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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재천 2
영웅재천 2(1화)
1장 천룡 출두(1)
“나 조세평이 그대의 검을 받아 보겠다.”
염소수염을 기른 볼품없는 노인의 등장에 코웃음을 치던 선검문 무사들이 이름을 듣는 순간 얼어붙어 버렸다.
“어째서 저자가 흑암문에 있단 말인가!”
호연백이 놀라서 소리쳤다.
음풍조(陰風操) 조세평은 초절정을 바라보는 극강의 고수로, 호천덕도 함부로 승패를 장담할 수 없는 자였다.
정사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홀로 행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가 흑암문 진영에 나타난 것이다.
그는 별호처럼 음풍조를 성명절기로 썼는데, 그의 조법은 나무에 구멍을 뚫고 쇠에 자국을 남길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자랑했다.
선검문의 무사들의 표정이 어둡게 변했다.
“후후후, 드디어 내가 상대할 만한 자가 나왔구나!”
천룡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조세평을 바라보았다.
이제 실력을 자신의 드러낼 때가 왔다고 생각한 것이다.
조세평을 꺾은 후, 수많은 이들의 환호와 갈채 속에서 ‘제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하며 겸손함까지 보여 주는 자신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실력에 겸손함까지 갖추다니! 그야말로 영웅의 풍모로구나!’
그 순간, 상상 속에서 헤매고 있는 천룡의 귀로 찬물을 끼얹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흥, 유 호법께서 계시는데 그대의 차례가 오리라 보시오? 꿈도 꾸지 마시오!”
그러지 않아도 지난번 흑의인들의 침입 때, 천룡의 위상이 높아진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감석보였다.
감석보는 천룡의 실력이 진짜 뛰어나서 그날 밤에 활약을 펼친 것이라 생각지 않았다.
단지 중간에 얌체처럼 끼어들어 암습을 가해 흑의인들을 무찔렀다고 생각했다.
장래에 자신의 처가가 될 곳이기에 이번 기회에 도움을 주고 체면을 세우고 싶던 감석보에겐 천룡의 활약이 결코 달갑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마침 천룡의 말을 듣고는 코웃음을 친 것이다.
자연 천룡의 눈썹이 꿈틀했다.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 주제에 자신의 행복한 상상을 방해하다니, 용서할 수 없었다.
“그대의 대단하신 유 호법이 아무래도 이번엔 어려울 것 같구려. 정 미심쩍으면 내기를 걸어 보지요. 난 유 호법이 저 뼈노인에게 진다는 데 내 손모가지를 걸겠소!”
천룡의 말에 주변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같은 편의 패배에 내기까지 걸다니,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천성이 머리를 잡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 없는 천룡이 홧김에 사고를 친 것이다.
그제야 자신의 실책을 깨달은 천룡도 당황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아, 제 뜻은 그게 아니고…….”
천룡이 난감한 표정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이익, 도대체 그대는 어느 편이오! 어떻게 유 호법님께서 패하기를 바랄 수 있소!”
감석보가 붉게 상기된 얼굴로 언성을 높였다.
“아니, 절대 그런 것은 아니고…… 말이 헛 나와서…….”
천룡이 다급히 자신의 실책을 수습하려 애썼다.
하지만 이미 감정이 상한 주변의 고수들은 천룡을 싸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오해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저희 형님은 존경하는 유 대협께서 방금 전 대결에서 힘을 많이 쏟으신 상태인지라 자신이라도 유 대협을 대신해 싸우고 싶다는 안타까운 마음을 이야기한 것인데, 표현이 너무 서툴렀던 것 같습니다.”
천성이 곧바로 유 대협을 칭송하며 감석보를 달랬다.
“그, 그렇습니다! 제 마음이 바로 그거였지요! 어찌 감히 유 대협 같은 분을 모욕하려 하겠습니까?”
천룡이 얼른 나서서 고개를 끄덕였다.
“큼큼, 그렇지. 우리 유 대협이 저런 노인네에게 당할 리야 없지 않겠소! 그대가 나쁜 뜻으로 한 이야기가 아니니, 내 그냥 넘어가겠소. 앞으로 조심하시오!”
천성의 아부에 기분이 좋아진 감석보는 짐짓 엄한 표정으로 천룡에게 주의를 주고 잔뜩 우쭐해져서 중앙에서 일전을 준비하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참 알기 쉬운 녀석이네.’
설마 이렇게 간단하게 문제가 해결될 줄 몰랐던 천성이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홧김에 나섰다 본전도 못 건진 천룡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주변 고수들이 그 모습에 혀를 찼다.
그사이, 유송문은 긴장한 표정으로 조세평을 바라보았다.
온전한 상태로 맞붙는다 해도 한 수 접어 줘야 하는 상대였다.
그러니 지금의 상태로는 백전백패였다.
머릿속으로 조세평을 상대할 여러 가지 방법을 떠올려 보았으나, 마땅한 길이 보이지 않았다.
“화산과는 척을 지고 싶지 않으니, 그대의 목숨만은 살려 주마.”
건조한 목소리로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조세평이 말했다.
어찌 보면 상대를 얕보는 행동이었으나 그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었다.
유송문이 굳어진 표정으로 검을 들어 올렸다.
“이제 시작이로군.”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는 양 문파에 긴장이 흘렀다.
슈슈슉!
유송문은 처음부터 절초를 사용해 조세평을 공격했다.
속전속결로 끝을 보려는 것이다.
이미 몸 이곳저곳 상처의 출혈로 인해 힘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시간을 끌게 된다면 더욱 힘들어질 것이 분명했다.
유송문의 검이 분열되어 십여 개로 늘어났다.
거기에 극성의 암향표까지 펼친 그의 움직임은 어지간한 이들은 눈으로 쫓지도 못할 정도였다.
파파파팟!
유송문의 검이 꿰뚫어 버릴 듯 다가오는데도 조세평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목숨을 내놓은 것처럼 일체의 표정 변화도 없이 가만히 그 자리에 서서 유송문의 검끝을 바라보았다.
십여 개의 검기가 온몸을 난자한다 싶은 순간, 조세평의 양손이 움직였다.
까가가가강!
한데 검과 사람의 손이 부딪쳤다고는 믿을 수 없는 소리가 귀를 때렸다.
양 문파의 무사들에게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조세평이 번개 같은 움직임으로 유송문의 검기를 하나하나 쳐 낸 것이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갑자기 십여 개의 손이 생겨나 검기들을 쳐 낸 듯이 보였다.
그 순간, 유송문은 멈추지 않고 한 바퀴 돌며 조세평의 하체를 쓸어 갔다.
아무래도 조공을 쓰는 자이니 다리 기술은 약하리라 여긴 것이다.
하지만 조세평은 훌쩍 뛰어올라 가볍게 발길질을 피한 후, 몸을 거꾸로 세워 아직 일어나지 못한 유송문의 머리를 양손으로 찍어 갔다.
위에서 내려찍는 그의 손가락 위로 파란 기운이 흐릿하게 맺혔다.
기를 유형화시켜 손가락에 두른 것이다.
그야말로 초절정의 경지라 해도 누구 하나 반론을 제기하지 못할 정도로 세밀한 기의 운용이었다.
유송문은 감히 경시하지 못하고 검을 들어 올려 조세평의 공격을 막으며 뒤로 물러섰다.
하나 조세평은 유송문이 다시 몸을 일으킬 틈을 주지 않고 허공에 몸을 띄운 채 쉴 새 없는 공격을 퍼부었다.
따다다다당!
조세평의 손가락과 부딪친 검에서 불꽃이 튀었다.
무릎을 굽힌 상태에서 조세평의 공격을 받아 내고 있는 유송문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합!”
이를 악문 유송문이 기합 소리와 함께 훌쩍 뒤로 몸을 뒤집으며 조세평의 복부를 차올렸다.
하지만 조세평은 슬쩍 몸을 뒤틀어 유송문의 발차기를 피한 후, 여유 있는 모습으로 뒤쪽에 착지해 내렸다.
“후우, 후우…….”
잠시 거리를 벌린 유송문은 천천히 자세를 가다듬었다.
조세평의 폭포수 같은 공격에 유송문의 호흡은 거칠어져 있었다.
반면, 조세평은 움직이지도 않은 듯 처음 그 자리에서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서 있었다.
오히려 그는 숨을 몰아쉬는 유송문에게 쉴 틈을 주는 여유까지 부리고 있었다.
물론 유송문이 온전한 상태였다면 이리 쉽게 밀리진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두 사람 간의 확연한 실력의 차이 역시 부정할 수는 없었다.
“쓸데없이 남의 일에 목숨을 걸지 말고 이만 패배를 인정하거라. 더 이상의 대결은 무의미하다는 걸 그대도 알 터.”
조세평이 건조한 목소리로 유송문에게 말했다.
“이익!”
유송문이 이를 악물며 자세를 다잡았다.
그럼에도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인지 다리가 휘청거렸다.
“유 대협, 지친 상태로 저자를 상대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어차피 유 대협과 대연문은 그저 우리 선검문을 도우러 오신 분들인데 목숨까지 잃게 할 수는 없습니다! 이미 일승을 거두어 주셨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역할을 해 주셨습니다. 그만 패배를 선언하고 물러서십시오. 이제부터 선검문의 힘으로 저들을 상대하겠습니다!”
호연백의 외침에 유송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마음 같아서는 목숨을 걸고 조세평을 상대하고 싶었지만, 자신에게는 소공자 감석보를 보호해야 할 의무도 있었다.
무인의 자존심 때문에 대연문 호법으로서의 책무를 버릴 순 없었다.
“크윽, 패배를 인정하오.”
유송문이 자세를 풀고 검을 거두었다.
“잘 생각했다. 쓸데없이 목숨을 버리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일이지.”
조세평은 도도한 표정으로 유송문의 패배를 받아들였다.
유송문은 비틀거리며 선검문 진영으로 돌아갔다.
기세등등했던 감석보는 충격에 휩싸였다.
유송문이 연약해 보이는 늙은이에게 당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유 호법님, 괜찮으십니까?”
감석보와 대연문 사람들이 침울한 표정으로 유송문을 부축했다.
선검문 진영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이제 남은 고수라고는 문주인 호연백과 태상 문주인 호천덕뿐이었다.
부문주 호연상이 있었으나 그는 유송문에 비하면 실력이 모자랐다.
“할 수 없군요. 어차피 흑암문에 승리한다 생각지는 않았으니…… 제가 나서야겠군요.”
호연백이 앞으로 나섰다.
“아니다. 문주가 나설 수는 없지. 내가 나서마. 어차피 뒷방 늙은이인 나야 이런 때나 쓸모가 있지 않겠느냐. 허허허.”
호천덕이 호연백을 막아섰다.
“안 됩니다. 어찌 아버님을 나서게 할 수 있겠습니까. 욕을 당하더라도 제가 당하겠습니다!”
“저자를 상대하려면 내가 나가야 한다!”
“어차피 이길 수 없는 싸움입니다. 아버님의 명성에 누를 끼칠 순 없습니다!”
호연백과 호천덕이 한 치에 양보도 없이 서로 나서려 하는데, 그때 천룡이 그들 곁으로 다가갔다.
“태사부님, 저를 보내 주십시오!”
천룡은 정중히 포권하며 호천덕에게 자신의 출전을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