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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바꾸다 1권 (12화)
4. 동생의 운명을 바꾸다 (4)
“아,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잠깐 괜찮을까요?”
내 물음에 두 기사는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말했다.
“오러라는 거, 기사는 전부 쓸 수 있는 건가요?”
“오러요?”
“기사의 기본 조건이 오러의 사용유무이니 그러합니다만…… 갑자기 그건 왜…….”
“그냥요. 최근에 검사에 대해 호기심이 일어서. 하하하! 그렇군요, 기사는 전부 쓸 수 있는 거군요? 그럼 기사들은 전부 소드마스터라는 건가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설마 도련님, 소드마스터의 개념도 모르시는 겁니까?”
그 물음에 나도 모르게 몸을 움찔 떨었다.
성일아, 평정, 평정!
“모, 모르다뇨. 그냥 단지, 아! 제가 알고 있는 지식과 현역 기사가 아는 지식이 같을까 해서 물어본 것뿐이에요.”
엄청 얼버무린 것 같지만, 그리고 기사 둘도 그걸 눈치챈 것 같았지만, 그들 위치상 뭐라 할 수 없었기에 표정만 찌푸릴 뿐, 토 달지는 않았다.
“뭐, 그렇다면야…… 저희가 알고 있는 소드마스터는 단순히 검에 집약한 오러를 넘어서 길이와 강도, 때론 오러를 전방으로 날리기도 하는, 말 그대로 오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자를 말합니다. 소드마스터와 일반 오러유저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러를 자유자재로요? 그럼 그 오러란 걸 어찌해야 사용할 수 있는 거죠?”
“……대체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설마 도련님이 검사가 오러를 발현하는 조건을 모르실 리는 없을 테고…… 후우, 알겠습니다. 도련님과 저희의 지식을 비교하기 위해서라면 답해 드리지요. 검사는 마법사와 다르게 서클 같은 개념으로 마나를 쌓지 않습니다. 오로지 훈련과 노력으로 신체를 강화시켜 마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신체를 만드는 게 다죠. 그래서 저희는 이것을 마나신체라 부릅니다.”
“마나…… 신체요?”
“네. 검사는 평소 뛰거나 검을 휘두름으로써 근육을 강화합니다. 그때 근육에 붙는 것처럼 마나가 조금씩 근육과 뼈, 그밖에 생체 능력이 높아지게끔 몸 안에 쌓이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하면 근육의 능력이 비약적으로 커져 인간을 뛰어넘는 속도와 파워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 양이 많아지면 검으로 집약시켜 오러도 발현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요. 제가 아는 건 이 정도입니다만…… 도련님?”
내가 깊이 고민을 시작하자 마나신체에 대해 설명하던 기사가 의아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인간을 뛰어넘는 속도와 파워.
그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게 바로 마나신체.
그날 묘족 마을을 침략했던 기사가 왜 인간을 뛰어넘는 속도와 파워를 가지고 있었는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기사는 오러를 사용할 수 있는 자들이니까 마나신체 또한 가지고 있다는 뜻이리라.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가장 놀라운 것은…….
나 역시 마나신체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다.
그건 분명 마나증폭과 크게 관련되어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순간 저 기사 둘에게 물어볼까 고민했지만 이내 생각을 접었다.
좀 더 신중히, 만일을 생각해 본 뒤에 물어봐도 늦을 거 없으니까.
5. 이세트의 변화 (1)
“도련님이 아랫것들에게 존대를 사용한다고?”
“그렇다니까! 내가 이 귀로 똑똑히 들었대도!”
“정원관리사 멤벌트 씨에게 사과까지 하셨대 글쎄!”
“그것뿐인 줄 아니? 최근엔 이세트 아가씨를 따라 서재도 자주 드나드신 다던데?”
“세상에, 그럼 가출하더니 개과천선해 돌아온 거야?”
“세상 설마…… 어머나, 쉿! 아가씨 오셔.”
“아, 흠흠. 이세트 아가씨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이야, 메릴.”
제가 작게 드레스 자락을 올리며 화답하자 메릴과 그녀의 단짝 친구인 주니에는 피하듯 자리를 떠났습니다.
저는 메릴과 주니에가 사라진 걸 본 후, 억지로 미소 짓던 표정을 풀자 한숨이 절로 나오네요.
그녀들의 말 그대로 하룬 님이 어딘가 조금 달라지셨다고 해요.
이곳저곳에서 소문이 들리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솔직히 저는 믿지 않아요.
저에게 있어서 하룬 님은 가장 무서우신 분이시고 무엇보다도 전에 받았던 상처도 아직 아물지 않은 상태니까요.
사실……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으셨어요.
어느 날 갑자기 앞으로 잘 대해 주겠다며 이번처럼 살갑게 다가오셨죠.
그때 저는 너무 기뻐서 저도 하룬 오라버니를 사랑한다고, 앞으로 내가 더 잘하겠다고 펑펑 울며 오라버니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어요.
그리고 그 다음 날, 프런치 나무 옹이구멍에 빠진 자신의 소중한 물건을 꺼내와 줬으면 한다고 제게 부탁하였었죠. 아, 저택에 있는 프런치 나무는 100년도 넘게 있어 온 나무라 무지 커다랬는데, 그 나무에 있는 옹이구멍도 커서 당시 어렸던 저는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하룬 오라버니가 부탁하셨던 거예요.
솔직히 겁나고 무서웠지만 ‘앞으로 잘하겠다고 했으니 부탁, 들어주겠지?’라고 말씀하셔서 저는 용기 내어 나무를 올라갔죠.
일부러 떨어지게끔 반쯤 나뭇가지를 잘라 놓았다는 것도 모른 채…….
그때 이후, 저는 오라버니의 얼굴도 제대로 마주 보지 못하게 되었어요.
너무 무섭고 두려워서 오라버니만 봐도 몸이 절로 떨려 왔죠.
지금도 그건 고쳐지지가 않아요.
그래서 이제는 믿지 않아요.
분명 그때와 같이 저를 속이려는 걸 테니까요. 안타깝지만 그것이 하룬 님의 천성이라 생각해요.
“조금만 기다려. 내가 반드시 구해 줄 테니까.”
하지만 어째서일까요…….
하룬 오라버니가 돌아온 그 다음 날 아침, 정원에 찾아오셔서 하셨던 말이 자꾸 가슴속에서 잊혀지지가 않아요.
평소 싸늘하고 차가웠던 하룬 오라버니의 말투가 아니라 생전 어머니가 연상되는 따스한 말투여서 그런 걸까요?
대체 그때 한 말은 무슨 뜻이었을까요?
구해 준다고요? 누구를요? 설마 저는…… 역시 아니겠죠.
하룬 님이 저를 위협하면 위협했지, 그러실 분이 아니라는 것쯤은 저도 알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서재에서 있었던 일은 대체…….
“이세트, 무슨 생각을 그리하니.”
“아, 에스다 오라버니!”
“충!”
“충!”
언제 다가왔는지 에스다 오라버니께서 내 머릴 흐트러트리며 말을 걸어오셨어요.
민스라, 바렐 경은 에스다 오라버니가 다가오자 존경이 듬뿍 담긴 얼굴로 경례를 취합니다.
아, 이분은 에스다 바인 윈덜트.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시자 좋아하는 오라버니세요.
아버님이나 하룬 님과 같은 색상의 갈색 머리칼을 가지고 있지만, 매번 볼 때마다 유난히 이분만 머리칼이 빛나 보일 정도로 아름다운 오라버니시죠.
항상 소피아 언니가 ‘내 아름다움을 다 가져간 저주스런 오라비!’라며 놀릴 정도로 에스다 오라버니는 여자인 제가 봐도 아름다우신 분이세요.
“별거 아니에요. 오라버니 어디 가세요?”
“후우, 마탑에서 마법학 토론을 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가야 할 것 같다.”
에스다 오라버니는 얼굴만 멋지신 게 아니라 마법 실력도 뛰어나세요.
한때는 백색 마탑에서 에스다 오라버니를 영입하려고 마탑주님께서 여러 번 이곳을 찾아온 적도 있었죠.
물론 에스다 오라버니는 아버님의 뒤를 이어 황궁 수석마법사가 되는 게 꿈이기에 정중히 거절했지만, 마탑의 명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중요한 일에는 참석한다고 해요.
그런데 마탑에 관련될 때마다 한숨을 쉬는 걸 보면 오라버니는 마탑에 드나드는 게 별로신가 봐요.
“아, 맞다! 에스다 오라버니, 안 그래도 궁금한 게 하나 있었어요.”
“또 마법 이론에 대해서구나?”
“헤헤.”
역시 눈치 빠른 오라버니는 단박에 제 생각을 읽어 버리곤 웃어 주시네요.
“그래, 우리 동생이 이번엔 또 무엇이 궁금한지 들어나 보자꾸나.”
“최근 마나석과 마나의 관계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데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요. 그러니까 마나석은 세상에 퍼져 있는 마나가 한곳에 머물러 생긴 보석이잖아요. 하지만 마나를 집약시켜 인위적으로 만드는 건 불가능하죠. 그럼 마나석에 대한 이론 자체가 다른 게 아닐까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호오, 벌써 거기까지 도달했구나. 그래서 네 생각은 어떠하니.”
“제가 보기엔 마나석은 마나가 집약되어 만들어진 보석이 아니라, 그 보석 자체가 마나를 끌어오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그러니까…… 보석 자체가 마나 고정의 술식을 가진다고 해야 할까요? 그게…… 좀 과한 생각인가요?”
제 이론 설명에 에스다 오라버니의 눈이 어째선지 조금 커지네요.
그러다 갑자기 크게 웃으며…….
“하하하하! 역시 내 동생, 대단하구나. 설마 거기까지 도달했을 줄이야. 이대로 정진하면 나보다 더 뛰어난 마법사가 될 수 있겠어!”
라고 말씀하시네요.
제가 마법에 대해 물어볼 때면 에스다 오라버니는 항상 저 말을 하곤 해요.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에스다 오라버니보다 뛰어난 마법사라니, 농담이 너무 심해서 기쁘다기보단 웃음만 나와요.
“거의 정답에 근접해졌구나. 그래, 이세트. 네 말이 맞다. 지금 나와 있는 이론은 마나석을 인위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든 거짓 이론이란다. 정확한 설명은 백색 마탑 서재에 있지. 언제 한 번 책을 보여 주도록 하마.”
“정말이요? 감사해요, 오라버니!”
저는 폴짝 뛰어 에스다 오라버니 품에 안겨 들었어요.
오라버니는 제 행동에 당황스러워하시면서도 결국, 등을 토닥여 주십니다.
이렇게 상대를 안고 있으면 그분이 저를 얼마나 생각하는지, 아껴 주는지 너무도 잘 느껴져서 참 좋아요.
“그보다 이세트, 괜찮니?”
“네?”
“전해 들었다. 그 녀석이 돌아왔다고.”
에스다 오라버니는 한순간 성난 표정을 지었다가 저를 생각한 건지 다시 평소대로 돌아오셨어요.
하룬 오라버니를 이름조차 부르지 않고 ‘그 녀석’이라 할 정도로 에스다 오라버니는 하룬 님을 싫어하세요.
“그리고…… 몹시 듣기 불쾌한 소문을 들었다. 그러니까…… 그날 밤 네 정조에 위험이…….”
에스다 오라버니의 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얼굴 표정이 험악하게 변해 갔어요.
민스라, 바렐 경은 무언가 느껴지는지 잔뜩 긴장한 채로 땀을 뻘뻘 흘렸고요.
“미안하구나. 오라비가 지켜 주지 못해서.”
“괜찮아요. 그때는 오라버니도 바빠서 마탑에 계셨었잖아요.”
“그래도 그 녀석이 돌아올 줄 알았더라면 내 모든 일을 팽개치고 돌아왔…….”
“그런 말씀 마세요. 저도 이제 어린애가 아닌걸요?”
괜히 활기차게 말해 보지만…… 사실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손발이 떨리지만 에스다 오라버니가 그걸 알면 분명 걱정하실 테니까요.
“후우, 알았다. 이 얘기는 다녀와서 계속하자.”
오라버니는 다시 한숨을 내쉬며 지친 듯 떠나가네요.
저는 속으로 응원하며 늘 산책하는 정원으로 발길을 돌렸어요.
이 장미 정원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에요. 유일하게 어머니와 추억이 담겨 있는 장소죠. 그래서 그런지 언제나 이곳에 오면 마음이 편해지곤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