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얼음심장기사단 1 (2화)
제1화 숲 속의 무법자들(2)
스릉.
“응?”
맑은 검명이 들렸다 싶은 순간 목에서 부드럽고도 화끈함 통증이 일었다. 언뜻 세상이 빙글빙글 회전하는가 싶더니 머리가 없는 배가 불뚝 튀어나온 자신의 몸이 눈에 들어왔다.
툭! 떼구르르.
“어버버버…….”
목소리가 나오지를 않았다. 뒤이어 머리를 잃은 배불뚝이 몸이 앞으로 넘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자, 자작님!”
경악한 표정의 기사단장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이놈들… 컥!”
파르르 눈꺼풀이 떨리는 때에 분노한 기사단장의 머리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기사들의 머리도, 병사들의 머리도, 수발을 들기 위해서 쫓아온 하인들의 머리도 모두 공처럼 허공으로 퉁겨 올랐다. 병사들이 비명과 악다구니를 지르는 것 같은데 그저 먹먹하고 아득하기만 했다.
기사 중 하나가 가슴에 구멍이 뻥 뚫려서 그의 눈앞에서 자빠졌다. 피가 벌컥벌컥 솟구치는 것을 보니 심장이 꿰뚫린 것이 분명하였다.
“끄으으윽!”
기사가 괴로운 신음을 흘리는 듯했다.
그때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걷고 있던 여섯 살 정도 돼 보이는 자그마한 소녀가 자박자박 기사의 앞으로 왔다. 소녀의 몸에서도 기묘한 아지랑이가 일렁거렸다. 죽을 때가 되니 자꾸 헛것이 보이는 모양이었다.
소녀는 아직 숨이 붙어서 고통스레 헐떡이는 기사를 무미건조한 눈동자로 내려다보다가 호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아이의 손에는 포크가 들려 있었다.
푹!
기사의 목에서 붉은 피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소녀의 얼굴에도 후드득 튀겼지만 그저 눈을 몇 번 깜빡거리는 것 외에는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기사의 숨이 완전히 끊어졌다. 소녀가 기사의 목에서 포크를 뽑아냈다. 그리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하프 엘프가 분명한 흑발 청년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소녀는 가는 도중에 자신의 옷에다가 피가 묻은 포크를 쓱쓱 문질러 닦았다.
흑발 청년은 베간커 자작이 먹으려고 했던 수프를 떠먹고 있었다. 씹을 것도 없는 수프를 우물거릴 때마다 오른쪽 뺨에 볼우물이 언뜻언뜻 비쳤다가 사라졌다.
그의 옆에 앉은 작은 소녀도 샐러드 접시를 들었다. 그리곤 방금 전 기사의 숨통을 끊어 놓았던 그 포크로 샐러드를 찍어서 입에 넣고는 더없이 천진하게 오물거린다.
300명이 넘는 베간커 자작의 자랑스러운 기사와 병사들은 죄다 검붉은 피를 꾸역꾸역 쏟아내며 누워 있고, 그들이 죽기 전에 요리한 것들은 100여 명의 떼거지가 무감정한 얼굴로 먹고 있다.
대관절 심장이 없는 듯이 행동하는 저들은 누구란 말인가…….
* * *
유크는 겨우 스물셋 나이에 들벅 마을 최고의 약초 채집꾼이라 불리는 청년이다. 그 자랑스러웠던 이름도 오늘로 끝이다.
3미터에 이르는 회색 오우거가 육중하게 땅을 흔들어대면서 다가왔다.
쿵! 쿵! 쿵!
쿠확쿠확!
거친 숨을 내쉴 때마다 호두알만 한 콧구멍이 벌름벌름 넓어졌고, 뜨거운 콧김에 주변 공기를 달구며 격렬히 파동 쳐댔다.
직업상 숲을 헤집고 다니는 일이 그의 일이었다. 그래서 몬스터와 조우하는 일도 많았는데 오늘은 하필 오우거와 정면으로 직면하고 말았다.
오우거를 발견한 순간 발이 땅에 들러붙었고 몸은 돌처럼 딱 굳어버렸다. 머리에선 도망쳐야 한다고 시끄러운 종소리가 땡땡 울리고 있었지만 풍 맞은 늙은이의 사지처럼 부들부들 떨 뿐 도무지 움직여 주질 않았다.
그의 머리통을 잡아 뽑으려는 듯 오우거의 거대한 손바닥이 머리 위로 뻗어왔다.
‘죽었구나!’
질겁한 유크는 눈을 질끈 감았다.
탓!
정수리가 짓차이는 충격에 유크는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 바람에 자신도 모르게 눈을 번쩍 치뜨고 말았다.
낡은 가죽바지를 입은 사내의 긴 다리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날렵한 궁둥이, 넓은 등짝, 반 곱슬거리는 검은 머리통도 보였다.
그리고 횡으로 그어지는 은빛 실선!
크헝!
석―
예리한 절삭음에 효과를 부여하듯, 무너진 둑이 범람하는 양 오우거의 목에서 뜨거운 피가 분출하였다.
푸학―
후드드득!
쿠웅!
뒤이어 머리통이 잘린 오우거의 몸통이 자빠지면서 지축을 흔들어댔다.
저만치 떼굴떼굴 굴러간 대가리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지 모르겠다는 듯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모르는 것은 유크도 마찬가지였다.
오우거를 벤 흑발 남자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정면 언덕 위로 올라갔다.
언덕엔 다리가 부러진 사슴이 애처로운 울음소리를 내며 발버둥치고 있었다.
죽은 오우거가 막 먹어 치우려던 참에, 유크를 발견하고서 잠시 식사를 보류해 둔 덕에 아직까지 목숨이 붙어 있게 된 사슴이었다.
흑발 남자는 사슴의 목에 칼을 푹 찔러 넣어서 숨통을 끊어놓았다. 그리곤 사슴의 다리를 잡고 질질 끌고 왔다.
그런데 흑발 남자의 얼굴이 상당히 어려 보였다. 많이 봐야 스무 살 정도. 그 나이에 오우거를 단칼에 베는 실력이라니?
문득 시선이 느껴진 유크는 고개를 홱 돌렸다.
옆에 여섯 살 정도 돼 보이는 작은 여자아이가 죽은 토끼를 손에 들고서 그의 엉덩이를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여자아이의 느닷없는 출현에 흠칫 놀란 유크는 자신의 엉덩이를 내려다보았다. 붉은 핏물이 베어 나와 바닥으로 흡수되고 있었다.
움찔!
피를 보고 몸을 움츠리는 순간 궁둥이와 허벅지 중간 지점, 그중에서도 약간 안쪽에서 이루 참을 수 없는 통증이 와락 몰려들었다. 부러진 나무 밑동이가 꼬챙이처럼 엉덩이에 박혀든 것이 분명했다.
“크으윽!”
간신히 몸을 옆으로 옮기는 데도 하반신 전체가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는 구멍이 나서 피를 꾸역꾸역 토해내는 엉덩이를 부여잡고 확인을 했다.
딱 손가락 굵기에 길이가 두 마디 정도 되는 것이었는데 위치가 조금만 빗나갔어도 자칫 2세를 볼 수 없는 대참사가 일어날 뻔한 사고였다. 새삼 등줄기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흑발 청년은 유크의 존재는 보이지도 않는다는 양 사슴을 끌고서 지나쳐 갔다. 무심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던 여자아이도 막 돌아서려고 할 때였다.
끼흥끼흥.
여자아이의 키만 한 오우거가 색색거리는 숨으로 뒤뚱거리며 언덕 위로 올라왔다. 불안정한 걸음걸이로 보아서는 태어난 지 일주일도 안 되는 새끼였다.
녀석은 곧장 죽은 오우거 앞으로 달려왔다. 아마도 죽은 오우거가 새끼 오우거의 어미인 모양이었다.
새끼 오우거는 분리된 어미의 대가리와 몸통을 번갈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려워하거나 분노하는 식의 표정 변화는 일체 없었다. 그저 어미가 왜 꼼짝도 않고 누워 있는지 그게 의문스러운 모양이었다.
아마도 죽음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새끼 오우거는 그저 여자아이가 든 죽은 토끼에만 관심을 보였다. 녀석이 그것을 홱 가로챘다.
토끼를 빼앗긴 여자아이는 그저 눈을 두 번 깜빡거렸다.
뒤늦게 자신이 토끼를 빼앗겼다는 것을 인지했는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리곤 막 토끼를 입으로 가져가고 있는 새끼 오우거의 얼굴 앞으로 손을 쑥 내밀었다.
푹!
까아아아웅!
포크로 눈이 찔린 새끼 오우거가 비명을 지르며 펄쩍펄쩍 뛰었다. 여자아이는 그런 새끼 오우거의 손에서 빼앗겼던 토끼 다리를 잡았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새끼 오우거는 여자아이의 의도를 알아채고 두 손으로 잡아당겼다. 그러자 여자아이가 눈을 찔렀던 포크로 새끼 오우거의 손등을 푹 찔렀다.
푹!
까웅!
푹!
까웅웅!
푹!
끄아아우흥!
결국 새끼 오우거는 토끼를 놓아야 했다. 하지만 토끼를 잃은 것이 슬펐는지 죽은 제 어미에게로 달려가 몸통을 잡고 흔들어대면서 울부짖기 시작했다.
끄아웅! 끄아웅!
포크에 찔린 한쪽 눈에서 피눈물이 꾸역꾸역 흘러나와 그 울음소리가 더 없이 처량하고 비통하게 다가왔다.
여자아이는 새끼 오우거를 빤히 응시했다.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은데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그 속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아이의 표정은 무감정하기만 했다.
여자아이가 자박자박 새끼 오우거에게로 갔다.
새끼 오우거는 움찔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그런 새끼 오우거를 향해 여자아이가 토끼를 내밀었다. 새끼 오우거는 멀쩡한 한쪽 눈알을 데룩데룩 굴렸다.
새끼 오우거가 토끼를 받지 않자 여자아이가 오우거의 손을 잡아서 억지로 토끼를 쥐어줬다. 그리고는 새끼 오우거의 다른 빈손을 잡고서 이쪽을 주시하며 기다리고 있는 흑발 청년을 향해 끌고 갔다.
흑발 청년 주변에는 어느새 몰려 왔는지 네 명의 젊은 사내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사냥한 멧돼지와 노루, 늑대 등을 들쳐 메고서 무미건조한 얼굴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뭐, 뭐지?’
유크는 눈앞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이 도무지 현실로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그의 목숨을 위협하던 몬스터가 오우거가 아니라 오크였나 하는 의구심에 죽은 시체를 살펴봤다. 머리통이 떨어져 나가고도 3미터가 넘는 거대한 몸통이 눈을 가득 채웠다.
포크가 아니라 단검이었나 싶어서 몇 번씩 눈을 끔뻑이며 살펴봐도 눈이 단단히 고장이 난 것인지 자꾸 포크로만 인식이 되었다.
그런 것은 새끼 오우거도 마찬가지라는 양 제 손에 들린 토끼와 손을 잡아끄는 여자아이의 얼굴을 번갈아 보면서 연방 고개를 갸웃거렸다.
새끼 오우거를 내려다보던 흑발 청년이 검을 사선으로 들어 올렸다. 어미처럼 새끼 오우거도 목을 쳐서 죽일 모양이었다.
여자아이가 새끼 오우거의 목을 덥석 안았다.
“…….”
“…….”
둘은 한 동안 말이 없었다. 정적이 한참이나 이어졌다. 그 시간이 하도 길어서 벙어리인가? 라는 생각이 들 때였다.
“왜?”
결국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얘도 아프다고 해요.”
“…….”
“엄마가 죽어서.”
“…….”
“눈깔이.”
그건 너 때문이잖아? 라고 반박할 수 있는 상황이건만 흑발 남자는 어쩐지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에 남자들은 등을 돌려서 그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듯했다.
‘뭐야 대체? 보통의 사고방식으로는 이해 자체가 불가한 저 인간들의 정체가 뭐냐고?’
새끼라도 오우거는 몬스터다. 몬스터 중에서도 숲의 제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포악하고 잔악무도한 포식자였다. 갓 태어난 새끼라서 지금은 순둥이처럼 비칠지 모르지만 며칠만 지나도 놈은 숲의 악마답게 흉성을 드러낼 것이다.
그러한 현실을 모르지 않을 것인데 작은 소녀가 새끼 오우거의 보모를 자청하는데도 그걸 냉큼 허락해 버리다니?
흑발 남자와 여자아이도 그들의 뒤를 따랐다.
“잠깐만요!”
그가 절룩거리는 걸음으로 다가가며 불렀지만 음산하고도 괴이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부탁입니다. 제가 다쳐서 걸을 수가 없어서 그래요. 도와주십쇼.”
유크의 애원에 흑발의 청년이 무감정한 얼굴로 돌아보았다. 피로 흥건히 젖은 유크의 다리를 빤히 응시하던 그는 자신이 끌고 가던 사슴을 내려다보았다.
다시 그의 가랑이를 보고, 사슴을 보고, 그의 가랑이를 보고, 사슴을 보고, 그의 가랑이를 보고, 사슴을 보고…….
순간 유크는 저 남자가 사슴에게 한 짓을 떠올렸다.
다리가 부러진 고통에 발버둥 치면서 울부짖던 사슴의 목 줄기에 칼을 푹 찔러 넣어서 단박에 숨통을 끊어놓던 일.
“헉!”
흑발 남자가 사슴의 다리를 놓고 걸어왔다.
저벅저벅.
“자, 잠깐만요! 멈춰! 멈추라고오오오오오오!!”
저벅저벅.
“으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