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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의 괴 1권(16화)
제3장 변화(7)


다음날 아침, 도가의방은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왕수강 역시 평소와 마찬가지로 일찍 일어나 의방 앞 눈을 쓸고, 의원님들의 진찰을 위해 각종 도구들을 준비하고는 자신의 업무인 약고 정리를 하러 가려 했다.
‘휴, 당분간 약고로 오지 말라 하셨지. 그럼 난 무엇을 해야 하지.’
같은 의동들은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의원들을 쫓아 하나둘 자리를 비웠다.
멍하니 앉아 있던 왕수강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수강이 있느냐?”
“네? 불러 계시온지요, 소 의원님.”
“아직 약고에 가지 않았구나. 다행이다. 헛걸음을 하지 않았으니.”
“제게 무슨 볼일이라도 계신 것입니까?”
“요 녀석, 그렇게 말하지 말거라. 징그럽다. 어린 녀석이 그렇게 정중한 척 흉내내 보았자, 네 녀석이 우습게만 보인다. 그냥 나이에 맞게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거라. 그게 좋은 것이다.”
“죄송합니다. 그게 잘 안 돼서요.”
“언젠가 되겠지. 서둘지는 말거라. 참, 어제 네가 사체 한 구를 발견했다고 들었다. 지금 그 문제로 의방 전체가 시끄럽구나. 태사부님께서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며 너를 데려오라고 하셨다. 오랜만에 너를 볼까 싶어 일부러 발걸음을 하였으니, 감동이라도 한 표정을 지어야 하는 것이 아니더냐?”
왕수강은 그런 소공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고마우신 분. 당 의원님과 소 의원님의 배려가 아니었으면, 내가 어찌 이곳에 남을 수 있었겠는가?’
“그냥 다른 사람에게 말씀하지 그러셨어요. 그럼 금방 달려갈 텐데요. 일부러 이런 곳까지 오시다니 죄송합니다.”
“됐다. 괜한 이야기를 꺼내 네 녀석 입장만 난처해하는구나. 다들 너를 기다리고 있으니, 서두르는 것이 좋을 듯하구나.”

소공탁과 왕수강이 들어선 곳은 찬 한기가 감도는 한 석실이었다. 석실 위에는 야명주가 은은히 빛을 내고 있었으며, 곳곳에는 커다란 돌로 된 침상들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가운데 침상 위에 어제 자신이 보았던 사람이 누워 있었다.
그 주변에는 피독수를 끼고 있는 의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어서 오너라. 조금 춥더라도 잠시면 되니, 들어오거라.”
노소평의 목소리였다.
“네, 태사부님.”
“네가 저 사체를 발견했다 들었다. 자세한 이야기를 해 보거라. 아무래도 저 사람이 중독된 독이 심상치가 않구나.”
“어젯밤에 의방 너머 언덕 아래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혹시나 하고 흔들어 보았는데, 그 당시에는 살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중독되었으니 만지지 못하도록 하고는, 이것을 어떤 처자에게 전해 달라고 하였는데, 그녀의 이름을 말하지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면서 왕수강은 품에서 어제 받은 작은 옥함을 꺼내 들었다.
옥함을 살펴보던 노소평은 그것을 다시 왕수강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이것은 네가 보관하도록 하거라. 망자의 부탁이니 쉽게 여길 물건은 아닌 듯싶구나. 게다가 옥함을 열 수 있는 특별한 장치가 되어 있는 듯하니, 나중에 인연이 닿거든 꼭 부탁을 들어주거라.”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는 질문을 이어 갔다.
“당시 이 사람이 말을 했었다고? 다른 특별한 행동은 없었느냐?”
잠시 생각을 해 본 왕수강은 별다른 기억이 나지 않았다.
“말하는 도중에 각혈을 한 것을 제외하곤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다.”
“그래? 혹시 나중에라도 생각나는 것이 있거든 꼭 말해야 한다. 알겠지?”
“네. 그리하겠습니다.”
“추울 텐데, 나가 보거라.”
고개를 숙여 보인 왕수강은 석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잠시였지만 석실 안의 공기가 주는 차가움은 겨울에 느낄 수 있는 그런 추위와는 사뭇 달랐다.
‘어떻게 밖보다 더 춥지? 나중에 당 의원님께 여쭈어 보아야겠다.’

“여러 의원님들의 고견을 들어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개인적으로는 정 의원님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하지만 만일 쉽게 알 수 없는 독이라 여겨지면 부검을 실시하는 것이 옳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정 의원님, 힘드시겠지만 저의 의견을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의원이 되어서 모든 병을 고칠 수는 없지만, 독이나 기타 병으로부터 백성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노력을 경시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노소평이 살펴본 사체는 얼굴에 검붉은 반점이 가득한 상태로, 전신에는 여러 자상들이 골고루 있었다. 생전 무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몸의 근육이 고루 발달되어 있었다.
“이 사체를 보면 아시겠지만, 생전에 뛰어난 무인이었을 것입니다. 근육의 발달 정도나 이렇게 혈관의 탄력성을 감안한다면, 뛰어난 무예를 지녔다고 생각됩니다.”
노소평은 사체 손목 안쪽의 일부를 절단하며 말했다. 검붉은 고체로 가득 차 있는 혈관의 크기는 일반인에 비해 넓고 깨끗했다. 단지 독의 중독으로 인해 피가 엉겨 혈관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생전 수련을 통해 자기 관리에 철저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일반인에 비해 무림인들은 독에 대한 내성이 강한 편입니다. 내공으로 혈관과 혈도를 봉쇄해서 피의 순환을 일시적으로 막고, 외부에 상처를 내어 독을 빼낼 수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사체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혈도마저 녹아 구멍이 뚫릴 정도로 독성이 지독하고, 내공으로 억제하기도 힘들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십시오. 손목에서 팔뚝에 이르기까지 혈도와 혈관의 손상 정도가 심각하지 않습니까?”
노소평의 손길을 따라 의원들의 시선이 모여졌다.
“이런 손상을 불러일으키는 독에 대해 아시는 분 계십니까?”
“제가 확신할 수는 없지만, 학정홍이라면 충분히 혈관과 혈도를 손상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말씀 잘하셨습니다. 학정홍 같은 극독은 혈관뿐만 아니라 근육조직조차 고사시키는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체의 근육조직은 온전합니다. 오로지 혈관과 혈도를 집중적으로 공격하여 기가 흐르는 길목을 차단하고, 무공을 펼치는 데 장애를 일으키는 독의 일종 같습니다. 하지만 군자산과 같이 일시적 증상을 일으키는 독이 아닌, 치명적 맹독을 포함하고 있으니, 이는 쉽지 않은 독의 배합일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기타 극독들은 어느 정도 중화제가 존재한다는 것인데, 이 독은 그러한 것조차 없는 실정이니, 큰일이 아닐 수 없군요.”
이렇게 말하면서 노소평은 바로 뒤편에 죽어 있는 개를 가리켰다.
“이 개는 아침에 사체에서 추출한 피를 섞인 음식을 먹고 죽은 것입니다. 음식을 먹고 사망까지 이른 시간은 불과 반 각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아주 극소량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은, 이 독의 치명적 성격을 여실하게 드러냅니다. 마찬가지로 개를 부검해 보면 결과는 같습니다. 근육조직이 아닌 혈관들을 집중적으로 파괴하는 독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독이 온몸에 퍼지는 시간이 매우 짧아집니다. 다른 독의 중화제를 먹여 보았지만, 전혀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분간 이 독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볼까 합니다. 의방의 모든 일은 소 의원님께서 맡아 주시고, 학시원 일은 남은 네 분께서 수고해 주십시오. 그리고 제 실험에 조수로서 사마경의와 마강영, 그리고 당의문 이 세 수련의를 활용하고자 합니다. 아직 배움이 미천한 그들에게 제 의술의 일부라도 전하고 싶은 마음에 정한 것이니, 그리 아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독에 대한 연구 과정은 많은 의술을 노소평으로부터 사사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였기에 모두 불만은 있었으나, 감히 노소평의 의견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연구는 오늘부터 바로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니 다섯 분 모두 의방 일에 만전을 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태사부님.”

* * *

소공탁은 의방의 오전 일과를 진행하기에 앞서 노소평이 호명한 세 수련의를 먼저 불렀다.
“내가 자네들을 부른 이유는, 당분간 태사부님의 연구를 도울 수련의로 선택되었기 때문이네. 이미 소식을 들어 알고 있겠지만, 어제 외부에서 한 구의 사체가 들어왔네. 알 수 없는 독에 중독된 상태로, 현재로서는 해약을 만들어 내는 일이 시급을 요할 정도로 독성이 강한 독이네. 태사부님께서 직접 해독약을 만드는 연구에 들어가신다 하시면서 자네 세 사람과 함께 연구를 진행하고 싶어 하시네. 사마 의원과 마 의원은 진실로 운이 좋은 사람들이네. 태사부님께 사사하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겠지만, 스스로 보고 느끼게나. 아마도 감사하게 될 것일세. 독에 관한한 태사부님의 의술은 당대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가시는 분이시니, 잘 배우도록 하게나.”
“정말 저희가 뽑힌 것입니까? 이런 기회를 주시다니 믿어지지 않습니다.”
사마경의는 자신이 선택된 게 놀랍다는 듯 말했다.
“아마도 친우분들의 얼굴을 보아 그리한 듯싶네. 그러니 소중한 기회라 생각하고 열심히 하게.”
“네. 그리하겠습니다.”
“연구는 오늘부터 시작되네. 태사부님 거처로 찾아가 보도록 하게. 그리고 연구에 필요한 가재도구나 약재는 약당에 일러둘 테니, 필요할 때 언제든지 가져다 쓰게. 최대한 태사부님의 편의를 도와야 하네.”
세 사람은 그리하겠다는 대답과 함께 물러났다.
‘저 세 수련의들이 잘해야 할 텐데. 그나저나 다른 의원들의 불만을 어떻게 잠재워야 할지 고민이군. 구양 의원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참관이라도 가능하게 한다면, 좀 나을는지. 일단 태사부님께 말씀드려 봐야겠구나.’

* * *

도가의방의 후문에서 이어지는 작은 소로를 따라가면 한 채의 아담한 정원이 나온다. 멋들어진 장식이나 화려함은 없지만, 자로 잰 듯 날랜 기둥과 용마루 너머 보이는 산자락이 아름다운 그런 건물이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따사로운 오후 햇살마저 조용히 자리 잡고 무엇인가를 훔쳐보고 있었다.
“조심해서 옮기거라. 자칫 실수라도 하게 되면 큰 사단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니 조심 또 조심하거라.”
소공탁은 수련 의원들과 하인들에게 재차 당부하며 말했다.
크고 작은 항아리들이 수레에 한가득 놓여 있었다. 그리고 각 항아리에는 향미사(響尾蛇), 풍고(風蠱), 학정홍(鶴頂紅), 지주산(蜘蛛散) 등 각종 독극물들의 이름이 종이 위에 명시되어 있었다.
실수라도 하여 독물들이 풀려나 사람을 공격한다면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중독이라도 된다면, 해독제를 바로 복용하지 않는 이상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무서운 독들이었다.
그래서 소공탁은 자신도 모르게 큰소리를 내며 그들에게 주의를 주고 있는 것이었다.

독물들을 나르는 하인들의 손끝은 너 나 할 것 없이 조금씩 떨렸다. 특수 처리된 항아리 안에 있다 하지만, 독에 대한 두려움은 일을 하는 내내 긴장과 초조함을 가져왔다.
사마경의와 마강영, 그리고 당의문 역시 등이 푹 젖을 정도로 긴장하며 각각의 독물들을 실험실 곳곳에 배치하고 있었다.

“휴, 대단하군요. 여간해선 보기도 힘든 독들이 의방에 이렇게 많이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사마경의는 놀랍다는 듯이 실험실 내부에 가득 들어찬 독물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도 독물도감(毒物圖監)에서 글로 된 설명만 보았지, 실제로 이렇게 많은 독물들을 눈으로 보게 줄은 몰랐다네. 여기 향미사만 하더라도 길이가 육 장에 이르고, 몸빛이 누른 녹색을 띠고, 커다란 마름모꼴의 반문이 있다고만 알고 있었지, 이렇게 소름이 끼칠 정도로 두려운 존재인지 상상도 못 했네.”
당의문은 철제 항아리 안에서 꼬리를 틀고 그를 노려보고 있는 향미사의 눈동자를 외면하며 말했다.
“독도 독이지만, 이 모든 독물들의 성분을 분석하고 그 자료를 써 놓은 책들을 보십시오. 정말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운 서책들은 각 독물들의 성향, 먹이, 독의 발현 여부, 독의 증상, 해독 작용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분량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마강영은 그것들 중 하나를 뽑아 보며 탄성을 질렀다.
“의원이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군요. 얼마나 노력을 해야 태사부님 같은 경지에 이를지 알 수가 없군요.”
단순히 좋은 인상을 풍기는 학자 같다라고만 생각했던 노소평의 새로운 일면을 본 듯하였다. 청수한 그의 모습 어느 곳에 의술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숨어 있는 것일까?
세 의원은 모두 각자의 상념에 빠져들었다.
자신이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노소평과 자신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과연 스스로 이런 길을 따라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겨났다.
그들의 상념을 깬 것은 실험실 안으로 들어오는 노소평의 발자국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