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불사의 괴 1권(19화)
제3장 변화(10)


“으……으…….”
정신을 차렸을 때, 난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어떻게 된 사연인지도 모르겠다. 칠흑 같은 어둠이 나의 시야를 빼앗아 갔다. 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은 천으로 묶여 있었고 팔다리 역시 움직일 수 없게 묶여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분명 너무 아파서 정신을 잃었는데……. 왜 이런 곳에 묶여 있는 거지?’
어둠은 두려움을 몰고 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작은 소음조차도 솜털이 곤두설 정도로 긴장되게 만들었다.
‘두려워 말자, 왕수강. 분명 이유가 있을 거다. 두려워 말자.’
수없이 되뇌인 말이지만, 생각과는 달리 온몸은 가느다랗게 떨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두려움을 이겨 내고 배고픔이 밀려 들어왔다.
왕수강에게 있어 배고픔은 또 다른 공포였다. 굶어 죽을 뻔했던 적이 몇 번이던가. 게다가 구걸을 하다가 맞아 죽을 뻔하지 않았던가.
이제는 마음속에서 악이 받쳐 오르기 시작했다.
뚜벅뚜벅.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누구일까? 자신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까?”
“설마. 지금쯤이면 깨어나서 바들바들 떨고 있지 않을까?”
두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많이 들어 본 목소리였다.
기억을 더듬었다. 그놈이었다. 사마경의.
‘너였더냐? 내가 무엇을 잘못하였기에 너에게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 것이냐? 도대체 네가 무엇이기에 날 이리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아직 어린 나이에 너무나도 많은 것을 겪은 왕수강의 정신은 사실 일반적인 또래 아이들과는 사뭇 달랐다.
세상의 좋은 모습보다는 비틀린 시선으로 바라보기 쉬운 탓에 노소평은 그에게 양기취정법을 전수하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런 노력을 수포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정중하고 따뜻한 감정에 고마워하던 마음까지도, 이 두 사람의 행위에 의해 파괴되고 절망하고 있는 것이다.
“오, 벌써 깨어 있었구나. 마강영, 내 예상이 맞은 것 같군…….”
“흥, 진맥이나 서둘러 해 봐야겠다. 태사부님과 시간을 맞추려면 시간이 많이 부족해. 어서 이놈한테 독을 복용시키고, 그 과정을 지켜보자고.”
“눈을 보니 우리한테 꽤나 화가 난 모양이야. 뭐 상관없지. 어차피 실험에 쓰이다가 죽을 놈이 분노해 봤자지. 어디 보자, 오늘은 적갈분을 실험해 봐야겠다. 너무 겁먹지 마라. 네가 어제 먹은 광초보다도 약한 거니까. 단지 고통이 좀 더 강하다고 서책에 쓰여 있더구나.”
전갈의 독은 여러 종류가 존재했다. 그중 홍갈분과 황갈분은 성인 남성이 반 푼 정도만 먹게 되면 한 시진 이내에 사망에 이르는 무서운 독이고, 적갈분은 일시적 마비 현상과 더불어 온몸의 혈관이 뒤틀리는 듯한 고통을 주어 주로 죄인을 고문하는 곳에 사용되던 독이었다.
“배가 고플 테니, 이 죽에다 일단 한 푼만 섞어서 먹여 봐야겠다. 마강영,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이놈 혈도나 점해 줘. 먹기 싫다고 난리라도 피우면, 아까운 독을 엎지를 수도 있으니.”
듣고 있던 왕수강은 기가 막혔다. 이제야 그 둘이 무엇 때문에 자신을 감금하였는지 알게 되었다.
목 뒤에서부터 손발의 움직임이 멈춰졌다. 마강영이 몇 번 자신의 혈도를 두드리는가 싶더니, 그렇게 돼 버리고 말았다.
“자자, 어서 먹어야지. 귀여운 녀석.”
소름이 돋았다. 자신의 말은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아혈이 봉쇄되고, 다시 천으로 입에 재갈이 물려졌다.
식도를 통해 들어온 죽은 위를 지나서 얼마 안 되는 시간에 통증을 유발했다.
처음에는 따끔따끔한 느낌이 들더니, 잠시 후엔 칼로 베는 듯 쓰리고 아팠으며, 시간이 더 지나자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로 온몸이 오그라드는 느낌이 들었다.
두 눈에서는 고통으로 인해 눈물이 끊이지 않았다.
“음, 적갈분을 복용하고 일각도 안 돼서 반응이 오는구나. 서책에 쓰인 내용이 매우 정확한걸. 지속 시간이 두 시진에서 세 시진이라 했으니, 일단 의방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오는 것이 어때?”
사마경의는 마강영을 보며 말했다.
“사마경의, 굳이 이런 독까지 써 볼 필요가 있나? 이건 단지 고통만을 주는 독이잖아. 우리가 실험해 봐야 할 것들은 이런 하찮은 독이 아니잖아?”
“뭐 그거야 그렇지만, 궁금하잖아. 진짜로 고통이 세 시진 정도 지속되는지, 또 고통당하는 사람을 보는 것도 나름 즐겁고.”
너무나 아파서 정신을 잃을 수조차 없었다.
간장을 도려낸다는 말이 이러할까? 혈도가 점혈된 상태라서 더욱 참을 수 없었다.
두 눈가에서 고통이 흘러내렸다.
‘반드시 반드시 갚아 주고 말 것이다. 너희가 한 행동 그대로, 아니 수십 배 더 잔인하게 대해 줄 것이다.’
두 사람의 발소리가 잦아들었다.
고통을 참을 수 없던 왕수강은 호흡을 조절하려 노력했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심장이 뛰었기 때문이다.

“수강아, 이 호흡법을 따라 해 보거라. 마음속으로 네가 외웠던 혈도들을 생각해 내고, 처음에는 옥당에서 백회로 이어지는 혈도들 사이에 가는 선을 그리고, 후에 각각의 혈도들 사이마다 이어지는 선을 그리거라. 그런 이후 호흡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모습이 육체에 각인이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호흡과 심법이 일치되는 때가 온단다. 그러면 비로소 양기취정법의 기초를 다지게 되는 것이다.”

왕수강은 고통 속에서 노소평이 언급했던 혈도들 사이의 가는 선을 기억해 내려 노력했다. 들숨과 날숨이 그 선을 따라 행해지도록 끊임없이 자신을 독려했다.
무너지려는 정신을 붙잡아 놓기란 쉽지 않았다.
‘지지 않을 거야. 반드시 이겨 낼 거야.’
지독하던 고통에 익숙해진 것일까, 아님 호흡법의 영향일까. 조금씩 그 고통의 강도가 줄어들었다.
왕수강의 체내에서 사라지지 않았던 광초의 약 기운까지 한꺼번에 일어났다.
기가 서서히 혈도를 타고 순행하게 되자, 몸속에 들어온 전갈독 역시 활발하게 움직였다.
온몸이 가렵기 시작하였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고통과 동시에 찾아온 가려움증은 그의 정신을 더욱 황폐하게 만들어 갔다.
무의식 중에서도 심법의 끝자락을 놓지 않은 왕수강의 몸은 스스로 살기 위한 방편으로 독과의 교전보다 융합을 택한 듯했다.
희석된 광초나 황갈분의 독성이 그다지 강하지 않은 것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독들이 기와 뭉쳐져 혈도 속으로 숨어들기 시작했다.
고통이 모두 가신 것은 한 시진이 넘게 흐른 뒤였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 거지? 이렇게 힘겨운 고통을 참아 내면서, 왜 살아야 하는 거지? 왜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만 하는 것이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지난 반년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죽음에서 자신을 살려 낸 북궁명과 인생의 또 다른 삶을 열어 준 당의문, 마지막으로 자신을 비참하게 만든 사마경의까지. 그가 보아 온 인간에 대한 믿음과 실망감은 그의 의식 속에 깊이 자리 잡았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존재밖에 없다. 사람다운 부류와 인간이길 거부한 부류. 난 인간이길 거부한 이들에게 반드시 철퇴를 가할 것이다. 반드시 살아남아서 생이 다할 때까지, 내가 받은 이 억울함을 세상에 뿜어 댈 것이다.’

* * *

실험 열흘째.
‘대극은 그 맛이 달고 차가우며, 수종(水腫)과 징견(徵堅)에 효력이 있고, 명현(暝眩)에도 쓰인다. 하지만 적은 양이라 할지라도 장복하면 시력을 잃거나 손발에 마비 증상이 온다.
이를 해독하기 위해서 대극의 줄기를 약 석 푼 정도 섞어 차를 우려내듯 하루 두 번 마셔야 한다.’

독초총람에 적힌 이 글을 보고 양을 증가시켜 최대한 빠른 증상을 보이도록 하였다.
복용 후 대략 두 시진이 지나자, 왕수강의 안면과 손발이 마비되었고, 맥을 짚어 보니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고 있었고, 간에 가장 큰 무리가 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시 한 시진이 지나자 입이 돌아가고 눈동자는 흰자위만을 남겨 두며 고통스러워했다.
또한 간에 이상이 생겼는지 고열과 함께 땀이 온몸을 적셨다.
서둘러 해독약을 복용시켰다. 해독약을 복용한 지 하루가 지나서야 안면 근육이 풀렸으며, 다시 여섯 시진이 지나서야 손과 발의 마비가 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