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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의 괴 1권(21화)
제4장 구사일생(九死一生)(2)
내공과 내공이 부딪치면서 강한 소음을 동반했다.
대오는 뒤로 서너 걸음 물러나며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잡았고, 허공에 떠 있던 고호명은 충격의 반동을 이용하여 나뭇가지 위에 올라섰다.
‘제법이군. 내 공격을 가볍게 막아 내다니. 소림은 소림이다 이건가.’
고호명은 지금 이 싸움의 이득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자신의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 것과 소림승과의 대결.
하나는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고, 다른 하나는 후일에 처리해도 될 일이었다. 게다가 소림과 좋지 않은 인연을 만드는 것 역시 피해야 할 일이었다.
혹여 이 대결을 통해 그에게 상해라도 가하게 된다면, 피곤한 일이 벌어질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끝을 보고 싶지만, 다음을 기약해야 할 듯하오. 난 중주일사 고호명이오. 후일 이 일의 마무리는 소림으로 찾아가서 매듭짓겠소. 대사의 불명을 알고 싶소.”
대오는 상대가 고호명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강한 무공과 차가운 심장을 지닌 고호명은 무림에서도 꽤 유명한 악명을 떨쳤다. 살인의 동기만 주어진다면 언제든지 사람의 목숨을 취하는 독심을 지닌 인물이지만, 그렇다고 이유 없는 살인을 하지 않는 모순된 가슴을 지닌 인물로 더욱 유명했다.
“아미타불. 소림의 대오입니다. 시주의 명성을 익히 들어 알고 있으나, 살생은 자제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흥! 그것은 대사가 상관할 일이 아닌 것 같소. 나의 일은 내가 알아서 결정하오.”
“하나 생명이 걸린 일입니다. 지금 시주가 쫓아가려는 인물 역시 존귀한 생명을 지닌 사람입니다. 부디 삼생의 연을 생각하여 손에 자비를 두시기 바랍니다.”
고호명은 잠시 대오를 바라보았다.
“내 일에 더 이상 끼어들지 않길 바라오. 내 말을 무시한다면, 반드시 피를 보게 될 것이오.”
“제 피는 무섭지 않으나, 다른 이의 피는 두렵습니다. 부득이 소승은 시주의 걸음을 막아야 할 것 같습니다.”
갈 길이 멀었다. 급한 발걸음을 막는 이 승려 뒤에 존재하는 소림이라는 그늘이 아니었다면, 벌써 사생결단을 내었을 것이다.
“소림을 믿는 것이오? 아니면 조그만 재주를 믿고 그러는 것이오? 고호명이란 이름 석 자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구려.”
싸늘한 살기를 토해 내는 고호명의 얼굴이 굳어졌다. 갈등이 서렸다.
그때 대오의 뒤편에서 사람들이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또 다른 승려였다.
“아마 저들을 믿는가 보군. 아쉽지만 우리의 대결은 다음으로 미루어야겠소. 내 필히 소림으로 대사를 찾아가지요.”
지금 물러나지 않으면 영영 물건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는 판단이 섰다.
말을 마친 고호명은 일섬사를 거두며 뒤쪽으로 빠르게 물러났다.
고호명을 쫓으려는 대오의 발걸음을 막은 것은 대지였다.
“멈추어라.”
“하지만 사형, 그를 그냥 보내게 되면 다른 사람의 생명이 위험합니다. 저 시체를 보십시오. 이와 같은 일이 또 일어날 것이 명약관화한데, 어찌 저를 막아서십니까?”
“사제. 내 소림을 떠나며 사제에게 당부한 말이 있지 않은가? 함부로 타인의 일에 나서지 말라 분명히 당부를 하였을 터인데, 어찌 이런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인가? 무림의 일 중 그 내막이 단순한 일은 그다지 많지 않네. 은원이 서린 경우가 대다수이며, 혹은 각파의 이권이 달린 일도 수없이 존재하네. 자네가 새로이 사대 금강에 포함된 첫 외유라, 내 그리 당부를 하였거늘, 나오자마자 시비에 휘말리다니……. 소림으로 돌아가면 수련을 각오하는 것이 좋을 것이네.”
대지는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이 많은 이 사제가 의협심이 앞서서 엉뚱한 일에 휘말린다면, 자칫 그가 가지고 있는 대환단의 소재 유무가 밝혀질 수도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더 많은 이들이 그들을 노리게 되는 번잡함을 야기할 것이기에, 사제를 다독여 놓을 필요가 있었다.
“사형, 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어찌 불의를 보고 외면하라 하십니까? 더군다나 생명이 달린 일이 아니옵니까?”
“후, 물론 사제의 이야기가 맞네. 하지만 만일 아까 그 사람이 죽은 이에게 복수를 하고 있는 것이라면 어찌할 텐가? 저 죽은 이들이 불의를 먼저 벌인 것이라면 그때에도 이처럼 그들의 일에 무모하게 끼어들겠는가?”
“어떤 잘못을 하였더라도 함부로 살생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배웠습니다. 그 어떤 가치가 생명보다 소중하겠습니까?”
“그것은 사제의 생각일 뿐일세. 세상 사람들은 때로는 생명보다 소중하다 여기는 가치가 있다네. 어떤 이는 재물을, 어떤 이는 사랑하는 사람을, 또 다른 이는 학문과 예술을 그리 생각하는 이도 있다네. 가치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 불가에서 가르치는 경전 속의 수많은 진리들은 비록 그것이 옳다 하지만, 우리 일상에 모두 적용되는 것은 아닐세. 자네가 좀 더 나이가 들고 세상을 보는 눈이 생긴다면, 아마도 지금의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
대오는 대지의 말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하늘 같던 사형의 모습이 왜소해 보였다.
‘그 역시도 세상의 혼탁함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였던가? 어쩌면 그 어떠한 사람도 이러한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겠지. 하지만 서글프구나. 나 역시도 이곳에 얽매일 수밖에 없음이 서글프구나.’
* * *
“형제들을 그렇게 떠나보내다니, 이깟 물건이 무엇이기에 형제들의 목숨과 바꾼단 말인가?”
공거래(空去來)는 얼마 전의 결정을 후회했다.
고호명이 다시 강호로 나온 것을 알고, 그의 거처로 숨어들어 집을 털기로 한 결정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이제야 깨달았다.
몇 해 전, 사소한 시비 끝에 하오문의 형제 열둘이 고호명의 손 아래 죽임을 당하였다.
당사자가 중주일사 고호명이라 밝혀진 것은 그 다음날.
하오문의 수장들은 서로 눈치 보기에 바빴고, 이들 한탄스럽게 여긴 공거래와 그 형제들은 어떻게 하든 복수를 하기로 결심했다.
지난 수년간 고호명의 거처를 오가며 그에 대한 정보를 얻고, 마침내 그가 가장 아끼는 물건이 있는 장소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고호명이 자리를 뜨지 않는 이상, 자신들의 실력으로는 그 물건을 빼내 올 수 없어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그러던 때에 고호명이 오랜 침묵을 깨고 강호에 나선 것이다.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서둘러 물건을 빼내고 그의 거처에 불을 질렀다.
그들이 할 수 있는 복수란 이런 것이 다였다. 직접 그를 죽일 실력이 없으니, 최대한 피해를 주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던 것이다.
대노한 고호명이 그와 형제들을 추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산서에서 하남을 거쳐 이곳 산동의 치박까지, 근 이십여 일 동안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 도망쳤지만, 이제 살아남은 사람은 그 혼자뿐이었다. 아마 다른 형제들은 지금쯤 싸늘한 고혼이 되어 어디선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공림에 들어온 공거래는 한 석곽묘에서 두 사람이 나서는 것을 보았다.
조용히 풀숲에 숨어 그들의 발자국 소리가 사라지길 기다리다가 석곽묘 아래로 숨어들었다.
마침 숨을 곳이 필요하였는데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분간 있을 만한 곳을 찾은 것이다. 게다가 한두 방울씩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는 그의 흔적을 없애 줄 것이다.
석곽묘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어둡고 좁아 공거래로 하여금 긴장하게 만들었다.
어둠에 시야가 적용될 쯤, 그의 눈 안에 들어오는 것은 한 석탁 위에 놓인 작은 물체였다. 얼핏 사람 같아 보이기도 해서 조심스레 다가갔다.
“헉!”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며 소리를 냈다.
아직 어린 듯한데 끔찍한 모습이었다. 지독한 악취와 함께 다시 보기 싫을 정도로 흉한 몰골이 눈에 들어왔다.
‘어떤 놈들이 이렇게 만들었단 말인가? 아까 나간 두 사람인가? 이 아이가 무슨 잘못을 하였다고…….’
놀라서 뒤로 물러나며 낸 소리가 석곽묘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갑자기 찾아온 정적과 그 뒤를 이어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
숨을 만한 곳을 찾아보았지만 아무 곳도 없었다. 오직 석탁과 그 위에 놓인 시체만이 덩그랗게 놓여 있었다.
‘큰일이다. 저 발자국 소리가 만일 고호명의 것이라면, 난 이곳에서 뼈를 묻어야 한다. 내가 어쩌자고 이런 실수를 저질렀단 말인가? 이렇게 된 이상, 이 물건을 숨겨야 한다.’
눈에 들어온 것은 석탁 위의 시체.
서둘러 가슴에서 화리의 내단을 꺼내어 들었다.
‘내가 이것을 먹는다면, 분명 고호명이 나의 배를 갈라 꺼내 갈 것이다. 저 시체의 입에 넣어 둔다면 녹지도 않을 것이고, 고호명 역시 내단의 행방을 알기 위해서라도 날 살려 둘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화리의 내단을 꺼내 이미 굳어 버린 왕수강의 턱을 벌려 강제로 넣었다. 그리고는 칼을 빼어 들고 조용히 석곽묘의 입구로 다가갔다.
한 걸음 두 걸음, 속으로 다가오는 자와 자신과의 거리를 세어 보았다.
지금이다. 칼을 위에서 아래로 강하게 내리쳤다. 무엇인가 칼에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성공한 것이다. 다시 칼을 들고 아래로 떨어진 물체에 칼질을 하려는 순간, 그의 목을 휘감는 물체를 느낄 수 있었다.
고호명, 그의 일섬사였다.
대오와의 대결에서 시간을 지체한 고호명은 서둘러 또 다른 투귀를 쫓고자 했다. 내단을 담은 목함에 뿌려진 추종향의 향기가 짙어진다. 분명 이 근처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에서 한두 방울의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런 비가 내리면 추종향의 냄새를 맡기 어려운데, 큰일이다. 서두르지 않으면 또 놓쳐 버릴 위험이 있겠어. 소림승과 다툼이 없었다면, 벌써 내 손에 내단을 쥐고 있을 텐데.’
새삼 대오가 원망스러워진다.
날은 이미 저물어 어두운 소리만이 공림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갑자기 고요한 적막을 뚫고 사람의 소리가 짧게 울려 퍼졌다.
‘그놈이다.’
다 낡은 석곽묘 하나가 고호명의 눈에 띄었다. 사람이 오간 발자국이 보인다.
석곽묘 아래로 쭉 이어진 계단 아래에서 추종향의 향기가 난다.
한 걸음 두 걸음 계단 아래로 내려가면서 그는 장삼을 벗어 일섬사로 묶어 두었다.
계단의 끝이 눈앞에 다가오자 고호명은 옷을 묶어 둔 일섬사를 앞으로 뻗으면서 다른 손으로 또 다른 일섬사를 꺼내어 들었다.
위에서 아래로 강한 칼질이 뒤따랐다. 칼이 자신의 장삼을 친 이후, 다른 일섬사로 상대방의 목을 휘감았다.
“이제 끝이 난 건가? 조금 길었군. 어디 내 소중한 물건을 잘 보관하고 있겠지?”
“고.호.명. 포기를 모르는구나. 설마 아직까지 그 물건을 내가 가지고 다닌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흠.흠. 율금향이 포함된 이 냄새가 네 품속에서 나오는 것 같은데, 나의 착각인가?”
고호명은 공거래의 목에 감긴 일섬사에 힘을 주며 이렇게 말했다.
“착각이겠지. 아님 네 코가 썩어 냄새를 잘못 맡던가. 그도 아니라면, 여기 시체 썩는 냄새를 율금향으로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군.”
웃음을 머금던 고호명의 얼굴이 굳어진다.
“무엇을 믿는 것이지? 이렇게 붙잡힌 마당에 과연 무엇을 믿고 이렇게 당당한 건지 궁금하군. 아 참, 깜박했군.”
고호명은 공거래의 혈도를 점한 이후, 그의 입을 벌려 어금니 사이에 넣어 둔 독단을 꺼내어 들었다.
“실수는 한 번이면 족하지. 이제 무엇을 믿고 나에게 시건방진 말을 지껄이는지 알아봐야겠군.”
발에 내공을 담아 아혈까지 봉쇄된 공거래의 오른발을 지긋이 눌렀다.
“이 발이 날 많이 피곤하게 했어. 어디 또 도망가 보지그래?”
고통으로 일그러진 공거래의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호명은 지난 이십여 일간의 추격전에 대한 분풀이를 계속했다.
“아, 이쪽 발만 해서 억울하다고. 그럼 다른 쪽도 균형을 맞추어야겠지?”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석곽묘 전체를 울려 퍼진다. 소름 끼치는 소리만이 공거래의 고통을 이해하는 듯했다.
고호명은 쓰러진 공거래의 품속에서 목함을 꺼내 들었다.
두 눈 가득 아픔을 감추고 있는 공거래의 얼굴을 한 손으로 들어 올리며 말했다.
“여기 목함이 나왔네. 이 안에 뭐가 들어 있을까? 내 생각에는 내단이 들어 있을 듯한데, 네 생각은 어떠하지?”
자주 낯빛이 변하는 고호명의 얼굴이 스산하다.
목함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놈. 내단은 어디 있느냐?”
고함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진다.
한 손으로 공거래의 목을 쥐고 그의 아혈을 풀었다.
“크, 큭! 쉽게 얻을 거라 생각했나. 아무리 날 고문해도 소용없다. 난 네놈이 실망스러워하고 안타까워하는 것이 더 즐거우니까.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처음부터 포기했던 목숨이니.”
두 눈에 살기가 어린다. 목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기만 하면 모든 것이 끝이 난다. 공거래의 목숨도, 그리고 내단에 대한 행방도.
미천한 한 목숨과 화리의 내단은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요구 조건이 무엇인지 들어 봐야 했다.
“조건이 뭐지? 네 목숨? 아니면 재물?”
공거래는 자신의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느꼈다. 저 마귀 같은 놈은 내단의 행방을 알아내기 전까지는 자신을 살려 둘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양보를 얻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형제들 모두 네놈 손에 죽었다. 나만 혼자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죽여라.”
“죽여라? 못 죽여줄 것 같은가? 만일 이대로 네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죽는다면, 내 하오문의 씨를 말려 버릴 것이다. 이건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하지. 그리고 말을 하고 살아가는 데 두 손은 필요 없겠지?”
바닥에 떨어진 칼을 주워 든 고호명이 공거래를 향해 다가갔다.
칼을 들어 왼쪽 어깨에 대고 말하였다.
“마지막 기회이다. 내단은 어디 있지?”
공거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몸이 덜덜거리며 떨렸지만 이를 악물었다.
공연한 허장성세로 애꿎은 팔 하나를 잃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그때 석곽묘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어지럽게 들렸다.
“고 시주, 멈추시오.”
고호명은 석곽묘 입구를 쳐다보았다.
또 소림승이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다른 인원이 섞여 있었다.
“대사, 주제넘는다고 생각지 않으시오? 이 일은 분명 나의 개인적 은원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거늘, 너무 간섭이 심하다는 생각이 안 드시오?”
다섯 명의 소림승과는 승부를 장담할 수 없다. 분명 크게 상하는 쪽은 자신이 될 것이다.
“그 칼을 놓고 대화로써 해결하는 것이 어떠할는지요?”
대지가 앞으로 나서며 이야기했다.
“대화? 무슨 대화란 말이오?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놈의 주리를 틀어 물건의 행방을 알아내는 것이 다일 듯한데, 대화가 필요하겠소? 대사.”
“물건이라? 얼핏 듣기로는 내단이라 들었습니다. 지금쯤 누군가가 복용을 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훗, 복용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 하나 복용한 이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오. 비록 작은 내단이라 하나, 화산의 간헐천에서 수백 년을 살아온 화리의 내단이오. 품고 있는 뜨거운 기운을 쉽게 해소할 수 있다면, 복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그렇지만 복용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오.”
고호명이 수년 동안 내단을 보관만 하고 있던 이유는, 내단이 아깝기도 했지만 복용을 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일단 뜨거운 열기를 식혀 줄 음기가 강한 영약을 준비해야 하고, 혹시 일어날 불상사를 대비하기 위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고수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내단을 흡수할 정도로 뛰어난 내가심법이 필요했다.
자신이 익히고 있는 심법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확신이 없었기에 그동안 차일피일 미루고 있던 사이에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다.
“목숨을 걸 정도로 위험한 내단이라면, 이렇게까지 사람을 상하게 할 필요는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시주, 그를 놓아주시지요?”
“목숨을 걸 정도로 뛰어난 영약이라는 생각은 안 하시는 게요? 그리고 남의 물건을 가로챘다면 응당 그에 해당하는 벌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고호명, 헛소리 마라. 수년 전 네놈도 그 물건을 빼앗기 위해 수많은 무고한 목숨을 빼앗지 않았더냐? 어찌 그것이 네 것이란 말이냐?”
공거래는 호통을 치며 말했다.
“그때는 주인이 없는 물건이었으나, 그 후 내가 차지하여 오랫동안 보관해 왔으니, 당연히 내 것이다.”
“죽일 놈. 네놈의 말대로라면 네놈 손을 이미 떠난 물건이니, 그것은 네 것이 아니다. 이십여 일간 내가 품속에 넣고 다녔는데, 어찌 네 것이란 말이냐?”
‘이십여 일을 품속에 넣고 다녔다? 그럼 얼마 전에 내단을 숨겼단 이야기인데…….’
고호명은 그동안 놓친 것이 있었는가 하고 생각해 보았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급하게 도망치기 바빴던 공거래였다. 물론 엉뚱한 곳에 숨겨 놓을 수도 있는 문제이긴 하지만, 내단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함부로 보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곳 공림에 들어와서 숨겼다는 의미인데, 아무리 봐도 이 근처 어디인 것 같았다.
내단이 있는 장소가 대략적이긴 하지만 그 윤곽을 드러내자, 갑자기 조급한 마음이 드는 고호명이었다.
“대사, 난 이놈에게서 반드시 내단을 숨겨 둔 장소에 대해 들어야겠소. 날 막을 것인지 아닌지 말해 주면 좋겠소.”
“싸움이 일어난다면 시주께 더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 분명한데, 고집을 부리셔야겠습니까? 한낱 물건이 목숨보다 소중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고호명의 눈이 작아졌다. 묘 밖으로 나가는 입구 앞으로 대지와 네 명의 승려들이 늘어섰다. 혹시나 도주하는 것을 막기 위한 행동인 듯싶었다.
“날 협박하시는 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