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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재천 2(4화)
2장 영안의 첫 번째 확장(2)


위이이이이잉!
순간, 감각이 확장되고, 사물들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천성이 의지를 집중하자 영안을 통해 발출된 한 줄기 영력이 철전을 붙잡았다.
염동력이 발휘된 것이다.
하지만 돌멩이를 움직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제발!’
간절한 마음을 담아 천성이 영력을 쥐어짰다.
만일 이대로 철전이 움직인다면 천룡은 심각한 부상을 입게 될 것이다.
그 뒤의 결과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반드시 막아 내야 했다.
‘크윽!’
머리가 깨어질 듯 아파 오고 코피가 터져 나왔다.
‘움직여라!’
쩌어어엉!
천성의 머릿속에서 폭발음이 일고, 순간 철전의 속도가 미약하게나마 느려졌다.
형을 구해 내겠다는 천성의 강력한 의지에 영력이 반응한 것이다.
천성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살필 사이도 없이 천룡을 확인했다.
‘됐다!’
철전의 속도 변화는 일반인들은 알아차리지 못할, 그야말로 미세한 차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천룡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순간, 세 자루의 철전이 천룡의 몸을 관통했다.
“엇! 저런! 조심!”
선검문의 무사들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아…….”
선검문 진영에서 안타까운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번 일격은 천룡이 도저히 피할 수 없을 거라 다들 짐작했다.
하지만 그들의 안타까운 반응과 달리 천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미 천룡이 암기를 피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선검문 진영에서 흘러나온 탄성이 채 끝나기도 전에 철전에 관통된 천룡의 신형이 흐릿해지더니, 모두의 눈에서 사라졌다.
“위다!”
흑암문주 공소추가 다급히 소리쳤다.
양측을 통틀어 최고의 고수인 그만이 천룡의 움직임을 파악한 것이다.
이미 철전에 관통당한 듯 보였던 천룡이 공중에 떠오른 채 마치 고고한 한 마리의 학처럼 악종운을 향해 검을 찔러 가고 있었다.
“젠장! 이형환위!”
악종운이 다급히 위를 쳐다보며 외쳤다.
허공으로 뛰어올라 철전을 피한 천룡의 움직임이 너무 빨랐기 때문에 잔상이 남아 암기에 관통당한 듯 보였던 것이다.
“이번 건 나도 제법 놀랐소! 즐겁게 해 준 보답으로 재밌는 걸 보여 드리지요!”
사실 악종운의 이번 공격은 천룡조차도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철전의 속도가 생각보다 느리지 않았다면 심각한 부상을 입었을 것이다.
강호 경험이 왜 중요한지 천룡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천룡의 검끝에서 일어난 한 줄기 회오리가 악종운의 머리 위로 섬광처럼 떨어져 내렸다.
퍼퍼퍼벅!
천룡이 검기를 회전시켜 극도로 압축시킨 것이다.
검강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 위력은 절정의 실력으로 받아 낼 수준이 아니었다.
“크아아악!”
악종운이 사력을 다해 도를 휘둘러 천룡의 공격을 막았으나 역부족이었다.
검기에 격중당한 악종운은 피를 뿌리며 오륙 장을 튕겨져 날아갔다.
“저럴 수가!”
흑암문의 무사들이 다 이긴 것 같던 악종운의 패배에 말을 잇지 못했다.
“대체 저놈의 정체가 무엇이란 말이냐! 어떤 보고에도 저놈에 대한 이야기는 없지 않았느냐!”
공소추로서는 정말 어이없는 상황이었다.
선검문의 전력은 빤한 것이었고, 그도 못 미더워서 수시로 정보를 확인했다.
한데 대체 저놈은 어디에서 나타났단 말인가.
공소추가 답답한 마음에 부문주 곡만종을 다그쳤다.
“끄응, 저로서도 알 수가 없습니다. 분명 선검문의 전력은 다 파악되었는데…… 다만 짐작하기로는 선검문 놈들도 저자의 실력을 제대로 알지 못했음에는 틀림없습니다. 저기 놀라는 문주와 지도부 녀석들 좀 보십시오.”
사실 곡만종도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철혈문이라는 알지도 못하는 문파에 저런 고수가 숨어 있을 확률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 문파에서 선검문을 도우러 왔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겨우 네 명.
거기다 선검문에서도 신경 쓰지 않는 문파를 곡만종이 일일이 파악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한구석에 처박힌 악종운에게 천룡이 천천히 다가갔다.
“좋은 경험을 했으니 이쯤에서 멈추도록 합시다. 인명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비록 사파라 해도.”
스스로도 제법 괜찮은 대사를 날렸다 생각한 천룡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흑암문 진영을 바라보고 섰다.
어디 더 덤빌 테면 덤벼 보라는 모양새였다.
‘허, 내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인데, 혼자 잘난 척이네.’
무리하게 염동력을 사용한 탓에 아직도 골이 흔들리는 천성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천룡을 바라보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무도 천성이 벌인 사투를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모두의 시선이 천룡에게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오호, 드디어 영안이 한 단계 커졌구나! 축하한다!]
무숙의 말에 천성은 영안을 확인했다.
좁쌀만 하던 영안이 지금은 완두콩 정도의 크기로 자라 있었다.
‘아, 아까 일어난 폭발이 그럼…….’
그 폭발로 인해 영안이 확장된 것이 틀림없었다.
전화위복이라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천룡의 검기에 만신창이가 된 악종운은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흑암문의 무사들이 쓰러진 악종운을 업어서 데려갔다.
반면, 선검문 진영은 환호에 휩싸였다.
천룡이 연달아 두 명이나 이겨 버린 것이다.
이제 자신들이 승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허, 갈수록 더 사람을 놀라게 하는구나. 검기를 유형화시키다니! 그저 초절정 문턱인 줄 알았는데, 초절정에 완벽하게 들어서 있구나!”
무림에서는 검기를 유형화시키는 경지를 보통 초절정이라 칭했다.
하지만 초절정에 오른 초반에는 검기가 불안정해서 유형화된 모습이 명확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천룡이 펼친 회오리치는 검기는 초절정의 경지를 완벽하게 소화했음을 보여 주는 방증이었다.
후기지수 중 가장 뛰어나다는 창천소룡 남궁인조차 초절정을 간신히 넘긴 상태였다.
그러니 이건 그야말로 강호무림이 경천동지할 놀라운 소식이었다.
미래의 천하제일고수를 지켜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호천덕의 혼잣말이 현실이 되어 가고 있었다.
“천룡이가 정말 대단하구나! 강할 줄은 알았지만 저 정도일 줄이야!”
궁혁도가 놀란 표정으로 탄성을 토해 냈다.
“엇! 근데 너는 왜 코피를 흘리는 것이냐? 어디 몸에 이상이라도 있는 것이냐?”
천성의 모습을 확인한 궁혁도가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물었다.
“하하, 조금 피곤했던 모양입니다.”
천성으로서는 형을 도와 만든 결과가 제법 만족스러웠다.
삼류 문파의 제자에 불과했던 천룡의 위상이 순식간에 높아진 것이다.
이제 여기 모인 그 누구도 철혈문을 얕보지 못할 것이다.

반면, 흑암문 진영은 초상집 분위기였다.
이제 문주인 공소추 외에는 천룡을 상대할 만한 실력을 가진 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할 수 없군. 내가 나서야겠다. 어차피 결국 내가 나서서 호천덕을 비롯한 놈들을 힘으로 눌러 줄 생각이었으니, 저 어린놈에게도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음을 깨닫게 해 주겠노라!”
공소추가 도의 손잡이를 꽉 쥐며 말했다.
“아직 한 명의 여유가 있으니…… 놈의 힘을 좀 더 빼놓은 후에 상대하심이…….”
곡만종이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의미 없는 일이다. 놈이 초절정의 경지임이 분명한데 절정 후반에도 이르지 못한 놈들의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야.”
“잠깐이라도 놈의 수법을 더 볼 수 있다면 좀 더 수월하게 상대하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곡만종이 다시 한 번 권했다.
“흥, 넌 저놈이 지금 자신의 실력을 모두 발휘했다고 보느냐?”
곡만종이 당황한 표정으로 공소추를 바라보았다.
“크크큭, 저놈은 그저 상대방 수준에 맞춰 움직이고 있는 게다. 방금 전에 보여 줬던, 검기를 유형화시키는 실력이라면 지금까지 상대했던 우리 쪽 인물들은 길어야 이십 초를 버티지 못하였을 게야! 그게 바로 초절정의 경지야!”
그랬다.
초절정과 절정의 벽은 쉽게 뛰어넘을 수 없는 것이었다.
절정과 일류의 차이보다 초절정과 절정의 차이가 크고, 그보다 더 큰 것이 화경과 초절정의 차이였다.
위로 올라갈수록 다음 경지로 오르는 것은 더욱 어려웠고, 그에 따라 얻는 능력 또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차이가 났다.
“그러하군요.”
곡만종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공소추의 말이 옳았다.
하지만 이제껏 자신을 한 번도 배신하지 않은 육감이 공소추를 말리라 소리치고 있었다.
이번 일은 처음부터 뭔가가 어긋나 있었다.
벌어지는 일마다 계속 예상을 비껴났고, 너무 달콤한 열매가 흑암문을 유혹했다.
그러더니 결국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다.
‘괜한 걱정이겠지…….’
어쩌면 자신이 괜한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공소추가 저런 애송이 꼬마에게 당할 리는 없었다.
천룡만 처리하면 나머진 아무것도 아니었다.
선검문 최고수인 호천덕이 절정 후반에 불과하니 승부는 이미 정해졌다 보아도 옳았다.
오히려 그 이후로는 흑암문에게 상당한 이익이 기다리고 있었다.
곡만종이 애써 마음을 다잡고 공소추를 바라보았다.
“어차피 저놈과 나의 한판 대결로 승부가 갈리겠구나! 이번 일을 어느 놈이 벌였는지 모르겠지만, 참으로 고약한 상황으로 우릴 몰아넣는군.”
침음성을 남기고 앞으로 나서는 공소추를 더는 말리지 못한 채 곡만종이 한숨을 내쉬었다.

“허, 문주가 직접 상대할 모양이로구나!”
호천덕이 앞으로 나서는 공소추를 보며 놀라 소리쳤다.
“과연 저 아이가 공소추를 이길 수 있을까요?”
“글쎄다. 같은 초절정이라 해도 공소추는 천룡이보다 훨씬 많은 실전 경험을 가지고 있지. 초절정에 오른 지도 오래되었고. 만만치 않을 게야.”
공소추가 도를 뽑아 들었다.
“자, 한판 놀아 보자! 앞의 녀석들과는 다를 것이다!”
씨익 웃으며 도를 좌우로 놀려 손목을 푼 공소추가 천룡에게 말했다.
“어차피 문주님이 패하시면 더 이상의 대결은 의미가 없으니 이번 대결로 양 문파의 승패를 결정 짓기로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천룡의 제안에 공소추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런 맹랑한 놈! 마치 네놈이 날 이길 수 있을 것처럼 말하는구나!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진정한 초절정의 경지가 어떤 것인지 보여 주마!”
공소추가 일그러진 얼굴로 천룡에게 다가갔다.
천룡도 감히 소홀히 못하고 검을 들어 올렸다.
그동안 상대했던 자들과는 기세부터 달랐다.
천룡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 경지임이 분명했다.
승패를 장담할 수 없는 상대인 것이다.
그런 생각에 천룡의 가슴 한편에서 투지가 불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