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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심장기사단 1 (4화)
제2화 그들은 사람이 아니었다(2)
유크는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깨닫고는 괜히 입을 열었다고 스스로를 책망했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마을 사람들이 회의다운 회의를 할 수 있도록 돕기로 하였다.
“곰, 표범, 호랑이 가죽과 같이 희귀한 것들은 장식용으로서 꽤 비싸게 팔 수 있어요.”
마을 사람들은 유크를 주시하고 있었지만 표정은 시종 시큰둥했다. 그게 묘하게 유크의 인내심과 자존심을 자극했다.
“그러니까… 호랑이 가죽 하나만 팔아도 마을 사람 전부가 열흘 동안 빵을 배불리 먹을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이에요.”
순간 사람들의 얼굴이 달라졌다. 여전히 무표정한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시큰둥하고 나른하게 잠겨 있던 눈이 확 커졌던 것이다.
유크는 사람들의 반응에 어이가 없었다. 빵에 집착을 보이는 이 사람들이 단순한 것인지 복잡한 것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입질이 오니 의견을 낸 사람으로서 보람이 있었다.
“아까 잡은 오우거의 송곳니나 발톱도 뽑아다가 팔면 큰돈이 돼요. 오우거는 숲의 제왕이라는 말은 알고들 계시지요?”
흑발 청년이 하도 쉽게 오우거를 처치해서 묻는 말이었다. 당연하게도 마을 사람들은 오우거에 대해서는 반응이 없었다.
“열 명의 기사가 달려들어도 쉽게 잡을 수 없는 몬스터가 오우거이기 때문에 놈의 손톱과 발톱은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만큼 희귀 중에 희귀로 취급된다는 이야기예요.”
그러니까 그걸 한방에 때려잡은 너는 괴물 중에 괴물이야! 라고 간접적으로 역설하면서 흑발 남자를 보았지만 그는 무미건조한 표정만을 고수하고 있었다.
“에휴. 부적 효과로… 강맹하고 포악한 몬스터의 뼈를 장신구로 만들어서 몸에 지니면 용맹해 진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고, 더러 돈 많은 사람들은 과시하고 싶은 마음에 그것들을 사들이고는 해요. 음, 오우거의 발톱과 송곳니를 세트로 팔면 마을 사람들이 한 달 동안 먹을 수 있는 빵을 구입할 수 있어요.”
고오오오―
순간 마을 사람들이 무형의 오라를 피워 올리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움찔하여 마을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지만 그들은 여전히 완벽한 포커페이스를 고수하고 있을 뿐이었다.
‘내 기가 약해진 것인가?’
어쨌거나 마을 사람들이 귀담아 듣는 것은 확실했다. 듣는 사람들이 반응을 나타내면 말하는 사람은 신이 나서 더 말을 하는 법이다.
“얘… 엔젤처럼…….”
유크는 뜨악하기 짝이 없는 이름을 갖게 된 새끼 오우거를 가리키면서 설명하였다.
“트롤이나 오우거같이 포악한 몬스터를 온순하게 길들여서 팔면 더 큰돈을 벌 수 있어요. 빵을 1년 동안 먹을 수 있을 만큼요.”
고오오오―
유크의 몸이 또다시 잔뜩 움츠러들었다.
소녀도 마을 사람들의 반응을 눈치챘는지 새끼 오우거를 보호하겠다는 양 엔젤의 목을 껴안았다. 그리고는 유크의 눈동자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소녀는 무감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원망, 혹은 왜 쓸데없는 말을 했냐는 듯이 경고의 눈빛을 담고 있어서 유크는 자신도 모르게 오한에 몸을 떨어야 했다.
소녀의 무미건조하면서도 냉엄한 응시에 당황한 그는 변명하듯 말을 돌렸다.
“그, 그러니까 와이번 같은 녀석은 오우거보다 더 사납고 성가신 놈들이라 그런 놈은 더 비싸요. 3년, 아니, 5년 동안 배 터지게 빵을 먹을 수 있어요.”
쿠오오오오오오!!
반응이 아주 그만이었다.
‘응? 내가 사람들의 기에 아주 민감한 체질인가? 사람들의 얼굴은 여전히 무감정하고 나른하기만 한데, 격렬하다고 느껴지는 이 기분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이지?’
어쩌면 그것은 유크의 능력이 아니라 이 이상한 마을 사람들의 괴상한 능력인지도 몰랐다.
‘하아아. 사람의 탈을 쓴 당신들 말이야, 대체 종족이 뭐냐고? 사람이면 사람답게 행동하란 말이야, 앙?!’
기세등등하게 외쳐봤다, 소심하게 속으로만…….
마을의 대장인 듯이 자처하는 흑발 남자가 입을 열었다.
“해산.”
그것을 마지막으로 흑발인의 입술이 굳건히 닫혔고, 마을 사람들은 사냥물이 쌓인 곳으로 일제히 몰려갔다. 그리고 바비큐 타임으로 이어졌다.
“저기, 이봐요들! 저 좀 일으켜 주세요!”
또다시 덩그러니 버려진 유크가 당황해 소리쳐 보았지만 돌아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어느덧 고기 굽는 구수한 냄새가 술술 풍겨오는가 싶더니 허공을 순식간에 장악해 버렸고, 배에서는 밥 달라는 격렬한 항의가 울려오고… 빵을 모두 잃은 자는 서러운 법이었다.
“저 인간들, 사람이겠지? 사람이겠지? 사람이겠지? 사람이겠지? 하아! 사람이어야 할 텐데…….”
왠지 사람이 아닐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강력하게 들었다.
유크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주변은 어두웠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새벽인 게 분명했다.
“어디 가시게요?”
“사냥.”
흑발 남자가 짧게 대답했다.
“이렇게 일찍이요?”
하지만 흑발 남자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유크는 자신도 모르게 다급하게 외쳤다.
“제 이름은 유크입니다!”
“가스파르.”
읊조리듯 나직이 말한 흑발 남자는 문을 밀고 나갔다.
“네, 가스파르님. 조심히 다녀오세요.”
문득 남편을 배웅하는 아내가 할 법한 대사를 읊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씁쓸한 웃음이 났다.
유크는 전날 부상 중인 몸에도 불구하고 먹고 살겠다는 일념으로 바비큐 파티에 참석했다. 마을 사람들은 유크가 무슨 짓을 하든 일절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노릇노릇 잘 구워진 고기를 떼어먹어도 눈길조차도 주지 않았다.
바비큐 파티가 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그저 단순한 한 끼 식사에 불과하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나자 사람들은 각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이방인인 그를 위해 숙소를 제공하거나 하는 상냥함과 배려는 눈곱만큼도 기대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만만한… 이라고 보기보다는 가장 먼저 인연을 맺은, 그 때문에 친숙할 정도로 눈에 익어버린 흑발의 남자 가스파르를 따라와 버렸다.
물에 빠져 죽을 사람을 살려냈으니 책임지라는 심정으로 따라왔는데, 가스파르는 그가 따라오든 말든, 그의 집을 뒤져서 이불을 찾아내 바닥에 깔든 말든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덕분에 밤이슬을 피할 수 있었다.
유크도 잠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상처 난 엉덩이에서 짜르르한 통증이 밀려와서 인상이 절로 구겨졌다. 그는 절룩거리는 걸음으로 간신히 문밖으로 나왔다.
마침 가스파르가 어스름한 새벽 여명을 가르며 목책을 나서는 것이 보였다. 그 뒤로 열 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뒤따랐다.
“응?”
유크는 눈을 가늘게 뜨고 시력을 모았다. 언뜻 남자들의 차림이 갑옷을 두른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가스파르님의 검도 기사들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었는데.’
전날 가스파르와 첫 대면을 할 당시에 주변에 있던 네 명의 남자들도 모두 검을 들거나 착용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것으로 사슴이며 멧돼지며 짐승들을 사냥했다. 사냥꾼에게는 당최 어울리지 않는 명검들을 들고서 말이다.
생각이 거기에 이르니 바비큐 파티 때 로브를 입은 노인과 소년도 생각났다. 특히 울리엘이라고 불리는 금발의 소년은 고기를 굽는 장작에 불도마뱀을 소환하여서 불을 붙였었다.
유크가 눈치로 파악하기에 마을에서 서열 1위는 가스파르였다.
그 다음이 울리엘이었고, 손에서 결코 포크를 놓는 법이 없는 소녀 샤넬리아가 3위였다. 울리엘과 샤넬리아는 남매지간이었다.
그리고 귀족이었다. 마을 사람 전원이 귀족!
“에휴. 잠이나 더 자야겠다.”
유크는 부족한 수면을 더 취하기 위해서 가스파르의 통나무집으로 들어갔다.
정오 무렵까지 내리 자버린 유크는 자꾸 쑤셔오는 통증에 잠을 깼다. 아마도 방치한 상처가 곪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망태기에 소독과 치료를 하기 적당한 약초가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 집안을 두리번거리며 망태기를 찾았다. 그러다가 전날 마을 공동 취사장에다가 벗어두었다는 것을 뒤늦게 기억해 냈다.
“제길!”
유크는 무겁고 고통스런 다리를 질질 끌면서 밖으로 나갔다. 마침 취사장은 점심 준비가 한참이었다.
오늘은 로브를 입은 중년인이 장작에 불을 붙여주고 있었다. 유크의 예측대로라면 이 중년인이 서열 4위였다.
“파이어.”
손끝에서 일어난 작은 불의 구슬을 부드러운 손짓으로 모닥불에 던졌다.
펑!
화르르륵―
참 무식도 하다.
말로만 듣던 마법사의 행태에 신기한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었다.
보통 마법사는 귀한 존재라고 하였고, 그들은 숭고한 마법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괴상한 이 동네에서는 기껏 취사 준비에 마법을 남용하고 있었다.
유크는 고개를 홱홱 저으면서 망태기를 들어 올렸다. 그런데 로브의 중년인이 그의 망태기의 반대편을 잡았다.
“이건 제 것인데요?”
유크가 망태기를 끌어당기자 로브의 중년인이 다른 손에서 작은 병을 내밀었다. 유크는 그게 뭔가 싶고, 무슨 의도로 주는 건가 하는 생각에 눈만 끔뻑거렸다.
로브의 중년인이 병을 든 손을 다시 제 주머니로 가져갔고, 다시 나올 때는 두 병으로 늘어 있었다. 아마도 중년인은 유크가 흥정을 한다고 생각하고 한 병을 더 내미는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고요…….”
유크가 고개를 가로젓자 로브 중년인이 그의 가슴에 병들을 퍽 안기면서 망태기를 확 낚아챘다.
“포션이네.”
“아!”
머리에서 뭔가 펑 터지는 것 같았다. 어느덧 품에 안고 있는 이것이 그 말로만 듣던, 엄청나게 고가로 취급된다던 포션이라니.
유크는 후다닥 정신을 차리고 로브 중년인을 돌아보았다. 망태기를 든 그는 벌써 저만치 멀어져 가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제 이름은 유크입니다!”
“올렌드라네.”
다행히 완전히 무시당하지는 않았다. 올렌드는 망태기 안에 약초가 필요했던 것인지 그의 거처인 듯한 통나무집으로 들어갔다.
이 동네 사람은 말이 없었다. 대화조차도 잘 나누지 않았다.
이방인이 방문했는데도 먼저 자신을 소개하거나 소개를 받는 등의 아주 기초적인 것을 아예 무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먼저 이름을 말하고 인사를 하면 상대도 이름 정도는 대답해 준다. 그것으로 완전히 무정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원래 말 수가 적은 사람들인가 보구나. 내면은 따뜻한 사람들일지도 몰라.’
그것은 유크의 착각이었다.
가스파르는 빵 맛을 봤기 때문에 가스파르 나름대로 유크에게 친절을 베풀어서 대꾸해 준 것이었다.
반면 올렌드는 빵 맛을 못 봤기 때문에 언젠가는 빵 맛을 보고 말겠다는 계산된 의도에서 유크에게 호감을 사려고 대꾸해 준 것이었다.
때론 답이 저 산 너머에 있는 경우가 있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은 전혀 없다.
유크는 포션 하나를 반쯤 마시고 나머지 반은 상처에 부었다.
포션이 좋다좋다 말로만 들었는데, 사용을 해 보니 효과가 정말로 뛰어났다. 그대로 두면 한 달은 족히 고생하고도 남았을 일인데, 포션을 사용한 지 하루가 되어서 상처가 거의 다 아물어 버렸다.
이제 걷는 것에 불편함을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나아서 내일이면 자신의 고향, 들벅 마을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전날 새벽에 사냥을 하러 간다고 마을을 떠났던 가스파르와 남자들이 여태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오늘도 벌써 해가 서쪽을 향해 열심히 치닫고 있었는데 감감무소식이었다.
더 당황스러운 것은 자신 외에 마을 사람 그 누구도 가스파르의 부재를 염려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애초에 가스파르라는 존재가 있기나 했었냐는 듯 아예 없었던 사람처럼 관심을 끊었다.
‘이래도 되는 거야? 당신들의 상전이잖아?!’
조금은 괘씸한 마음이 들어서 목책 입구를 살펴봤다. 누군가는 그를 기다리고 있다고 시위하듯이.
목책 입구는 겨우 한 남자가 지키고 있었다. 그나마도 약간 문제가 있었는데 경비를 서는 중년의 남자가 바닥에 털썩 퍼질러 앉아서 목책 문설주에 등을 기대고 꾸벅꾸벅 졸고 있다는 점이다.
‘이 동네 사람들은 왜들 이렇게 긴장감이 없는 거지?’
못마땅한 마음에 인상을 찌푸리는데 신경을 자극하는 뭔가가 그의 눈길을 끌었다. 그것은 저 멀리 서쪽 하늘을 날아다니는 생명체였다.
끼아아아아악―
먼 거리라서 울음소리는 아득하게 들렸다.
“저, 저게 뭐야?”
그것들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서 눈을 가늘게 뜨고 힘을 주었다.
날아다니는 것이니 날개가 있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말인데, 그게 박쥐 날개처럼 생겼다.
대가리부터 꼬리까지는 도마뱀을 닮았고… 눈에 힘을 더 주자 앞다리는 없고 튼실한 뒷다리 한 쌍 만을 찾아낼 수 있었다.
“헉! 와, 와이번!”
여섯 마리의 와이번이 빙글빙글 원을 돌았다. 그 아래 뭔가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뭐지?’
너무 멀고 숲에 아름드리나무에 가려진 터라 아무리 눈에 힘을 줘도 알 도리가 없었다. 다만 와이번이 맴도는 그 아래는 나무가 움푹 들어가 있었다.
“어? 저기에 길이 있었나?”
와이번이 맴도는 뒤쪽으로 마치 길이라도 난 듯이 일직선으로 푹 꺼져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이 느리지만 마을 향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마?”
더불어 허공을 맴도는 와이번도 점점 더 또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이런! 와이번이다! 와이번 떼가 이쪽으로 오고 있어요! 어서 대피해야 해요!”
마을 사람들이 미친 듯이 소리치는 그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아이고, 이런 답답할 때가! 저길 봐요! 와이번 떼가 이쪽으로 오고 있잖아요!”
유크가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마을 사람들의 고개가 일제히 숲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들은 와이번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처럼 그저 멀뚱히 쳐다보기만 하였다.
“아놔! 저게 몬스터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놈들이라고요! 저거 한 마리가 오우거 열 마리를 합친 것보다 더 포악하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설명을 해도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우두커니 서 있기만 할 뿐이었다.
“뭐야? 혹시 너무 놀라서 모두 선 채로 기절을 했나?”
끄오옹.
어느새 다가왔는지 샤넬리아의 손을 잡고 있던 엔젤이 불안한 듯 울음소리를 냈다. 사람을 대할 때와는 달리 상위 몬스터를 접하게 되자 본능적으로 움츠러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