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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의 괴 1권(23화)
제5장 재회(再會)(1)
왕수강이 사라진 지 벌써 두 달이 넘어섰다.
도가의방 사람들은 치박 인근에 사람을 풀어 그를 찾아보려고 했으나 모두 허사였다. 하늘로 날아갔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그를 보았다는 인물조차 없었다.
새로운 독의 연구에 몰두하던 노소평은 그 소식을 듣고는 크게 당황하였다. 북궁세가에서 사람이라도 와서 그의 행방을 물어본다면 어찌 말해야 할지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그가 본 왕수강은 결코 함부로 행동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사람의 도리를 아는 아이가 분명하건만, 아무런 말조차 없이 사라졌다함은 분명 무슨 사고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사람을 전문적으로 찾아 주는 이들에게 의뢰를 넣어 두기도 했으나, 좀처럼 그의 행방을 찾을 길이 없었다.
“당 의원, 혹여 수강이에게 연락이라도 온 적이 있는가?”
“태사부님, 소형제에게 아무런 소식도 없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도가의방 사람들 중 당의문만큼 애가 타는 이도 없을 것이다.
지난 반년 사이, 자신이 친동생처럼 아끼던 왕수강의 행방불명은 그에게 많은 번민을 가져다주었다.
왜 아무 말도 없이 사라졌을까? 내가 좀 더 신경 써 주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에 실망하여 떠났을까? 아니면 혹시 불미스런 일에 엮인 것은 아닐까?
수없는 자책과 질문 들이 항상 그의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후, 걱정이구나. 그 어린것이 어디 가서 고생이라도 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노소평과 당의문이 왕수강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을 때, 한 명의 의동이 다가와 말을 했다.
“태사부님. 북궁세가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태사부님을 찾고 계십니다.”
노소평은 깜짝 놀랐다. 하필이면 지금 사람이 오다니.
아직 왕수강의 행방조차 모르는 상태인데,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 지금 어디로 모셨느냐?”
“운평각에 계십니다. 제가 그리로 모실까요?”
“앞장서거라. 당 의원, 자네도 함께 가세. 혹시 수강이 일로 왔는지도 모르니, 아무래도 자네가 있는 편이 나을 듯싶네.”
“네. 그리하겠습니다.”
세 사람이 운평각에 다다르자, 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문사 차림의 그는 반가운 인사를 전했다.
“노 의원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간 안녕하셨는지요?”
“아니, 사량객이 아니십니까?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벌써 십 년이 넘었군요. 그런데 조금도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변하지 않다니요, 요즘은 제 구실을 못 하는 곳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건 그렇고, 무슨 일로 이곳까지 오신 것입니까?”
사량객 마인풍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지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세가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노소평은 마인풍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황실과 저희 세가와 혼담이 오갔습니다. 이미 성혼한 휘와 혼례를 올리겠다는 억지스러운 혼담이었지요. 그러더니 두 달도 안 되어 공주께서 세가로 찾아오셨습니다. 문제는 거기에서…….”
마인풍의 이야기는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말을 하는 내내 안타까움을 얼굴에 드러냈다.
“함께 세가로 가주실 수 없으신지요? 가주께서 직접 모시고 오라는 분부를 내리셨습니다.”
노소평은 잠시 생각을 해 보았다. 연구 중인 독은 지금으로서는 큰 진전이 없었다. 잠시 다녀와도 무방할 것이란 판단이 섰다.
“바로 떠나시는 것입니까? 잠시 기다려 주시면, 차비를 서두르지요.”
“그래 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한시가 급한 것이 저희 마음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조금 후에 떠나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노 의원님.”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것을.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노소평은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 * *
북궁세가로 가는 길은 매우 평온하였다.
서두르는 말발굽 소리와는 달리, 노소평의 얼굴을 스쳐 가는 바람 소리는 그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북궁세가는 참으로 나와 연이 깊은 듯하구나. 가주에 이어 이번에는…….’
노소평의 생각이 이어질 즈음, 갑자기 마차가 크게 흔들리며 멈춰 섰다.
“무슨 일이냐?”
마인풍은 밖을 향해 소리쳤다.
“나으리, 잠시 밖으로 나와 보셔야 할 듯합니다.”
마인풍은 노소평에게 양해를 구하며 마차 밖으로 빠져나왔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한 손으로 반장을 하며 세 명의 승려가 마차 앞에 다가서는 모습이 보였다.
이내 마차를 세운 이들이 소림의 사람들임을 알아본 사량객은 조금은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제가 아직 견문이 넓지 못하여 소림의 어느 분이신지 알지는 못하나, 무슨 연유로 저희 마차를 세우신 것인지요?”
“먼저 사과부터 드리겠습니다. 저는 소림의 대지라 합니다. 거동이 불편한 두 명의 환자가 있어, 도움을 청할까 하여 이렇게 실례됨을 알고도 마차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지나가는 마차에 북궁세가의 깃발이 꽂혀 있는 것을 보고 급히 세우느라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마인풍은 대지의 말 속에서 그가 북궁세가를 방문하고자 한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저희 세가를 방문하고자 하시는 것입니까?”
“그러합니다. 귀가의 가주께서 일전에 부탁하신 일로 이번 행로에 나섰다가, 시비에 얽히게 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제 사제의 상처가 위중한 관계로, 이렇게 부탁을 드리고자 합니다. 환자를 마차에 태우고 가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마인풍은 속으로 생각했다. 소림이 함께 가 준다면 세가의 일을 해결함에 있어 더욱 명분이 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락이라니요? 어서 환자분을 마차로 옮기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마침 안에 의원님이 계시니, 더욱 잘된 듯합니다.”
“의원님이 계십니까? 선재로다. 이렇게 다행스러울 수가 없군요.”
대지의 마음 한구석에는 피를 흘리며 신음하고 있는 대각의 모습을 보는 것이 여간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얼마나 아끼던 사제이던가. 비록 세속의 인과율에서 벗어나려 끊임없이 성찰하고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대지였으나, 아직 피붙이 같은 이들의 정의 굴레에 얽매여져 있는 자신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모자람을 알고 있기에 더욱 주변을 인의로서 대할 수 있는 이가 대지였으니, 그 마음이 어떠할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마차 안에 의원이 있다는 말에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안도감에 젖는 것을 느꼈다.
“대명, 얼른 대각과 그 아이를 데려오게나. 둘 다 상처가 심하니, 조심해서 움직이도록 하게.”
마차 안에 들어온 마인풍은 미안한 표정으로 노소평에게 말을 건네었다.
“노 의원님께 청이 있습니다. 밖에 환자가 있다고 하니, 불편하시더라도 함께 타고 가 주실 수 있겠는지요?”
“환자가 있습니까? 당연히 제가 봐 드려야죠. 늙고 쓸모없다 여기지만 말아 주십시오.”
그는 흔쾌한 노소평의 말에 깊이 읍하며 고마워했다.
두 명의 환자가 마차로 옮겨진 것은 한 시진이 지나서였다.
노소평이 우선 마차에서 내려 대각과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얼굴과 피부가 손상된 환자의 응급처치를 끝마친 이후에야 비로소 움직일 수 있었다.
“대지 대사, 잠시 저 좀 뵐 수 있을까요?”
“아미타불. 그러시지요, 노 의원님.”
마차에서 조금 떨어져 잠시 걷던 노소평은 대지를 보며 말했다.
“아마 사제분은 목숨에는 지장이 없겠지만, 한쪽 눈은 사물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무예를 익히신 분이라 더욱 충격이 크실 텐데, 대사께서 각별히 신경을 써 주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또 다른 환자분께 있습니다. 실례지만 어디에서 그를 만나신 것인지요?”
“아!”
대지는 나직이 탄성을 내뱉었다. 사제의 목숨에는 지장이 없다는 말에 안도의 탄성을, 그가 무예를 익힘에 있어 큰 약점을 지니게 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의 탄성을 이 한마디에 담아내었다.
“큰 빚을 졌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저도 다른 환자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고 있는 것이 없습니다. 우연히 중주일사를 쫓다가 한 고묘에서 만난 것이 다입니다. 당시 이미 죽은 시체나 다름없었는데, 하오문 사람의 말에 의하면 수백 년 된 화리의 내단을 먹었다 들었습니다.”
“음……. 지금 그 환자의 몸속에 알 수 없는 양기가 가득하더니, 설마 화리의 내단을 먹은 줄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화리의 내단을 그냥 먹은 경우 치명적인 독이 되었을 텐데, 지금 환자가 그나마 버티는 것은 대사님 덕분이겠군요.”
노소평은 정확히 환자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눈앞에 있는 소림의 승려의 수단이 대단하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저 상태로 오래 두게 되면 큰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자칫 화기가 뇌로 올라가게 된다면, 살아도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입니다. 행동에 장애가 올 수도 있고, 성격이 급하게 변한다던가, 심지어 기억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대사께서는 어찌하실 생각이신지요?”
“일단은 제가 지금처럼 몸속의 기운을 억제할 수는 있으나, 환자가 깨어난다면 그때 다시 생각을 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함부로 절기를 전할 수는 없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환자의 몸속에는 지금 화기뿐만 아니라 꽤나 복잡한 독기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만일 대사께서 그 환자에게서 손을 떼신다면, 분명 그는 살 수 없을 것입니다. 넓은 아량으로 깊이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드릴 말씀은 여기까지입니다. 가는 동안 틈틈이 대사의 사제분을 돌볼 테니, 대사께서는 다른 환자분을 꼭 맡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미타불. 그리하지요.”
한 손 반장한 대지의 속내는 복잡함 그 자체였다. 이미 절기의 일부가 지금 누워 있는 이에게 전해졌다.
아직 어린아이이기 때문일까, 그토록 심함 상처를 받은 일에 대한 반감을 지닌 채 어떤 삶을 선택할지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손으로 악인을 만드는 것은 아닌지, 소림의 절기가 혹여 나쁜 일에 쓰이지 않을지, 한 사람을 살리고자 한 일이 더욱 큰 희생을 만드는 것이 아닌지 복잡한 심정을 헤아릴 수가 없었다.
단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후일 그가 사도에 빠진다면 반드시 그 대가를 자신이 치러야 한다는 점이었다.
무거운 마음은 그의 발걸음에서도 느껴졌다.
마차를 타고 가는 이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각자의 걸음으로 시간을 내달렸다.
* * *
온통 식은땀으로 옷깃을 적신 이의 얼굴은 이미 그 모양새를 잃어버린 상태였다. 머리는 거의 다 빠진 상태로 군데군데 검붉은 염증이 돋아나 있었고, 얼굴 피부는 깊은 화상을 입은 듯이 쭈글쭈글해져 있었다.
‘아직 어린아이인 듯한데, 무슨 연고로 이런 일을 당했단 말인가? 근골도 많이 상했고, 피부는 제 모습으로 돌아오기란 불가능에 가깝구나. 전설의 탈태환골이라면 모를까, 그것이 아니고서는 결코 평범한 얼굴로 살아가기는 힘들 것인데, 정말 안타깝구나. 그나마 다행이라면 혈도와 혈관이 많이 상하지 않았다는 점인데, 무예를 익힌다면 어디 가서 괄시받고는 살지 않겠지만, 과연 소림에서 이 아이에게 절기를 전수해 줄지…….’
노소평은 북궁세가로 가는 내내 아이와 대각의 상처를 세심히 살폈다.
대각이야 무예를 익힌 고수답게 응급치료 이후 급격히 호전되는 양상을 보였으나, 아이의 경우 호흡이 불안정하고 육체적으로 견디기 힘들어 했다. 몸은 뜨거움과 차가움을 지속적으로 반복했고, 내부를 휘돌고 있는 열기에 고통의 신음을 질러 대기도 했다.
그때마다 대지가 내기를 가라앉혀 주기는 했으나,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으……으…….”
“이 보시게, 정신이 드는가?”
노소평은 머리에 올려 두었던 손을 떼며 물었다.
환자가 처음으로 눈을 뜬 것이다. 촛점 없는 눈동자에는 생각이 담겨 있지 않았다. 단지 본능적인 고통스러움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아……악…….”
아이가 갑자기 몸을 일으키며 소리를 치자, 노소평은 두 손으로 어깨를 누르며 말했다.
“괜찮네. 괜찮아. 이제 조금만 참으면 고통이 사라질게야. 조금만 정신을 차려 보게”
검은 눈동자가 빙그르르 돌더니 위쪽으로 조금씩 옮겨 갔다.
“이런, 큰일이구나. 화기가 머리 쪽으로 솟구치고 있어. 대사님! 대사님!”
대지는 급한 노소평의 음성을 듣고는 마차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로…….”
노소평과 아이의 모습을 본 대지는 급히 아이의 얼굴 앞쪽의 염천혈과 머리 뒤쪽 풍부혈을 제압하는 동시에 급히 가부좌를 틀고 아이의 등에 손을 대었다.
그러기를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대지가 손을 떼자 아이는 축 처진 채 쓰러져 버렸다.
‘후우……. 점점 기운이 세지고 있구나.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대지는 안쓰러운 얼굴로 누워 있는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생명의 소중함을 알기에 결코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될 것인데, 무엇 때문에 이리 갈등하고 있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북궁세가에 도착하는 대로 어떤 결정을 내려야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했다.
“사제, 그러면 안 돼. 그 몸을 하고 어딜 가겠단 말인가?”
“사형. 지금의 제 모습을 보십시오. 무예를 익혔다는 놈이 한쪽 눈을 잃었습니다. 소림이 자랑스러워하던 사대 금강의 모습은 그 어느 곳에도 없습니다. 스스로를 낮추고, 스스로를 경계해야 마땅한 일이나, 이 마음속에 들어온 번뇌는 그 무엇으로도 지울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제가 눈을 잃고 또 그 마음을 잃었으니, 마땅히 찾아와야겠습니다. 그 무슨 수를 쓰더라도 반드시 찾고야 말겠습니다.”
대명은 대각의 다짐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대각은 평소 진중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었다. 행동과 생각이 일치하여 한 번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기로 유명했다. 그런 그가 복수라는 다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말려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소림에서 그에게 바랐던 희망처럼, 대각이라 불렸던 이름처럼, 이번 일을 계기로 삼아 더욱 정진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대각은 깨우침과는 다른 복수라는 길을 걷고자 하고 있었다.
“사제, 모든 일은 반드시 인과 연에 의해 행해야 하네. 지금 자네가 하려는 일은, 그 법칙을 무시하려는 역행일 따름일세. 뒤돌아 앉으면 평온함이 다시 다가올 걸세. 이렇게 자네가 떠나게 되면, 나나 사형제들은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그러니 조금만 더 생각해 주게나.”
“사형, 저라고 어찌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앎과 이 마음속에 들어 있는 분노는 서로 상반된 것입니다. 수없이 제가 아니라 생각해도, 마음은 그것이 맞다 여깁니다. 스스로를 감당할 자신이 제겐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해결하러 떠나려 합니다. 마음속 소리가 이제 되었다고 할 때, 그때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잠시 적막감이 흘렀다.
대명의 탄식이 멈춰 있던 시간을 다시 흐르게 만들었다.
“후, 사제의 생각이 그렇다면 더 이상 말리지는 않겠네. 하지만 몸을 추스른 이후에 떠나게. 그래야 내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질 것 같아 하는 말일세. 아직 움직이기엔 상처가 너무 중하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대각의 남은 한쪽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서글픔과 분노 그리고 지금 당장 어찌할 수 없는 스스로에 대한 책망의 눈물이었다.
대명은 말없이 대각의 눈물을 보았다.
저리 아팠던가? 육체적 상실이 그 마음의 상실로까지 이어졌던가?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자네 혼자 보내지는 않을 것이네. 함께 가세. 그 끝이 어떠할지 나도 모르지만, 함께 가세.’
대명은 침묵으로 그의 아픔을 달랬다.
“사형, 아무래도 대각의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대지는 대명의 말을 듣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현재 상태가 매우 호전되어 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노소평에게서 들었기 때문이다.
“상태가 좋지 않다함은, 마음이더냐.”
“그렇습니다. 복수를 다짐하는 듯 보였습니다.”
“아미타불. 대각이 그리 말을 했단 말이구나. 아, 나의 잘못이 정말 크구나. 좀 더 세심히 살펴보았어야 하는데,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구나.”
대지는 눈을 감고 스스로를 자책했다. 대각이 받은 상처는 몸과 마음 모두였던 것이다.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던 그였기에 이번 상처는 더욱 컸을 것이 분명했건만,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자신의 무심함에 가슴이 아파 왔다.
‘북궁세가에서의 일이 모두 마치는 대로 대각과 저 아이 모두 소림으로 데려가야겠다. 모든 매듭은 그곳에서 정리해야겠구나.’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듯 대지는 눈을 뜨며 대명에게 말했다.
“대명.”
“네, 사형.”
“자네는 지금부터 대각의 주위를 벗어나서는 아니 되네. 늘 함께 있어 주게. 또한 소림에 무사히 도착할 때까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펴 주도록 하고.”
“사형, 그리하겠습니다. 사제도 반드시 좋아질 것이니, 너무 심려치는 마십시오.”
“대각의 불심이 깊으니, 반드시 이겨 내리라 믿네. 하지만 기우이길 바라지만, 혹시라도 그가 홀로 떠나려한다면 붙잡도록 해 주게나. 여의치 않다면 홀로 보내지는 말게.”
대지의 마음 한 자락에 눈물이 흘렀다. 사제 앞이라 표현할 수 없으나, 지난 기억들이 그를 더욱 서글프게 만들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제들을 손수 가르치며 키웠던 수많은 시간들이 스쳐 갔다.
“하하하, 사형. 이렇게 하는 것이 맞나요?”
호권을 펼쳐 보이며 밝게 웃던 대각의 앳된 얼굴이 떠올랐다. 호랑이 발톱이 아닌 여린 새끼처럼 한 손으로는 작은 호조로 만들고, 다른 한 손은 땅에 댄 우스운 자세로 그렇게 웃고 있었다.
기억은 모든 것을 미화한다. 대지의 기억 속에 있던 대각을 비롯한 사형제 간의 우애는 절로 웃음 짓게 만드는 소중함이 그 안에 함께했었다.
‘무엇을 못 하겠는가. 그때 그 웃음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대사님, 노 의원님. 이제 곧 본가에 이를 것입니다.”
대지는 밖에서 들리는 마인풍의 목소리에 깊은 상념에서 벗어났다.
마차 밖에는 여기저기 살아 있는 숨결들이 느껴졌다. 거리를 온통 제집인 양 뛰노는 아이들이며, 길 가장자리에는 작은 행상들이 여러 가지 물건들을 뽐내듯 진열해 두었고, 조금 더 들어가니 꽤나 번성한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다.
‘북궁세가의 세도가 날이 갈수록 더해진다고 들었는데, 그 백성들까지도 저리 활기차 보이는구나.’
밝고 건강한 얼굴의 민초들을 보면서 노소평은 북궁철우라 불리는 거대한 거목을 떠올렸다.
스스로를 어리석다 여기지만, 마음이 넓고 호방한 그의 성품이 문득 그리워졌다.
‘그날 이후, 어찌 변했을까?’
아내의 죽음을 목도한 그가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통곡하던 모습이 겹쳐 떠올랐다. 사람의 운명이 이토록 애꿎을 수가 있느냐고 하늘을 향해 울부짖던 그의 안타까움이 마음 절절히 느껴졌던 그날을 노소평은 잊을 수가 없었다.
늘상 봐 오던 삶과 죽음이건만, 항상 익숙하지 않은 건 주변 사람들의 슬픔이었다. 아무런 위로조차 할 수 없었던 그 기억들은 노소평의 가슴속에 아픔으로 차곡차곡 차올랐다.
무덤덤해질 법도 한데 그러지 못하는 것은, 그가 천생 의원인 탓이리라.
누워만 있던 아이의 눈동자가 떠진 것도 그때였다.
“이제 정신이 드느냐?”
“…….”
“내가 보이느냐?”
“…….”
아무런 말도 없는 아이의 얼굴을 유심히 보던 노소평은 한 손을 들어 아이의 눈을 크게 벌리고는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단지 움직이는 사물을 쫓을 뿐, 흑백이 뚜렷한 눈에는 생각이 담겨 있지 않았다.
“후…….”
“대사님, 아무래도 이 아이…… 사고 후유증이 심각한 듯합니다. 지금 보시면 아시겠지만, 갓 태어난 아이와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아마도 화기가 머리로 치솟으며 생긴 현상인 듯한데, 추후를 지켜봐야 할 듯합니다.”
대지는 노소평의 말을 듣고, 오히려 안도가 되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무슨 원한이 있는 아이인지 모르지만, 그런 고통을 받았다면 필시 복수를 꿈꿀 텐데, 차리리 아무것도 모른다면 그에게도 좋은 일이겠다 싶었다.
“선재로다. 이 아이에겐 안 된 일이지만, 어쩌면 잘된 일일 수도 있겠습니다. 기억하지 못하면 차라리 덜 괴로울 테니까요.”
멍하니 천장만을 바라보던 아이의 눈꺼풀이 스스르 감겼다. 다시금 숨소리가 고요해지는 것이 잠든 듯 보였다.
마차 안의 침묵, 따각거리는 말밥굽 소리와 가끔씩 덜컹거리는 수레바퀴 소리, 그리고 상점들마다 아득히 들려오는 소란스러움, 이 모든 것이 아이에게 자장가처럼 들렸나 보다.
문득 노소평은 자신도 모르게 지금과 같은 평온함이 언제까지나 함께하길 기원했다.
상점들이 모여 있는 지역을 벗어나자, 고풍스런 멋을 한껏 낸 긴 벽으로 가옥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장원이 눈에 들어왔다. 담장 위로는 연꽃 문양의 기와들이 어미 새를 쫓는 새끼처럼 줄지어 늘어서 있고, 그 너머로 높고 낮은 건물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정문으로 다가가니 ‘북궁세가’라는 현판이 오랜 세월이 흘렀음을 나타내는 세월의 흔적들을 품고 있었다.
‘멋지구나. 멀리서 보았을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가까이 갈수록 그 주인의 성품이 느껴지는구나. 긴 시간을 이 자리에서 지켜 온 가문의 힘이 이런 것인가?’
대지는 북궁세가의 경치에 한껏 취했다. 복잡했던 마음이 어느 정도 정리된 탓인지, 한결 기분이 좋아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지.”
정문을 지키는 무사들의 절도 있는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충!”
“형우, 네가 수고가 많다. 지금 귀한 분들을 모셔 가는 중이니 나중에 보자.”
“알겠습니다, 사부님. 먼 길 다녀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길을 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무사들을 뒤로하고 마차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긴 하루의 끝을 알리는 석양이 마차의 그림자를 움켜쥐고는 검은빛 아쉬움을 달랬다.
* * *
은은한 제향초 향기가 가득 퍼져 있는 방의 한쪽 침상에는 창백한 피부에 마치 물에 퉁퉁 분 듯한 사람이 누워 있었다. 그 주변에는 꽤나 예쁘게 생긴 여러 명의 시비들이 어쩔 줄 몰라 하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좋아요. 만일 공주께서 이대로…….”
“그만. 모든 화는 입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모르더냐. 언급할 일이 따로 있지, 어찌 그런 불경스러운 말을 입에 담는단 말이냐. 네가 치도곤을 당해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잘못했습니다, 마마님. 제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니,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파르르 애처롭게 몸을 떨며 울고 있는 나인을 보면서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다시는 입 밖으로 꺼내서는 아니 된다.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이미 생사를 가늠할 수 없음인데, 어찌 그리 경망스러운 것이냐.”
“다시는 아니 그렇겠습니다.”
“너는 가서 아직도 의원이 오지 않았는지 알아보고 오너라. 화급을 다투는 일이건만, 왜 이리도 더디단 말이냐?”
“알겠습니다. 바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영은 긴 한숨을 토해 내고는 침상 위를 바라보았다.
‘지금은 이렇게 쉬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태가 더 심각해진다면 어찌 뒷감당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물론이거니와 북궁세가마저 무사하지 못할 텐데……. 가주는 무슨 생각으로 의원을 늦게 모셔 온단 말인가?’
궁에서 함께 온 의원은 도저히 알 수 없다는 말뿐이고, 사흘이나 지난 시점인데도 공주의 병세는 호전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필시 누군가의 소행이 틀림이 없어. 그렇다면 그가 누구일까? 평소 원한 관계인 사람의 짓일까? 아니면 공주의 이번 혼사를 방해해야만 하는 누구일까?’
생각이 여기에 미쳤을 즈음, 아영은 첫날 보았던 광경이 떠올랐다.
공주가 정문에 들어서자, 북궁휘의 한곁에 나란히 앉아 머리를 조아리던 꽤나 현숙해 보이던 사람이었다.
‘그의 아내라고 했던가?’
그녀라면 이런 일을 벌이고도 남을 충분한 이유를 지니고 있다. 정실로 시집왔으나, 공주로 인해 첩실이 되어야 하는 처지, 아니 어쩌면 내쫓길지도 모르는 처지였다.
공주의 성품으로 보면 분명 북궁휘를 자신의 궁으로 데려갈 것이 뻔한데, 그의 아내를 함께 데려간다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일이었다.
‘이유는 충분하지만, 과연 그녀일까?’
누군가 이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면, 그 희생양이 될 가장 유력한 사람 역시 그녀일 것이다. 자신들 또한 그 범주를 벗어나지는 못하겠지만, 한 사람의 희생으로 모든 일이 마무리 지어진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할 필요가 있겠어.’
궁에서 생활하며 느낀 절박함이 다시 되살아났다.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감각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