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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재천 2(3화)
1장 천룡 출두(3)


까가가강!
쉴 새 없는 조세평의 공격에 장내는 쇳소리로 가득했다.
얼핏 보기에는 천룡이 밀리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세평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반면, 천룡은 처음과 변함없는 편안한 표정으로 한 수 한 수를 즐기듯 막고 있었다.
“허허, 제가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군요. 저 청년이 저런 고수였다니…….”
호연백이 한탄을 했다.
“니가 알아보지 못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나조차도 저 아이의 정확한 실력은 알 수 없을 정도이니. 내가 볼 때는 최소한 나와 같은 경지일 것 같구나.”
호천덕의 이야기에 호연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절정의 말미에 이른 조세평과 대등하게 상대하고 있지 않은가.
호연백은 앞으로 철혈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생각했다.
“헉헉.”
오십여 수의 공방을 주고받은 후, 극심한 내력 소모 탓에 조세평은 뒤로 물러나 숨을 가다듬었다.
가슴을 크게 들썩거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는 조세평.
“어허! 연세가 있으셔 그런지 너무 빨리 지치시는군요. 무리하시지 말고 그만 들어가 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천룡이 미소 지으며 조세평을 도발했다.
“이놈!”
조세평의 얼굴이 분노로 인해 홍시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어디, 이것도 받아 보거라!”
흥분한 조세평이 양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린 후 훌쩍 뛰어올랐다.
“흐압!!”
공중으로 뛰어오른 조세평이 양팔을 크게 휘둘러 앞으로 번갈아 밀어내자 음침하고 날카로운 기운이 천성을 향해 빠르게 치달았다.
팔을 휘두를 때마다 앞의 기운에 뒤의 기운들이 부딪쳐 중첩되면서 그 위력이 점차 커져 갔다.
조세평의 이마는 어느새 땀이 흥건했다.
자신의 공력을 최대한 쥐어짜서 이번 공격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호오!”
천룡이 조금 흥미가 동하는 듯한 표정으로 검을 들어 올렸다.
하단전에서 끌어 올린 무극진기가 양팔을 거쳐 검에 전달되었다.
진기가 주입된 천룡의 검의 부르르 진동했다.
두 손으로 검을 잡은 천룡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대각선을 그리며 크게 베어 내자 공간이 일그러지며 한 줄기 검기가 쏜살같이 발출되었다.
츠아악!
마치 천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며 조세평의 기운이 반으로 갈라졌다.
그때, 천룡이 다시 한 번 아래에서 위로 검을 휘둘러 두 번째 검기를 발출했다.
“이이익!”
조세평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회심의 일격이었던 음풍첩경(陰風疊勁)이 천룡의 검기에 속절없이 갈라진 것이다.
츠츠츠츠츠!
천룡이 세 번째 검기를 발출했을 때는 이미 두 번째 검기가 조세평의 기운을 모두 갈라 버린 뒤였다.
조세평은 사력을 다해 두 손으로 닥쳐드는 천룡의 검기를 쳐 내려 했다.
퍼퍽!
하지만 둔탁한 소리가 나며 천룡의 검기와 부딪친 조세평의 손이 너덜너덜해졌다.
“크악!”
“어이쿠, 너무 셌던 모양이네. 쩝.”
천룡이 입맛을 다시며 검을 멈췄다.
“이젠 더 보여 주실 게 없는 듯하니 이쯤에서 포기하시지요. 쓸데없이 남의 일에 목숨을 거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천룡은 조세평이 유송문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이번 공격에 모든 것을 걸었던 조세평인지라 이미 한 톨의 진기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태에서 더 이상의 대결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억울하고 원통했지만 조세평으로서는 더 이상 천룡을 상대할 방법이 없었다.
“크윽, 졌다.”
조세평이 분한 듯 이를 악물며 돌아섰다.
천룡이 도저히 자신의 상대가 아님을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우와아아아!”
그와 함께 선검문 진영에서 함성이 울려 퍼졌다.
“허, 대단하군. 설마 이길 줄이야. 생각했던 것보다 실력이 더 뛰어난 모양이야. 강호에 신성이 나타났군.”
호천덕은 천룡의 실력에 감탄했다.
천룡의 경지가 높을 것이라고 예상하긴 했으나 이렇듯 쉽게 조세평을 이길 줄은 그조차도 짐작하지 못한 것이다.
선검문을 도우러 온 여러 고수와 선검문의 무사들도 천룡의 실력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저, 저, 저게…… 저럴 수가…….”
감석보는 이미 제정신을 놓은 지 오래였다.
절정 후반의 고수를 쉽게 꺾었다면 이미 초절정의 고수라는 이야기였다.
겨우 약관의 나이에 초절정고수라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사실상 선검문 진영의 최고 고수가 천룡인 것이다.
한데 자신은 그것도 모르고 헛소리를 해댄 것이고.
“허허, 우리가 미래의 천하제일고수를 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군.”
호연백이 천룡을 바라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현재 후기지수들 중 최고라 불리는 오룡의 실력은 거의 절정 후반에 불과했다.
오룡 중 가장 위로 꼽는 창천소룡 남궁인만이 얼마 전 초절정에 이르렀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니 천룡은 이미 오룡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한편, 흑암문의 진영은 초상집 분위기였다.
힘들게 초빙한 고수 조세평이 애송이 녀석에게 당할 줄은 결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끄응.”
공소추가 신음을 흘렸다.
“조심하시오. 보통 놈이 아니오. 크윽!”
조세평이 공소추에게 경고했다.



2장 영안의 첫 번째 확장(1)


공소추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천룡의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도대체 어디서 저런 놈이 튀어나왔단 말인가.
그간 들어 본 선검문에 대한 정보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던 놈이었다.
저 애송이 놈이 초절정의 경지라면 흑암문에선 오직 자신만이 상대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제가 나가 놈을 상대해 보겠습니다.”
그때, 공소추의 첫째 제자인 악종운이 나섰다.
현재 흑암문에서는 공소추 다음가는 고수.
절정 후반의 실력이지만 거의 초절정에 근접한 고수였다.
이제 삼십대 중반의 비교적 젊은 나이로, 특별히 강호 활동을 하지 않아서 변변한 별호조차 없었으나, 도법 하나만큼는 일절이라 불리기에 충분했다.
“너로서는 무리다.”
공소추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힘으로 맞서지 않고 저만의 방법으로 놈을 상대하겠습니다. 아직 어린 놈이니 강호 경험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생사를 건 대결이 꼭 실력으로만 판가름 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나름 일리가 있는 이야기였다.
공소추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악종운이라면 최소한 쉽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조세평이 워낙에 아무것도 못해 보고 쉽게 물러선 탓에 아직 천룡의 무공을 제대로 파악도 못한 상태였다.
한데 악종운이 천룡의 무공을 끌어내고 힘까지 어느 정도 뺄 수 있다면 일석이조가 될 것이다.
“좋다! 나가 보거라!”
한참을 고민하던 공소추가 마침내 악종운의 출전을 허락했다.

악종운이 눈을 빛내며 천룡의 앞에 섰다.
“난 흑암문의 일제자 악종운이다. 어디 한 번 제대로 붙어 보자!”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악종운이 천룡에게 덤벼들었다.
어느새 악종운의 손에는 도가 뽑혀져 있었다.
악종운 스스로도 실력으로는 천룡에 미치지 못함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천룡이 아직 강호 경험이 적음을 이용해 변칙과 암수로 혼란을 줘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것뿐이라 생각했다.
악종운이 천룡의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린 도를 힘차게 내리찍었다.
그러나 천룡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검을 들어 막았다.
파팟!
그때, 갑자기 악종운이 오른발로 땅을 차서 흙먼지를 천룡의 얼굴로 날렸다.
천룡의 시야가 가려진 순간, 악종운의 왼쪽 무릎이 천룡의 명치를 찍어 갔다.
“저런 비겁한!”
천성이 놀라 소리쳤다.
퍼벅!
흙먼지 속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악종운은 자신의 공격이 천룡의 무릎에 막혔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여 멈추지 않고 곧바로 번개처럼 도를 휘둘렀다.
하지만 악종운의 도는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이익!”
악종운이 급히 몸을 돌리며 이번에는 도를 가로로 베어 갔다.
챙!
맑은 쇳소리가 울리며 먼지를 뚫고 천룡의 검이 악종운의 도를 튕겨 냈다.
그 와중에도 천룡의 빛나는 눈은 악종운을 놓치지 않은 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혼전 중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던 천성은 영안을 열어 정신을 집중했다.
놈이 또 다른 암수를 숨기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곧 감각이 확장되고 놈의 움직임이 하나하나 또렷이 영안에 들어왔다.
도가 튕겨 나감과 동시에 악종운의 양발이 풍차처럼 천룡을 쓸어 갔다.
천룡은 뒤로 멀찌감치 물러나 악종운의 두 발을 피했다.
그러자 악종운이 다시 땅을 긁어 천룡에게 흙을 날렸다.
“흥!”
악종운이 같은 수법을 사용하여 자신을 혼란시키려 하자 천룡은 코웃음 쳤다.
처음엔 그나마 신선하게 느껴지던 한 수였으나 같은 상대에게 두 번이나 사용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다니.
이젠 악종운의 밑천이 다 드러난 듯했다.
바로 그때, 악종운의 눈이 빛났다.
한편, 천성은 악종운의 심상치 않은 눈빛에 정신을 더욱 집중했다.
영안에 놈의 왼손이 수상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놈!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것이냐!’
천성은 놈의 왼손에 영안을 집중했다.
화아악!
상이 또렷해지며 소매 밖으로 미세하게 튀어나온 물체가 보였다.
‘화살!’
그것은 쇠로 만들어진, 아주 작은 화살촉 끄트머리였다.
하지만 천성이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놈의 손가락이 구부러지는 순간, 연결되어 있던 은사가 당겨지고 철전(鐵箭)이 발사되었다.
쉬이이익!
세 자루의 화살이 쏜살같이 천룡을 향했다.
갑작스런 암습에 놀란 천룡의 모습이 보였다.
참으로 교묘한 시점에서 펼쳐진 회심의 암기 공격이었다.
도를 쓰는 악종운이 암기를 날릴 줄은 누구도 생각 못한데다가, 같은 수법을 두 번 사용하는 듯 보이게 해 천룡을 방심시킨 절묘한 순간에 철전을 쏘아 낸 것이다.
방향을 바꾸기엔 늦었다.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사람의 힘이 아닌, 기관을 통한 발사였기에 그 빠르기가 전광석화와 같았다.
만일 저 속도를 조금만 늦출 수 있다면 천룡이 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속도를 늦출 수만 있다면!’
천성은 영력을 끌어 올려 미간에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