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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재천 1(13화)
3장 유가장(8)
쿠우웅!
굉음이 울려 퍼지며 그 충격에 주변의 땅과 바위가 진동했다.
“크으윽!”
뱀가면의 강력한 힘에 천성의 몸이 무릎까지 땅속으로 파묻혔다.
평상시라면 충분히 받아 낼 만한 공격이었으나, 계속된 출혈이 발목을 잡았다.
본래 지닌 힘의 삼 할도 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정말 힘 하나는 굉장하구나! 하지만 거기까지다!”
이번에는 뱀가면의 거대한 주먹이 움직일 수 없는 천성의 몸에 작렬했다.
콰아앙!
“커헉!”
천성이 피를 토해 내며 십여 장을 날아가 숲에 처박혔다.
“흥! 마지막이다!”
뱀가면사내가 천성이 떨어진 곳으로 주먹을 연달아 날렸다.
콰콰콰콰쾅!
뱀가면사내의 공격에 주변이 완전히 초토화가 되었다.
천성의 육신은 땅에 묻혀 그 형체조차 보이지 않았다.
“쿨럭!”
몸이 다시 원래의 크기로 돌아간 뱀가면사내가 가면 사이로 피를 토해 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천성을 상대했으나, 사실 그 역시 상당한 무리를 한 상태였다.
거신환영(巨身幻影)은 그가 가진 최후의 비술이었다.
한 번 사용하게 되면 삼 일 동안은 꼼짝없이 모든 힘을 잃어야 하는 기술이었기에 그로서도 함부로 펼치지 못했다.
거기다 영력(靈力)의 소모가 너무 커서 몸에 상당한 무리를 준다.
하나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어찌 된 일인가! 괜찮은가!”
그때, 호면사내가 나타났다.
“견딜 만하다. 어서 이곳을 떠나도록 하자. 조금만 더 가면 섬응(閃鷹)과 만나기로 한 장소이니.”
호면사내는 뱀가면을 부축해 흑의인들과 함께 숲 속으로 사라졌다.
4장 각성(覺醒)(1)
한편, 천성은 온몸의 뼈가 부서지고 장기가 파열되는 회생불능의 상처를 입었다.
흙더미에 파묻혀 버린 천성은 결국 실날같던 호흡이 끊어지고, 힘겹게 뛰던 심장마저 멈춰 버렸다.
순간, 천성의 목에서 푸른빛이 흘러나왔다.
화아아악!
그 빛은 천성이 궁혁도에게 발견될 당시 목에 걸고 있던 푸른 목걸이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목걸이를 중심으로 알 수 없는 문자들이 생겨나더니, 이내 둥근 원을 그렸다.
우우우우웅!
둥근 원은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점점 그 모양이 하나의 푸른 구를 이루더니, 갑자기 천성의 심장이 위치한 왼쪽 가슴속으로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목걸이가 가루가 되어 부서져 버렸다.
파앗!
잠시 후, 푸른 광구(光球)가 들어간 천성의 심장 부분에서 수십 수백 줄기의 빛의 실이 뿜어져 나왔고, 마치 누에고치처럼 천성의 온몸을 감싸더니, 어느 순간 천성의 육신은 푸른빛에 파묻혀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때, 빛 속에 파묻힌 천성의 몸에 균열이 생겨났다.
균열은 점점 늘어나더니, 결국 천성의 몸은 모래처럼 잘게 부서져 버렸다.
파앗!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잘게 부서진 천성의 육체입자 사이 사이로 알 수 없는 문자들이 빛을 내며 날아다니고, 그 중앙에 푸른 광구가 자리 잡았다.
광구를 중심으로 입자들이 점차 뭉쳐 들더니, 놀랍게도 새로운 심장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심장이 완성되자 곧이어 주위로 모여든 입자들이 혈관을 생성해 냈다.
동시에 척추를 비롯한 뼈들이 점차 그 모습을 드러냈다.
누군가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면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을지도 모를, 참으로 기괴한 광경이었다.
계속해서 몸속의 장기들이 하나둘 생겨나고 결국 온몸의 근육과 그 위로 피부가 덮여 가며 완벽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빛에 둘러싸인 천성의 몸은 뱀가면에게 당했던 상처가 모두 깨끗하게 치료된 상태였다.
슈우우욱!
순간, 온몸을 감싸던 빛이 천성의 심장이 위치한 곳으로 빨려 들어갔고, 그 위로 푸른색의 소용돌이 문양이 새겨졌다.
두근두근!
그리고…….
조금씩 천성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창백하던 천성의 알몸에도 붉은 기가 돌며 혈색이 돌아왔다.
그때였다.
슈우욱!
빛에 둘러싸인 천성의 몸이 갑자기 숲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 * *
천성은 머리가 깨지는 듯한 두통에 힘겹게 눈을 떴다.
흐릿한 시야가 조금씩 선명해졌다.
‘분명 뱀가면 놈에게 당해 정신을 잃었는데…….”
의식이 돌아오며 점점 기억이 되살아났다.
자신은 심한 출혈로 인해 뱀가면의 공격을 막아 내지 못했다.
그로 인해 온몸의 뼈가 부서지고 땅에 파묻히면서 정신을 잃었다.
그 정도면 목숨을 잃었다 해도 전혀 의심이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너무 무모한 행동이었어!’
뒤늦게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을 후회했다.
곡용천의 죽음에 이성을 잃고 무턱대고 놈을 쫓았으니, 그 결과가 좋을 리가 없었다.
좀 더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 놈을 추격하고 복수해야 했다.
거기에는 자신의 힘을 너무 과신했던 이유도 있었다.
‘놈!’
천성은 뱀가면사내를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여기는 어디인가?’
한데 그렇게 심하게 부서졌던 몸에서 전혀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면 자신이 죽어 저승에 온 것은 아닐까도 생각되었다.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킨 천성이 주위를 살피려 고개를 돌린 순간이었다.
“헉!”
기겁을 한 천성이 주저앉은 채 후다닥 뒤로 물러났다.
처음 보는 노인의 얼굴이 시야를 꽉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 누구십니까!”
놀란 천성이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혹시 저승사자인가!’
하지만 노인은 왠지 상상해 오던 저승사자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상투를 틀어 묶은 백발에다가 명치에 이를 만큼 늘어진 긴 수염까지, 마치 신선과도 같은 풍모를 지니고 있던 것이다.
한 가지 흠이라면 눈이 조금 흐리멍덩하다는 것이었다.
노인이 자신도 놀란 듯 흠칫 뒤로 물러서더니, 눈을 깜빡거리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응? 누구냐고?”
노인이 무언가 생각난 듯 갑자기 씨익 웃더니 천성에게 다시 다가왔다.
“오, 그래. 물어봐 줘서 고맙구만! 내가 누구냐 하면!”
천성은 긴장된 모습으로 노인의 말을 기다렸다.
“…….”
“…….”
노인이 눈만 멀뚱히 뜬 채 천성을 바라보았다.
“저…… 그러니까, 누구신지요?”
“그렇지! 맞아! 내가 누구냐 하면!”
말을 하려던 노인이 식은땀을 흘려댔다.
그렇게 눈을 껌뻑거리며 한참을 서 있던 노인이 벌떡 일어났다.
“내가 누구지? 누구더라? 엉? 대체 나는 누구지? 여기는 어디지? 가만, 어디 보자. 그렇지! 근데, 내가 누구지?”
노인은 여전히 횡설수설하며 좌우로 왔다 갔다 했다.
천성은 왠지 정신이 나간 듯 보이는 노인이 저승사자일 리는 없다 생각했다.
그리고 저승이라 생각하기엔 주변 풍경이 봉황산의 모습과 비슷해 보였다.
자신이 쓰러졌던 곳은 아니지만 멀리 보이는 봉우리나 산세를 보아 봉황산이 분명했다.
‘이게 어찌 된 것이지? 가만!’
천성은 자신이 옷을 입고 있지 않음을 눈치챘다.
그제야 천성은 자신의 몸 상태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놀랍게도 뱀가면에게 당한 상처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부러진 뼈도 모두 다시 붙어 있었고, 검에 찔린 상처 역시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왼쪽 가슴에는 전에는 없던 푸른색의 회오리 문양이 자리 잡고 있었다.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온몸에 알 수없는 힘이 넘쳐흐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신을 잃기 전에도 어지간한 고수들을 능가하는 힘을 지닌 천성이었다.
한데 그때보다도 더 강력해진 것이다.
“이봐, 젊은이! 혹시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나?”
그때, 백발노인이 후다닥 달려오더니 천성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대체 이 노인은 누구인가?’
천성이 난감한 표정으로 노인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정신을 차리자마자 처음 만난 사람이 이런 정신 나간 노인이라는 것이 묘했다.
어쩌면 천성의 지금 모습과 연관됐을 가능성도 있었다.
“오, 파편이 잘 봉인되었군!”
그 순간, 천성의 왼쪽 가슴을 본 노인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흐릿하던 눈빛은 어느새 또렷해져 있었다.
“어르신께서는 이것에 대해 아십니까!”
천성이 다급히 노인에게 물었다.
“알지! 암! 한데, 내가 누구란 말인가.”
하지만 다시 눈빛이 흐릿해진 노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심란하게 좌우로 왔다 갔다 하기 시작했다.
천성은 자신에게 닥친 괴이한 상황이 도무지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정황상으로 보아 저 노인은 무언가를 알고 있음이 분명했다.
‘일단 움직여 봐야겠어!’
이곳이 저승인지, 아니면 봉황산인지 알기 위해서는 일단 숲을 벗어나야 할 필요가 있었다.
천성은 노인을 힐끗 한 번 바라본 후 걸음을 옮겼다.
그때, 앞쪽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산을 샅샅이 뒤져서라도 반드시 놈들을 찾아내라!”
‘이것은 남이건 대협의 목소리!’
천성은 재빨리 몸을 숨긴 채 앞쪽을 살폈다.
이런 모습으로 그들과 만나게 되면 아무래도 곤란했기 때문이다.
한데 아무리 살펴도 가까운 곳에는 남이건이나 무인들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분명 소리는 들리는데 대체 어떻게 된 것이지?’
다시 한 번 집중해서 앞쪽을 살핀 천성은 깜짝 놀랐다.
‘엇! 이게 무슨!’
오십 장은 떨어진 듯 보이는 곳에 관도가 있었고, 그곳에서 남이건과 무림맹의 추적대가 흑의인들의 흔적을 쫓고 있던 것이다.
문제는 그곳의 소리가 바로 앞에서 들은 것처럼 또렷하게 들렸다는 것이다.
그 순간, 천성은 자신의 감각이 이전과 달라졌음을 알아차렸다.
청력은 최소한 전보다 열 배 이상 예민해진 것이 분명했다.
시력 또한 상승해 있었다.
제법 멀리 떨어진 남이건 일행의 움직임과 표정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했을 일이다.
잠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던 천성이 현 상황을 정리했다.
“일단 남이건과 무림맹 무사들이 있는 것을 보면 내가 죽은 게 아니란 말이군.”
“그럼 당연하지! 내가 힘들게 살렸는데!”
“허억!”
그때, 노인이 갑자기 고개를 불쑥 내밀며 말했다.
두 눈은 다시 또렷해져 있었다.
“어, 어르신이 저를 살리신 겁니까?”
천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랬나?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가? 아냐! 내가 살렸지! 맞아! 암! 한데, 나는 누구지?”
다시 노인이 횡설수설했다.
“휴…….”
한숨을 내쉰 천성은 고민에 빠졌다.
노인이 대체 무슨 수로 죽을 뻔한 자신을 살렸단 말인가.
천성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사이, 남이건과 무림맹의 추적대는 시야에서 멀리 사라져 갔다.
“일단 이곳을 나가자.”
천성은 일단 유가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궁혁도와 문도들이 걱정하며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무언가 입을 것이 필요했다.
“아이고, 힘들다! 나이가 먹으니 이 조그만 언덕배기 하나도 넘기가 힘에 부치는구나! 에휴!”
그때, 관도에서 다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성은 흥분된 표정으로 얼른 그곳을 향해 달려갔다.
“허억!”
순간, 천성은 놀라 자빠질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