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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재천 1(14화)
4장 각성(覺醒)(2)


우지끈!
콰당탕!
살짝 땅을 박찼을 뿐인데 눈이 번쩍하더니, 한참 앞쪽에 위치해 있던 나무와 충돌해 버린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천성의 몸과 충돌한 아름드리나무가 또깍 부러져 버렸고, 천성의 몸에는 생체기 하나조차 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통증은 상당했다.
“아이쿠!”
천성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일어섰다.
어느새 오십 장이 넘는 거리를 통과해 관도에 도착해 있었다.
‘이런 빠르기라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현실에 천성이 멍하니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간신히 정신을 추스른 천성이 고개를 들어보니, 좀 전에 들었던 목소리의 주인공인 듯한 중년인이 놀란 표정으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천성을 쳐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숲 속에서 알몸의 청년이 나무를 부러뜨리며 나타났으니 중년인으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어르신, 말씀 좀 묻겠습니다. 혹시 여기가 봉황산이 맞는지요?”
천성은 얼른 숲을 나서며 중년인에게 마지막 확인을 하기 위해 물었다.
“누, 누구여?”
봇짐을 꼭 끌어안은 중년인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천성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그제야 천성은 자신이 아무것도 입지 않고 있음을 기억해 냈다.
“아! 제, 제가 사고를 당해서, 그…… 산적들에게 털리는 바람에…….”
천성이 재빨리 얼버무린 후 자신의 부끄러운 부위를 가렸다.
“하하하…….”
그러면서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뭐하나?”
“허억!”
그때, 사라졌던 정체불명의 노인이 천성의 옆에서 나타났다.
“뭐 재밌는 거라도 있는 겐가? 어디, 응? 재미없게 생긴 사내 녀석밖에 없는데?”
분명 숲에 놔두고 온 듯했는데 노인은 어느새 자신의 옆에 나타나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저…… 이분과 이야기를 나눌 동안 잠시만 조용히 해 주십시오.”
천성이 백발 노인에게 정중히 부탁했다.
중년인은 그 모습을 뜨악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저 젊은이가 정신이 이상한 것이 분명하구나! 허공에다 대고 말을 하다니!’
중년인이 보기에 천성은 미친 것이 확실해 보였다.
자신과 이야기를 하다 말고 갑자기 옆의 허공을 보며 사람이 있는 듯 말을 했기 때문이다.
옷을 입지 않은 것하며, 혼자 말하는 것하며, 온전한 사람이 저런 몰골을 하고 돌아다닐 리가 만무했다.
“쯧쯧, 아직 나이도 어린 것 같은디, 안됐구먼.”
중년인이 측은한 표정으로 혀를 찼다.
천성은 무언가 분위기가 이상함을 느끼고 중년인에게 다급히 설명을 했다.
“제가 지금 몰골이 이리된 것은 피치 못할 사정이…….”
천성의 말이 마저 끝나기도 전에 중년인이 봇짐을 뒤지더니, 허름한 옷 한 벌을 던져 주었다.
“쯧쯧, 멀쩡하게 생겼는디 안됐구먼. 이거라도 걸치고 다녀. 부모가 버린 거여? 왜 이런 숲 속을 돌아다니는 것이여? 그리고 아무한테나 아는 척하지 말어. 나쁜 아저씨들을 만나면 큰일 나니께! 워미, 불쌍한 것.”
중년인은 천성에게 육포까지 챙겨 주고는 연신 혀를 차며 언덕을 넘어갔다.
천성은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표정으로 중년인이 남기고 간 육포와 옷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그래, 어쨌든 옷은 구했잖아…….’
천성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하고는 옷을 입었다.
다행히도 옷은 조금 작기는 했으나 그런대로 입을 만했다.
그 와중에도 백발노인은 계속 천성 근처를 얼쩡거리면서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고 있었다.
천성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자신은 뱀가면과의 싸움에서 죽기 일보직전의 큰 부상을 입었다가 무슨 일인지 말짱한 몸으로 되살아났다.
거기다 감각과 힘도 훨씬 강력해진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이 일은 정체불명의 노인과 연관이 있음이 분명했다.
한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노인은 정신이 온전하지 못했다.
어찌 되었든 자신의 지금 모습에 대한 의문의 열쇠는 노인이 쥐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 상황에서는 노인에게 물어보는 방법밖에 없었다.
“어르신, 저를 어떻게 치료하신 겁니까? 그리고 제 몸은 대체 어떻게 된 것입니까?”
천성은 큰 기대 없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노인에게 물었다.
“끌끌, 네 몸은 ‘태초의 파편’의 힘을 빌어서 재구성되었다.”
어느새 맑은 눈빛으로 돌아온 노인의 대답에 천성은 깜짝 놀랐다.
‘정신이 돌아온 건가!’
노인은 말투까지 달라져 있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일단 대화가 통한다는 것이 중요했다.
천성은 재빨리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제 힘은 어찌 된 것입니까? 감각과 엄청난 속도는요?”
“후훗, 너의 몸을 재구성하면서 기문(氣門)을 생성하고, 영안(靈眼)을 열었기 때문이지.”
천성은 도무지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가 없었다.
“기문은 무엇이고, 영안은 무슨 이야기입니까?”
“기문은 기운을 받아들이고 내보내는 통로다. 인간이 공기를 호흡하듯 기문을 통해 자연지기를 호흡하는 것이지. 영안은 다섯 기문(氣門)으로 받아들인 자연지기를 이용하여 영력(靈力)을 발휘하고 조절하는 곳이다! 영력은 의지의 발현을 통해 실현된다! 한계를 넘어서는 강력한 의지는 기문의 일통(一統)을 이루고 영안을 확장시켜 우주와 소통하게 된다!”
노인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진중한 얼굴로 바로 답을 토해냈다.
하지만 천성으로서는 도저히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는 이야기였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이해가…….”
천성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노인의 입술이 양쪽으로 말려 올라갔다.
“암! 어려운 얘기지! 쉽지 않지! 하지만 다 방법이 있어! 암! 그렇구말구!”
신이 나서 떠들던 노인의 신형이 흐물거리는 듯하더니, 갑자기 천성에게 달려들었다.
“헛!”
천성이 재빨리 몸을 뒤로 물렸으나, 노인의 움직임은 너무도 빨랐다.
쉬이이이익!
“이, 이게 무슨!”
놀랍게도 막 두 사람이 충돌하려는 순간, 노인이 천성의 몸속으로 쑤욱 빨려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오호, 그렇군! 기문을 다섯 개 뚫었지! 내가! 예쁘게 잘 뚫렸네! 암! 내가 했지!]
천성의 머릿속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성으로서는 놀라 자빠질 일이었다.
말투도 어느새 원래의 경망스러운 말투로 돌아와 있었다.
‘가만! 아까 그 중년인이!’
천성은 자신이 노인과 대화하는 순간에 옷을 준 중년인이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았음을 기억해 내었다.
‘혹시, 내가 귀신이라도 들린 것인가!’
천성은 문득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허, 귀신이라니! 난 귀신이 아니야! 가만. 아닌가? 귀신일 수도. 아니지, 아니야! 난 귀신은 아닌 것이 분명해!]
노인의 정신이 다시 이상해지려 하는 징조가 보였다.
귀신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천성은 이 괴이한 상황과 노인의 존재가 두렵고도 혼란스러웠다.
“귀신이 아니라면 대체 당신은 무엇입니까? 인간이기는 한 겁니까?”
[인간? 아니지! 난 인간은 아니지! 내가 어떤 존재인고 하면!]
노인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
“…….”
[내가 어떤 존재인고 하면!. 난 뭐지? 내가 뭐였드라? 인간은 아닌데…….]
결국 다시 노인의 상태가 불안정해졌다.
아무래도 자신의 정체에 대해 물으면 이렇게 되는 것 같았다.
천성은 머릿속에서 정신없이 떠들어대는 노인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커험, 어찌 되었든 내 존재가 무엇인지는 차차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 하던 일이나 마저 하자!]
화아아아악!
“나중에라니요…… 허억!”
순간, 천성의 몸으로 갑작스럽게 강력한 기운들이 몰려왔다.
몸 안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다섯 군데의 통로를 통해 엄청난 기운들이 빨려 들어오고, 곧이어 반대편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기문이다! 알았지? 지금 이 느낌을 기억해 두거라! 이렇게 자연지기를 빨아들이고 뱉어내는 거야!]
자연지기가 몸 안을 통과하면서 노인이 알려 준 기문이라는 것이 빠른 속도로 회전했다.
이어 기문(氣門)의 회전을 통해 생성된 순수하고 농밀한 기운이 미간을 향해 치달아 올라갔다.
[이것이 영력이다! 미간에 정신을 집중해라!]
천성은 노인의 호통에 자신도 모르게 미간에 정신을 집중했다.
화아아아아악!
순간, 주변의 기의 흐름과 사물의 미세한 움직임이 일목요연하게 느껴졌다.
또한 미간에 눈에 보이지 않는 좁쌀만 한 무언가가 자리 잡고 있어 그곳으로 새로운 심상이 맺히는 느낌이 들었다.
‘이것이 영안인가!’
[자, 이젠 달려 보도록 하지!]
노인이 귀신인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간의 행동들로 볼 때 위험하거나 사악한 존재는 아닌 듯했다.
자신을 살려준데다 힘까지 주었고, 악의를 갖고 있지도 않았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상태를 보아서는 무슨 음모를 꾸민다든지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일단 천성은 노인의 말에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천성이 다리에 힘을 주고 땅을 박찼다.
휘이이이이익!
“헉!”
우지끈!
콰당탕!
자신의 달리는 속도가 이전보다 빨라졌음을 깜빡 잊었다.
거기다 이번에는 아까보다도 몇 배는 더 빠른 것 같았다.
“아이쿠!”
천성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일어섰다.
[아프겠다. 그렇지? 많이 아프지? 어허, 조심 좀 하지. 아니지, 내가 알려줘야 했지. 영안을 연 상태에선 속도가 엄청 빨라지거든.]
“끄응…….”
천성이 괴로운 표정으로 신음을 흘렸다.
분명한 것은 천성의 몸이 이전과 달라졌다는 것이다.
힘이 상상조차 안 될 정도로 강해졌으며, 속도 또한 빨라졌다.
영안이란 것을 사용하면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졌다.
또한 몸뚱이가 무쇠처럼 단단해졌다.
[눈으로 보려 하지 말고 영안으로 보도록 해라. 다시 한 번!]
천성은 노인의 다시 한 번이라는 말에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어차피 상처 입거나 다치지는 않으니 이 힘에 대해 익숙해지는 것이 좋겠지.’
실제로 이 힘이 어떤 능력을 발휘하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기분이라면 뱀가면과 다시 맞선다 해도 결코 질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이 힘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어야 했다.
천성은 다시 한 번 몸을 움직였다.
노인이 몇 번을 반복해서 기문과 영안을 여는 방법을 직접 알려 주고 난 뒤, 천성은 결국 스스로 영안을 열 수 있게 되었다.
아직은 다소 미흡하고 완벽하게 통제가 되지는 않았으나 알면 알수록 놀라운 능력이었다.
[그래. 이제 그런대로 이해한 것 같구나.]
천성은 다시 한 번 이 노인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졌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것 같으면서도 영력이라는 힘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정상적인 걸 넘어서 상당히 해박한 지식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이런 놀라운 힘을 전해 주고 죽은 사람을 살려낼 정도의 능력을 가졌다면…… 혹시 신은 아닐까? 아니면 신령이라든지.’
귀신은 아니라 했고, 인간도 아니라 했으니 생각할 수 있는 존재는 그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