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불사의 괴 1권(3화)
제1장 인연(因緣)(3)


북궁명을 배웅하고 돌아온 노소평은 일단 왕수강이라고 불리는 아이를 병실로 옮기도록 지시를 하고, 특별히 수련 의원 한 사람을 담당자로 내정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이곳 도가의방은 치박뿐만 아니라 멀리 떨어진 곡부까지도 그 명성이 자자했다. 중국 전역에 지점을 두고 있는 소요의방에서도 꽤 유명세를 떨쳤던 노소평 덕에, 많은 이들이 그의 제자가 되고자 찾아왔다.
처음엔 아무 조건 없이 받아들이던 수련 의원들의 수가 부쩍 늘자, 노소평은 그들을 가르치는 데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도가의방 내에 의원들을 가르치기 위한 전문적 교육기관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마치 소요의방에서 운영하는 여민관(勵民館)처럼, 그의 의방에도 학시원(學施院)을 두어, 후일 들어오는 수련 의원들의 양성과 늘어나는 환자들에 맞게 의원 수를 조절할 수 있게끔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 학시원을 운영하려면 많은 돈이 들어간다는 데 있었다. 의원이 되기까지 그들의 의식주며, 비싼 서책과 약초까지 구비해 두어야 하기 때문에, 너무 많은 인원을 교육시킬 수는 없었다.
그래서 수련 의원은 열 명 내외로 조절하고 있으며, 매년 시험을 보아 학시원에 남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이를 가려내기 때문에, 수련 의원들 사이의 경쟁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지경이었다.
학시원이 세워진 지 불과 오 년 남짓이지만, 이곳에서 수련을 마친 의원들은 대체적으로 뛰어난 실력을 자랑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학시원의 규정 중 하나인 당퇴일의(當退一醫)에 따라 태만한 수련 의원 한 명을 내보내고 새로운 사람을 수련 의원으로 뽑기 때문에, 매사 노력하지 않으면 수련 기간인 사 년을 채우지 못하고 쫓겨나야 했다.
때문에 수련 의원들은 늘 환자와 서책, 그리고 약초와 함께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보게 당 의원 자네가 이 환자를 담당하도록 하게나.”
“옛? 제가요……. 송구스러운 말씀이나, 다른 의원으로 하여금 돌보게 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번에 잘못하면 전 학시원을 나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작년 시험에서 겨우 꼴등을 면한 저입니다.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시간을 쪼개어 저 환자를 따로 돌볼 틈이 없습니다.”
“허허, 자네 지금 환자를 거부하는 겐가? 의원이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치료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거늘, 사람을 돌보지 않고 자기 공부를 하겠다? 내 자네를 다시 봐야겠군.”
“그게 아니옵고, 정말 다른 이들보다 제가 부족하다고 생각되어 그런 것입니다. 저 말고 더 뛰어난 정 의원이 맡게 된다면, 저 환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드린 말씀입니다.”
뻔히 보이는 속을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왜 하필 나란 말인가.’
누워 있는 환자가 원수처럼 보였다. 잘못하여 이곳에서 쫓겨나기라도 한다면, 사람들 앞에서 어찌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단 말인가?
“음, 정 의원이라……. 지금 정 의원이 담당하고 있는 환자의 수가 얼마나 되는가, 총관.”
“현재 곡부 현령의 대마님과 이곳 진가장의 손자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당 의원, 자네는 현재 누굴 담당하고 있는가?”
“그것이…… 현재 담당하고 있는 환자는 없사옵니다.”
“두 명의 환자를 담당하고 있는 정 의원에게 또 다른 환자를 맡기라는 자네의 의견을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나 싶네. 수련 의원들에게 각기 담당 환자가 있는데, 어찌 자네만 없단 말인가? 게다가 환자를 맡는 것을 꺼리기까지 한다는 소문이 돌던데, 사실인가?”
“아닙니다. 누가 그런 모함을 하는지 몰라도, 사실과 다릅니다. 의원이 되기로 한 몸으로 제가 어찌 거부를 하겠습니까?”
“그렇다면 별문제 없겠군. 실력이야 사실 거기서 거기 아니가? 그리고 치료보다는 상태 확인이 대부분이고, 기껏해야 약을 달여 먹이는 것과 경락을 안마해 주는 정도일 건데. 자네가 거절했다는 사실이 태사부님께 들어간다면, 정말 내년엔 이곳 학시원을 나가야 될 것일세. 다른 것은 몰라도 의원의 자세에 대한 것은 용서가 없는 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는가?”
“휴……. 제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잘 생각했네. 나도 자네같이 뛰어난 의원이 맡아 주니 한시름 놓았네. 아마도 진료는 태사부님께서 직접 하실게야. 잘 보고 배우라고. 이것도 기회가 될 테니.”
“정말이십니까? 태사부님께서 직접 진료하시는 것이?”
“그 환자가 북궁세가 자제분과 관련되어 있어서, 아마도 직접 시술하실 걸세. 자세한 것은 나도 잘 모르니, 대충 그렇게 알아듣게.”
“네. 그럼 전 가서 미리 환자의 상태를 살펴보아야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게.”
태사부인 노소평이 직접 환자를 치료하는 경우는 딱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시급을 요하는 환자가 그 첫째이고, 두 번째는 권문세가 사람들을 상대할 경우이다.
이번 경우는 두 번째에 해당될 것이다. 북궁세가면 이곳 산동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가문이니, 당연히 직접 시술하실 것이다.
어쩌면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처음과는 달리 환자를 정성껏 돌봐야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복덩이가 굴러 들어 온 것이다.

* * *

환자는 좀처럼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다. 진맥을 해 보아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단지 기가 허한 것 이외엔 그다지 큰 증상이 없어 보이는데, 깨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듣기로는 딱 한 번 이곳에 오는 도중에 정신을 차리곤 아직까지 미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괴이한 일이로고. 어찌 이리 깊은 잠 속으로 숨어들었단 말인가?”
노소평은 왕수강을 쳐다보면 중얼거렸다.
자신이 생각하기엔 늦어도 하루 정도면 능히 정신을 차릴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래서 청명탕을 우선적으로 복용케하고, 나중에 몸을 정양시키기 위해서 약방에 일러 사군자탕(四君子湯)을 달여 오도록 시켰다.
사군자탕은 인삼, 백복령, 백출, 감초를 주로 하여, 여기에 약간의 산약 등을 더하여 만드는 것으로, 이것은 기가 허한 사람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탕약이다.
단순한 기허증이라면 분명 차도가 있어야 할 것인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진맥으로는 분명 기허증인데, 무엇인가 놓치는 것이 있는가 하는 생각에 다시 왕수강의 손목을 잡았다.
미약한 맥과 가늘고 얕은 호흡,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 기허증이 분명하다.
혹여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하여 다시 해 보았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신체적 손상이 있었을까?’
머리부터 차근차근 살펴보려던 찰나, 왕수강의 뒷목에서 혈흔을 발견했다.
‘음……. 지금으로서는 이것 말고는 다른 상흔은 발견되지 않는데, 이것이 문제가 된 것인가?’
사람의 신체 중 머리는 매우 중요하다. 작은 상처나 충격에도 잘못하면 반신불수가 되기 일쑤인 곳이 지천이다. 그중 왕수강의 상처는 목 뒷부분 천주(天柱)와 뒷머리 아랫 부분 풍부(風府) 사이에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원인이 될 수도 있겠지만, 상처의 모양새는 이 두 혈도를 다행스럽게도 피해 있었다.
“당 의원, 자네가 이 환자의 담당이라고?”
“네, 그렇사옵니다. 태사부님.”
“아무래도 좀 더 지켜봐야겠네. 당분간 이 아이의 상태를 두 시진마다 확인하고, 그것을 기록으로 만들어 내일 아침 회진 때까지 내게 보고하도록 하게나. 그리고 달여 온 약을 제시간마다 먹이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되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혹여 또 다른 명이 계신지요?”
“아…… 환자 상태에 차도가 있을 경우, 지체하지 말고 보고하도록 하고. 그리고 먼저 사람을 시켜 환자를 좀 씻기도록 하게. 땀과 때가 범벅인 저런 불결한 상태라면 병에 걸리기 쉬울 거야.”
“알겠습니다. 명심하고 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
노소평은 그리 일러두고, 다른 환자를 보기 위해 서둘러 자리를 떴다. 오늘만 해도 그가 보살펴야 할 환자들이 수없이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쉴 틈이 없는 노소평이다.
그런 노소평을 보면서 의원은 결코 좋은 직업이 아니라는 생각이 당의문의 머리를 잠시 스쳤다.

* * *

“후, 오늘도 종일 환자들의 뒷수발을 해야 하는구나. 내 무엇을 위해 이리 고되게 살아가야 하는지…….”
이런 말을 하고 있지만 당의문는 결코 이곳에서 쫓겨나선 안 된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어미의 반대를 무릅쓰고 떠나온 길이다. 걸인처럼 행세한 일도 있었고, 먹고살기 위해 도둑질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길이 있었으니, 그건 의원의 길이었다. 성(姓)만 자신에게 물려준 아비에게 당당하게 말하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아직도 종의 신분으로 있는 자신의 어미를 위해서라도, 자신은 반드시 유명한 의원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그 먼 사천에서 이곳까지 온 것이다. 재능만 있다면 얼마든지 의원이 될 수 있다는 소문을 믿고, 수많은 고생을 해 가며 들어온 도가의방을 그렇게 허무하게 나갈 수는 없었다.
“이렇게 냄새나는 아이가 어떻게 천하의 북궁세가의 둘째와 연관이 돼 있는지 모르겠군.”
누워 있는 왕수강은 그에게 다가온 또 하나의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이번만 잘 해낸다면 태사부의 눈도장을 찍을 수 있게 되고, 그럼 이번 년도 시험에서 어쩌면 조금의 혜택을 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었다.
그런 생각 끝에 나온 결론은, 태사부의 명을 성실히 이행하는 것이었다.
“일단 몸부터 씻겨야겠어. 게 아무도 없느냐?”
“불러 계시온지요?”
밖에서 하녀 한 명이 대답했다.
“태사부님의 명이니, 일단 이 환자를 씻기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히도록 하여라. 주의할 점은, 차가운 물이나 찬 기운을 오래 쐬도록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기가 허한 환자이니, 그 점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목욕이 끝난 이후에 내가 달여 둔 약을 먹이거라.”
“네, 알겠습니다, 당 의원님.”
“난 두 시진 이후에 올 것이니, 그사이 환자에게 변화가 있으면 즉시 내게 알리도록 하고.”
“네. 잊지 않고 꼭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는 하녀를 보는 당의문의 얼굴에서는 아픔이 지나갔다.
어미도 저리 하고 계실까? 사람인데 어찌 보고 싶지 않을까만은, 잊고 지내기로 했다. 자신이 의원으로서 자격을 갖출 때까지.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