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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재천 1(25화)
6장 결전(3)
부우우우웅!
도끼날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곽오량의 귀청을 때렸다.
회심의 일격으로도 상대에게 큰 타격을 주지 못한 곽오량은 아쉬움을 삼키며 몸을 숙여 관패의 도끼를 피했다.
머리 위를 지나는 관패의 도끼에 곽오량의 머리카락이 한 움큼이나 잘려져 땅 위로 떨어졌다.
그러나 관패는 쉴 틈을 주지 않고 곽오량의 좌우로 도끼를 연신 휘둘렀다.
계속되는 연격에 곽오량은 피하는 데 급급해 뒤로 물러설 뿐이었다.
어쩌다 한 번 관패의 도끼와 부딪칠 때면, 손이 저릿저릿한 충격에 검을 거의 놓칠 정도였다.
패력검이란 별호처럼 힘에서는 결코 누구에게도 진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던 곽오량이었지만, 관패의 신력에는 그도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무기의 이점이 더해지자 힘의 차이는 더욱 커진 것이다.
선검문의 뒤쪽에서 철혈문도들이 두 사람의 싸움을 안타까운 표정으로 관전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힘들어 보이는군.”
일중이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공에서 이미 차이가 제법 나는군요. 거기다 상대가 좋지 않았습니다. 둘 다 힘을 위주로 하는 무공을 사용하는데, 무기의 상성에서 아무래도 도끼가 힘을 실어 주기에 좋지요. 방법은 빠른 움직임으로 극복하는 것뿐인데, 용검단주라는 분이 섬세한 검법을 구사하는 무인은 아니니…….”
천룡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상황을 반전시킬 길을 찾지 못하고 계속 밀리고 있는 곽오량의 모습에 선검문 문도들의 안색도 덩달아 어두워졌다.
관패의 도끼가 바람을 가를 때마다 곽오량은 휘청거렸다.
오십 초도 지나지 않아 곽오량의 몸 이곳저곳이 도끼에 베여 피가 흥건해졌다.
곽오량은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는 필패였다.
다소 무리를 하더라도 지금의 상태를 벗어나야 했다.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한다!’
곽오량은 힘이 빠진 듯 검을 슬쩍 내려 왼쪽 어깨를 노출시켰다.
관패의 눈이 빛났다.
관패의 도끼가 번개같이 곽오량의 어깨를 내리찍었다.
순간, 곽오량이 검을 쥔 왼손을 풀어 내리찍는 관패의 도끼를 막아 갔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곽오량의 왼팔을 손목 위쪽부터 자른 도끼가 어깨를 스치며 지나갔다.
그때, 한 손으로 검을 잡은 곽오량이 도끼를 휘두른 후 몸을 빼지 못한 관패의 심장을 찔러 갔다.
얼굴을 일그러뜨린 곽오량의 입가에서 핏물이 흘렀다.
입술을 깨물어 고통을 참아 내며 마지막 일격을 날린 것이다.
하지만 전혀 동요하지 않는 관패의 눈빛을 본 곽오량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순간, 세상이 한 바퀴 돌고 뇌리가 하얗게 변했다.
목을 잃은 채 무너지는 자신의 육신이 곽오량이 세상에서 본 마지막 광경이었다.
관패가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회전시켜 반대편 도끼로 곽오량의 목을 날려 버린 것이다.
곽오량의 죽음에 선검문의 진영에서는 침묵이 흘렀다.
잔혹한 광경에 천성은 굳어 버렸다.
자신이 서 있는 세계가 어떤 곳인지 잠시 잊고 있었다.
피와 죽음이 늘 함께하는 곳이 바로 강호무림인 것이다.
강호란 대지를 밟고 있는 한 천성은 죽음에 익숙해져야 했다.
선검문 무사들이 이내 곽오량의 시신을 수습했다.
“크하하하하! 이제 너희들의 주제를 알겠느냐? 더 볼 것도 없이 호천덕 네놈이 나랑 붙어서 끝장을 보자!”
관패의 외침에 선검문의 무사들은 이를 갈며 분노했다.
호천덕은 관패와 강호에서 한 배분 이상 차이가 났다.
관패가 함부로 이름을 논할 사람이 아닌 것이다.
그야말로 저잣거리 무뢰배들이나 하는 행동이었다.
“이이! 내 저놈을! 네놈은 위아래도 없단 말이냐!”
한 켠에 서 있던 부문주 호연상이 분노에 차서 나섰다.
“잠깐! 부문주님, 저놈은 저에게 양보해 주십시오.”
차분한 목소리로 대연문의 고수인 유송문이 나섰다.
“그래, 너는 잠시 물러서거라. 유 호법이시라면 저자를 충분히 상대하실 것이다!”
호연백이 동생을 만류했다.
천변검(千變劍) 유송문 또한 절정 중반의 고수였다.
거기다 화산의 속가답게 검의 변화가 심하고 초식이 화려했다.
그러니 관패와는 좋은 승부가 될 것이다.
호연상 또한 그것을 알기에 분노를 삼키며 뒤로 물러섰다.
유송문이 천천히 중앙으로 걸어나갔다.
“대연문의 유송문이네.”
유송문이 검을 비스듬히 세워 관패를 향해 겨눴다.
“흥! 대연문에서 예까지 죽으러 왔구나!”
말은 그리했으나 관패도 잔뜩 긴장한 채 유송문을 마주했다.
그가 느끼기에도 유송문의 기세가 만만치 않던 것이다.
“먼저 공격하겠다!”
유송문의 검이 유려하게 곡선을 그리며 관패를 베어 갔다.
검끝이 끊임없이 흔들리는 것이, 어느 곳을 노리고 있는지 알아차리기가 매우 힘들었다.
“그깟 얕은 수작이 내게 통할 듯싶으냐!”
관패가 검의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아래에서 위로 도끼를 휘둘렀다.
후우우우우웅!
수십 가닥으로 갈라져 흐르던 유송문의 검로가 단번에 잘리고, 관패의 도끼가 유송문의 사타구니 쪽으로 마치 몸을 반으로 가를 듯 매서운 바람을 일으키며 솟구쳤다.
순간, 유송문의 다리가 엇갈린다 싶더니, 무게가 없는 양 경쾌하게 보법을 밟아 관패의 왼쪽 옆구리로 짓쳐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유송문의 검이 여덟 개로 변하더니, 칼날 같은 검기를 내뿜어 관패의 요혈을 노렸다.
검기 하나하나가 위험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관패가 다급히 왼쪽 도끼를 풍차처럼 돌리며 여덟 개의 검기를 쳐 내었다.
그러자 다시 한 번 변한 유송문의 검이 도끼를 살짝 비껴내더니, 자루를 타고 올라 관패의 손목을 노렸다.
그야말로 쉴 틈을 주지 않는 매서운 공격이었다.
손목을 노리는가 싶으면 어느새 관패의 허벅지를 베고 지나갔고, 심장을 노리는가 싶으면 옆구리를 찔러 왔다.
병기의 이점을 충분히 살린 곽오량과의 대결과 달리, 이번에는 오히려 무거운 병기의 둔한 움직임이 짐이 되고 있었다.
유송문의 변화무쌍한 검에 관패는 막는 데 급급해졌다.
속도를 앞세운 유송문은 이리저리 도끼를 피해 움직이며 관패의 틈을 놓치지 않고 날카로운 공격을 날렸다.
반면, 관패의 강력한 일격은 묘하게 비껴서 튕겨 내었다.
“이야아앗!”
패색이 짙어지자 어차피 한 대 때리고 한 대 맞는다면 자신이 유리하리라 생각한 관패가 기합을 내지르며 쌍부를 교차시켜 휘둘렀다.
수비를 도외시한 관패의 무지막지한 공격에는 유송문도 잠시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그 잠깐의 시간이 관패에게 여유를 되찾아 주었다.
관패는 그틈을 놓치지 않고 양손의 도끼를 번갈아 휘둘러댔다.
까강! 깡!
유송문은 용케도 관패의 도끼를 비껴서 튕겨 내며 차분히 막아 내었다.
하지만 관패의 위력적인 공격을 막다 보니 유송문의 몸에도 여기저기 상처가 생겨났다.
검을 비껴 막아 충격을 해소시켰다 해도 워낙에 강력한 일격들이어서 그 여력을 완전히 방어하진 못한 것이다.
양 문파의 무사들은 두 사람의 일진일퇴에 순간순간 희비가 엇갈렸다.
철혈문도들 또한 손에 땀을 쥐며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이십여 합 정도 계속 밀려나며 관패의 도끼를 막던 유송문의 신형이 느닷없이 흐릿해지더니, 마치 연체동물처럼 부드럽게 관패의 도끼 사이로 움직였다.
화산의 절기인 암향표를 극성으로 펼친 것이다.
유송문은 마치 바람이 움직이는 듯 도끼와 도끼 사이를 피해 관패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도끼가 허공을 내려치자 몸이 앞으로 쏠려 버린 관패는 깜짝 놀랐다.
어느새 유송문의 날카로운 검이 자신의 심장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관패는 사력을 다해 몸을 옆으로 틀었다.
어차피 막기는 힘드니 급소라도 피하려는 움직임이었다.
쉬이익!
“크윽!”
유송문의 검이 관패의 겨드랑이 밑을 길게 할퀴고 지나갔다.
간신히 심장은 피했지만, 제법 깊은 상처였다.
쿵!
순간, 검을 찌른 유송문이 왼쪽 어깨를 밀어 올려 관패의 가슴팍을 사정없이 두드렸다.
삼 장여나 날아간 관패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제대로 들어간 유송문의 일격에 내상을 입어 기혈이 뒤틀렸다.
하지만 유송문은 조금의 틈도 주지 않고 바람처럼 관패에게 돌진했다.
가물거리는 정신을 붙잡으며 관패가 잔뜩 기운을 주입한 쌍부를 유송문을 향해 집어 던졌다.
마지막 힘을 모은 회심의 일격이었다.
슈아아악!
두 개의 도끼가 주변을 진공으로 만들며 섬뜩한 속도로 유송문에게로 향했다.
도끼가 닿지도 않았는데 살을 에는 기파에 유송문의 피부가 갈라져 피가 배어 나왔다.
유송문이 눈을 부릅뜨고 다시 한 번 극성의 암향표를 발휘했다.
스스슥!
미처 완전히 피하지 못한 한 개의 도끼가 유송문의 왼쪽 어깨에 긴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유송문은 십여 가닥의 검기 다발을 날려 여력이 남지 않은 관패를 공격했다.
퍼버버벅!
무방비 상태의 관패가 유송문의 검기에 난자되었다.
“크악!”
회생불능의 중상이었다.
유송문의 승리였다.
“와아아아아아!”
선검문의 무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역시 천변검 유송문 대협이군!”
선검문의 소공자 호무강이 잔뜩 고무되어 외쳤다.
“하하하! 우리 대연문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이시라네! 저까짓 사파의 무뢰배에게 당하실 분이 아니시지! 걱정 말게! 유 호법께서 흑암문 졸개들을 모조리 물리쳐 주실 것이니!”
감석보가 마치 자신이 한 일인 양 호무강에게 호들갑을 떨었다.
‘참으로 보기 싫은 놈이군. 분위기 파악 못하고 떠들어대는 꼴하곤.’
천성은 결코 지금 상황이 무척이나 좋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다.
유송문이 승리를 거두긴 했으나 아직 흑암문은 진정한 고수들이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반면, 선검문엔 유송문이 패배하고 나면 문주인 호연백과 태상 문주인 호천덕만이 흑암문의 고수들을 상대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관패와 상대하며 유송문도 적지 않은 부상을 당한 터였다.
천룡 또한 마찬가지의 심정인지 못마땅한 표정으로 감석보를 흘깃 쳐다보았다.
그때, 흑암문에서 젓가락처럼 마른 노인이 성큼 앞으로 걸어 나왔다.
“나 조세평이 그대의 검을 받아 보겠다.”
염소수염을 기른 빼빼마른 노인의 등장에 코웃음을 치던 선검문 무사들이 이름을 듣는 순간 얼어붙어 버렸다.
<『영웅재천』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