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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심장기사단 1 (5화)
제2화 그들은 사람이 아니었다(3)


끄옹, 끄옹.
엔젤의 불안감을 눈치챘는지 샤넬리아가 호주머니에서 포크를 꺼냈다.
크오오옹!
움츠러들고 있던 엔젤이 어깨를 확 폈다.
샤넬리아의 포크가 무서워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 포크만 있으면 와이번 따윈 무서울 것이 없다는 것인지 참으로 알 수 없는 반응이었다.
키아아아아악!
쿠아아아아악!
하늘을 맴도는 와이번이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흉성 짙은 포효도 날카롭게 귓가를 후려치기 시작했다.
길은 점점 마을을 향해 빠르게 터지면서 아름드리나무가 쓰러지는 굉음이 천둥처럼 들려오기에 이르렀다.
쩌저적, 우르릉― 쿵!
꽈드드등, 쿵 쿵 쿠웅!
유크는 도망쳐야 한다고 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한데 이틀 전 오우거와 대면했을 때처럼 발이 땅바닥에 들러붙고 다리가 딱 굳어서 움직이지를 않았다.
“제, 제길!”
마을 앞 공터와 숲의 경계를 이루는 아름드리나무가 연방 좌우로 쓰러지면서 매우 얄팍해졌다. 포효하며 허공을 뱅뱅 도는 와이번은 벌써 그 경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와이번들은 이따금씩 대가리를 아래로 내밀고 곤두박질치듯 땅을 공격했다.
키아아아악!
아래로 활강했던 와이번이 비명을 지르면서 허공으로 튀어 올랐고, 붉은 핏물이 뒤따르며 허공을 수놓았다.
하늘 높이 날아올라서 미친 듯이 대가리를 흔들어 대는 것을 보면 땅에 무언가의 피는 확실히 아닌 것이 분명했다.
이제 정면 숲에 나무는 몇 남지 않았다. 거대한 것이 울창한 나뭇가지와 풍성한 잎 사이로 언뜻언뜻 비쳤다.
쿠웅! 쿠웅! 쿠웅! 쿠웅!
대지가 흔들리도록 울리는 육중한 발소리.
크와아아악! 카라라라락! 카아아아악!
그것은 모두 한 놈의 비명 소리였다. 숲을 가로막고 있는 아름드리나무가 한 그루 남게 되자 그것의 정체가 훤히 드러났다.
“마, 맙소사. 저것도 와이번이잖아!”
허공을 나는 와이번보다 덩치가 1.5배는 더 큰 놈이었다.
그런데 덩치 큰 와이번은 왜 하늘을 날지 않고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것일까? 그리고 하늘에 와이번들은 덩치 큰 와이번을 공격하는 것일까?
하늘의 와이번들은 어느 순간부터 마을 사람들의 머리 위로 날아다니기에 이르렀다. 그래도 사람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니, 자세히 보니 몇몇이 검을 꺼내들고 하늘을 주시하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하지만 역시 그뿐이었다.
아름드리나무는 죄다 좌우로 쓰러져 가고 마지막 하나 남은 나무마저 기어코 옆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까드드등―
“으으… 어?!”
넘어가는 나무의 밑동이 칼로 벤 듯이 반듯했다. 덩치 큰 와이번이 후려친 것이라면 단면이 그렇게 깨끗할 리가 없었다.
쾅!
지축이 울리면서 나무에 가려져 있던 사람이 모습을 나타냈다.
땀에 젖어 목덜미에 달라붙은 검은 머리칼.
사파이어처럼 매섭게 번뜩이는 파란 눈동자.
185cm에 이르는 장신의 키.
가스파르가 검을 늘어뜨린 채 저벅저벅 걸어 나왔다.
그 뒤로 쇠사슬에 칭칭 감긴 덩치 큰 와이번이 따라 나오면서 몸부림을 쳐댔다.
그리고 와이번의 앞뒤좌우로는 갑옷을 입은 남자들이 와이번을 묶어서 연결한 쇠사슬을 잡아끌면서 절도 있는 걸음세로 숲 속을 나왔다.
“가스파르님! 와이번을 마을로 데리고 오면 어떻게 합니까?! 저리로 가요! 이리로 오면 마을 사람들이 와이번에게 다 잡혀 먹힌단 말입니다! 미쳤어! 당신들 죄다 미친 거지?!”
공황상태에 빠진 유크는 횡설수설 고함을 치면서 딴 데로 끌고 가라고 팔을 휘젓고 악을 썼다.
“으아악! 빌어먹을! 정신이 있는 거야? 니들 인간이 아니지? 야, 이 무식한 인간아! 대체 와이번은 왜 잡아온 거냐고오오?!”
발악을 하는 유크에게 가스파르가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응, 빵 바꿔 먹으려고.”
“…크, 크어어억!”
가스파르의 천연덕스러운 대답을 들은 유크의 안면 근육이 푸들푸들 떨렸다. 곧 얼굴을 처참하게 일그러뜨린 채 뒷목을 부여잡고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못 살아…….”

* * *

와이번은 무리 생활을 하는 몬스터다.
튼실한 수컷일수록 많은 암컷을 거느리면서 종족 번식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을 발휘한다. 아주 강하고 건실한 수컷은 백 마리도 넘는 암컷을 거느리기도 한다.
암컷 와이번들은 수컷이 먹을 사냥감부터 시작하여 새끼를 낳으면 육아까지 모두 전담하는 등, 수컷이 어려움 없이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 한다. 참으로 바람직하고 모범적인 사회다…….
그렇게 수컷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서 돌아가는 사회가 바로 와이번의 세계였다.
그런데 상식을 벗어난 이놈의 인간들이 고작 빵과 바꿔 먹겠다고 수컷 와이번을 잡아와 버렸다.
수컷을 빼앗긴 분노에 포효하면서 하늘을 뱅글뱅글 도는 여섯 마리의 사나운 암컷 와이번들을 대체 어찌 하면 좋단 말인가?
수컷 와이번이 젊어서 아직 암컷 와이번을 많이 못 거느린 것이 다행이라면 천만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암컷들이 발광을 하는데도 태연하게 수컷 와이번을 마을 동쪽 공터에 끌어다 놓았다. 그리곤 그놈을 마치 빵 쳐다보듯 하였다.
주드로가 집게를 가지고 왔다.
주드로는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건장한 남자였는데, 유크가 예측하기에 서열 5위쯤 되는 것 같았다.
그는 가스파르를 보좌하듯이 항상 쫓아다녔다. 지난번 오우거를 만날 때도 끼어 있었고, 이번 와이번 사냥을 나갈 때도 함께했었다.
주드로가 집게를 가져온 것은 수컷 와이번의 이빨과 발톱을 뽑기 위한 의도로 추측이 되었다.
순간, 유크는 암컷들을 쫓아낼 기발한 대책을 떠올렸다.
“가스파르님. 저 암컷들을 단박에 쫓아낼 기가 막힌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
“암컷들은 늠름한 수컷을 따릅니다. 그러니까 잡아온 수컷의 송곳니를 몽땅 뽑고, 발톱도 몽땅 뽑고, 뿔도 뽑고, 등가죽도 좀 벗겨주는 거예요. 그러면 암컷들이 볼품없게 된 수컷을 포기하고 떠날 버릴 겁니다. 이왕 뽑는 김에 깡그리 뽑아버려요. 아! 거세까지 하면 금상첨화예요!”
유크의 말을 듣고 난 가스파르가 주드로를 향해 고개를 한번 저었고, 주드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동안 이들을 지켜본 바에 의하면 하마터면 큰 실수를 할 뻔했다라고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물론 그들에게서 표정의 변화는 없었지만, 며칠 동안 이들을 지켜본 바에 의하면 딱 그런 느낌을 주고 있었다.
“왜요? 저것들을 쫓아내지 않으면 마을 사람들이 잡혀 먹힌다니까요!”
유크가 답답한 마음에 따져 물었지만 가스파르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암컷 와이번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런데 그 눈빛이 마치 유크에게 빵을 빼앗아 먹을 때와 똑같았다.
가스파르의 의도는 분명했다.
암컷 와이번까지 몽땅 잡아서 모두 빵과 바꿔 먹겠다는 강력한 집념.
“아이고오오오, 머리야.”

* * *

유크는 엘코크 폭포 마을에 더 있다가는 신경 쇠약증에 걸리고 말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떠나왔다.
하늘을 배회하는 암컷 와이번들이 무섭다는 점도 집으로 돌아가려는 이유에 크게 한몫했다.
몽둥이찜질을 당하면서 고막을 찢어발길 것같이 비명을 내지르는 수컷 와이번이 그저 가여울 따름이었다.
“인간이 아니야, 인간이. 적어도 정상적인 인간들은 결코 아니라고, 정상적인!”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들벅 마을 입구에 도착했을 때였다.
“여어, 이게 누구신가? 자칭 들벅 마을 최고의 약초 채집꾼 유크가 아니신가! 용케 집으로 돌아온 것을 보니 다행히 살아 있었구나.”
유크는 반가운 목소리에 고개를 홱 돌렸다. 마을의 수문장처럼 버티고 있는 고목 아래 30대 초반의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큰형! 언제 온 거야?”
맏형인 한크는 역마살이 끼었는지 일찍이 고향을 떠나 나라 안팎으로 쏘다녔다. 그래도 1년에 한 번씩은 꼭 방문을 했는데 이번엔 2년 만에 돌아왔다.
“짜식아! 오늘도 돌아오지 않으면 찾으러 갈 참이었다. 어딜 그리 쏘다녀?”
“형이야말로 살아 있었네. 형이 올해도 오지 않으면 나도 찾아 나설 참이었어.”
“짜식이? 따라하지 마라.”
형제는 반가움에 힘차게 포옹하고 힘이 넘쳐 서로의 등을 아프도록 퍽퍽 두들겼다.
“아윽… 이번엔 좀 오래 있다 갈 거지?”
“네가 늦게 오는 바람에 시간을 다 까먹었잖아.”
“바쁜 일도 없잖아. 그러지 말고 형도 정착해.”
“응.”
“응?”
한크가 순순히 대답하는 것이 오히려 수상하게 여겨지는 유크였다.
“응. 안 그래도 이번 한탕만 하고 그럴 생각이었어.”
한크는 현상금 사냥꾼이었다.
“정말? 하하하! 근데 이번엔 누굴 쫓아다니고 있는데?”
한크가 품에서 접힌 종이를 내밀었다. 현상금 수배 전단지가 분명했다.
“소심한 약초 채집꾼인 내 아우야. 절대로 놀라지 말고 봐라.”
유크는 피식 웃었다. 자신이야말로 호방한 큰형을 깜짝 놀라게 해 줄 말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한크는 엘코크 폭포 마을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 한마디도 믿지 않을 게 분명했다.
“나 콧구멍이 호두알만 한 오우거를 바로 코앞에서 만나는 바람에 죽다 살아왔거든? 거기에 빵하고 바꿔 먹으려고 와이번을 생포해 오고, 놈들을 길들이겠다고 몽둥이를 휘두르는 무식한 인간들과 며칠 동안 한솥밥을 먹다 왔다고. 평생 놀랄 것을 한꺼번에 다 놀라서 더 이상 놀랄 것도 없어.”
“뭐? 무슨 헛소리냐? 오우거를 만났는데 어떻게 살아 돌아와? 이 자식이 못 본 사이에 허풍이 많이 늘었네?”
유크는 그럴 줄 알았기 때문에 애써 반박하지 않았다.
기회가 되면 엘코크 마을로 데려가서 당사자들을 보여주면 그만이었다. 빵 귀신이 들린 사람들에게 흠씬 얻어터지고 있는 수컷 와이번이 모든 것을 증명해 줄 것이다.
유크는 한크가 뭘 쫓고 있나 싶어서 수배 전단지를 펼쳤다.
한탕만 하고 정착을 한다고 했으니 분명히 큰 건일 것이다. 더불어 현상금이 크다는 것은 추격 대상 또한 위험인물이란 뜻이 된다.
‘적당하면 좋겠는데.’
그렇게 생각하면서 수배 전단지를 본 유크의 고개가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현상 수배]
이름:가스파르 사파이어(19세)

‘엉? 가스파르?’
아는 이름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
‘흠. 나이도 비슷한 것도 같고. 설마?’

특징:바렌치노 왕국 아카데미 최연소 수석 입학
졸업을 한 달 남겨놓고 자퇴, 행방 묘연
언변이 좋고 쾌활한 성격으로 상당한 호감형
항상 웃는 얼굴에 모든 여성에게 친절함

‘오오! 내가 아는 가스파르님과는 달리 머리가 꽤 좋나 보네.’
바렌치노 왕국이 어디에 붙어 있는 것인지, 아카데미의 명성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카데미란 곳에서 수석이란 단어는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카데미에서 수재는 나라에서도 인재란 공식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머리 좋고, 성격 좋고, 매너까지 좋고. 아카데미에 들어갈 정도면 가문도 좋았겠네. 여자들이 좋아하는 거의 모든 조건을 갖췄다는 이야기잖아. 쳇!’
엘코크 마을의 가스파르는 그다지 머리가 좋은 것 같지는 않았다. 어찌 보면 좀 멍해 보이기까지 했다.
빵과 바꿔 먹겠다고 와이번을 생포해 오는 단순·무식·과격함이라니.
또, 엘코크 마을의 가스파르는 언변이 좋기는커녕 벙어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이 없었고, 쾌활한 성격도 아니었다.
웃는 얼굴은 더더욱 아니었다.
미인 임산부에게조차 빵을 양보하지 않을 정도로 매너가 없었고 야박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었다.
유크는 무엇보다 엘코크의 가스파르와 마을 사람들이 인간이 아닐 것이라는데 자신의 모든 것을 걸 수 있었다.

오닉스와 같은 흑발에 약간 곱슬머리

‘요건 좀 닮았네.’

사파이어와 같은 블루 아이

‘이것도…….’
엘코크 마을에 가스파르의 파란 눈동자는 같은 남자가 봐도 빨려들 것같이 매혹적인 것이었다.

오른쪽 뺨에만 들어가는 볼우물
엘프의 평정심을 무너뜨릴 수려한 용모의 소유자
신장은 대략 185cm

‘으흠.’
유크는 읽어 내려갈수록 침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인상착의가 엘코크 마을의 가스파르와 너무나 일치했다.
머리 색, 눈동자 색까지 일치할 확률이 그리 희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쪽 뺨에만 들어가는 볼우물에 환장하게 잘생긴 얼굴과 큰 키까지, 모든 것이 엘코크 마을의 가스파르를 가리키는 듯했다.
유크의 침음은 그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욱 깊어졌다.

특이 사항:바렌치노 국왕 살해, 국왕 일가 몰살

‘헉! 국왕이면 근위 기사들이 새카맣게 몰려 있었을 것인데 그 국왕을 살해하고, 그 일가족까지 몰살을 시켰다는 게 말이 돼?’
이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상당히 비현실적인 말이었다.

애플럭스 공작 살해, 공작 일가 몰살
센터너 후작 살해, 후작 일가 몰살
테레오반트 후작 살해, 후작 일가 몰살
그 외 8명의 로드와 그들의 가족 몰살
신고 접수처:레비우스 왕국의 모든 영주성
현상금:1,000,000골드

‘이,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