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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재천 2(5화)
2장 영안의 첫 번째 확장(3)
선검문의 무사들 역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천성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천룡을 지켜보았다.
악종운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고수였다.
과연 자신이 끼어들 틈이 있을지조차 의문이었다.
그렇다고 달려 나가 도울 수도 없다.
그것은 곧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일단은 지켜보는 수밖에.’
만약 놈이 암수를 사용한다면 악종운의 경우처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정당당하게 승부한다면 직접 뛰어들어 돕지 않는 한 천성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정 위험할 경우에는 천성의 정체가 드러나는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형을 구해야 했다.
‘일단은 형을 믿어 보자!’
이윽고 마주 선 두 사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소추가 먼저 도를 폭풍처럼 휘두르며 천룡의 사방을 공격해 들어갔다.
자신 있게 내뱉은 말과는 달리 그는 천룡을 결코 얕잡아 보지 않고 처음부터 만만치 않은 공격을 펼친 것이다.
쉬이이이익!
공소추의 도는 변화가 심해 그중 어느 것이 실초이고 허초인지 구별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깨를 베어 오는가 싶으면 옆구리를 가르고 들어왔고, 허벅지를 찌른다 싶으면 가슴으로 치솟아 올랐다.
공소추의 도는 일반적인 도에 비해 폭이 좁아 베기뿐 아니라 찌르기에도 용이했다.
그런 공소추의 도에 맞춰 천룡의 검도 재빠르게 움직이며 맞부딪쳐 갔다.
채채챙!
변화가 심한 도법임에도 불구하고 힘은 결코 떨어지지 않아서 천룡은 매초마다 강력한 일격을 상대해야 했다.
하지만 공력이라면 천룡이 오히려 자신 있는 부분이었다.
공소추의 날카로운 공격에도 천룡은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놀랍군!”
“대단해!”
선검문의 진영에서는 이제 누구도 천룡의 실력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다.
공소추가 누구이던가.
사혈맹에서도 스무 명 안에 드는 극강의 고수였다.
한데 그런 고수와 대등한 일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오십여 초가 지나도록 우위를 확보하지 못하자 공소추의 안색이 보기 싫게 일그러졌다.
‘젠장, 만만치 않은 놈이구나!’
이를 악문 공소추가 공력을 끌어 올렸다.
“흐압!”
기합 소리와 함께 공소추의 도가 뿌연 기운으로 뒤덮였다.
도기를 유형화시킨 것이다.
공소추가 도를 쭉 뻗어 내니 유형화된 도기가 채찍처럼 천룡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치익!
천룡이 검을 비껴들어 도기를 흘렸다.
하지만 막았던 천룡의 검이 밀려날 정도로 강력한 도기였다.
“하하하! 이제 조금 해볼 맛이 나는군요!”
천룡의 눈에서 빛이 났다.
참으로 즐거웠다.
소화산에서 스승들과 수많은 대련을 했으나 이런 감각은 느껴 보지 못했다.
삶과 죽음이 종잇장 하나 차이로 갈린다.
숨을 쉴 수조차 없다.
실수는 곧 죽음을 뜻했다.
온몸에 짜릿짜릿한 전율이 흐르고, 두려움에 이가 딱딱거리도록 떨린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또렷하게 자신의 검로가 보이고 있었다.
“이놈!”
슈슈슈슛!
공소추가 연이어 도기를 날렸다.
우우우웅!
천룡의 검이 원을 그리며 저음의 진동음을 내뱉었다.
동시에 원 안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마치 파도처럼 물결쳤다.
그러자 놀랍게도 천룡의 검이 만들어 낸 원 안으로 공소추의 도기가 빨려 들어갔다.
츠츠츠츠!
갑작스런 상황에 공소추가 눈을 부릅떴다.
자신의 도기가 솜뭉치에 물이 스며들 듯 흔적도 없이 원 안으로 사라진 것이다.
다시 말해 애송이의 무공이 자신의 생각보다도 높다는 의미였다.
‘젠장!’
그제야 공소추는 자신의 밑천을 다 드러내지 않고서는 천룡을 쓰러뜨릴 수 없음을 인정했다.
“이익!”
이를 악문 공소추가 공력을 최대로 끌어 올리자 도신 위로 검붉은 기운이 서렸다.
본인의 성명절기인 혈랑구도식(血狼九刀式)을 시전하려는 것이었다.
혈랑구도식은 총 아홉 개의 초식이 연환되어 쉴 틈 없이 공격을 가하는 파괴적인 도법으로, 한 마리 붉은 늑대가 먹이를 덮치는 모습 같다 하여 앞머리에 혈랑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섬광 같은 제일초식을 피하면 그 뒤로 이초, 삼초…… 계속 상대를 몰아붙이다 마지막 구초인 혈랑천타가 모든 걸 날려 버린다.
“이야압!”
공소추가 손을 뻗어 일초인 혈랑일섬을 시전했다.
번쩍!
붉은 도기가 천룡을 향해 빛살처럼 날아갔다.
그 소름 끼치는 빠르기에 천룡은 결코 피할 수 없을 듯 보였다.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던 선검문 진영에서 긴장감이 흐르며, 무사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공소추의 기세가 지금까지와 판이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육십이 다된 나이라 볼 수 없는 강렬한 패기가 전장을 지배했다.
쩌정!
도기를 막은 천룡이 한 걸음 뒤로 밀렸다.
‘만만치 않군!’
칠성의 공력을 끌어 올리고도 뒤로 밀린 것이다.
이어서 이격과 삼격이 천룡에게 날아왔다.
혈랑의 이빨 같은 날카로운 공격이 연신 천룡의 온몸을 물어뜯었다.
파파파파파팡!
천룡이 검을 풍차처럼 돌려 공소추의 날카로운 도격을 쳐 냈다.
어느새 천룡의 검에서도 희미한 아지랑이가 일고 있었다.
자세를 고쳐 잡은 공소추의 눈썹이 꿈틀댔다.
‘이제부터가 진짜다!’
콰콰콰쾅!
공소추가 이를 악문 채 혈랑벽하(血狼劈河), 혈랑천월(血狼穿月), 혈랑참혼(血狼斬魂)까지 삼 초를 연달아 펼쳤다.
검붉은 검기가 장내를 가득 채우며 천룡의 사방을 압박해 들어갔다.
천룡이 두 초식을 쳐 내는 순간, 세 번째 초식이 번개처럼 파고들었다.
쉬악!
아래에서 위로 공소추의 도가 빛을 뿜었다.
붉은 도기가 천룡의 신형을 꿰뚫는 순간, 천룡의 모습이 흐릿해졌다.
다시 한 번 이형환위가 발휘된 것이다.
그러나 공소추는 결코 방심하지 않았다.
지금의 한 수로 천룡을 벨 수 없다는 것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공소추의 신형이 오른발을 축으로 회전했다.
천룡은 그사이 벌써 공소추의 우측으로 움직여 있었다.
혈랑구도식의 칠초, 혈랑삼파(血狼三波)가 천룡을 파도처럼 휩쓸었다.
동시에 검기의 파도가 천룡의 전신을 압박했다.
순간, 천룡은 한 마리 돌고래처럼 검기 사이를 유영하듯 공소추에게 다가갔다.
스악!
검기의 여파가 스치며 천룡의 몸 곳곳에 혈선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천룡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공소추를 향해 치달았다.
꿈틀!
공소추의 악다문 입술이 부르르 떨렸다.
‘정말 엄청난 애송이로군!’
이제는 저 애송이의 실력이 어쩌면 자신과 비슷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공소추가 양손으로 도파를 힘주어 잡았다.
“크압!”
도가 분열되는 듯 보이더니, 백여 개의 도기 덩어리들이 공소추에게 다가오던 천룡에게 날아갔다.
혈랑구도식의 팔초인 혈랑광풍(血狼狂風)이 펼쳐진 것이다.
천룡으로서도 감히 무시할 수 없는 위력적인 공격이었다.
사방이 공소추의 도기로 막혀 어디로도 피할 수 없었다.
천룡이 십성의 진기를 끌어 올렸다.
그러자 검이 푸르게 빛나고 천룡의 손이 팔방을 빠르게 찔러 갔다.
단순한 팔방풍우의 초식에 불과한 움직임이었으나, 그 빠르기와 위력은 일반적인 것과는 전혀 달랐다.
파파파파파팡!
마치 몽둥이로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천룡의 검격과 공소추의 도기가 충돌했다.
공소추의 입가로 핏물이 새어 나왔다.
충돌의 여파에 약간이지만 내상을 입은 것이다.
막강한 압력에 밀려 천룡 역시 뒤로 세 걸음이나 밀려났다.
모두 해소하지 못한 충돌의 여파가 몸 여기저기를 긁고 지나갔다.
역시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하지만 공소추와 달리 천룡의 표정은 매우 즐거워 보였다.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나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을 수 있으니 절로 흥이 나는 것이다.
양 진영의 무사들이 손에 땀을 쥐며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았다.
저들의 승부에 오늘 결전의 승패가 달린 것이다.
호천덕과 호연백을 비롯한 선검문 진영에서는 먼지가 떨어져 내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어느덧 무사들의 얼굴에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만큼 천룡의 신위가 예상을 넘어선 것이다.
각오를 다진 공소추는 내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온몸의 진기를 최대한 끌어 올려 천룡이 미처 자세를 잡기도 전에 마지막 초식 혈랑천타(血狼天墮)를 펼쳤다.
초식명처럼 하늘이 떨어져 내리는 듯 공소추의 도가 위에서 아래로 대기를 찍어 내렸다.
거대한 도기가 용틀임 치며 천룡을 향해 한 마리 늑대처럼 이빨을 드러내며 덮쳤다.
그 순간, 천룡의 눈에서도 한광이 일었다.
이 한 수가 승부를 결정지을 것이다.
온몸의 진기를 끌어 올려 검에 모았다.
소용돌이치는 검기가 천룡의 검을 둘러싸며 일 장이 넘게 솟아올랐다.
쿠아아아앙!!
폭음이 울리며 천룡이 서 있던 자리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 충격으로 땅이 뒤집히고 공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됐다!’
공소추는 이번엔 제대로 공격이 들어갔음을 느꼈다.
어디에도 애송이가 피한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젖 먹던 힘까지 짜내 펼친 한 수를 천룡이 막아 냈을 리 없었다.
“저런!”
선검문 진영에서 우려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직은 흙먼지 때문에 상황을 확인할 수 없었으나, 이번엔 결코 천룡이 피하지 못했을 일격이었다.
마지막 일격을 시전한 공소추는 도를 땅에 짚은 채 간신히 몸을 기대고 서 있었다.
공력의 소모가 극심하여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였던 것이다.
흑암문 진영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들은 천룡이 이번 일격을 당해 내지 못했으리라 확신했다.
“콜록콜록.”
그때, 흩어지는 흙먼지 속에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크으, 이번에는 정말 위험했군요! 대단한 일격이었습니다!”
주변을 가린 뿌연 흙먼지가 사라지고 점차 천룡의 모습이 드러났다.
천룡의 몰골은 꽤나 낭패한 모습이었다.
단정하게 묶었던 머리는 제멋대로 헝클어져 있었고, 의복은 여기저기 구멍이 나 누더기가 되어 있었다.
찢겨진 옷 사이로는 핏물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천룡의 목소리에는 아직 힘이 실려 있었다.
천룡 역시 적지 않은 내상을 입었으나 공소추에 비할 바는 아니었던 것이다.
“와아아아!”
선검문의 진영에서는 탄성이, 흑암문의 진영에서는 절망이 흘러나왔다.
양 진영의 희비가 엇갈린 것이다.
“크윽!”
억지로 신형을 유지하던 공소추가 신음을 흘렸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담은 마지막 초식을 쓰고도 천룡을 해치우지 못한 것이다.
흑암문의 부문주 곡만종은 일이 틀어졌음을 깨달았다.
공소추가 애송이에게 당한 것이다.
‘이대로는 흑암문의 패배다! 절대 용납할 수 없다!’
곡만종은 이를 악물었다.
몸을 추스르기 전에 천룡을 암습하려는 것이었다.
천룡만 해치운다면 선검문의 전력은 별거 없었다.
자신들이 힘으로 밀어붙인다면 어떻게든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피해를 입게 될 것이 분명했으나 이대로 물러나는 것보다는 나았다.
공동파가 올 때까지 어찌어찌 버티면 사혈맹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결심을 내린 곡만종이 슬며시 소매에서 단검을 꺼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