
실제로 맨 처음 올라온 기사는 번쩍이는 갑옷의 흉갑을 이용해 달려드는 총검을 막아 내고 총검의 주인 중 하나의 머리를 메이스로 부숴 버렸다.
“썩을!”
데네브는 그 기사에게 권총을 겨누어 쏘았다. 정확히 목 보호대 부분에 구멍이 뚫리면서 기사는 비틀거리며 뒤로 넘어갔다.
그리고 마침 그 뒤에서 넘어오려는 기사의 헬멧에 권총을 던졌다.
놋쇠로 된 손잡이가 정확하게 안면에 가격되어 기사는 그대로 뒤로 넘어가 버렸다.
“다시 한 번 수류탄!”
군도를 들고 싸우고 있던 마리 소위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로 물러나 수류탄에 불을 붙여 던졌다.
“고든! 레구스! 화약통을 한꺼번에 가지고 와!”
데네브가 보기에는 이 보루는 이제 1시간도 채 못 버틸 것 같았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보루나 보루와 연결된 다리를 파괴해야 요새가 위험에 처하지 않을 것이다.
‘것보다 지원 병력을 몇 보내 주는 게 좋은데…….’
성문 위에 있는 수비병들은 지원 올 생각은 하지도 않은 채 그저 보루 뒤쪽으로 올라오려는 드리지아 군대를 향해 총알이나 대포를 갈겨대는 것이 전부였다.
그 덕분에 데네브는 그와 그의 중대가 드리지아 군대 전체를 상대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제는 오른쪽 대포 운용병들도 대포를 발사한 후 밀려난 그대로의 상태에서 재장전에 들어갔다.
성첩을 적에게 빼앗기면 쓸 요량인 듯했다.
“유격병 6명을 뒤로 돌리고 재장전에 들어가도록.”
데네브가 마리 소위에게 말하고 그녀를 뒤로 밀어냈다.
이제 데네브도 본격적으로 전투에 임했다.
그가 이제 막 머리를 내민 어떤 꼬마 장교의 왼쪽 볼을 군도를 찔러 그의 볼 살이 찢어져 나가게 하자 상대의 머리는 다시 성첩 아래로 내려갔다.
그 옆에서 성첩 위로 다 올라온 드리지아 병사 하나가 데네브의 머리를 노리고 개머리판을 휘둘렀지만, 데네브는 허리를 숙여 그것을 간단히 피하고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얼굴을 맞은 그 병사가 비틀거리자 데네브는 부드러우면서 내장을 보호하는 갈비뼈도 없는 배를 향해 군도를 찔러 넣었다.
그리고는 그의 비명을 들을 새도 없이 군도를 도로 뽑아냈다.
그렇게 정신없이 해치웠는데도 여전히 적은 너무 많았다.
데네브는 곧장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총검을 옆으로 쳐 내고는 적의 어깨를 향해 군도를 힘껏 내료쳤다.
‘아주 좋은 칼이야.’
데네브는 거리낌없이 적의 어깨뼈를 잘라 내자 자신의 군도에 만족해해다.
그는 군도를 있는 힘껏 당겨 적의 몸에서 뽑아낸 후 금색 견장을 단 장교에 달려갔다.
서로 칼을 부딪치고 힘겨루기를 하려는 순간, 갑자기 장교가 그에게 박치기를 했다.
놀란 데네브는 얼른 정신을 차리려고 했지만, 그만 왼팔이 베이고 말았다.
이에 의기양양해진 장교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것이 데네브의 분노를 자극했다.
데네브는 그에게 달려가 허리를 베려는 군도를 옆으로 쳐 낸 후 왼 주먹으로 그의 얼굴을 가격하고 사타구니를 발로 걷어찼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쓰러지는 그를 마무리할 수는 없었다.
드리지아 병사 2명이 데네브를 곧장 덮쳤기 때문이다.
데네브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총검들을 옆으로 쳐 내며 뒤로 천천히 물러섰다.
치열하게 싸우던 102독립중대의 병사들도 데네브처럼 점점 자리에서 밀려났다.
‘후퇴해야겠군.’
“후퇴하라! 후퇴! 모두 대포 뒤로 물러나!”
데네브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병사들이 등을 돌렸다.
“엎드려!”
그 순간, 마리 소위가 소리쳤다.
데네브를 포함한 모든 병사들이 엎드렸고, 그와 동시에 유격병들의 강선총에서 총소리가 요란하게 터져 나왔다.
그 덕분에 병사들을 노리던 적들의 선두가 쓰러지면서 적병들이 잠시 주춤거렸다.
‘정말 정신이 없군.’
데네브는 벌써 몇 번째로 자신이 엎드리는 건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대포, 발사!”
다시금 2문의 대포가 동시에 불을 뿜으면서 남은 적군을 산산조각 내어 버렸다.
보루의 바닥은 피와 시체 조각으로 즐비했다.
마리 소위가 기특하게도 산탄을 3중 장탄해 준 덕분에 생긴 일이었다.
포병들은 대포를 쏜 후 재빠르게 다리 쪽으로 달려갔다.
“소위, 병사들을 인솔해.”
데네브는 화약통을 버려진 도끼로 찍어서 화약이 유출되게 했다.
화약통은 아직 여러 개 더 있었다.
그는 보루를 적에게 온전하게 넘겨 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지원자를 모집한다! 빨리 판단해! 지원자 2명!”
“제가 나서겠습니다!”
“저도요!”
2명의 건장한 척탄병이 동시에 나섰다.
“좋아. 총검으로 이 화약통들을 뚫어 놔!”
그들이 화약통을 뚫어 놓는 사이 그렇게 죽어나갔음에도 드리지아 병사들이 보루를 점령하기 위해 또다시 사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좋아, 다 됐어! 이제 뒤로 빠져!”
마지막 화약통에 구멍을 낸 데네브는 화약을 흘려 임시 도화선을 만들며 다리 쪽으로 천천히 뒷걸음질쳤다.
“빨리 오십쇼!”
척탄병 하나가 소리쳤다.
하지만 그 순간, 그는 총상을 입고 깊은 해자 속으로 추락했다.
화약으로 임시 도화선이 어느 정도 만들어지자 데네브는 부싯돌을 긁어 불씨를 붙였다.
“됐다!”
그리고 등을 돌려 달리려는 순간, 갑자기 굉음이 터져 나오며 데네브가 딛고 있던 바닥이 밑으로 꺼지고 말았다.
다리의 중앙이 무너진 것이었다.
“으아?! 뭐야?!”
데네브는 간신히 난간을 잡아 매달릴 수 있었다.
“중대장님!”
마리 소위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어떤 망할 자식이 대포를 발사했어?!”
그의 사환인 고든의 울부짖음까지 들려왔다.
‘그냥 빠질까?’
데네브는 해자 쪽을 내려다보며 갈등에 빠졌다.
‘수영 못하는데…….’
그 순간, 또다시 폭발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데네브가 안배한 폭발이었다.
보루의 상부가 폭발하면서 상부 위에 있던 구조물들이 박살 나 파편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고, 거대한 96파운드 대포가 튕겨져서 하필 데네브가 있는 곳으로 굴러 왔다.
“젠장.”
어쩔 수 없이 데네브는 손을 놓았고, 그는 순식간에 깊은 해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데네브는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물위로 나오려고 하였지만, 밑창에 무쇠로 징을 박은 장화가 무거워 계속 더욱 깊숙이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장화를 벗기 위해 얼른 몸을 움직였지만, 물을 먹은 장화는 마치 족쇄인 양 좀체 빠지지 않았다.
‘젠장, 나에게도 마법 같은 것만 있었어도…….’
숨이 점점 더 막혀 오자 그의 손짓 발짓은 이제 거의 발악에 가까워졌다.
그 순간, 엄청나게 무거운 것이 떨어진 듯 첨벙 소리가 나더니, 96파운드 포가 데네브 위로 추락했다.
그는 옆으로 피해 보려고 했지만, 96파운드 포는 이미 부상당한 그의 왼팔에 부딪쳤고, 엄청난 고통에 그는 비명을 지르려다 많은 공기를 뱉고 말았다.
‘이대로 죽을 수는…….’
그의 눈앞에 검은 터널 같은 것이 생기더니, 그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
그 순간, 희미해지는 데네브의 의식 속에서 뭔가 물속으로 들어오는 첨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Chapter 5 (1)
“예상대로 단단하군.”
한 남자가 말했다.
백마를 탄 그는 하늘색 눈동자를 황금으로 된 망원경에 갖다 대 사예르 성채를 살폈다.
금발 머리를 뒤로 가지런히 묶은, 20대 중반의 잘생긴 얼굴을 가진 그는 붉은색 제복에 원수의 계급을 나타내는 황금으로 된 견장을 달고 검은색 이각모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예상외로 보루를 점령하지 못했어.”
“죄송합니다, 폐하.”
그의 뒤에서 갈색 말을 탄 자가 말했다.
그는 백마를 탄 남자와 달리 백발이 성성했고 제복 코트를 입고 있었다.
그의 계급은 중장이었다.
“그래도 괜찮아, 코르레인 후작. 아직까지 우리의 계획에 심각하게 차질이 생긴 것도 아니니까.”
그는 망원경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보루의 수비병들이 그렇게 처절하게 싸울 줄은 몰랐어. 마지막에 보루를 폭파시키다니, 아주 대단한 발상이야. 보루 수비 병력이 몇이었지?”
“네, 70명도 채 안 됐습니다.”
“그래? 겨우 70명이 주둔한 보루를 1개 대대가 빼앗지 못했단 말이지? 그것도 기사들이 섞여 있던 특별 편성대대가 말이야. 600명이 고작 70명이 있는 보루 하나 얻지도 못했단 말이지?”
드리지아의 청년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코크레인 후작의 등은 땀으로 젖기 시작했다.
“그 대대를 보호하기 위해 1개 여단 병력을 쏟아부은 건 알고 있나, 코크레인 후작? 희생자 중엔 마법사도 끼어 있다네.”
“죄송하다는 말밖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네, 후작. 전쟁이란 원래 변수가 많은 것이니.”
어린놈이 전쟁에서 이골이 난 장군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누가 보면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이었지만 코크레인 후작은 아무런 불만도 나타내지 않았다.
“사예르에 있는 녀석이 다시 활동해줘야겠군. 저 해자와 도개교 때문에 접근을 하자니 애꿎은 병력만 잃을 테고, 대포나 마법사들을 이용해서 성벽을 부숴도 시간이 오래 걸리면 계획에 차질이 생기고 말 테니까……. 적의 지원군은 어디쯤에 있나?”
“마지막으로 온 보고에 따르면, 이곳에서 8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병력을 3개 부대로 나눠서 서로 다른 길을 통해 오고 있다고 합니다.”
“빨리 온다면 내일 점심 중에, 여유롭게 오면 모레 저녁 즈음이겠군.”
“나우어 중장이 잘해 낼 것입니다. 적들은 분산되어 있습니다. 적의 지원 병력이 2만이라 해도 3개 부대로 나눠진 이상 병력 차이는 의미가 없습니다.”
‘뭐라는 거야?’
프리드리히 국왕은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그가 딱히 신경 쓸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래. 그러면 오늘은 이만 끝내고 내일 아침에 다시 공격하도록 하지. 병사들도 많이 지쳤을 테니까. 그런데 왜 오늘 아침까지 곡사포와 박격포가 도착하지 않았는지 알아야겠군. 해당 장교들이 오면 내가 면담 좀 하자고 말했다고 해.”
“알겠습니다.”
“이만 물러나 봐.”
코크레인 후작이 뒤로 물러나자 프리드리히 국왕은 조금 더 사예르 성채를 둘러보았다.
겨우 1개의 연대가 있는 주제에 반나절 만에 함락시킬 수 있을 줄 알았던 성채가 함락되지 않는 것이 놀라웠다.
‘보루의 수비대장이 누군지 알고 싶군.’
그는 영웅을 좋아한다. 전쟁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며 전공을 세우는 그런 영웅을, 어릴 적 읽은 대서사시에 나오는 그런 자들을 좋아한다.
그의 눈에 사예르 성채의 북쪽 보루 수비대장은 영웅과 다름없었고, 만약 공수가 바뀐 상황이었다면 그는 그 수비대장에게 훈장을 추서했을 것이다.
‘흠?’
그 순간, 그의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그는 얼른 망원경을 꺼내서 성벽 쪽을 보았다.
레기움 제국군 제복을 입은 장교 하나가 밧줄에 매달린 채 성벽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한데 그는 정신을 잃었는지 축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흔하지 않는 여성 장교가 매달려 올라갔다.
‘오호, 이런 일이.’
그의 시선이 그 여성 장교에게 향했다.
그녀는 온몸이 젖은 바람에 더욱더 매력이 있어 보였고, 아름다운 신체를 가진 덕분에 그의 눈이 호강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슈바비아 백작 영애를 안 만난 지 얼마나 되었지?’
갑자기 프리드리히 국왕은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슈바비아 백작 영애와 다시 만나고 싶어졌다.
그녀를 만나 관현악단의 연주 속에서 춤도 추고 싶었고, 따뜻한 햇빛 아래의 해먹에서 같이 누워 책을 읽고 싶었고, 몇 번이고 사랑을 나누고 싶어졌다.
하지만 이곳은 전쟁터였고, 전쟁터에선 숙녀는 어울리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그는 입맛을 다시며 여성 장교가 성벽 너머로 넘어가는 것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