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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재천 1(17화)
4장 각성(覺醒)(5)
철혈문으로 돌아온 천성은 곧장 궁혁제의 집무실로 달려갔다.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간 집무실엔 사촌 형 천룡이 궁혁제, 궁혁도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형!”
눈을 크게 뜬 천룡이 갑자기 달려온 천성을 쳐다봤다.
“엇! 우리 꼬맹이 아닌가. 하하하!”
천룡이 다가와 천성을 덥석 안았다.
“이렇게 부실해서야 이 형이 어디 마음을 놓겠냐. 핫하하!”
남들에 비해 작고 왜소한 천성의 모습을 천룡이 놀렸다.
“흥, 이래 보여도 다 근육이라고!”
“오호, 정말 제법 단단해졌는데?”
천룡이 천성의 이곳저곳을 만져 보더니 짐짓 감탄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사이, 영안으로 천룡의 기운을 살펴본 천성은 놀랐다.
형의 몸에 흐르는 기운의 양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얼핏 궁혁도와 비교해 보니, 거의 열 배가 넘는 어마어마한 내공을 가지고 있었다.
화운곡에서의 몇 년 동안 괄목상대(刮目相對)한 발전을 거둔 것이 틀림없었다.
“호, 이제껏 본 인간들 중엔 가장 강한 기운을 가지고 있구나. 네 사촌 형이 제법인걸!”
무숙조차 얼굴에 이채를 띨 정도로 천룡의 공력은 대단했다.
가볍게 장난을 주고받는 천성과 천룡을 보며 궁혁제와 궁혁도는 미소 지었다.
“한데 숙부님의 팔은 어찌 된 것이냐?”
그제야 조남석의 잘려진 팔을 발견한 것이다.
갑자기 정색을 한 천룡의 물음에 나머지 세 사람이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실은…….”
천성이 조심스럽게 유가장의 사건을 이야기하자 천룡은 크게 분노했다.
“감히! 어떤 놈들이 그런 짓을!”
“무림맹에서조차 놈들의 정체를 밝히지 못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정말 무서운 놈들이었어.”
궁혁도가 그때의 일이 생각나는지 진저리를 쳤다.
“걱정 마십시오, 숙부님! 반드시 그놈들을 찾아 복수를 하겠습니다! 제가 있는 한 이제 그 누구도 철혈문을 무시하지 못할 것입니다!”
천룡이 눈에 불을 켜며 다짐했다.
“그래, 니가 돌아오니 든든하구나.”
궁혁제가 흐뭇한 얼굴로 천룡을 바라보았다.
“앞으로 계획은 있느냐?”
무거운 분위기를 돌릴 겸해서 궁혁도가 천룡에게 물었다.
“무림맹에서 천하영웅대회를 열어 새로운 인재를 등용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 번 도전해 보려 합니다.”
분노를 가라앉히고 차분함을 되찾은 천룡이 대답했다.
구천마련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에 대비하고, 아직 강호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숨은 잠룡들을 발굴해 내기 위해 무림맹에서는 후기지수들을 대상으로 천하영웅대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때맞춰 하산을 한 천룡에게는 명성을 날리고 경험을 쌓을 안성맞춤의 기회였다.
“아무래도 구천마련 때문에 무사들을 모집하는 모양이구나. 잘 생각했다. 천룡이 너라면 충분히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칠 수 있을 게야! 핫하하!”
궁혁제가 호탕하게 웃으며 천룡을 대견하다는 듯 바라봤다.
“그래, 이참에 천성이 너도 나와 같이 무림맹으로 가자!”
천룡이 갑자기 생각난 듯 천성에게 말했다.
혼자 여행하는 것보다는 천성과 함께하는 것이 훨씬 재미있을 것 같아서였다.
거기다 앞으로 강호의 영웅이 될 자신이 천성을 잘 챙긴다면, 무림맹에서 제법 괜찮은 자리 하나는 얻게 해 줄 수도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후후후, 넌 형 잘 만난 걸 고맙게 생각해라.”
기분 좋은 상상에 빠진 천룡이 입을 귀에 건 채 천성의 어깨를 툭, 쳤다.
“형 말대로 천성이 너도 이번 기회에 한 번 도전해 보거라. 경험을 쌓을 좋은 기회야.”
궁혁도가 천룡의 의견에 찬성했다.
천성이 생각하기에도 제법 괜찮은 생각이었다.
무림대회에 참가하게 되면 다양한 상대와 겨뤄 볼 수 있을 것이다.
무림인들을 상대하며 자신의 신체에 좀 더 적응하고 영력을 조절하는 법도 확실히 익힐 수만 있다면 굉장한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최대한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싸워야 하니, 순전히 육체의 움직임과 예민해진 감각만을 사용하여 상대와 대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감각과 육체의 수련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오, 좋은 수련 기회구나. 행동만 신중하게 한다면 큰 문제 없이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겠어!”
무숙 역시 긍정적으로 말했다.
“네. 저도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형님을 도와 꼭 무림맹의 정식 무사가 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천성과 천룡의 천하영웅대회 출전이 결정되었다.
5장 선검문(1)
천성과 천룡의 출발 날짜는 열흘 후로 정해졌다.
천룡은 그동안 조금씩 여행 준비를 하는 동시에 여기저기 문도와 식구들에게 불려 다니며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그런데 닷새째 되는 날 철혈문에 하나의 소식이 날아들었다.
문주 집무실에는 궁혁제 형제와 천룡, 천성이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흠, 사부님이 계시는 선검문(善劍門)이 위험을 겪고 있다는구나.”
궁혁제가 식구들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흑암문(黑暗門)과 분쟁이 생긴 모양이야.”
세 사람은 놀란 표정으로 궁혁제를 바라보았다.
흑암문이라 하면 섬서의 사파 중 제일 규모가 큰 문파였다.
섬서는 화산과 종남이 버티고 있어 정파의 세력이 강한 곳이었다.
비록 두 문파와는 거리가 제법 떨어진 연안(延安)에 위치해 있으나, 섬서에서 사파로 당당히 세력을 구축했다는 것은 그 전력이 만만치 않음을 말해 주는 것이었다.
사혈맹의 팔대세력에 들지는 못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강력한 무력과 무사들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 흑암문이었다.
“그간 마찰이 조금씩 있었으나 심각한 상황까지는 치닫지 않았는데, 어찌 된 일입니까?”
궁혁도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사실 선검문의 전력은 흑암문에 비해 많이 뒤처졌다.
고수의 숫자나 전체 무사의 수를 비교해 봐도 거의 두 배는 차이가 났으며, 초절정고수인 흑암문주 혈도객 공소추를 상대할 수 있는 무인이 선검문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흑암문이 마찰이 있을 때마다 일이 크게 번지지 않도록 최대한 자중하고 선검문을 자극하지 않은 이유는 선검문 뒤에 공동파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었다.
최근 공동파는 화경의 고수인 복마검선(伏魔劍仙) 장하벽을 배출해 내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구사하고 있어 구파일방에서도 손가락에 꼽힐 만큼 막강한 전력을 갖추고 있었다.
공동파가 개입할 여지가 존재한다는 것은 흑암문주 공소추에게도 상당한 부담이어서, 확실한 명분이 없는 이상은 선검문을 함부로 공격할 수가 없던 것이다.
그런데도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은 무언가 흑암문에게 명분이 생겼다는 뜻이기도 했다.
“자세한 사항은 직접 들어 봐야 알 수 있겠으나, 선검문의 제자들이 부녀자를 겁탈하던 흑암문의 무사 두 명을 죽인 모양이야. 전서에 의하면 선검문이 그에 합당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보름 후에 선검문을 치겠다고 흑암문이 선전포고를 해 왔다는구나.”
전서가 오는 데 하루는 걸렸을 테니, 편지에 쓰여진 흑암문의 공격까지는 이제 열나흘 정도 시간이 남은 셈이었다.
“아니, 부녀자를 겁탈했으면 당연히 흑암문의 무사들에게 먼저 죄가 있는 것 아닙니까!”
천성이 분노해서 소리쳤다.
“흠, 그렇긴 하다만, 일단 흑암문은 자파의 무사들이 둘씩이나 죽었으니 그자들에게도 할 말은 있는 셈이지. 어쨌든 우리가 사부님의 어려움을 모른 척할 수 없는 상황이니, 일단 서둘러 선검문으로 가야겠구나.”
궁혁도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천성이와 함께 가서 흑암문 녀석들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 주겠습니다!”
천룡이 자신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일단 너와 천성이, 일중이가 나와 함께 가는 것으로 하자.”
어차피 다른 문도들은 실력이 모자라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게 궁혁도를 따라 선검문으로 향할 일행이 결정되었다.
“네, 그럼 지금 곧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일행은 간단한 준비를 마치고 곧바로 선검문을 향했다.
* * *
선검문으로 향하는 동안 천성은 감각을 날카롭게 다듬는 데 집중했다.
음속에 적응하기 위해 감각을 더욱 예리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종종 염동력을 조절하는 연습도 했는데, 이제는 주먹만 한 돌멩이도 옮길 정도로 실력이 상승한 상태였다.
빠르게 길을 재촉하던 일행은 합수를 지나 이틀 만에 섬서성에 들어섰다.
노숙을 하며 서두른 결과,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을 절약한 일행은 섬서에 들어 숨을 돌리며 여유있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이제 천천히 움직여도 사흘 안에는 선검문에 도달할 수 있겠구나. 너무 서둘지 않아도 될 듯하다.”
궁혁도가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비리비리해 보여서 걱정했는데, 그간 수련을 게을리하지는 않았나 보구나. 후훗.”
천룡이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천성을 놀렸다.
“어허, 게으름이라면 형을 따를 사람이 없는 걸로 아는데?”
천성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이 형이야 천하제일고수가 될 사람이 아니냐. 놀면서 해도 따를 자가 없느니라. 너처럼 꼬맹이하고는 비교가 안 되지. 큭큭큭.”
천룡이 눈을 가늘게 뜨고 천성을 놀렸다.
“쯧쯧, 사부님들이 너무 심하게 굴려서 형의 정신상태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로군.”
천성이 자아도취에 빠진 천룡의 모습에 코웃음을 쳤다.
그렇듯 두 형제가 투닥투닥 장난치며 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어 있었다.
“흠, 가까운 마을까지는 거리가 있는 듯하니, 오늘은 근처의 적당한 곳에서 노숙을 해야겠구나.”
궁혁도가 일행을 멈춰 세웠다.
하늘도 흐릿한 걸 보니 비라도 한바탕 쏟아질 듯한 기세였다.
잠시 후, 역시나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져 내렸다.
“이런. 비가 더 오기 전에 머물 곳을 찾아야겠다!”
궁혁도가 발걸음을 서두르며 말했다.
일행을 따라 분주하게 걸음을 옮기던 천성 옆으로 무숙이 불쑥 나타났다.
“오, 머물 곳도 찾을 겸 영안을 열어 감각을 다듬는 것은 어떠냐?”
‘흠, 그럴까요?’
몇 번 실험해 본 결과, 영안과 영력을 무인들은 감지해 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공과는 다른 기운이었기 때문이다.
해서 다섯 기문으로 한꺼번에 많은 양의 자연지기를 흡수하지 않는 한 천성이 영력을 사용하는 걸 다른 사람에게 들킬 일이 없었다.
물론, 무숙이 말한 파편을 노리는 자들은 제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