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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재천 1(22화)
5장 선검문(6)


한편, 문주전으로 침투한 복면인들을 상대하는 선검문의 무사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오십여 명의 선검문 무사들이 달려들었으나 오히려 열 명의 침입자에게 휘둘리고 있었다.
이미 십여 명의 선검문 무사가 흑의인들의 검에 죽거나 다쳐서 쓰러져 있었다.
하지만 고수들이 한 명씩 가세하기 시작하자 열 명의 흑의인도 더 이상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대치 상태를 유지하는 데 급급했다.
이윽고 천룡이 당도했을 때에는 호연백과 호연성, 그리고 각 당의 당주들이 도착하여 흑의인들과 맞서고 있었다.
흑의인들은 모두 검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 움직임이 매우 빨라서 선검문의 무사들이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날카로운 공격을 허용하곤 했다.
절정고수인 호연백이 힘겹게 한 명의 흑의인을 상대하고 있었고, 유송문이 또 다른 흑의인을 상대하고 있었다.
다른 자들은 서너 명씩 짝을 지어 흑의인들을 막고 있었다.
놀랍게도 흑의인 열 명 모두가 절정이 넘는 고수라는 이야기였다.
천룡은 검을 빼 들고 조금은 밀리는 듯 보이는 호연백을 돕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호연백과 맞서고 있는 자가 열 명의 흑의인 중 가장 강해 보였기 때문이다.
장중한 검기가 서린, 무거우면서도 부드러운 일검이 흑의인에게로 날아갔다.
흑의인은 갑작스런 천룡의 협공에 손발이 어지러워졌다.
재빨리 검을 돌려 위험해 보이는 천룡의 일초를 막아 갔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호연백의 검이 흑의인의 허리를 갈랐다.
흑의인이 급하게 몸을 피했으나 오른쪽 허리가 깊게 베이고 말았다.
순간, 천룡의 검기가 막아선 흑의인의 검과 충돌했다.
쾅!
“크윽!”
어려 보이는 천룡의 모습 탓에 방심했던 흑의인은 검에 실린 기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손아귀가 찢어질 정도의 큰 충격에 뒷걸음질쳤다.
하지만 잠시의 틈도 없이 등 뒤로 돌아간 호연백의 검이 흑의인의 심장을 꿰뚫어 버렸다.
“크악!”
흑의인의 눈에서 초점이 사라졌다.
호연백을 밀어붙이던 흑의인으로서는 잠시의 방심이 만든 어이없는 죽음이었다.
천룡은 곧바로 부문주 호연상과 두 명의 당주가 상대하고 있는 흑의인에게 두 줄기의 검기를 날렸다.
호연백과 상대하던 자의 죽음을 본 흑의인이 위축된 몸짓으로 검기를 피했으나 세 사람의 합공을 견뎌 내지 못하고 이내 목이 잘렸다.
‘정말 절정이었나 보군!’
호연백은 검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천룡의 무위에 속으로 감탄했다.
검기가 그리 강력하진 않아 아직 절정 초입인 듯 보였으나 참으로 시기적절한 공격을 날리고 있어서 흑의인들의 허를 찔렀다.
천룡이 가세하여 순식간에 두 명의 흑의인이 죽게 되자 나머지 흑의인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들은 서로를 향해 알 수 없는 신호를 보내더니, 담장 근처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도망칠 수 있을 성싶으냐!”
호연백과 나머지 고수들이 흑의인의 퇴로를 막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파파파팟!
순간, 두 명의 흑의인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십여 개의 비도를 사방으로 투척했다.
갑작스런 비도의 공격에 선검문의 무사들이 움찔하는 순간, 나머지 흑의인들이 담을 넘어 달아났다.
두 명의 흑의인은 다시 한 번 십여 개의 비도를 날린 후 뒤돌아 달아났다.
하지만 이미 가까이 접근한 호연백과 유송문 등의 고수들에게 포위되어 결국 검을 맞고 목숨을 잃고 말았다.
“쫓아라!”
두 명의 흑의인이 고수들의 걸음을 붙잡는 동안 나머지 여섯 흑의인은 멀리 달아나 버렸다.
선검문의 무사들이 급히 추격했으나 흑의인들의 경공이 초절하여 따라잡기엔 이미 어려운 상황이었다.
천룡도 반 각쯤 추격하다 걸음을 멈추고 선검문으로 되돌아왔다.
마음만 먹으면 흑의인들을 따라잡을 수도 있을 터였지만, 일단 배후에 어느 정도의 전력이 더 있는지 알 수 없었고, 선검문 내의 상황부터 정리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놈들이 성동격서(聲東擊西)를 노렸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 * *

“웬 놈이냐!”
공동파의 숙소에 침입한 섬응을 세 명의 일대제자가 가로막았다.
셋 다 절정의 경지에 이른 고수였다.
검을 뽑아 들며 막아선 세 사람을 보며 섬응이 양손에 아미자(峨嵋刺)를 끼웠다.
그 순간, 섬응의 신형이 세 도사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헉!”
세 도사는 놀라며 재빨리 사방으로 섬응의 위치를 찾았다.
“크악!”
하지만 어느새 좌측으로 돌아간 섬응이 육사제 홍옥두의 옆구리에 긴 상처를 내고 있었다.
주저앉은 홍옥두의 목에 아미자를 박아 넣은 섬응이 번개처럼 다리를 놀려 비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가운데 위치한 도사의 머리 위로 뛰어올랐다.
“조심!”
우측의 염치서가 이사형 낙안성의 위험을 보고 경호성을 발했다.
낙안성은 신속하게 검을 들어 막아 갔으나 오른손의 아미자가 검과 부딪치는 순간 돌아 나온 섬응의 왼손이 낙안성의 가슴에 나머지 한쪽 아미자를 박아 넣었다.
“허억!”
폐에 구멍이 난 낙안성에게서 흘러나온 바람 빠지는 듯한 신음이 마지막 남은 도사 염치서의 귓전을 때리는 순간, 이미 섬응은 염치서의 배에 구멍을 내고 있었다.
그들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섬응은 재빨리 냉면검의 방으로 뛰어들었다.
섬응이 절정고수 세 명을 쓰러뜨리는 데는 미처 한 호흡도 걸리지 않았다.
공동파 도사들은 그야말로 제대로 손도 못 써 보고 당한 것이다.
방 안에는 냉면검 좌공이 이미 검을 빼 들고 밖으로 나오려 하고 있었다.
제자들이 그토록 쉽게 당할 줄 몰랐던 그의 표정은 분노에 한껏 일그러졌다.
쉬아아악!
방 안으로 뛰어든 섬응을 향해 좌공의 검기가 작열했다.
분노한 좌공은 처음부터 복마대구식의 절초를 사용하여 섬응을 공격했다.
공동파의 무공답게 하나하나가 실전적이고 위력적인 살초들이었다.
섬응의 눈에 수십 가닥의 검기가 사방을 옥죄어 오는 것이 보였다.
역시 좌공은 초절정의 고수답게 만만치 않은 자였다.
하지만 상대가 좋지 않았다.
섬응은 영력을 끌어 올려 검기 가닥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그 사이사이로 유연하게 몸을 움직였다.
피할 수 없는 네 가닥의 검기를 아미자로 비껴 낸 후 섬응은 좌공의 앞에 도달했다.
이 모든 게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좌공이 검기를 내뻗는 순간, 이미 섬응은 면전에 도달해 있었다.
섬응이 아미자를 빙글 돌리며 좌공의 복부를 공격했다.
속도가 너무 빨라서 좌공으로서도 흐릿하게 보일 뿐, 정확한 움직임을 잡아낼 수가 없었다.
온 힘을 기울여 뒤쪽으로 몸을 날린 좌공이 검을 가로로 뉘여 아미자를 막았다.
간발의 차이로 검에 튕겨진 섬응의 일격이 좌공의 옷자락에 구멍을 냈다.
뒷머리가 서늘해지는 무서운 일격이었다.
아미자가 튕겨 나간 순간, 제자리에서 한 바퀴 종으로 회전한 섬응의 발끝이 좌공의 턱을 차올렸다.
간신히 고개를 뒤로 젖혀 발길질을 피한 좌공의 코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공격의 여파가 안면을 스쳐간 것이다.
좌공은 지금의 상황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인간이 저런 속도가 가능하단 말인가!’
발길질을 날린 후 몸을 회전시켜 거꾸로 공중에 떠 있는 상태에서 섬응이 양팔로 끌어안 듯 좌공의 태양혈을 찍어 갔다.
좌공이 뒷걸음질치며 고개를 숙여 아미자를 피하는 순간, 어느새 자세를 뒤집은 섬응의 발길질이 복부에 작렬했다.
퍼퍼퍼벅!
순식간에 다섯 번의 발차기가 복부에 적중하자 좌공이 피를 토하며 벽 쪽으로 튕겨져 나갔다.
벽에 부딪치는 와중에 좌공은 복마대구식 중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최절초인 마지막 구초를 펼쳐 냈다.
수십 가닥의 검기가 살을 엘 듯한 예기를 뿜어내며 섬응의 전신을 압박했다.
피하기에는 그 촘촘함과 기세가 너무 강력했다.
섬응은 아미자를 회전시키며 자신의 정면에서 급소로 날아오는 검기들을 쳐 냈다.
손에서 저릿저릿한 충격이 느껴지고 간신히 위험한 몇 개의 검기들을 튕겨 낼 수 있었다.
쳐 내지 못한 나머지 검기들이 섬응의 몸 이곳저곳을 베고 지나갔다.
제법 깊은 상처였으나 치명적이진 않았다.
섬응의 두 손이 마지막 절초를 펼친 후 휘청이는 좌공의 가슴에 박혔다.
“크어억!”
비명을 지른 좌공의 신형이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 * *

미랑은 양손의 혈조를 교차시키며 천성에게 돌진했다.
그러나 천성의 영안에 미랑이 휘두르는 혈조의 움직임은 하나 빠짐없이 드러났다.
천성은 양 옆구리로 찔러 오는 혈조를 보며 몸을 구부린 채 오히려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혈조가 등 뒤로 스쳐 지나가며 천성의 왼 어깨가 미랑의 턱에 작열했다.
퍼억!
미랑이 급히 뒤로 고개를 젖혀 피했으나 스친 것만으로도 골을 흔드는 충격이 일었다.
미랑의 눈앞에서는 별이 번쩍했다.
삼 장이나 날아간 미랑이 사정없이 바닥에 처박혔다.
틈을 주지 않고 천성이 압축된 기탄을 쓰러져 있는 미랑에게 날렸다.
쿠웅!
보이지도 않는 기파에 미처 대처하지 못한 미랑은 무방비로 천성의 공격을 복부에 허용했다.
미랑의 복면 위로 핏물이 배어 나왔다.
아직 위력이 대단치 않은 기탄이지만, 그래도 작은 나무 정도는 손쉽게 부러뜨릴 수 있었다.
전혀 대비 못한 상태에서 당한 일격이라 적지 않은 내상을 입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뼈도 몇 개 부러졌을 것이다.
그때, 천성의 감각이 경고성을 발했다.
황급히 몸을 뒤로 젖힌 천성의 얼굴 위로 두 개의 아미자가 지나갔다.
섬응이었다.
‘이런! 이미 늦은 건가! 이놈들, 놓치지 않겠다!’
천성은 튕기듯 몸을 일으킨 후, 어느새 쓰러진 미랑을 어깨에 짊어진 섬응에게 돌진했다.
섬응은 예상보다 빠른 천성의 움직임에 당황했다.
그로서는 자신 못지않은 속도로 움직일 수 있는 자가 또 있으리라곤 전혀 예상 못했던 것이다.
천성의 왼발이 섬응의 허벅지를 후려쳐 갔다.
섬응은 뒤로 이 장이 넘도록 몸을 날려 간신히 천성의 발길질을 피할 수 있었다.
[미랑, 아직 정신이 있다면 놈에게 제혼술을 사용하여 움직임을 저지하라!]
소공녀의 지시에 희미하게 정신이 남아 있던 미랑이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제혼술을 펼쳤다.
섬응의 어깨 위에 늘어져 있던 미랑의 고개가 들리고, 황금빛으로 빛나는 눈동자가 달려드는 천성을 향했다.
‘엇!’
순간, 천성의 뇌리에 강력한 충격이 전해져 왔다.
돌진하던 천성의 몸이 잠시 굳어 버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섬응이 몸을 날려 달아났다.
[이런, 가소로운! 감히 그따위 불완전한 영력으로 정신 공격을 시도하다니!]
쩌어어엉!
순간, 무숙의 일갈과 함께 천성을 구속하던 힘이 깨져 버렸다.
“크아아악!”
제혼술이 깨지며 충격을 입은 미랑이 비명과 함께 혼절해 버렸다.
하지만 그사이 섬응은 미랑을 업은 채 이미 담을 넘어 달아나 버린 뒤였다.
“이런! 정말 빠른 놈이군!”
천성은 분통을 터뜨렸다.
“이쪽에 또다른 침입자들이 있다!”
그때, 소란을 듣고 달려온 선검문의 무사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천성이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니 마치 암습자와 같은 차림이었다.
‘젠장, 잘못하면 내가 뒤집어쓰게 생겼구나. 골치 아프게 됐군. 일단 몸을 피해야겠다.’
순간, 천성의 모습이 흐릿해지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