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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재천 2(6화)
2장 영안의 첫 번째 확장(4)


대결에 정신이 팔려 있던 천성에게 무숙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흥! 놈들이 암습을 하려 하는구나! 이런 괘씸한!]
놀란 천성은 급히 영력을 끌어 올렸고, 곧 영안에 곡만종의 모습이 잡혔다.
이미 비도를 반쯤 꺼내 든 상황이었다.
‘이런!’
천성은 즉시 주변을 살펴 놈을 저지할 방법을 찾았다.
‘그래!’
순간, 천성의 눈에서 청광(淸光)이 일었다.
그리고 갑자기 땅바닥에서 흙과 돌덩이가 튀어 올라 곡만종을 덮쳤다.
“엇!”
당황한 곡만종이 미처 비도를 던지지 못하고 자기도 모르게 외마디 신음을 내뱉었다.
바람도 없는데 갑자기 흙과 자갈이 자신을 덮친 것이다.
‘역시! 염동력이 훨씬 강력해졌구나!’
주먹만 한 돌멩이 두세 개 정도를 움직이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힘을 보여 주고 있었다.
천성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 번 흙더미를 날렸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흙먼지가 자신을 계속 쫓아오자 곡만종은 어찌할 바를 몰라 신형을 휘청였다.
양측 무사들의 시선이 곡만종을 향했다.
그 순간, 천성이 재빨리 염동력을 사용해 소매에서 삐져나와 있던 비도를 떨어뜨렸다.
“비도다! 비겁하게 암습을 하려 하다니!”
천성은 일부러 큰소리로 외쳤다.
“이런! 암수를 쓰려 하다니!”
“퉤! 무인의 긍지도 없는 놈들!”
곡만종의 소매에서 떨어진 비도를 확인한 선검문 진영의 고수들이 분노해 소리쳤다.
“이익!”
자신의 속셈을 들킨 곡만종은 말을 잇지 못한 채 이를 갈았다.
그때, 어느 정도 호흡을 가다듬고 몸을 추스른 천룡이 천천히 공소추에게 다가갔다.
“후우, 굳이 제가 더 이상 손을 쓰지 않아도 승패는 결정 난 듯하군요.”
천룡이 검을 내리고 공소추를 바라보았다.
힘든 싸움이었다.
공력의 차이가 승패를 갈랐다.
만일, 공소추가 침착하게 초식 위주로 천룡을 괴롭혔다면 반대의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었다.
예상밖의 천룡의 실력에 놀라 조급해진 공소추가 힘으로 승부를 건 것이 패착이었던 것이다.
공소추의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자신은 내상이 깊어 제대로 움직일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흑암문에서 더 이상 천룡을 막을 자는 없는 것이다.
이제 와서 전면전을 벌여 봤자 천룡이 날뛴다면 그를 저지할 방법이 없었다.
어찌저찌 이긴다 해도 멸문과 다름없는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그건 지금 물러서는 것만도 못한 결과였다.
곡만종 역시 침통한 얼굴이 되었다.
천룡을 제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이상, 이젠 전면전조차 승패를 장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하늘이 흑암문을 버리는구나…….’
갑작스런 흙먼지만 아니었다면 숨을 고르고 있던 천룡을 암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상대편에서 돌멩이라도 던진 건 아닌지 확인했으나, 전혀 그런 기척은 없었다.
‘어찌 흙먼지가 나에게만 달려든단 말인가. 마치 귀신이라도 들린 것 같지 않은가.’
참으로 기괴하면서도 등골이 오싹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사파이다 보니 그동안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음은 당연했다.
그러니 곡만종으로서는 지금 상황이 더욱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 곡만종의 모습에 천성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

한편, 공소추는 기진맥진하여 움직일 힘조차 없었다.
더 이상의 대결은 무의미했다.
흑암문의 패배였다.
“대체 네놈 같은 괴물이 어디서 나타난 것이냐!”
자신의 패배를 믿을 수 없다는 듯 공소추가 허탈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는 감숙 숭신의 철혈문 출신이며, 무공은 삼선께 사사했습니다.”
“끄응, 그렇군. 삼선이라면 이런 괴물을 만들어 낼 수도 있겠지.”
괴이하고 신비한 인물이라 알려진 삼선의 제자라면 천룡의 불가사의한 실력이 어느 정도 이해 가기도 했다.
잠시 날카로운 눈빛으로 천룡을 바라보던 공소추가 힘들게 몸을 돌렸다.
“크으, 오늘은 명백한 우리의 패배다! 이만 돌아간다!”
공소추가 침통한 표정으로 흑암문도들에게 명령했다.
공소추의 명에 흑암문도들은 패잔병처럼 축 늘어져 자신들의 문파로 발걸음을 돌렸다.
“와아아아!!”
“궁천룡! 궁천룡!”
“철혈신룡(鐵血新龍)!”
선검문 진영에서 환호가 쏟아졌다.
누군가는 천룡을 향해 철혈신룡이란 별호를 붙여 주었다.
단순하지만 명쾌한 별호였다.
천룡이 만들어 낸 결과는 전 강호가 술렁일 정도로 경악할 만한 일이었다.
새로운 초절정고수의 탄생이었다.
그것도 겨우 약관의 나이에 불과한!
이제 오룡은 육룡이 될 것이다.
모두가 궁천룡을 연호했다.
자신들이 이기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선검문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선검문 진영의 중앙으로 돌아온 천룡은 호천덕과 여러 고수들에게 인사했다.
“장하다. 강호에 신룡이 탄생했구나!”
“허허, 내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구만!”
다들 천룡에게 한 마디씩 하며 승리를 축하했다.
“하하,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흑암문주께서 저를 너무 얕잡아 보신 듯합니다.”
천룡이 미리 준비해 두었던 낯뜨거운 대사를 날렸다.
힘든 싸움이었지만 드디어 천하제일고수를 향한 첫걸음을 내딛었다는 것이 천룡의 마음을 들뜨게 했고, 몸의 상처와 내상마저도 잊게 해 주었다.
선검문의 무인들이 천룡에게 환호하는 모습에 천성의 입가에도 절로 미소가 일었다.
이번 싸움은 자신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첫 번째 영안의 확장을 이룬 것이다.
이제 어떤 경우에 영안이 확장되는지 단초를 잡을 수 있었다.
극한의 한계를 극복해 낼수록 영안은 더욱 확장되고 그 크기를 키울 것이다.
단순하지만, 쉽지 않은 방법이었다.
쉽게 극복이 가능하다면 극한의 한계가 아닐 것이다.
그런 것을 한 번도 아니고, 수도 없이 돌파해야 하는 것이다.
이번에야 비교적 운이 좋았다지만, 다음에도 그러리란 보장은 없었다.
그런 천성의 심정을 알아차렸는지 무숙의 말이 들려왔다.
[후후, 걱정 말거라. 첫 번째가 잘됐으니, 두 번째라고 안 되겠느냐. 차근차근 전진해 나가면 깨지 못할 한계란 없다.]
무숙의 말이 맞았다.
미리 의기소침할 필요가 없었다.
너무 앞서 갈 필요 없이 순간 순간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찾아오지 않겠는가.
그때, 입에서 침을 튕기며 감석보가 달려와 천룡을 칭찬했다.
“이야, 정말 대단하오! 내가 처음부터 그대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진즉에 알아보았소! 이제 철혈신룡 궁천룡 소협을 빼고 누가 후기지수 중에 최강을 논하겠소! 하하하핫!”
게다가 천룡의 어깨에 팔까지 두르며 마치 십년지기라도 되는 양 친근하게 굴었다.
“허…….”
천룡이 하도 어이가 없어 말을 잇지 못했다.
[진정한 괴물은 따로 있었구나…….]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하며 천룡에게 달라붙는 감석보의 모습에 무숙마저 혀를 내둘렀다.
호무강과 다른 무사들도 입을 떡 벌린 채 감석보의 변신을 바라보았다.
“하하하, 가, 감사합니다…….”
강호에 새로운 영웅이 탄생했다며 호들갑을 떠는 감석보에게 차마 뭐라 못한 채 천룡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오늘 우리는 선검문이 탄생한 이래 최대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하지만 궁천룡 소협의 활약과 모두의 굳건한 의지로 이를 극복하고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비록 용검단주 곽오량 형제가 목숨을 잃었으나, 그의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게 흑암문의 악도들을 물리쳤습니다. 고인이 되신 곽 단주의 죽음은 안타까우나 어찌 오늘 같은 날 슬퍼하기만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하루는 선검문의 위대한 승리를 자축하며 모두 하나가 되어 먹고, 마시고, 즐깁시다!”
“우와아아아!”
호연백이 큰소리로 선언하자 사방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모든 무사들이 승리에 들떠 잔치를 벌였다.
선검문 전체가 기쁨에 들썩거렸고,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날 줄 몰랐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세상은 산 자가 만들어 가는 법이다.
강호에서 죽음이란 너무도 보잘것없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늑대가 토끼를 잡아먹었다고 토끼를 기억하겠는가.
강호무림은 산 자를 위한 곳이다.
죽은 자의 이름은 점점 밀려서 어느 순간 영원히 잊혀지게 되는 것이다.
자신도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냉혹한 현실에 천성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