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임페리얼 가드 1권 (18화)
Chapter 5 (5)


데네브는 남쪽 숙소에서 식사 중인 병사들을 보고 중얼거렸다.
“사상자 보고하게.”
“사상자는 24명입니다. 사망 19명, 부상자 5명입니다. 포병들은 다행히 피해를 보지 않았습니다.”
“가용 병력이 44명밖에 안 된다는 소린가?”
“원래부터 그랬지만, 저희 102독립중대는 이미 해체되었다고 봐야 합니다. 1개 소대 정도밖에 안 되는 인원이 중대라고 하는 것 자체가 무리입니다.”
데네브가 보고를 듣는 동안 병사들은 그가 온 것을 알고 환호성을 질렀다.
“방어 지점을 잃은 우리에게 다른 명령은 없었나?”
데네브는 그 환호의 화답으로 오른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고든에게 손짓으로 군 병원을 가리키자 무슨 뜻인지 이해한 그가 얼른 데네브의 짐을 옮기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단지 예비 병력으로 남긴다는 말밖에 없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하지만 데네브는 말을 끝마칠 수 없었다.
요새 중앙 쪽에서 나팔 소리와 북소리가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전투 준비를 알리는 연주였다.
“적의 공격인가?”
데네브가 물었다.
하지만 마리 중위라고 한들 사정을 알 리 없었다.
쿵쿵거리며 멀리서 대포 소리가 들려왔는데, 그 대포의 포격음은 일반 대포의 그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오, 이런 젠장.”
폭발음과 함께 어떤 건물의 지붕이 폭발하면서 사방에 기와 조각을 날렸다.
폭발하는 유탄포를 날릴 수 있는 건…….
“젠장! 9파운드 곡사포다!”
“적의 공격이다! 적의 공격이다!”
그때, 경기병 하나가 말을 몰고 다니면서 소리를 질렀다.
“정렬!”
무기와 군복을 갖춰입은 병사들이 나오자 마리 중위가 소리쳤다.
“아, 맞다. 대위님.”
“뭐지?”
마리 중위가 데네브의 왼쪽 어깨에 붙은 견장을 빼 오른쪽에 달아주었다.
“오늘부로 대위님이 되셨으니 오른쪽에 다셔야지요. 이젠 시시한 소위가 아니잖습니까.”
“고맙네.”
데네브는 전투 중에 이런 여유가 보이다니, 새삼 그녀가 신기하게 느껴졌다.
“102독립중대이십니까?”
경기병 하나가 데네브에게 접근하며 물었다.
“그렇네.”
데네브는 깁스한 팔을 제복으로 숨기며 물었다.
“102독립중대는 예비 부대 겸 남문의 수비를 맡아 달라는 요청입니다.”
“알았다.”
“대위님은 쉬시는 것이 어떠십니까?”
경기병이 물려난 후 마리 중위가 물었다.
“뭐 하러?”
데네브의 물음에 오히려 마리 중위가 당황했다.
“부상이신데…….”
“겨우 왼팔이잖아. 난 오른손으로 군도를 잡는다네. 중위, 날 도와 주게. 칼집을 내 허리띠에 채워 주고 칼 좀 갈아 주게.”
그때, 짐을 다 옮긴 고든이 배급용 수프를 그릇에 담아 데네브에게 가져왔다.
“무슨 수프인가?”
“네, 닭고기 수프입니다.”
닭고기에 완두콩과 당근 버섯을 넣고 끓인 수프였다.
“거기 한쪽에 치워 주게. 어떻게든 제복을 입어야겠어. 좀 도와주게.”
하지만 맞춤으로 제작된 제복은 깁스로 두꺼워진 두께 때문에 왼팔을 넣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에 데네브는 옷을 최대한 걸치고 단추도 최대한 채운 뒤, 옷이 벗겨지지 않게 줄로 묶어서 고정시켰다.
“칼은 다 갈았나?”
“잠시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마리 중위는 숫돌바퀴로 열심히 군도로 갈았다.
“대충 갈면 될 거야. 세심하게 할 필요는 없네.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니까.”
마리 중위는 칼을 다 갈고는 칼날을 검사해 보았다.
“이가 빠진 데는 없군요.”
그리고 그녀가 기름 먹은 가죽 조각으로 칼을 닦아 내자 검신이 번들거렸다.
데네브가 군도를 건네받아 칼날을 살펴보았다.
구름에 햇빛이 가려진 날씨였지만 칼날에는 새로운 번뜩임이 보였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뭘요.”
군도를 허리띠의 고리에 걸어 준 그녀는 무릎에 묻은 흙을 털어내었다.
“남문에 초병을 몇 명 세우고 성문 또한 몇 명이 관리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데, 괜히 병사들을 전부 남문 위에 둘 순 없지.”
“옳으신 생각입니다. 그리 실행하겠습니다.”
“좋아.”
그때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또다시 날아온 포탄이 그들의 옆으로 떨어졌다.
그것은 땅에 박히면서 작게 진흙을 튕겼다.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에 떨어진 것이었지만, 데네브는 그 순간, 생존을 위해 움직이지 못했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를 제외하고는 전부 다 몸을 엎드린 상태였다.
다행히 유탄은 작은 연기만 피어오를 뿐, 폭발하지는 않았다.
불발인 것이다.
데네브는 그 유탄을 향해 걸어가 발로 밀어서 하수도로 굴러가게 만들었다.
기분 나쁘게 나중에 터지면 재수가 없기에 한 행동이었다.
물론 그것은 오랜 전쟁 경험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오오…….”
몸을 숙였던 병사들이 그 장면을 고스란히 보고 탄성을 질렀다.
사실 그것은 그의 용기와 대담함을 보여 주는 장면이 아니었지만, 모든 이들이 충분히 오해할 만한 장면이었다.
“뭐 해? 안 움직이고?”
데네브는 수프에 떨어진 흙을 손으로 골라 내며 마리 중위를 채근했다.
“아, 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마리 중위가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사이에 그는 수프를 먹어보았다.
맛은 좋았지만 이미 식어 버린데다 먹을 때마다 흙이 씹히는 바람에 더는 먹고 싶지 않았다.
겨우 열 수저 정도만 뜬 그는 건더기만 건져 내 먹은 후 남은 그릇을 고든에게 내밀었다.
“새로 떠 올까요?”
“아니야, 됐어. 대신 빵이 있다면 그것 좀 가져와 봐.”
“알겠습니다.”
이유 불문하고 전쟁터에서 식사를 거르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세상에서 전쟁만큼 힘든 것이 없는데 밥을 안 먹는다는 것은 힘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고, 힘이 약해진다면 목숨의 보장을 할 수 없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내 모자와 목가리개는?”
“죄송합니다만, 제가 건진 것은 군도밖에 없었습니다.”
“그래…….”
그래도 군도를 건진 것만으로 다행이었다.
나머지 것들은 보급을 받으면 그만이니까.
“여튼 병력 배치를 서두르게.”
“네.”

데네브가 점심을 먹을 무렵, 대포의 일제 사격음이 우렁차게 들려왔다.
아침부터 시작한 전투는 점심이 되었어도 여전히 쉬지 않고 계속되고 있었다.
“큰일이군요.”
마리 중위가 빵을 씹으며 말했다.
“그래. 놈들에겐 분명 예비 병력은 있을 테지만, 우린 없으니까.”
식사도 못한 채 싸우고 있을 병사들을 생각하며 데네브는 중얼거렸다.
그에 비해 그들은 점심때까지 남문을 수비하며 대기 중인 상태였다.
이번에는 수백 발의 머스킷 일제 사격음이 들려왔다.
아마 적군이겠지 생각하며 데네브는 삶은 계란을 한입에 쑤셔 넣었다.
“우리라도 도와주면 좋을 텐데.”
“중대장님, 우측에!”
성 밖의 우측에서 붉은색 제복을 입은 적의 경기병들이 말을 타고 데네브가 있는 남문 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데네브는 얼른 망원경을 꺼내 그들을 살펴보았다.
“이런, 한 개 연대 정도는 되겠군.”
경기병들의 숫자가 대략 300명 가까이 되었기에 하는 말이었다.
“저런, 저놈들 좀 보세요. 너무 가까이 왔어요. 자만심이 넘치는 건지, 아니면 머리가 나쁜 건지.”
마리 중위가 유격병을 하나 불러 그의 강선총을 받아 들고는 총신을 성첩에 걸치고 조준했다.
잠시 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몇 초의 시간이 지나서 경기병 장교의 옆에 있던 기수 하나가 말에서 떨어졌다.
“젠장, 바람이 불었네요.”
그녀는 툴툴거리며 유격병에게 총을 도로 넘겼다.
“대략 거리가 200미터인데요?”
그녀의 말에 유격병이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레기움 제국 제식 강선총의 명중률 최대사거리는 180미터―안전 보장 거리는 150미터―인 걸 감안하면 엄청난 수치였다.
반면 머스킷의 최대 명중률은 90미터였다.
놀란 말들의 울음소리와 함께 적 경기병들이 말을 뒤로 물렸다.
“하하, 놀라서 도망가는 꼴이란.”
“근데 왜 저놈들이 저기 있는 거지?”
데네브가 물었다.
“쟤넨 기병이잖아. 포위 작전엔 별로 안 좋은데. 게다가 대포 사거리에 있잖아.”
하지만 그 의문은 의외로 금방 풀렸다.
멀리서 들리던 함성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고, 급한 말발굽 소리가 요란스레 들려왔다.
“성문을 열어라!”
그때, 갑옷도 걸치지 않은 기사 장교가 소리쳤다.
엘프인 그의 주위로는 많은 장교들이 몰려 있었다. 그것도 대부분 고급 사관이었는데, 제일 낮은 계급의 장교가 대위였다.
그의 명령에 데네브는 경고를 해 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성문 밖에 적의 경기병들이 대기 중…….”
“열라면 열어!”
너무나도 다급한 목소리에 데네브는 얼떨결에 병사들에게 손짓을 했다.
성문이 열리고 도개교가 내려지면서 장교들은 그대로 말을 타고 성 밖으로 달려 나갔다.
“저런, 죽을 텐데.”
마리 중위가 중얼거렸지만, 굳이 그들을 말릴 생각은 안 했다.
어차피 말려 봤자 들을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근데 왜들 저러는 거지?”
얼마 안 가서 이번에는 병사들이 남문으로 몰려들었다.
“뭐야?”
그들의 모습은 가히 무질서하게 후퇴하는 그것과 같았다.
“북문이 뚫렸습니다! 연대장님은 전사하셨어요!”
북문과 성벽은 적군들에게 점령당한 것이다.
사예르 성채의 함락은 이제 시간문제였다.



Chapter 6 (1)


“탈출해야 합니다!”
누군가 절망스럽게 소리쳤다.
“대위님! 밖에!”
데네브는 성첩 너머로 앞서 밖으로 나갔던 장교들이 어떻게 도륙당하는지 볼 수 있었다.
그들이 성문을 나온 것을 지켜본 적의 경기병들은 그대로 대기한 채 장교들이 자신들에게 다가오도록 기다렸다.
탈출구는 그곳밖에 없었기에 당연한 행동이었다.
곧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들은 여태까지 쉬던 말을 몰아 장교들을 우월한 속도로 따라잡아 등을 베었다.
장교들은 저항을 하기 위해 각자 무기를 들고 싸웠지만, 적은 집요하게 왼편으로 공격했다.
왼쪽에서 공격하기에 오른손에 무기를 쥔 장교들은 쉽게 반격을 할 수 없었다.
결국 뒤처진 이들은 등에 칼을 맞아 쓰러졌다.
용케 그들의 포위망을 뚫은 몇몇 장교들이 있었지만, 곧 추격을 받았다.
‘병신 놈들.’
이미 예견한 결말이었지만 막상 지켜보니 장교들의 끔찍한 추태에 데네브는 온갖 인상을 쓰며 그들의 죽음을 비웃었다.
하지만 병사들마저도 저들처럼 쉽게 문을 열어 주면 안 됐다.
대오를 잃은 보병은 기병의 손쉬운 먹잇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밖에 말을 탄 추격병들이 있다!”
데네브가 고함을 치자 병사들의 다급했던 고함 소리가 멈추었다.
그의 목소리는 충분히 성량이 풍부했고, 키가 크고 어깨가 넓은 덕분에 겉 모습으로 주변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무작정 도망치면 죽는다! 모두들 임시로 나의 명령에 따라라!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 뭉치지 않으면 죽는다! 연대 깃발은 어디 갔는가?”
대대나 중대 깃발은 몰라도 연대 깃발은 꼭 지켜야 했다.
그것은 연대를 상징함과 동시에 명예였다.
연대 깃발을 잃는 것은 명예와 자존심을 잃는 것이며, 연대 자체를 잃은 것이었기에 깃발을 잃은 연대는 재편되지 않고 해체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