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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재천 2(2화)
1장 천룡 출두(2)
주변 사람들이 천룡의 당돌한 행동에 웅성거렸다.
몇몇은 천룡을 손가락질하며 질책하기도 했다.
방금 전의 경솔한 언사도 있었기에 사람들의 시선이 호의적이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비록 천룡이 흑의인들의 침입 당시 적지 않은 공을 세웠으나, 그의 실력이 조세평을 상대할 정도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않은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 천룡은 그저 나서기 좋아하는 치기 어린 젊은이에 불과했다.
“우리를 도우려는 자네의 마음은 알겠으나, 더 이상 쓸데없는 인명피해를 만들고 싶지 않으니 그만 물러서게.”
호연백이 못마땅한 얼굴로 천룡을 타일렀다.
“제가 비록 아직 많이 부족하나 저자 정도면 어찌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혹여 제가 패한다 해도 저자의 힘을 빼놓는다면 문주님이나 태상 문주님이 충분히 물리치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힘들다 싶으면 무리하지 않고 패배를 선언하겠으니 한 번 저를 믿고 맡겨 주십시오!”
“허허.”
초절정에 근접한 고수를 어찌해 볼 수 있겠다니, 기백은 좋으나 어리석은 젊은이라 생각되어 호연백은 실소가 나왔다.
“어허, 그대는 함부로 나서길 좋아하는구려! 지금 이 상황이 장난으로 보이오? 공명심에 눈이 멀어 자신과 상대의 실력 차도 구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로군!”
유송문의 패배에 멍하니 굳어 있던 감석보가 천룡의 황당한 행태를 질타했다.
“감 소협의 말씀이 맞소. 호승심으로 섣불리 나설 상황이 아니오. 일단 어르신들께 맡기고 지켜봅시다.”
호무강이 감석보의 말에 동의했다.
“정말 가능하겠느냐?”
그때였다.
호천덕이 천룡에게 물었다.
주위의 인사들이 호천덕의 행동에 깜짝 놀랐다.
호천덕은 천룡이 조세평을 상대할 수도 있다 생각하는 것인가.
아니면 정말 천룡이 조세평의 힘을 빼 놓은 후 호천덕이 상대하려 하는 것인가.
문주인 호연백마저 의아한 눈빛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해볼 만할 듯합니다. 생각해 놓은 방책도 있고요.”
사실 천룡에겐 딱히 방책이 필요치 않았다.
이미 초절정에 오른 지 오래인 천룡과 이제 겨우 초절정을 바라보는 조세평의 격차는 하늘과 땅 차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이야기해 봐야 아무도 믿지도 않을 것이 분명했고, 방금 전처럼 괜한 분란을 만들고 싶지도 않았기에 대충 얼버무린 것이다.
호천덕의 눈이 빛났다.
천룡의 실력이 제법 높음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저 절정을 넘어섰다 생각했다.
한데 이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자신에게 기세를 숨길 수 있을 정도면 생각했던 것보다도 경지가 높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어쩌면 자신과 동급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혹여 일부러 기세를 숨긴 것이 아니라 자연히 갈무리하는 경지―그럴 리야 없다고 생각했지만―라면 초절정을 상회한다는 결론이었다.
더구나 천룡의 목소리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고, 젊은이의 치기라고 하기엔 그 표정이 너무도 담담했다.
“그럼 널 한 번 믿어 보마.”
호천덕에게서 출전 허락이 떨어지자 사람들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허!”
“태상 문주님이 그리 급하신가…….”
“아버님!”
“내 눈을 믿고 맡겨 보거라.”
호천덕이 진중한 표정으로 이야기하자 호연백도 더 이상 말릴 수 없었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부디 조심하게!”
호연백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천룡을 바라보았다.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결코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천룡이 포권하고 조세평에게 향했다.
“형, 상대가 노인이니 살살하라고. 하하!”
천성이 차분하게 걸어가는 천룡에게 농을 건넸다.
천성이 보기에 조세평과 천룡은 기운의 차이가 상당했다.
물론 무공이 고하가 내공만으로 결정되어지는 것은 아니었으나 천룡의 기운은 부드럽고 유유하게 흐르는 반면, 조세평은 거칠고 부자연스러웠다.
단지 걱정되는 점이라면 천룡의 엉뚱함과 덜렁대는 성격이었다.
혹시라도 상대를 너무 얕잡아 보고 방심하지 않을까 해서였다.
“훗!”
천룡이 천성에게 한쪽 눈을 찡긋하고는 조세평의 앞에 섰다.
“허헛, 선검문에 사람이 이리도 없는가?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를 내보내다니. 아이야, 다치기 싫으면 다시 돌아가거라. 이곳은 한순간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곳이니라.”
조세평이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표정으로 천룡에게 호통 쳤다.
기껏해야 일류 정도의 기운밖에 없어 보이는 천룡이 자신을 상대하려 하니 그로서도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후후, 노인네 실력이 뛰어나긴 하나 내가 상대 못할 정도로 보이진 않습니다만.”
천룡이 조소를 지으며 조세평을 바라보았다.
“허허, 이놈. 이제 보니 강호 초출이로구나. 썩 꺼지거라! 그렇게 겁 없이 나서기 좋아하다가는 오래 살기 힘들 것이다!”
조세평 또한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천룡에게 호통 쳤다.
“초출은 맞습니다만, 제가 겁은 좀 있는 편입니다.”
천룡이 유들유들하게 대답하며 자신의 검을 빼 들었다.
검이 검집에서 뽑혀 나오며 검신이 빛났다.
천천히 발검을 하였건만 검집을 스치는 작은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헛!”
천룡이 검을 빼 들자 조세평이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기세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어디서 이런 놈이 튀어나왔단 말인가!’
조세평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겨우 약관쯤 되어 보이는 놈의 기세가 자신과 필적하다니!
양측의 무사들은 멈칫하는 조세평의 모습을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들로서는 천룡의 기세를 느낄 수가 없었다.
천룡이 이미 원하는 자에게만 기운을 보낼 수 있는 경지에 올랐기 때문이다.
사실, 천룡이 진정으로 기세를 끌어 올렸다면 조세평은 그대로 기절했을 터였다.
하지만 강호 출도 후 첫 실전을 너무 빨리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초식을 교환해 보며 자신의 검술을 가다듬고, 처음 접해 보는 조법을 여러모로 살펴 보기 위하여 천룡이 일부러 기세를 많이 끌어 올리지 않았음을 조세평이 알 리가 없었다.
“자, 시작해 볼까요?”
천룡이 서서히 앞으로 다가섰다.
‘흠, 아무래도 형이 쉽게 이길 것 같긴 하군.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내가 도울 방법이 있다면 좋을 텐데.’
천성이 중앙에서 대치하고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궁리를 했다.
함부로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라 천룡을 도울 방법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뭘 그리 고민하느냐. 염동력을 사용하면 되지. 이번 기회에 연습도 할 겸 잘됐구나.]
순간, 무숙의 말이 천성의 머리에 번갯불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군요!’
염동력이라면 다른 사람들이 알아차리기 힘들 것이다.
비록 아직은 돌멩이를 움직이는 정도에 불과한 힘이지만, 그 정도면 충분히 상대의 신경을 분산시킬 수 있었다.
‘조금 비겁하긴 하지만 형이 위험에 빠지는 것보단 낫지. 그리고 누가 알겠어?’
천룡의 공격은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속도도 그리 빠르지 않았고, 변화도 없는 평범한 일직선의 찌르기였다.
“흥!”
조세평이 코웃음을 치며 천룡의 검면을 쳐 냈다.
“헉!”
하지만 곧 조세평은 기겁을 하며 서너 걸음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분명 검면을 쳐 낸 듯했는데, 조세평의 손은 허무하게 허공을 가르고 천룡의 검은 처음 그대로 찔러 들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천룡이 순간적으로 손목을 빠르게 움직여 조세평의 손을 흘려버린 것인데, 그 속도가 워낙 빨라서 눈으로 확인하기 힘들 정도였다.
조세평은 그 한 수만으로도 천룡의 실력이 예사롭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더욱 경계를 끌어 올린 조세평은 재빨리 왼쪽으로 몸을 움직여 천룡의 검을 피했다.
천룡은 서두르지 않고 검을 물렸다.
“이제 제 실력은 아셨을 테니, 노인장의 실력을 보여 주실 차례로군요. 먼저 공격을 하시지요.”
천룡의 여유로운 태도에 조세평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자신이 강호에 무명을 알린 지 벌써 사십 년이 넘었는데, 이름조차 들어 보지 못한 어린놈에게 무시당한다 생각하니 울화가 치밀었다.
“그래, 네놈이 제법 실력이 있음을 인정하마. 이제부터 나도 제대로 상대해 주마!”
조세평이 진기를 끌어 올렸다.
두 손을 앞으로 내밀고 자세를 잡자 손가락이 푸르게 물들었다.
“이얏!”
기합과 함께 조세평이 천룡의 머리를 찍어 갔다.
전력을 다한 움직임에 휙― 하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이미 그의 푸른빛 손가락이 천룡의 코앞에 이르러 있었다.
천룡의 눈동자가 빛났다.
고개를 뒤로 젖혀 공격을 피한 천룡은 검을 위로 치켜올려 조세평의 조공을 쳐 냈다.
따당!
조세평의 손가락과 부딪친 천룡의 검에서 불꽃이 튀었다.
“크윽!”
조세평은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저릿저릿한 고통에 자신도 모르게 신음성을 흘렸다.
나이 차이가 있어서 유리하리라 생각한 공력조차 자신이 앞서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공격을 멈출 순 없었다.
조세평은 이를 악물고 양손을 휘둘러 천룡을 재차 공격했다.
선검문의 진영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천룡이 의외로 조세평에 맞서서 선전하고 있는 것에 놀란 것이다.
천룡이 이처럼 조세평과 팽팽히 맞설 줄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오호, 니 사촌 형의 실력이 제법인데?]
무숙이 감탄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고만 안 치면 제법 괜찮은 형이지요. 후후.’
천룡이 뛰어난 실력을 보여 주자 천성의 마음도 뿌듯했다.
혼자서 씨익 웃는 천성의 모습을 주위의 후기지수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큼큼.”
천성은 자신의 실책을 느끼고는 재빨리 표정을 가다듬었다.
천룡의 여유 있는 모습을 보면 본실력은 아직 꺼내지도 않은 듯했다.
옆을 힐끗 보니 감석보가 얼이 빠진 표정으로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이 함부로 무시한 천룡이 얼마나 높은 경지의 고수인지 드디어 알게 된 것이다.
호무강 역시 당황한 표정으로 천룡을 바라보고 있었다.
허풍이라 생각했던 천룡의 말들이 허풍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제 생각해 보니 그동안 천룡의 행동은 가볍다기보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라 보는 것이 맞았다.
조세평의 끊임없는 공격을 천룡은 여유롭게 막기만 하고 있었다.
천룡은 뒤로 물러서거나 옆으로 살짝 피하면서 조세평의 조공을 검으로 흘려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