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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재천 1(12화)
3장 유가장(7)
천성은 힘을 마음껏 개방했다.
번개처럼 내달려 단숨에 놈들의 뒤를 따라붙었다.
무림맹과 감숙의 고수들이 흑의인들을 바짝 뒤쫓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일조는 나와 함께 남아 추적대를 막는다!”
호면사내가 돌기둥을 만들어 추적대를 막았다.
쿠르르르릉!
콰콰콰콰쾅!
남이건과 감숙의 고수들은 분전하며 돌기둥을 부수었지만, 걸음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호면사내가 추적대를 저지하는 동안 뱀가면사내는 천률음보를 가지고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뒤였다.
“이런! 젠장!”
남이건이 침음성을 토해 냈다.
하지만 천성은 결코 뱀가면을 이대로 보낼 생각이 없었다.
달려가던 천성이 온몸의 힘을 다리에 집중한 채 진각을 밟듯 강하게 땅을 박찼다.
쿠웅!
쩌어억!
순간, 방원 일 장 정도의 땅이 내려앉으며 천성의 신형이 빛살처럼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엇! 저, 저게 뭔가!”
갑작스런 충격음에 놀란 무인들이 허공을 보며 탄성을 질렀다.
천성의 신형이 마치 한 마리 새처럼 흑의인과 감숙 무인들의 까마득한 머리 위로 지나치고 있던 것이다.
쿵!
족히 이십여 장은 될 듯한 거리를 뛰어넘은 천성이 흑의인들의 뒤쪽에 착지한 후 지체 없이 뱀가면을 뒤쫓아 달려갔다.
“저자는 대체 누구인가!”
남이건이 놀라 소리쳤다.
놀라운 도약력이었다.
이 정도 거리를 뛰어넘으려면 최소한 초절정에 근접한 고수라야 했다.
검에 비해 신법이 약한 편인 남이건을 오히려 능가하는 움직임이었다.
감숙의 고수들도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다.
유가장에 저런 고수가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면 또 다른 적인가!’
“너희는 계속 이곳을 막아라!”
한동안 남이건과 무사들을 상대하던 호면사내가 결심을 내린 듯 재빨리 몸을 돌려 천성의 뒤를 쫓았다.
얼핏 보아도 천성의 공력이 만만치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놈이 뱀가면을 방해해 시간이 지체된다면 자칫 무림맹의 포위망에 갇힐 수 있었다.
“무림맹 무사들은 앞길을 뚫어라!”
호면사내가 빠지자 흑의인들은 남이건을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하지만 죽음을 각오한 것인지 방어를 도외시한 채 달려드는 바람에 제법 시간을 지체할 수밖에 없었다.
남이건이 길을 열고 빠져나왔을 때는 이미 호면사내의 모습이 사라진 뒤였다.
“이익! 놈들을 사로잡아라!”
이렇게 된 이상 정체를 파악하려면 흑의인들을 잡아 심문하는 수밖에 없었다.
“크르르륵!”
“엇! 독이다!”
하나 오십여 명의 흑의인들은 미처 손쓸 틈도 없이 독단을 깨물어 하나같이 자결해 버렸다.
“모두 물러서시오!”
독단의 독기가 얼마나 강한지 흑의인들의 시신은 순식간에 녹아 버렸고, 근처에 있던 몇몇 무림인들까지 중독이 되어 몸을 휘청거렸다.
“당장 공동파와 무림맹 천수 지부에 전서를 보내 천라지망을 펼치도록 일러라!”
남이건이 굳은 얼굴로 무림맹 무사에게 명했다.
“우리는 추적대를 구성해 놈들의 뒤를 쫓도록 합시다!”
절대 천률음보를 이대로 빼앗길 수는 없었다.
“대협, 한데 아까 우리를 뛰어넘어간 자는 누구일까요?”
천지문의 황역태가 남이건에게 물었다.
“글세, 적인지 아군인지조차 알 수 없군요.”
뒷모습밖에 보지 못했기에 정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세 명의 후기지수를 비롯, 오십 명의 고수로 추적대를 구성한 남이건은 곧장 흑의인들을 뒤쫓았다.
* * *
일각여를 추격한 끝에야 천성은 간신히 흑의인들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처음 놈의 흔적을 놓쳐 잠깐 애를 먹은 덕에 시간이 지체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추적한 끝에 결국 봉황산(鳳凰山) 초입에서 놈들의 꼬리를 잡을 수 있었다.
천성의 시야에 뱀가면과 다섯 흑의인이 빠른 속도로 신법을 전개하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서라!”
단숨에 흑의인들과의 거리를 좁힌 천성이 소리쳤다.
“헛!”
뱀가면이 헛바람을 들이켰다.
예상치 못한 천성의 등장에 놀란 것이다.
“너희는 놈을 막아라!”
순간, 함께 달아나던 다섯 흑의인이 몸을 돌려 천성에게 검을 찔러 왔다.
여기서 시간을 지체하게 된다면 뱀가면을 놓치게 될 것이 분명했다.
마침 갑작스런 출수로 인해 놈들의 검에는 검기가 서려 있지 않았다.
하여 천성은 자신의 단단한 몸을 믿어 보기로 했다.
“비켜라!”
천성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다섯 흑의인을 향해 돌진했다.
다섯 자루의 검이 천성의 요혈을 노리며 다가왔다.
“으아아압!”
기합성을 지른 천성이 급격히 몸을 비틀었다.
쉬아아악!
세 자루의 검이 우측으로 빗나가고, 나머지 두 자루는 천성의 옆구리와 어깨에 그대로 꽂혔다.
스아악!
옆구리와 어깨에서 핏물이 튀어 올랐다.
하지만 놀랍게도 두 자루의 검이 더 이상 깊숙이 살을 뚫지 못하고 천성의 단단한 근육에 미끄러져 밀려 나는 것이 아닌가!
“이럴 수가!”
분명 검이 적중했다 여겼던 흑의인들이 경악해서 소리쳤다.
천성은 그대로 흑의인들을 무시한 채 뱀가면을 향해 돌진했다.
“앗! 쫓아라!”
당황한 흑의인들이 허둥지둥 쫓았으나, 천성의 빠른 걸음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천성의 시야에 곧 뱀가면의 뒷모습이 들어왔다.
“놈! 드디어 잡았다!”
천성은 한달음에 뱀가면사내를 뛰어넘어 앞을 가로막았다.
“정말 귀찮은 놈이로구나!”
뱀가면이 신형을 멈추었다.
“애송이 놈! 내가 네놈이 두려워서 피하는 줄 아느냐! 목숨을 살릴 기회를 줬으면 잠자코 처박혀 있을 일이지 스스로 명을 재촉하는구나! 크크크크!”
순간, 뱀가면의 신형이 흐릿해지더니, 마치 분신술을 쓴 것처럼 분열하여 순식간에 열 명으로 늘어났다.
“엇!”
놀란 천성이 헛바람을 삼켰다.
“후후후! 감히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는구나!”
열 명의 뱀가면이 천성을 향해 웃음을 터뜨렸다.
천성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곡용천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고는 곧 마음을 다잡았다.
그때, 다섯 명의 흑의인이 도착했다.
“어차피 무림맹 놈들도 어느 정도 따돌린 것 같으니, 네놈의 소원을 들어 주마!”
열 명의 뱀가면이 동시에 허리에 두른 연검을 뽑아 들었다.
쉬리리릭!
‘대체 어느 놈이 진짜인가!’
천성은 긴장된 표정으로 뱀가면사내를 살폈다.
“어차피 열 놈 다 쓰러뜨리면 될 일!”
천성이 마음을 굳힌 순간, 열 명의 뱀가면이 공격해 왔다.
쉬리리리릭!
뱀의 혓바닥처럼 꿈틀대는 연검이 천성을 사방에서 노리고 달려들었다.
‘그렇지!’
그 순간, 천성은 한 가지 꾀를 생각해 냈다.
자신의 단단한 몸을 이용하여 열 개의 검을 그대로 맞기로 한 것이다.
물론, 되도록 급소를 피해야 했다.
열 개의 검 중 실체가 날린 검만이 천성의 몸에 상처를 낼 것이다.
천성은 심장과 목을 노리는 검을 살짝 비껴 내고, 팔과 다리를 베어 오는 검은 그대로 맞았다.
스악!
쉬이익!
파앗!
“크윽!”
하지만 결과는 천성의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열 개의 검이 모두 진짜였던 것이다.
‘이럴 수가!’
천성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열 명의 뱀가면사내를 상대해야 하는 것이다.
천성은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었다.
상처가 깊지는 않았으나, 무려 열 곳이나 되는 검상은 상당한 출혈을 가져왔다.
“호오, 제법 단단한 몸을 가졌구나! 외문 무공을 익힌 모양이로군! 하지만 어디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
열 사람이 동시에 같은 말을 하는 모습은 몹시도 기괴했다.
하나 천성은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전혀 없었다.
잠시의 틈도 주지 않고 놈들이 다시 검을 뻗어 왔기 때문이다.
천성은 정신을 집중해 열 개의 검로를 살폈다.
이미 죽을 정도의 상처는 피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힘으로 누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가슴을 향하는 두 자루의 검을 왼쪽 겨드랑이 사이로 흘려보낸 천성이 앞으로 한 발 내딛었다.
두두둑!
천성이 겨드랑이에 낀 두 뱀가면사내의 팔을 잡아 비틀었고, 딸려 오는 두 녀석에게 주먹을 날렸다.
퍼엉!
공기가 터져 나가는 듯한 소리가 들리며 두 명의 뱀가면사내가 사라졌다.
“크윽!”
순간, 등 쪽에서 화끈한 통증이 느껴졌다.
뒤쪽에서 또 다른 뱀가면이 공격해 온 것이다.
천성은 고통을 참아 내며 그대로 몸을 반 바퀴 회전시켜 다리를 차올렸다.
퍼퍼퍽!
천성의 등을 찌른 두 명의 뱀가면이 천성의 발길질에 걸려 뒤쪽으로 튕겨져 나갔다.
검까지 부숴 버리는 강력한 일격이었다.
“엄청난 힘이구나!”
뱀가면들이 천성의 무지막지한 공격에 탄성을 터뜨렸다.
“끄윽!”
순간, 옆구리에 다시 놈들의 검이 작렬했다.
이번엔 제법 깊은 상처였다.
처음에 다쳤던 곳에 다시 검을 맞은 것이다.
그때, 사라진 네 명의 뱀가면 자리에 흑의인들이 들어섰다.
‘젠장!’
설상가상으로 출혈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포위된 상태에서는 천성이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곡용천의 복수를 한다는 생각에 막무가내로 달려들었던 것이 후회됐다.
‘지금부터라도 최대한 침착하게!’
천성이 다리에 힘을 모아 땅을 박찼다.
“엇!”
엄청난 도약력에 놀란 뱀가면이 다급히 천성을 쫓았다.
“도망치려는 것이냐!”
하나 천성은 그대로 육 장 정도 떨어진 암벽 앞에 착지해 멈췄다.
“흥! 누가 도망친다는 것이냐! 네놈을 죽이지 않고는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포위를 풀어내기 위해 암벽 쪽으로 붙은 것이다.
등 뒤에 벽을 두고 놈들을 상대하려는 심산이었다.
상처의 출혈로 인해 천성은 이젠 현기증마저 일고 있었다.
되도록 속전속결로 승부를 봐야 했다.
“후후! 제법 잔머리를 굴렸다만, 어림없는 일이지!”
사실 뱀가면은 지금 속으로 몹시 놀라고 있었다.
천성의 힘과 속도가 자신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대체 이 녀석의 정체는 무엇인가?’
분명 공력은 일천해 보였는데, 힘과 움직임은 절정고수를 능가하고 있었다.
게다가 도검을 막아 내는 단단한 육체까지 가지고 있으니.
강호에 잘 알려지지 않은 특별한 외공을 익힌 것이 분명해 보였다.
또 자신의 환영이 넷이나 쓰러질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뱀가면사내의 환영은 일반 환영과는 달랐다.
뱀가면사내의 능력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진체와도 같았다.
해서 환영이 타격을 입으면 뱀가면사내에게도 그 영향이 미친다.
그렇기에 현재 뱀가면사내의 힘은 이 할 이상 줄어든 상황이었다.
“흥! 하지만 네놈이 오늘 나를 만난 것이 불운이로구나! 죽이기엔 아깝지만, 갈 길이 바쁘니 더 이상 네놈의 재롱을 봐줄 수가 없구나!”
너무 지체하게 되면 무림맹의 추적대에 꼬리가 잡힐 수도 있었다.
조금 무리를 하더라도 빨리 놈을 해치워야 했다.
뱀가면사내의 눈에서 빛이 번쩍였다.
순간, 뱀가면사내의 몸집이 점점 커져 가더니, 어느새 그 키가 다섯 장을 넘어서는 거인이 되었다.
마치 산이 앞을 가로막은 듯한 위압감에 천성의 표정이 굳어졌다.
‘대체 이게 무슨 사술인가!’
무림에 이런 괴이한 술법을 사용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이제껏 들어 보지 못했다.
물론 강호 경험이 거의 없다시피 한 천성의 지식이라 봤자 한계가 있겠지만, 이야기 속에서나 등장할 듯한 상황임에는 틀림없었다.
“이제 끝을 보자!”
거인이 거대한 발을 들어 천성을 짓밟았다.
하나 천성은 피하지 않고 두 손을 들어 놈의 발을 받아 냈다.
힘이라면 천성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