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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페리얼 가드 1권 (17화)
Chapter 5 (4)


‘난 오히려 그것 때문에 열등감이 느껴지는데.’
그것 때문에 데네브는 오히려 그녀를 쫓아내고 싶어 하지 않을까 하며 데네브가 생각하는 동안 마리 소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전 기사들처럼 처음부터 높은 곳에서 시작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높은 자리에 앉아 우쭐거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상주의자 같군.’
데네브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렇다고 이대로 진급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억울합니다. 대위님같이 공정한 분이시라면 전 착실히 대위님 곁에서 착실하게 진급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대가 다른 곳으로 전출당하면 어쩌려는 것인가?”
“그땐…… 대위님의 부관이나 참모 장교로 가도록 하지요. 제 기억력 좋지 않습니까? 부관이나 참모 장교로 어울릴 거라 생각합니다만.”
‘누가 들으면 기생목과 같다고 오해하겠군.’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만큼 가까이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그건 자네의 재능을 죽이는 꼴 아닌가. 난 아무리 생각해도 그대의 재능은 기사대에 어울린다 생각하네.”
“전…… 기사대에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전 보병이 어울립니다.”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았지만, 데네브는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좋아. 그대의 의견을 존중하겠다. 근데 한 가지 더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네. 말해 줄 수 있겠나?”
“네, 말씀하십시오.”
데네브는 이걸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의문이 들었지만, 용기를 내 물어보기로 했다.
사실 그는 궁금한 것은 참을 수 없는 성격이었다.
“지난밤에 찾아왔을 때, 그댄 내가 강하고 똑똑한 장교이기에 찾아왔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이상형이라고 했지. 근데 그거 말고 없는 건가? 다른 이유는 없는 건가? 단지 그것 때문에 찾아왔을 리 없다고 본다.”
“아…….”
데네브는 마리 소위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진 것을 보고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 그건 전…… 보루에서 싸울 때 죽을 것 같아서 처녀로 죽고 싶지 않아…….”
‘알아. 안다고, 그런 건.’
제국의 보편적인 도덕적 관념으로 보면 남녀가 각각 동정과 처녀를 가지고 죽는 것, 즉 노총각, 노처녀로 죽는 것은 죄악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네. 근데 굳이 왜 하필 난가? 왜 날 곤란하게 만든 건가? 그것 때문에 솔직히 난 지금 중위를 상대한 것조차 거북하네, 계속 말했다시피 난 그것 때문에 한창 잘나가는 장교 하나의 미래를 망칠까 두렵네.”
“네?”
데네브에게는 절대 일기에도 쓰지 못한 두려움이 있었다.
“행여…… 음, 그대가 임신이라도 할까 봐…….”
이번에는 데네브의 얼굴이 빨개졌다.
남이 보았으면 두 명은 이제 갓 사귀기 시작한, 부끄러움이 많은 연인과 같았다.
“그, 그런 건 생각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전 엘프입니다. 인간과 엘프는 교접은 가능하지만, 아이를 가지는 것은 매우 확률이 낮습니다. 그, 그 때문에 혼혈도 거의 없, 없고…….”
동요하는 것을 보니 분명 생각해 두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아니, 최소한 데네브는 그렇게 확신했다.
“여튼 간에 다른 이유는 뭔가?”
“저…… 그게…….”
“있구만. 부탁하네. 난 의문을 품으면 계속 그것이 머릿속에 남는 사람이네. 그러니 꼭 알고 싶네. 하지만 행여, 사적인 것이라면 어쩔 수 없으니 듣지 않기로 하지.”
“아, 저…… 그게…… 사실 제가 아는 장교는 대위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장교들은 대면하여 만난 적도 없습니다. 찾아갈 분이 대위님밖에 없던 것입니다.”
“뭐? 그대는 내가 그…… 이상형이라고 하지 않았나?”
“물론 제가 만났던 분들 중에 가장 이상형입니다.”
데네브는 골머리가 아파졌다. 그리고는 괜히 심각하게 반응한 자신의 내면을 질타했다.
그는 사교성이 너무나도 없는 이 부하 장교의 추태에 놀아난 것 같은 부끄러움에 얼굴이 더더욱 빨개지다 못해 고혈압에 걸린 듯 뒷목이 아파왔다.
“뭐야? 마리 중위, 왕따였는가?”
“아, 아닙니다.”
마리 중위는 강하게 부정했지만 데네브는 이미 확신이 들어 버렸다.
“맞구만. 여기 연대 중에는 나보다 평판이 좋고 합리적이면서 평민 장교 출신도 많은데. 장교 클럽에서 열리는 주기적인 파티에 잘 나가 어울렸다면 많은 장교들과 대면할 수 있었을 텐데.”
데네브의 환상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완벽해 보이던 마리 중위는 알고 보니 왕따였다.
그것도 아주 심각한 왕따.
부임한 지 며칠 안 된 그는 그렇다 치고, 이곳에 복무한 지 몇 달 이상이나 된 마리 중위가 친한 장교가 하나도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될 정도로 사교성이 없다는 것 외에는 설명이 안 되었다.
“아무래도 그건 좀 심한데.”
장교들 사회는 아무리 못나도 중산층들이고 대부분은 상류 사회라고 할 수 있어 사교성이 매우 중요했는데, 이 정도로 사교성이 없다는 것은 그 사회에서 축출될 정도로 위험한 것이었다.
“사교성이 없어서 진급 못한 거 아닌가?”
“아, 아닙니다!”
마리 중위는 강하게 부정했다.
“사교성 따위가 없어서 진급을 못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너무 심하군. 혹시 여자라는 이유로 그렇게 된 건가? 아, 아냐. 그래, 됐어. 다른 이유일지도 모르니까 이제 그만하세. 말 안 해도 돼.”
마리 중위가 다시 발끈하려고 하자 데네브가 얼른 말을 먼저 했다.
“중위, 그대가 솔직히 말해 줘서 기쁘네. 이에 나도 숨기고 있던 것을 말하겠어.”
“무엇입니까?”
“그땐…… 나도 처음이었네.”
조금 풀리는가 싶던 둘의 얼굴은 다시 붉어졌다.
“정말이십니까? 거짓말 아니십니까?”
마리 중위는 주먹으로 입을 가렸다.
“진짜네.”
데네브는 그녀의 얼굴을 계속 지켜볼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대위님은 병사 출신이 아니십니까?”
병사들은 대부분 전쟁터나 주둔지 근처로 몰려드는 매춘부들과 난잡하게 노는 것을 알기에 하는 발언이었다.
“중위와 만나기 전까진 이성에 대한 문제는 생각도 해 보지 못했네. 그만큼 내 사정은 어려웠으니까…….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고 봐야 마땅하겠지. 자, 이제 우린 동등해진 것이야.”
“동등해진…… 건가요?”
그렇게 말하는 마리 중위는 어딘가 잔뜩 움츠러들어 있었다.
“그렇다고 해야겠지? 여튼 난 그대와 있던 일을 비밀로 할 것이다. 군대 내에서, 그것도 상관과 부하 간의 연애면 군 수뇌부에서 가만두지 않을 중대한 사항이니까.”
“네, 그렇겠지요.”
데네브는 얼른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기로 했다.
“자, 그러면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서…… 에른스트 중령, 그 망할 자식은 군법도 살펴보지 않고 우릴 군사재판에 세우려고 했어. 분명 아군에 대한 오폭의 책임을 어떻게는 넘겨 보려고 저지른 수작 같은데, 난 가만두지 않을 생각이야.”
“맞습니다. 그자는 대위님을 죽이려고 작정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자가 다리에 발사한 포탄은 일반 원형 포탄이 아니라 막대탄이었습니다.”
“뭐? 막대탄?”
막대탄은 주로 건물 같은 인공 건축물을 부술 때 사용하는 포탄으로, 건물의 외벽을 뚫고 안에서 튕겨져 돌아다니기에 건물을 부술 때 제격이었다.
물론 빈약한 나무로 만든 다리는 금방 부술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거, 그 작자가 날 죽이려고 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겠군.”
“그렇습니다. 게다가 그가 바로 성채 안에 있는 고정간첩이 없다고 말한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가 고정간첩일 수도 있겠군. 물론 그것은 내 희망사항이지만.”
“저도 제발 그가 간첩이길 빕니다.”
마리 중위는 이미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아, 대위님의 군도는 제가 임의로 손질했습니다. 군도에 묻은 피를 닦아 내지 않은 채 칼집에 넣으셨더군요. 덕분에 칼을 다시 뽑아내는 데 고생 좀 했습니다. 계속 그러다가는 날이 녹슬 수도 있습니다.”
“아, 그런가?”
데네브는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전장에서 일일이 닦는 것은 무리지만, 크게 한 번 휘둘러 털어 내는 방법이 있으니 나중에 참고하시면 좋습니다.”
“고맙네.”
“데네브 대위.”
누군가가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엔 마르찬 대령의 부관이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군사재판 건 때문에 이야기를 하지 못했는데, 마르티네즈에서 신문이 왔네, 제도(帝都)에 큰 변고가 생겼어.”
“변고라뇨?”
“황제 폐하께서 서거하셨다.”
분명 충격적인 소식이긴 했지만 데네브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황제는 이미 2년 전부터 시름시름 앓다가 1년 전부터는 섭정을 맡기고 요양 중이었다.
“그러면 새로 즉위하시는 분은…….”
“차녀이신 아넬리제 황녀께서 즉위하셨네. 물론 자세한 것은 자네가 신문을 통해서 보게.”
데네브는 신문을 받았다.
“이에 따른 조의를 표하기 위해 오늘 아침부터 조기로 게양될 것이고, 병사들은 전부 검정색 완장을 차야 하네. 그에 대한 지시를 병사들에게 내려 주길 바라네. 하지만 완장은 나중에 받아야 할 거야. 보급관 놈들이 비명을 질러대며 만드는 중이니까. 10명이서 1,800명분을 어떻게 만들지 알아보자고.”
자기 할 말을 모두 마친 부관이 가 버리자 데네브는 얼른 신문을 펼쳤다.
신문의 1면에는 대문짝만 하게 아넬리제 황녀의 초상화를 붙여 놓고, 그녀의 즉위 소식과 함께 그녀를 축복하는 글로 도배되어 있었다.
“장녀이신 마리아 황녀님은 구텐베르크 후작―원수 겸 제국군 총사령관―과 결혼을 해서 황위 계승권을 잃었다라…….”
데네브는 작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데네브가 보기에 아넬리제야말로 황위를 받을 권한이 없어―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반역이었다―보였다.
그는 아무리 나이를 많이 쳐줘도 19세도 안 돼 보이는 그녀―실제로는 18살―에게 충성 맹세를 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
거기에 그녀의 유모인 안네로제 백작 부인과 그녀의 남편이자 섭정을 하고 있던 테오도르 백작은 권력욕이 지나치게 심해서 황제가 요양 중에도 견제를 할 정도의 인물들이었다.
‘뭐, 난 승자에게 충성을 맹세하면 그만이니까.’
데네브는 기사를 다 읽어 본 후 마리 중위에게 신문을 넘겼다.
“그댄 어떻게 생각하나?”
마리 중위 또한 심각하게 신문을 읽어 내려가다가 입을 열었다.
“황실에서 권력 쟁탈전이 벌어질 것 같군요. 그것 때문에 드리지아도 침공해 온 것 같고요.”
“그렇지? 내가 생각해도 그래.”
이야기를 나누던 둘은 어느새 근위대 주둔지에 도착했다.
“드리지아의 청년 국왕은 마치 하이에나와 같군. 분명 제국 내무부에선 내부 문제 때문에 전쟁을 조기에 끝내고 싶어 할 거야. 아마도 원수부도 같은 생각일 테고. 그놈들은 귀족들이 사령관으로 앉은 지방군을 견제하고 싶어 할 테니까. 지방군은 말이 지방군이지, 대부분 귀족들의 개인 사비로 창설된 부대니까. 겉으로는 원수부의 명령을 받고 있지만, 어떻게든 떡고물을 받아먹으려고 귀족들이 벌 떼같이 움직일 테니까.”
“것보다 아넬리제 황녀, 아니, 폐하께선 불쌍하게 되었군요. 전 그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뵌 적이 있나?”
“네. 근위대로 처음 배치되었을 때 파티에서 뵈었지요. 너무 갸녀린 분―니가 할 소리냐? 라고 데네브는 마음속으로 외쳤다―이셨습니다. 초상화보다 더 마르셨지요. 아마 일부러 그런 게 분명합니다. 거식증 같은 게 아니라 그저 식사를 많이 안 하시는 체질이셨지요. 여성 장교인 저에게 호감을 가지셔서 영광스럽게도 같이 식사를 할 수 있었는데, 취미가 독서나 바이올린을 연주하시는 것이었답니다. 전 그분과 귀족 영애들이 모여서 황녀님을 주축으로 하는 현악 4중주를 듣는 관객이 될 수 있었지요. 그때 그 기쁨이란!”
환상 속에 빠져든 마리 중위를 보는 데네브의 시선에는 질투가 가득했다.
이제껏 황궁 연회에 한 번도 참석해 보지 못한 그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여튼 간에 그분은 정치를 좋아하실 분이 아닙니다. 몸도 많이 약하시기 때문에 안네로제 백작 부인과 테오도르 백작이 전권을 위임하게 만들려고 부단히 노력했다는군요. 전에 한 번 심정을 토로하셨는데, 잠을 자려는 그분께 그들이 무단으로 침실에 난입해 전권 위임 서류에 강제로 사인하게 하려고 했다는군요. 물론 거기에 적잖은 폭력도 있었고요.”
“그 말이 사실인가?”
그 말에 데네브는 적잖게 놀라고 말았다.
일개 백작 따위가 감히 황녀에게 손찌검을 한다는 것은 반역에 가까운 죄였다.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폐하께서 실제로 통치하는 기간은 별로 없을 거라 생각됩니다.”
“좋아. 이제 그 얘기는 그만하도록 하고 현실로 넘어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