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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페리얼 가드 1권 (15화)
Chapter 5 (2)
데네브는 앞이 안 보였고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그 순간, 자신의 입속으로 따뜻하면서 불쾌한 느낌의 공기가 들어왔다.
갑자기 폐가 끔찍할 정도로 아파 왔다.
목이 막히면서 사래가 드는 느낌이었지만, 힘이 미약하여 그것을 뱉어 낼 수가 없었다.
다시 한 번 공기가 들어왔다.
그러자 이번엔 폐가 심각하게 눌리면서 목을 막았던 것이 뚫리면서 차가운 공기가 느껴졌다.
“콜록콜록!”
“됐다!”
누군가가 환호했다. 그러더니 그의 상체를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아악!”
데네브는 왼팔에 느껴지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조심, 조심해.”
“들것으로 옮겨.”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데네브가 눈을 뜨자 밝은 빛이 그의 눈을 괴롭혔지만, 이내 동공이 수축하면서 빛에 적응이 되었다.
“마리 소위님께서 중대장님을 구하셨습니다.”
사환인 고든이 말하였다.
“얼굴이 새파래서 돌아가신 줄로만 알았습니다.”
진정으로 걱정스럽게 말하는 중대원을 보며 데네브는 자신이 중대의 신망을 어느 정도 얻어 냈다고 생각했다.
“마리 소위.”
데네브가 부르기 무섭게 마리 소위가 다가왔다.
“그런 것은 어떻게 배웠는지…….”
“예전에 알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녀가 젖은 머리를 쥐어짜며 말했다.
“아버님께서 언젠가 유용할 거라고 했는데, 확실히 유용하더군요. 심폐소생술도 배워 두길 잘했습니다.”
“그런 것을 어떻게…… 이런, 나도 배워야겠군.”
그는 진심으로 배우고 싶어졌다.
게다가 그녀가 자신을 구해 주었다 하니 전날밤에 떠올린 그녀에 대한 나쁜 감정이 봄 눈 녹듯이 사라졌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만약 팔만 멀쩡했다면 데네브는 그녀를 냉큼 껴안았을 것이다.
“괜찮습니다, 중대장님. 치료가 우선이니 치료를 받으십시오. 연대 병원에 후송될 것입니다.”
“아, 그리고 보루 쪽 다리에 대포를 쏜 망할 자식이 누군지 좀 알아봐. 내 그 자식을 죽이고 말겠어.”
“그게, 에른스트 중령이라고…….”
“뭐?”
데네브는 그의 이름은 잘 알고 있었다.
기사대 대대장 에른스트 중령.
대기실에서 쓸데없는 말이나 거는 한가하고 멍청한 자식.
‘망할 자식, 왜 쐈는지 이유라도 알아야겠군. 만약에 병사들이 실수로 쐈다는 같잖은 변명을 한다면 죽여 버리겠어.’
데네브는 병원으로 후송되면서 에른스트 대령의 목을 어떻게 딸지 고민에 빠졌다.
그러고 보니 그는 군도나 모자, 그리고 목가리개도 다 잃어버린 상태였다.
“제기랄, 내 군도는 어디 있는 거지?”
그는 그 군도가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는데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크나큰 상실감을 느꼈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챙겨 두었습니다.”
마리 소위가 그를 다독였다.
“고맙네. 계속 신세지는 것 같아서…….”
“아닙니다, 중대장님. 쉬십시오. 전투는 끝났습니다.”
데네브는 그녀가 자신에게 살갑게 대하는 것이 무척이나 기뻤다.
“……그래, 곧 복귀하겠다. 복귀하는 즉시 피해 상황을 보고해 주게.”
“네.”
그렇게 데네브는 들것에 실려 갔다.
부러진 왼팔이 너무 욱신거렸고, 베인 상처에 해자의 고인 물이 들어가 감염마저 우려되었다.
이번 전투에서 레기움 제국군은 그다지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포탄이 해자 앞에 설치된 제방에 맞아 튕겨 올라 성벽 너머로 떨어져 건물 여럿에 피해를 준 것이 전부였고, 사상자의 대다수는 데네브의 중대였다.
“이런이런. 누가 알콜을 가져와. 두 번 정제한 최고급 알콜로.”
군의관이 데네브의 베인 상처를 보고 중얼거렸다.
그는 전투가 벌어졌는데도 한가한 상태였던지라 데네브가 실려 오자마자 평소보다 세심하게 그를 다루었다.
그리고 그는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그의 상처를 집게로 이용해서 벌려 보았다.
“아악! 뭐 하는 짓이야!”
극심한 고통에 데네브가 비명을 질렀다.
“다행히 주요 혈관을 건들지는 않았군. 소독만 하고 꿰매면 될 거야. 여기, 다크 럼주 한 잔을 가지고 와. 물 같은 거 섞지 말고 원액으로 말이야. 겨우 이거 꿰매는 데 아편제 같은 걸 쓰는 것보다 그게 낫겠어.”
데네브의 비명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군의관은 소독용 알콜을 가져온 보조에게 다시 명령을 내렸다.
“문제는 뼈로군. 어깨뼈와 왼팔 뼈에 금이 갔어. 다행히 이탈은 하지 않았지만, 며칠간은 깁스를 해야겠군.”
“무슨 치료를 이딴식으로…….”
“어허, 조용히 하게, 소위. 다 자넬 위해서 하는 거야. 그러니까 잔말 말고 이거나 마시게나.”
그는 데네브의 입에 진한 암갈색의 럼주를 한가득 부어 넣었고, 그것이 식도에 닿자마자 데네브는 끔찍할 정도로 뜨거운 고통을 느꼈다.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자신의 식도에 불을 지르는 것만 같았다.
“자, 진정하라구, 이 친구야.”
데네브가 몸부림을 치자 군의관 보조들이 달려와 그의 사지를 붙잡아 가죽끈으로 묶어 버렸다.
“어서 술에 취해 잠이나 자.”
그러면서 군의관은 더욱 럼주를 부어 넣었다.
취기가 급격하게 오면서 데네브는 뒷목이 땡기는 느낌을 받았다.
‘일단 깨어나면 군의관 먼저 조져야겠군.’
데네브는 그렇게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전쟁의 피로와 죽을 고비, 취기의 조합으로 사실은 실신에 가까운 잠이었다.
“자, 그럼 이제 시작해 볼까?”
군의관은 데네브의 상처에 알콜을 부어 소독을 한 후 달군 바늘을 물에 식힌 다음에 집도에 들어갔다.
“후.”
데네브는 잠을 자다 말고 일어났다.
왼팔은 깁스가 되어 있어서 움직이기가 불편했다.
더 이상 잠을 잘 수 없는 것이, 이미 수술 도중에 충분히 잔데다 저녁을 먹지 못해 배고픔이 심했기 때문이다.
이를 대비한 그의 현명한 사환인 고든은 그에게 야식으로 먹으라고 차가운 샌드위치를 침대 오른편의 접이식 탁자에 놔두었다.
두껍게 썰어 절인 칠면조에 으깨서 삶은 계란과 샐러리, 오이 피클이 들어간 훌륭한 식사였고, 그 옆에는 멀드 와인―설탕 시럽에 각종 향신료와 과일 껍질을 넣고 와인을 부어 약하게 끓인 음료―이 준비되어 있었다.
데네브는 남은 오른팔로 샌드위치를 먹으며 고든이 이 재료들과 멀드 와인을 어디서 구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척후에서 후퇴하는 와중에 사 두었던 모든 식재료를 두고 올 수밖에 없어서 고든에게 남은 음식은 없었던 것이다.
아마 물어보면 사환은 거짓말만 늘어놓을 것이다.
‘다음 달 월급을 줄 때 은화 한 개 더 주어야겠군.’
탁자 위에는 그것 말고도 그의 개인 물품들이 옮겨져 있었다.
이것도 고든의 작품임이 분명했다.
데네브는 일기장을 꺼냈다.
사실 중대 일지를 기록하는 것이 먼저였지만, 그는 피해 상황 등을 알 수 없었기에 기록을 할 수 없었다.
운이 좋게 살아남았다.
적들은 생각도 못한 마법 공격을 하였지만, 저들에겐 박격포도, 곡사포도 없었다.
박격포 30문만 보루를 향해 발사되었다면 우리는 전멸되었을 것이다.
데네브는 이어 보루를 폭파한 경위 등을 적어 내려갔다.
……물에 빠져 이제는 죽었구나 생각했고, 여태까지 지냈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렇게 의식을 잃은 나를 그녀가 구했고, 그녀의 응급처치 덕분에 지금 이렇게 일기를 쓸 수 있다.
난 그녀에게 쓸데없는 민폐를 끼쳤고. 그녀는 이제 나의 생명의 은인이 되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까?
‘일단은 식사 초대를 다시 해야겠군.’
그는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데네브는 자기 수중에 돈이 없다는 것을 나중에 깨닫고는 일단 그 일을 보류해 두기로 했다.
어떻게 하면 갚을 수 있을까?
조금 시간을 들여 생각해 봐야겠다.
그는 일기 쓰기를 끝마치고 밖을 내다보았다.
낮의 전투 때문인지 밖은 대단히 어수선했다.
잠을 청하는 병사보다 보초를 서는 병사와 비상 대기 부대가 많아서 매우 시끄러웠다.
‘다시 전투에 나간다면 이렇게 편히 쉴 일은 없겠지.’
그는 다시 누워서 잠을 청했다.
멀드 와인에 알콜이 남아 있어 몸이 따뜻해진 덕분에 잠을 쉽게 청할 수 있었다.
다음 날, 해가 뜨지 않은 새벽에 데네브는 사령부의 출두 명령에 곧장 움직일 준비를 하였다.
부상을 입었다지만 몸을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기에 그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제복을 제대로 차려입었다.
팔 상태가 좋지 않은지라 군복을 제대로 입을 수 없어 데네브는 고든 이병의 도움으로 마치 경기병 자켓처럼 한쪽 어깨에 제복을 걸친 상태로 입을 수밖에 없었다.
“추한 꼴이군.”
데네브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한탄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결국 그는 그 모습으로 사령부 건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가 사령부 건물로 올라오자마자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마리 소위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았다.
“그대는 왜……?”
“저도 호출을 받았습니다.”
“들어가십시오.”
둘이 모인 것을 확인한 마르찬 대령의 부관이 문을 열어 주었다.
“부상을 입었다더니, 그리 심한 것 같지는 않군, 대위.”
마르찬 대령이 말했다.
데네브는 대령을 비롯해서 주변에 있는 장교들의 분위기가 좋지 않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예. 그냥 가볍게 뼈가 금이 가고 적의 칼에 베였을 뿐입니다.”
그의 말에 마르찬 대령을 콧방귀를 뀌었다.
“그래그래, 아주 용장이 나셨구만.”
아무리 하급 장교라지만 그에 대한 빈정은 모욕이나 다름없었고, 만약 그가 데네브와 같은 계급의 장교였다면 당장 결투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대령님, 갑자기 왜 그러시는지…….”
아무리 그가 밉다고 해도 갑자기 이런 식으로 나올 리는 없기에 데네브는 적잖게 당황했다.
“남작이라 부르게, 대위.”
데네브는 계속 자신을 대위라고 부르는 마르찬 대령의 목소리가 걸렸다.
‘설마…….’
그는 웃음을 참기 위해 노력했다.
남의 진급을 싫어하는 육군의 특성상 샘나서 그런 것이리라 생각이 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