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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심장기사단 1 (6화)
제3화 와이번 길들이기(1)
두 줄기 폭포수를 등진 엘코크 마을은 와이번의 비명으로 들썩거렸다. 가뜩이나 엉성하게 지은 통나무집들이 삐걱거리면서 와이번의 비명과 함께 하모니를 이루었다.
가스파르는 목걸이 줄 끝에 대롱거리는 펜던트, 아니, 반지를 내려다보았다. 가문의 인장으로도 사용되는 반지의 상판에는 룬어가 양각되어 있었다. 마법사인 올렌드조차도 알지 못하는 룬의 고어였다.
“왜 빛을 냈었을까…….”
가스파르와 엘코크 주민들은 대륙을 횡단하여 동쪽 끝에 자리한 레비우스 왕국까지 흘러들어 왔다. 하지만 세상 끝은 보름 정도 더 가야 했고, 그는 세상 끝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엘코크 폭포에 이르렀을 때 반지가 섬광을 토해냈었다. 아주 찰나 간에 일이었지만 매우 상서로운 일이었다. 반지는 그 이후로 어떠한 조짐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 현상이 하염없이 떠돌던 그를 엘코크에 정착하게 만들었다.
키아아아악!
와이번의 비명의 사색에 빠져 있던 그를 현실로 끌어올렸다. 목걸이와 반지를 셔츠 속에 밀어 넣는 그의 눈에 포크를 치켜들고 와이번에게 접근하는 샤넬리아가 띄었다.
아이의 다른 손에는 울상이 되어서 마구 도리질을 하는 새끼 오우거 엔젤이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괜찮겠습니까?”
문득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주드로가 동남쪽 먼 산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그곳은 유크가 떠난 방향이었다.
가스파르는 주드로가 무엇을 염려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은 도망자였고, 새 생활의 터전을 찾아 대륙을 횡단한 사람들이었다. 그 때문에 자신들의 위치가 세인에게 알려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가스파르는 심오하게 대답했다.
“빵을 먹어야 한다.”
“그렇군요.”
역시 주드로답게 그의 고매하고도 신묘한 뜻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빵.
그것은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무려 두 달 만에 구경만 한 빵이었다.
빵을 맛본 가스파르에게는 별미였다. 그저 단순한 별미가 아니다.
먹고 싶다.
먹어야겠다.
가슴이 죽어버린 그들 전부에게서 이 말초적인 욕구를 끌어 올린 것은 우습게도 그 딱딱하고 퍽퍽한 빵이었다.
빵이 출현하기 전에 그들은 아무런 목적이 없었다.
동쪽에서 뜬 태양이 때가 되면 서쪽으로 넘어가듯, 높은 곳에서 아래로 떨어져 유유히 흐르는 폭포처럼, 좌우로 지루하게 흔들리는 시계추처럼, 삶에 의미가 결여된 무한 반복되는 자연의 흐름처럼 그저 그렇게 맹목적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살아 있기에 그냥 살아가는 거였다.
하지만 빵이 출현한 시점부터 빵을 먹어야겠다는 욕구가 깨어났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들에겐 대파란이었다. 단순하게 살아왔던 지금까지보다 치밀하게 살겠다는 큰 의미가 부여된 것이다.
생기.
활력.
타인들이 보면 그들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이 큰 변화를 눈치채지 못할 것이었다.
그러나 대륙을 횡단하는 6개월, 이곳에 정착한 2개월, 모두 합쳐 8개월을 함께한 가스파르와 주드로의 눈에는 확연한 차이가 났다.
가스파르는 그 빵을 먹으면서 사람이 살아가는 데 고기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래서 빵을 만들 밀을 사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던 것이다.
빵을 얻기 위해서는 거래를 해야 한다.
거래는 타인과 하는 것이다.
노출에 전전긍긍하여서 목격자를 발견하는 족족 모두 처치해서는 그 누구와 거래를 하고 빵을 구할 수 있을까.
가스파르는 엘코크 마을 사람들이 엘리고스 숲의 완전한 주민이 되어서 바깥세상과 교류하기를 바랐고, 그렇게 되기까지 유크가 매개체가 돼 주길 원했다.
가스파르가 빵을 먹어야 한다고 한 말에는 그런 많은 의미들이 함축되어 있었던 것이고, 그걸 주드로가 곧바로 이해한 것이다.
샤넬리아가 와이번의 날개에 포크질을 했다.
콕!
끼윽!
쿡!
키흑!
푹!
끼으으윽!
주둥이가 쇠사슬로 감겨 있는 수컷 와이번은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샤넬리아가 포크로 찌를 때마다 거대한 덩치를 움찔움찔 요동치며 괴로워했다.
수컷의 괴로운 모습에 자극을 받은 암컷 와이번들이 광분하기 시작했다.
키아아아아악!
암컷 한 마리가 커다란 아가리를 쩍 벌리고 샤넬리아를 향해서 내리꽂혔다. 가스파르는 손에 들고 잿빛 사슬 올가미를 머리 위로 회전시켰다.
휘익, 홱 홱 홱!
손에 힘을 풀자 사슬 올가미가 회전을 일으키면서 하늘을 나는 뱀처럼 사선으로 쭉 뻗어 올라갔다.
차라라라락―
샤넬리아를 집어 삼키려던 암컷이 순식간에 지상에서 5미터까지 떨어졌다. 가스파르가 던진 올가미도 때맞춰 도착하였다. 그 바람에 암컷은 둥글게 회전하는 올가미 안에 대가리를 불쑥 집어넣는 꼴이 되었다.
카아악?!
놈이 이건 아닌데, 라는 침음을 터트리는 때에 가스파르는 풀었던 손을 죄면서 힘껏 잡아챘다.
잿빛 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지면서 올가미에 목이 매인 암컷이 힘없이 딸려와 가스파르의 머리 위를 홱 지나 반대편에 내동댕이쳐졌다.
쾅! 우당탕탕!!
끼아아아아악!
암컷은 바닥을 구르면서 쇠를 긁는 것보다 신경을 자극하는 비명을 질러댔다.
민첩하고 날렵하기로는 와이번을 따를 몬스터가 없다고 했다. 거기에 파괴적인 힘도 육해공 몬스터 중에서 단연 최고였다.
비록 올가미에 목이 잡혔지만 낚시 바늘에 아가리가 꿰인 물고기처럼 와이번이 힘없이 딸려오고, 내동댕이쳐지고, 발버둥 치면서도 일어서지 못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 할 수 있었다.
한데 그 있을 수 없는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었다.
암컷의 목을 팽팽하게 당기고 있던 잿빛 사슬이 어느덧 우윳빛으로 빛나면서 웅웅 울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 빛은 이미 암컷이 올가미에 대가리를 집어넣는 순간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암컷의 몸부림이 더욱 격렬해졌다.
가스파르는 사슬에 주입하고 있는 마나의 강도를 높였다.
지이이잉!
곧 하얗던 빛이 푸른빛을 내기 시작하면서 울음을 토해냈다. 암컷의 비명이 더 찢어졌지만 머지않아서 축 늘어졌다.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기절한 것이다.
쿵!
암컷의 대가리가 툭 떨어지고 몸이 축 늘어지자 친위대원들이 주변에 3미터가 넘는 쇠말뚝을 땅에 박기 시작했다. 쇠말뚝 위에는 조그마한 마나석이 박혀 있었다.
말뚝이 다 박혔을 때 마법사 올렌드가 와서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며 마법적인 장치를 걸었다.
말뚝이 3미터나 되었지만 와이번이 힘 한 번 주는 것으로도 쑥 뽑히고 말 것이다.
그래서 와이번이 힘을 쓰면 마나석이 발동하도록 마법을 거는 것이다. 마나석에서 일어난 마나가 쇠사슬을 타고 흘러가 와이번에게 금제를 가하는 것이다.
몇몇은 암컷의 꼬리에 사슬이 연결된 쇠꼬챙이를 박고 발목에는 족쇄를 채웠고, 사슬은 또 말뚝과 연결하였다.
주둥이도 단단히 묶어 놓았다. 와이번의 사나운 이빨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녀석이 지르는 소리가 성가셨기 때문이다.
작업이 끝나고 사람들이 뒤로 물러나자 암컷 와이번은 누에고치처럼 쇠사슬에 칭칭 감겨 버린 상태였다. 그 모든 작업이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와이번 서식지에서 수컷을 잡고, 달려드는 암컷들을 모두 제압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준비해 간 사슬과 장비들이 부족했었다.
또 겨우 열한 명의 인원으로 놈들을 죄다 끌고 오는 것이 무리였기 때문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수컷만 끌고 왔다.
그런데 암컷들이 발광을 하면서 따라온 것이다.
왜 그런가 의아해 했는데 그 궁금증을 유크가 풀어주었던 것이다. 와이번은 수컷을 중심으로 무리를 이룬다는 설명.
집게를 든 남자들이 쇠사슬 고치가 된 암컷에게로 몰려들었다. 그들의 행동은 너무도 명백했다. 바로 빵과 바꿔 먹기 위해 암컷의 발톱을 뽑으려는 의도인 것이었다.
가스파르는 귀를 후비면서 암컷의 튼실한 다리로 몰려가는 가문의 기사들을 제지했다.
“이빨 먼저 뽑아.”
이빨을 먼저 뽑으면 와이번이 비명을 제대로 지르지 못할 것 같았다.
가문의 기사들이 주둥이 밖으로 삐죽 튀어나온 이빨을 집게로 집었다. 그리곤 한 발로 놈의 주둥이를 밟아서 다리에 힘을 주고는 기합을 넣으며 집게를 잡아당겼다.
“흐아압!”
툭!
끼으으으으으으윽!
이빨이 뽑히면서 기절했던 와이번이 깨어나 비명을 질러댔다.
가스파르는 와이번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이빨을 뽑아낸다는 것은 어떤 방법으로든 시끄럽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죽일 수도 없었다.
와이번을 길들여서 팔면 마을 사람들이 5년 동안 빵을 배불리 먹을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와이번을 죽이면 발톱과 이빨밖에 남기지 않기 때문에 이 이상의 빵을 더 얻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빵을 먹고 나면 또 무엇에 욕망을 느끼게 될지 지금으로서는 예상할 수 없었다. 그때를 대비해서 큰 돈벌이가 되어줄 녀석을 죽일 수 없었다.
“기절시켜.”
시립하고 있던 주드로가 몽둥이를 휘둘렀다.
퍽!
끼욱…….
하지만 이빨을 하나 뽑을 때마다 녀석은 여지없이 비명을 지르면서 깨어났다.
“기절시켜.”
퍽!
“기절시켜.”
퍽!
“기절시켜.”
퍽!
“기절시켜.”
가스파르가 최근 들어서 말을 가장 많이 한 날이었다.
고작 와이번 주제에 감히 그를 수다스럽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 발칙함의 대가는 이빨과 발톱으로 몽땅 갚아야 했다.
시간이 흘러, 주둥이와 발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암컷은 깨어 있었다. 하지만 더는 비명을 지를 기운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축 늘어뜨리고서 붉게 충혈된 눈으로 눈물을 줄줄 흘리기만 했다.
아니면, 소리를 내게 되면 죽도록 맞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본능적으로 숨을 죽이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어쨌거나 조용하면 그만이었다.
“풀어줘.”
“빵은요?”
주드로의 질문은, 와이번이 도망치면 빵도 날아간다는 의미였다.
“발톱 빠진 짐승은 사냥을 못해.”
사냥을 못하는 짐승은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먹이를 받아먹는 짐승은 길들여지게 마련이다.
묶어놓고 먹이를 줘도 길들여진다. 다만 자연적으로 길들여지는 것과 강제적으로 길들여지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강제적인 것은 반감을 살 수 있고, 언젠가는 배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제가 원해서, 혹은 아쉬워서 자연적으로 길들여지는 경우는 먹이를 주는 이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은혜를 잊지 않게 된다.
거기에서 충성심이 나오는 것이다.
물론 마음먹은 대로, 예측한 대로 계획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무엇보다 생니를 뽑아내는 악랄함을 보인 것은 그들이 먼저였고, 그 때문에 와이번들이 원한을 잔뜩 품을 수 있었다.
하지만 빵을 먹고자 하는 원대한 뜻을 품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아주 사소한 문제에 지나지 않았다.
빵.
와이번에게 그 외에 의미는 두지 않았다.
“그렇군요.”
이빨이 몽땅 빠진 암컷을 풀어주었지만 녀석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언뜻 암컷 와이번의 흐느낌이 들려오는 듯하였다.
‘흐윽! 뭇 수컷들이 뻑 갈 정도로 매혹적이었던 내 누런 뻐드렁니들… 짐승의 살과 피로 엉켜 붙은 때가 진득하게 꼈던 내 우아했던 발톱들… 청초한 미녀 와이번으로 칭송받던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버리다니. 아아! 가인박명이라… 신이 내 누런 뻐드렁니를 질시하고 있었더란 말인가. 흐으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