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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페리얼 가드 1권 (16화)
Chapter 5 (3)
“축하하네, 대위. 어제 새벽에 마르티네즈에서 속기로 전령이 왔네. 적의 포위망을 뚫기 위해 정찰대에서 사용하는 콩을 먹인 말을 타고 왔다는군.”
그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보통 기병들의 말은 건초를 먹었지만, 정찰대에서는 그 임무 특성상 콩 같은 곡물을 먹인 말을 타고 다녔는데, 건초를 먹인 말은 곡물을 먹인 말에 비해 속도와 지구력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여튼 명령서에 따르면, 지난 적의 첩자를 사살한 공로로 2계급 특진과 함께 금화 30개가 하사되었네.”
그는 명령서와 금화가 담긴 비단 주머니를 내밀었다. 데네브는 그것을 받았다.
“따라서 그대의 부하인 마리 소위는 1계급 특진과 함께 상금 금화 10개가 하사되었다.”
마리 중위도 그것을 받았다.
“자, 이제 그것을 떠나서, 군사재판을 시작하겠네.”
‘군사재판?’
“에른스트 중령.”
“네.”
마르찬 대령의 호명에 에른스트 중령이 서류를 꺼내 들었다.
“어제 전투에서 보루를 잃은 책임을 물어 데네브 중위에 대한 죄의 유무를 따지겠습니다.”
‘보루를 잃어? 그 책임을 묻겠다고?’
데네브는 얼굴에 분노가 나타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지원군도 안 보내 주고 단지 우리 혼자 육탄전을 벌이게 해 놓고 그 책임을 묻겠단 말이지?’
그는 당장 에른스트 중령의 목을 베고 싶어졌다.
“남작님, 이 청문회에 의의를 제의합니다.”
마리 중위가 나섰다.
“거부. 에른스트 중령, 계속 읽어 내려가게.”
“102독립중대는 북쪽 보루 방어를 명받았고, 전투 당시 96파운드 포 2문과 70여 명의 병력, 포탄 60발, 화약 200킬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소관은 당시 보루의 규모와 보루를 향해 올라오는 적병의 숫자를 파악해 102독립중대는 충분히 방어를 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이에 베르킨 소령 이하 6명의 당직 장교들도 같은 생각입니다.”
‘뭐? 1개 대대 급 병력이었는데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고?’
그 자식들 면상 좀 보고 싶어졌다.
“이에 변호를 해야겠습니다.”
마리 중위가 다시 한 번 나섰다.
“보루를 수비하던 102독립중대는 완편 중대가 아니었는 데도 불구하고 보루를 공격하기 위해 몰려든 적병들은 최소한 4개 중대가 넘었고, 본관의 예상으론 1개 대대 병력이었습니다.”
“그에 따른 증거가 있는가?”
에른스트 중령이 물었다.
“거기에 대대 병력들은 일반 대대 병력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특별 편성 대대가 분명합니다. 그들 중에 다른 병과의 병사들도 보였고, 근접 전문인 기사들까지 섞여 있었습니다.”
“그에 따른 증거가 있는가?”
에른스트 중령이 히죽 웃으며 물었다.
“증거는 없지만, 병사들에게 물어보면 분명 그들이 증언해 줄 것입니다.”
“병사는 장교가 아닙니다, 마리 중위.”
에른스트 중령의 말에 몇몇 장교들이 웃음을 터뜨리자 데네브는 울컥하는 마음을 참기 위해 이를 꽉 깨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에른스트 중령의 주장의 증거는 무엇입니까?”
데네브가 물었다.
“여기 있는 장교들과 그 상황을 같이 지켜보고 저의 주장에 동의했습니다. 그렇기에 증거가 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저런 씨…….’
병사들의 증언은 안 되고 장교의 증언만 유효하다니, 이 무슨 해괴한 이론인가?
“병사들은 전투 중에 전장 파악을 할 수 없습니다. 아니, 그들에게 그럴 권한 따위는 없습니다. 그들은 단지 명령에 충실히 싸우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맞댄 적이 분명 중갑옷을 입은 기사들이었습니다. 직접 싸운 그들의 증언을 무시하는 것은 상식에 벗어난 말입니다.”
마리 중위의 말에 데네브와 그녀를 제외한 이들이 모두 발끈했다.
“그 말인즉, 네년은 우리가 상식에 어긋난 사람이라 말하는 것인가?”
마르찬 대령의 수염이 부들부들 떨렸다.
“전 여러분들을 비난한 적은 없습니다.”
마리 중위는 발뺌했다.
“단지 상식을 말했을 뿐입니다.”
“그게 그거 아닌가?”
한 경기병 장교가 씩씩거리며 마리 중위를 향해 오른손을 높이 들어 휘둘렀다.
따귀를 때릴 요량인 듯했다.
하지만 따귀 소리가 나긴커녕, 포물선을 그리며 내려오는 장교의 손바닥을 마리 소위는 아무렇지 않게 잡아내었다.
“엇?! 이년이?”
“전 엄연히 제국의 사관입니다. 이년 저년 따위가 아닙니다.”
“어억!”
마리 중위가 손을 비틀어 버리자 경기병 장교가 비명을 질렀다.
“중위…… 거기까지 하게. 베르킨 소령은 오른손잡이야. 쓸데없는 일로 장교 하나의 전투 능력을 잃게 할 수는 없네.”
에른스트 중령이 나선 뒤에야 마리 중위는 꺾었던 팔을 풀어 주었다.
“중위, 그대는 기사의 자질을 가지고 있는 건가?”
“조금은 가지고 있습니다.”
‘기사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기사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몸속 근육에 마나를 축적하고 자유자재로 움직이게 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렇다는 것은 일반 근육의 힘보다 몇 배 높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말.
그것은 기사의 기본적인 능력이었다.
데네브는 그제야 프렌치 대위가 왜 마리 중위가 보통 병사들보다 힘이 장사라고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마법사들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처럼 점점 기사의 자질을 가진 이들도 줄어드는 실정인지라 기사의 자질을 가진 사람 또한 고급 인력에 속했다.
‘마나를 다룰 줄 알면 기사대에 들어가서 소령 계급부터 군 생활을 할 수 있을 텐데?’
“오호, 그런 능력을 어찌…….”
“자, 중위의 재능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하지.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나.”
마르찬 대령이 나섰다.
“에른스트 중령의 말대로 병사들의 증언을 증거로 쓸 수는 없네, 중위.”
“어째서입니까?”
마리 중위는 지지 않고 따졌다.
“그만. 시급한 시기에 더 이상 그대와 말장난하고 싶지 않네.”
“애초에 그렇게 시급한 시기인 데도 불구하고 전투 중에 군사재판을 한다는 것 또한 말이 되지 않습니다. 군사재판은 전쟁이 끝나고 논공행상을 논할 때 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는 군법 102조 3항에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지금 남작님께서 하시는 짓은 명백한 군법 위반입니다.”
“뭐? 그대는 알지도 못하면서 지금 나에게 가르치려는 건가?”
“정 의심이 가시면 군법전을 보시면 됩니다. 아까 제가 이의를 제기한 이유가 이것이기도 하지요.”
“좋아, 그런 식으로 말하니 어디 한 번 보도록 하지.”
마르찬 대령은 책장에서 두꺼운 군법전을 꺼내 102조 3항을 찾아 내려갔다.
“어디서 감히 누구에게 돌팔이 약을 팔려는 거야? 만약에 조금이라도 틀리기만 해 봐. 내가 가만…….”
마르판 대령의 혈색 좋은 얼굴이 순식간에 타락죽처럼 허옇게 변하고 말았다.
“제 말이 맞지요?”
의기양양해진 마리 중위가 콧방귀를 뀌었다.
“조, 좋아, 군사재판은 나중에 하도록 하지. 이만 물러나게. 에른스트 중령, 그대는 남게.”
그러나 빨리 사태를 마무리하려는 마르찬 대령을 마리 중위는 가만히 두려고 하지 않았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비록 보루를 잃었다지만, 부상당하신 대위님을 사령부까지 호출한 것은 너무나 가혹하기 그지없습니다.”
“뭐? 가혹?”
마르찬 대령은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비록 걸을 수 있다지만 병자를, 그것도 해가 뜨지 않은 새벽에 부른 것은 잘못이긴 했던 것이다.
물론 그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고, 모든 이들이 대개 그렇듯 군법을 다 알고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 상대를 잘못 고르고 말았다.
“게다가 불법적인 군사재판이 벌어졌으니 저희 대위님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며 차후에 근위대 사령부에 보고할 것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 생각해 보았는데, 근위대에 대해 군사재판을 열 수 있는 건 근위대 사령부뿐이군요. 직권남용도 보고해야겠습니다.”
마리 중위의 말이 이어질수록 장내에 있는 장교들의 얼굴은 창백해져 갔다.
“차후에 중대 일지에 기록해야 하기에 여러분들의 이름과 직책을 알아야겠습니다. 세 분은 제가 아는 분인데 나머지 다섯 분은 모르겠군요.”
데네브는 그녀의 말처럼 중대 일지에 확실히 기록해 두기로 마음먹었다.
마리 중위 역시 진짜로 그들의 명단을 적었다.
“그러면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문을 나서는 순간, 두 사람의 입은 양쪽 귀에 걸려 있었다.
집무실에서 있던 모든 불쾌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근데 마리 소…… 아니, 중위. 정말 마나를 사용할 줄 아는 건가?”
사령부 건물을 나설 무렵, 데네브가 물었다.
하늘에 해는 떴지만 구름이 껴서 우중충했다.
“네, 그렇습니다.”
“근데 왜 그런 것을 말하지 않았는가?”
그의 말에 마리 중위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곧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따, 딱히 숨기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근데 왜 뭐 하려고 보병대에 온 건가? 기사대에 갔으면 소령에서부터 시작했을 텐데.”
“소령으로 시작하기에는 저의 그릇이 작았습니다.”
뭔가 사정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데네브는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이내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그대의 진급을 방해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군.”
“네?”
“오늘 나는 2계급 특진이었지만 그대는 1계급 특진이었다. 간첩을 발견한 것은 그대였기에 그대의 공이 더 커야 했지만, 내가 상관이라는 이유로 공이 격하된 것이 분명하다.”
데네브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대는 나보다 뛰어나다. 오랫동안 같이 일하지는 않았지만, 그대와 같이 지내면서 난 많은 것을 느꼈다. 거기에 그대는 기사의 자질을 가지고 있으니, 난 아름다운 원석을 감싸는 잡석과 같다고 생각한다. 중위, 이건 내 제안인데, 다른 부대로 전출 가는 것은 어떠한가? 내 추천과 그대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중대장 정도는 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중대장님. 전 지금 중대장님의 휘하에 있는 것이 낫습니다.”
“어째서지? 내가 어디가 낫다는 거지? 그대, 이번 기회에 물어야겠다.”
데네브는 걸음을 멈추고 그녀에게 돌아섰다.
“난 이해할 수 없네, 중위. 왜 내 밑에 있는 건가? 그댄 날개를 활짝 펴고 충분히 창공을 날 수 있는데 왜 애써 내 밑에 있으면서 그 날개를 웅크려 먼지가 쌓이게 하는가? 그대는 내 밑에 있는 것보단 부대 지휘관으로 있는 게 더 어울릴 것 같다. 이유가 뭔가?”
“전…… 대위님과 있는 것이 좋습니다.”
“좋다? 단지 좋다? 더더욱 이해할 수 없군, 중위. 단지 좋다는 이유 때문인가? 추상적으로 말하지 말게. 방금 자네의 발언은 내 휘하에 있는 것이 좋다는 건가, 아니면 나 개인을 이성적으로 좋아한다는 건가?”
그 말에 마리 중위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아, 아닙니다! 대위님! 죄송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언성을 높인 그녀는 이내 입을 손으로 막고 작게 말하였다.
“실은, 이건 철저히 저를 위해서입니다.”
“뭐? 왜지?”
데네브는 더욱 이해를 못했다.
“여태까지 대위님 같은 장교를 뵌 적이 없습니다. 대위님은 저의 조언이나 작전에 대해 수정을 요청하는 것 등을 합리적으로 들어주셨습니다. 그전까지 뵈었던 장교들은 전부 저의 조언을 무시하기만 했습니다. 아, 물론 프렌치 대위님은 그렇지 않았지만, 대개 장교들은, 특히 귀족 장교들은 자존심이 강하여 아무리 자기들이 실수를 해도 인정을 하지 않고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병사들은 허무하게 죽게 만들었습니다. 거기에 그들은 저의 재능을 시기해서 상부에 험담을 늘어놓기 일쑤였습니다. 그런 그들 밑에서는 진급을 착실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2년 전부터 소위였고, 이미 4번의 전투에 참가했는데도 진급하지 못한 것입니다.”
‘아, 그런 것이었군.’
데네브는 조금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