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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심장기사단 1 (7화)
제3화 와이번 길들이기(2)
가스파르는 자루 안에 피 떡으로 엉킨 이빨과 발톱을 보다가 주드로에게 건넸다.
주드로는 자루 주둥이와 바닥이 연결된 줄에 팔을 꿰어서 등에 둘러멨다. 이제 자루는 마을의 보물인 것이다. 바로 빵과 교환할 수 있는 보물이니 잘 지켜야 한다.
그때 리브스가 뛰어왔다.
리브스는 정찰을 보냈던 가문의 기사였다. 어지간해서는 굼벵이처럼 뭉그적거리는 리브스가 뛰어왔다는 것은 필시 급한 일이 생겼다는 뜻.
리브스는 급히 달려왔던 것이 무색해 보일 정도로 무뚝뚝한 얼굴로 보고하였다.
“기사단이 숲으로 들어왔습니다.”
리브스의 뚱한 보고에 주드로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유크의 짓이군요.”
가스파르도 한순간, 바보처럼 헤실헤실 웃어대던 유크의 얼굴을 떠올렸다. 상당히 선량해 보여서 믿음이 절로 갔었던 유크였다.
그러나 이미 저질러져 버린 일이었다.
“얼마나?”
“1백 정도입니다.”
리브스의 보고에 가스파르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은 주드로도 마찬가지였다.
적이 몰려왔으면 치워 버리면 되는 일이었다.
그들은 말뿐이 아니라 실제로 죽음의 문턱을 수백 번이나 넘나들면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은 사람들이었다.
두 사람의 미적지근한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리브스가 뚱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놈들이 빵을 난도질하고 있습니다.”
스릉!
스릉!
가스파르와 주드로는 그제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검을 뽑아 들었다.
“가자.”
가스파르가 앞장섰다.
그 뒤로 주드로와 리브스가 바짝 따라붙으며 목책을 나섰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던 샤넬리아도 주머니에서 포크를 뽑아 들었다.
척!
“엔젤, 가자.”
샤넬리아가 엔젤의 손을 잡아끌었고, 엔젤은 좋다고 성큼성큼 따라나섰다.
그런 엔젤의 왼손에는 언제부터인가 포크가 쥐어져 있었고, 샤넬리아가 그랬던 것처럼 눈을 번뜩이면서 포크를 치켜세웠다.
크오옹!
가스파르는 한 시간 반을 걸어서 기사단이 처음 목격되었던 장소에 도착했다. 그들이 도착했을 땐 이미 기사단이 이동한 후였다.
리브스가 보고를 하기 위해 마을로 돌아왔던 시간까지 합치면 대략 세 시간이라는 시간 차이가 났다.
주변은 수백의 고블린과 오크들의 시체로 덮여 있었다.
“숲을 나간 거야?”
기사단의 이동한 흔적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방향이 도시로 향하는 것인지 아닌지, 가스파르로서는 알 수 없어서 묻는 말이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마투누스 산맥의 기슭이 나옵니다. 음.”
설명하던 리브스가 침음을 흘렸다.
“왜?”
“야생 다래가 있습니다.”
“사베나가 거기에 있겠네.”
며칠 전 유크가 마을에 들어왔을 때 많은 정보를 풀어놓았다.
그중에는 마을 여자들의 호기심을 끌 만한 것도 꽤 있었다. 그것은 바로 샐러드를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나물들과 과실들을 얻을 수 있는 위치였다.
와이번을 잡아서 돌아온 지 하루가 지났다. 그동안 와이번이 내지르는 비명 소리가 듣기 싫다면서 여자들이 단체로 마을을 나갔다. 심지어 만삭인 사베나도 무거운 몸을 이끌고 뒤뚱뒤뚱 따라나섰다.
가스파르는 방향을 잡고 걸었다.
저벅저벅.
그 방향은 기사단이 이동한 쪽이 아니라 그들이 지나왔던 방향이었다. 즉 마을로 돌아가는 길.
리브스가 말했다.
“유크의 말에 의하면, 한 입 베어 물면 달콤한 과즙에 혀끝이 녹아내릴 정도로 행복하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으로 족했다, 가스파르의 발길을 돌리기엔.
“가자.”
그 뒤로 엔젤이 죽은 오크를 맛보겠다고 투정을 부리면서 잠깐 실랑이를 벌였던 샤넬리아가 치맛자락을 나풀거리며 뒤따랐다. 승리의 웃음을 띤 엔젤의 손엔 먹음직스러운 오크의 넓적다리가 들려 있었다.
다시 한 시간을 걸었다.
멀리 달래 나무에 매달려 있는 30여 명의 여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기사단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가스파르의 발에 툭툭 채이고 있었다.
새카맣게 타거나 얼어붙은 채 조각이 나서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더러는 멀쩡하지만 머리와 몸통이 분리되어 있다는 게 다를 뿐이다.
100명의 기사들이 마을 여자들에게 죄다 죽임을 당한 것이다.
“저것들은 뭐야?”
가스파르는 알면서도 여자들에게 다가가면서 물었다.
그는 외부 사람들과 교류를 하겠다고 발표를 하고 마찰을 일으키지 말라고 당부했었다. 그런데도 기사들을 모두 죽였으니 보고를 받아야 했다.
“희롱해서 죽여 버렸어요.”
배를 불룩 내밀고 허리를 두 손으로 짚은 사베나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걸로 사베나의 보고는 끝이었다.
어떤 상황이었는지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호색한 인간들이 여자를 희롱할 때는 종종 목숨을 거론하면서 겁을 주고는 하였다. 엘코크 마을의 여자들은 생존본능에 기민하게 행동하였다. 상대가 조금이라도 해코지를 할 것 같다 싶으면 목부터 따고 봤다.
가스파르는 고개를 한 번 끄덕여 주는 것으로 추궁을 끝냈다. 상황이 이렇게 될 것을 예측했기 때문에 엘코크 마을로 돌아가려고 했었던 것이다.
여자들이 가져온 자루와 그릇엔 다래로 넘쳐흐르고 있었다.
가스파르는 나무에 매달린 다래를 따서 두 손으로 잡고 쪼갰다. 하지만 다래가 너무 잘 익어서 뭉개지며 과즙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달콤한 향기가 주변 공기를 진하게 물들였다.
한 입 베물었다.
달콤했던 향기와 다르게 맛은 매우 새콤했다. 굳었던 얼굴 근육이 파르르 떨렸다. 그게 그에겐 상당히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 아직 살아 있는 거였나?’
과실의 새콤함에 몸서리쳐지는 느낌이 살아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옆에 주드로와 리브스도 몸을 부르르 떠는 게 느껴졌다.
“아이, 셔!”
샤넬리아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녀석은 시다고 눈을 몇 번씩이나 깜빡거리면서도 다래 하나를 다 먹어치우고 다른 것을 또 잡았다.
“옛날 생각이 나려고 해.”
샤넬리아가 꺼끌꺼끌한 다래 껍질을 이빨로 벗겨내면서 엔젤을 향해 말했다.
“행복했던 생각이 말이야…….”
카오옹?
샤넬리아가 다래를 먹는 것을 보고 엔젤이 따라서 입에 우겨 넣다가 질색을 하면서 방방 뛰어댔다.
크아웅! 카앙!
“맛있는 것을 먹으면 행복했었는데 지금은 행복하지가 않아. 그게 어떤 느낌이었는지 지금은 생각나지가 않아. 엔젤 너도 행복하지 않는 거니?”
울상이 된 엔젤을 돌아보며 물었다.
가스파르가 대답했다.
“샤넬리아는 지금 행복해.”
“근데 왜 웃음이 나오지 않는 거예요?”
샤넬리아가 말끄러미 올려다보며 물었다.
“누가 훔쳐 갔나 봐.”
“도둑이요?”
“응. 나중에 그 도둑놈을 잡아서 되찾아 오면 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도둑놈 얼굴을 봤어요?”
“응.”
“도둑 잡을 때 샤넬리아도 데려가 주세요, 가스파르님.”
샤넬리아는 온순히 그렇게 말하고 다래를 먹었다. 한 입 한 입 베어 먹을 때마다 아이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뺨이 붉게 물들었다.
가스파르도 다래를 먹었다.
볼 근육이 절로 실룩거려지고 입매 주변이 푸들푸들 떨리는 그 느낌이 좋아서 우겨 넣고 또 우겨 넣었다.
신맛에 혀끝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지만 그 느낌조차도 좋았다.
주드로도, 리브스도, 여자들 모두 얼굴이 벌게지도록 시어 터진 다래를 먹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유크… 이 뻥쟁이, 냄새만 달잖아.’
* * *
가스파르는 여섯 마리의 암컷 와이번에게서 이빨과 발톱을 몽땅 뽑아냈다. 그리곤 모두 풀어주었지만 놈들은 세상이 끝난 것처럼 대가리를 축 늘어뜨리고 꼼짝을 하지 않았다.
때문에 마을 남자들은 더 많은 사냥을 해와야만 했고, 이빨이 없는 놈들을 위해 회를 쳐서 억지로 아가리에 넣어주는 듯 부산을 떨어야 했다.
마을 사람들은 와이번들이 조용해졌다는 것에 만족했다. 최근 야채와 과일을 먹게 된 것으로도 사람들의 얼굴에 여유가 넘쳐 났다.
물론 외부 사람이 보면 그게 그 얼굴로 비치겠지만.
가스파르는 땅바닥에 대가리를 축 늘어뜨리고 있는 수컷 와이번 앞에 섰다. 3일 밤낮으로 얻어터진 수컷 와이번은 흉터로 온몸이 도배되었다.
평범한 몬스터였다면 여전히 핏물이 꾸역꾸역 흘러나오거나 피딱지라도 앉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와이번이란 놈은 지상 최고 몬스터라고 불리는 녀석답게 재생 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어쨌든, 가뜩이나 사납게 생긴 녀석인데 난도질당한 흉터까지 더해서 이전보다 몇 배는 사납고 흉포하게 비쳐졌다.
유크의 설명에 의하면 이 수컷 와이번은 완전히 성장한 것이 아니라고 했었다. 앞으로도 더 성장을 해서 지금보다 덩치가 더 커질 것이라고 했다. 수컷이 성장을 하면 할수록 암컷의 수도 점점 불어날 것이라 했다.
또 암컷들도 어린 것들로 더 날렵하게 성장을 할 것이라 하였다. 사람으로 나이를 환산하면 대략 15세 전후의 소년, 소녀라는 것이다.
그 설명에 가스파르의 머리 위로 큰 빵집 그림이 떠올랐었다.
주드로가 그의 옆으로 다가오면서 말했다.
“길들이는 놈은 이름이 있어야 합니다.”
주드로의 의견에 동감한 가스파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름은… 브래드다.”
“…….”
“좀 없어 보이나?”
가스파르의 질문에 주드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흠. 그럼 빅브래드다.”
“…….”
“롱브래드로 할까?”
“…빅브래드가 좋겠습니다.”
“빅브래드도 제 이름이 퍽 마음에 드는 모양이야.”
퍽은 무슨?
방금 빅브래드라는 이름을 하사받은 수컷 와이번은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하지만 가스파르에게 몬스터의 표정을 읽을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이 있는지도 몰랐기에 주드로는 굳이 따져 묻지 않았다.
“풀어.”
가스파르의 명령에 빅브래드를 속박하고 있던 쇠사슬을 모두 풀어냈다. 다만 코뚜레에 연결된 고삐만은 말뚝에 묶어 놓은 채 그대로 두었다.
코뚜레는 우연한 계기에 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샤넬리아의 엽기 행각 때문이라 할 수 있었다.
샤넬리아는 포크로 와이번을 콕콕 찌르고 다녔다. 덕분에 와이번의 신체 부위 중 어느 부위가 민감한지 둔감한지, 연한지 단단한지 등 이모저모를 알게 되었다.
그중에서 콧구멍을 찌를 때 가장 괴로워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고, 바로 코를 뚫어서 고삐로 연결했다.
코가 뚫린 시점부터 놈이 반항을 멈추었고, 시간이 점차 흐르자 흉성이 잦아들기까지 했다. 지금은 옥죄고 있던 사슬이 풀렸는데도 세상 다 산 놈처럼 몸을 늘어뜨리고 고개를 들 생각도 하지 않았다.
가스파르는 빅브래드가 비행할 수 있을지 녀석의 주변을 돌면서 점검해 보았다.
샤넬리아가 포크로 콕콕 찍어서 난장판을 만들어 놓았던 피막 날개는 깨끗하게 아물어 버렸다.
“문제없겠어.”
“언제 발광을 할지 모르는 놈입니다. 소관이 조련을 맡겠습니다.”
주드로가 말뚝에서 고삐를 풀어오면서 말했다.
“줘.”
가스파르가 손을 내밀자 주드로는 그의 파란 눈동자를 잠시 들여다보다가 건넸다.
“소관도 함께 탑승하겠습니다.”
주드로는 그의 허락도 기다리지 않고 기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턱 아래로 고삐를 하나 더 연결하라.”
“옙!”
가스파르는 어디든 따라붙으려는 주드로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의 무례를 질책하지 않았다.
친위대들이 빅브래드의 목과 다리에 고리를 걸고 등 쪽으로 끌어올려서 고정시키고는 짧게 잡을 수 있는 손잡이를 만들어냈다. 와이번을 조정할 수 있는 것은 코뚜레와 연결된 고삐뿐이란 이야기가 된다.
가스파르가 등에 올라탔다. 빅브래드는 저를 해코지 하는 줄 알았는지 움찔거렸다. 녀석은 소리를 내거나 반항하면 맞는다는 것을 뼛속 깊숙이 각인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잔뜩 긴장을 하면서도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다.
주드로가 뒤에 올라타는 것을 확인한 가스파르는 고삐를 확 잡아당겼다. 빅브래드는 코가 당겨지자 화들짝 놀라서 벌떡 일어나 고개를 치켜들었다.
카오오오오……!
비명을 지르다가 움찔거리며 황급히 아가리를 다물었다. 역시 코가 민감하긴 엄청 민감한 모양이었다.
가스파르는 고삐를 부드럽게 잡아당기면서 승마를 할 때처럼 뒤꿈치로 녀석의 옆구리를 찍었다.
“이륙!”
빅브래드는 코가 들리면서 뇌를 잠식하는 아픔에 본능적으로 땅을 박차고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탓!
퍼덕퍼덕!
찰나에 100여 미터 상공까지 치솟아 올랐다. 빅브래드의 날갯짓 소리가 괴음처럼 고막을 때려왔다.
“잘했어, 빅브래드!”
가스파르는 고삐를 좀 더 느슨하게 풀며 칭찬을 해줬다.
아무리 말 수가 없는 그였지만 짐승을 길들이는데 간단한 명령어를 인지시켜야 하는 것은 기본이었기 때문에 말을 아낄 수가 없었다. 그래야만이 길들여진 다음부터는 명령어만으로도 놈이 움직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좌로!”
고삐를 왼쪽만 당기면서 외치자 놈의 고개가 좌측으로 홱 틀어지면서 회전했다.
“잘했어! 우로!”
빅브래드의 고개가 오른쪽으로 돌려지면서 쭈욱 미끄러져 나갔다.
“좋았어, 빅브래드.”
이번에는 상승을 가르칠 차례였다.
“위로!”
고삐를 힘껏 당겼다.
쿠오오오오오오!
빅브래드가 괴성을 지르며 직각으로 솟구쳤다. 언뜻 등 뒤에 주드로에게서 ‘흐음’하는 신음이 들려오는 듯했다.
어쨌거나 빅브래드의 장기는 급상승 비행인 것 같다…… 아니면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