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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심장기사단 1 (8화)
제3화 와이번 길들이기(3)


숨이 턱턱 막혀오는 궤도까지 상승한 가스파르는 고삐를 느슨하게 풀어주면서 한 가지 고민에 빠졌다.
‘하강은 어떻게 숙지시키지?’
고삐를 당기면 코에 자극을 줘서 대가리를 쳐들게 할 수 있었다.
반면 등 위쪽으로 연결해 놓고 조정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아래로 고개를 숙이게 할 수 없었다. 그 단점을 까마득한 하늘까지 올라가서야 깨달은 것이다.
‘뭐 꼭 고삐로만 조정하라는 법은 없지.’
가스파르는 고삐를 한 손으로 모아 잡고 주먹으로 빅브래드의 뒷목을 내려쳤다.
“아래로!”
쾅!
키아오오오오오오!
“으허어어아아아악!”
지상을 향해 고개가 푹 꺾인 빅브래드는 급상승 못지않게 급강하도 장기인 모양이었다. 빅브래드가 득의양양하게 우렁찬 포효를 터트렸고, 주드로도 와이번 못지않게 광오하게 포효했다.
아니면 말고.
까마득했던 숲이 급격히 확대되어 갔다. 가스파르는 빅브래드가 곤두박질칠 찰나에 고삐를 좌우 넓게 잡아서 평행으로 당겼다.
“직로!”
촤자작, 탁탁, 투두둑, 티디디딕!
고개를 정면으로 한 빅브래드는 아름드리 나뭇잎 융단 위를 슬라이딩 하듯이 쭉 미끄러져 나갔고, 빅브래드의 배에 닿은 나뭇가지가 꺾이고 부러지면서 요란한 소음을 냈다.
“위로!”
타다다닥, 뚝뚝, 따다다닥―
‘한번으로는 무리인가?’
이번엔 고삐를 사용하지 않고 명령어만 내렸었다.
‘될 때까지 하면 되겠지.’
빅브래드의 암울한 미래가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아니, 어쩌면 와이번 산에서 가스파르와 조우한 첫날부터였는지도.
가스파르는 고삐를 당기며 명령했다.
“위로!”
카우우우우우!
“으아아아아악!”
“좌로!”
카오오오오오오!
“아아아아아악!”
“아래로!”
쾅!
크아오우아우오우!
“흐아악으에우쿠와악!”
덩달아 고생인 주드로였다.
엘리고스 숲에 화전 마을 사람들은 하늘에서 미친 듯이 괴성을 지르며 발광을 하는 빅브래드를 보고 공포에 떨었다.
그 공포는 가스파르가 한 마을을 발견했을 때 비로소 끝이 났다.
까마득한 아래, 200여 채의 석조와 목조 주택이 뒤섞인 마을 자체는 무신경한 가스파르의 관심 끌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을 공터에는 사람들이 울타리처럼 반원을 싸고 있었고, 그 안에는 팔다리가 뒤엉켜서 바닥을 구르며 주먹질을 해대는 남자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갈색 머리칼의 남자가 가스파르의 눈을 가늘게 만들었다.
‘유크?!’



제4화 심통 불감증Ⅰ(1)


아득한 상공에서 내려다본 사람들의 크기는 개미 만하게 보였지만 유크가 분명했다. 그런데 왜 싸우고 있는 것일까?
가스파르는 빅브래드의 목을 가볍게 쳤다.
툭.
“아래로.”
치는 강약에 따라 빅브래드의 하강 속도가 빨라지고 느려진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파악해 둔 터였다.
그걸 알면서도 빅브래드를 몰아친 것은 쾌속을 낼 때마다 심장이 오그라드는 듯, 갈라지는 듯, 숨 가쁘게 박동하며 펌프질을 해대는 느낌들이 산뜻했기 때문이다.
“허억허억!”
뒤에서 주드로의 숨넘어갈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주드로는 느꼈을까? 짜릿함, 전율, 쾌감. 그게 아니면 하다못해 공포심이라도. 그런 살아 있는 생생한 감정들이 깨어났을까?’
가스파르는 느끼지 못했다. 그저 간이 오그라드는 느낌에서 자신이 죽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겨우 느낄 수 있었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주드로는 무엇을 느꼈을까. 문득 공포를 느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삼 부러운 마음에 물었다.
“돌아왔어?”
“하아하아… 아닙니다.”
“그럼 왜 학학거려?”
“토, 토할 것 같습니다.”
“음. 주드로는 마차 멀미가 심했었지.”
가스파르는 실망했다. 위장이 뒤틀리면서 속이 울렁거리는 것은 생체와 관련된 것이지 감정과는 전혀 무관했다. 육체의 고통은 그 자신도 충분히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주드로의 멀미를 부러워할 것은 못 되었다.
가스파르는 빅브래드를 마을 뒤편에 내려앉게 하고서 착지를 하자마자 뛰어내렸다. 그리고는 빅브래드의 고삐를 잡고 모여 있는 마을 사람들의 뒤로 다가갔다.
쿵!
“으으으…….”
뒤에서 뭔가가 떨어지는 소음이 일었다.
아마도 새하얗게 질린 얼굴의 주드로가 빅브래드의 등에서 떨어진 모양인데, 가스파르의 신경은 아귀다툼을 하고 있는 유크에게로 쏠려 있어서 뒤를 돌아봐 줄 여유가 없었다.
들벅 마을 사람들은 이방인과 덩치가 큰 와이번이 마을에 침입했는데도 알아채지 못하고 싸우는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수군거렸다.
“진짜 징허게들 싸우네. 벌써 삼 일 밤낮을 눈만 마주치면 달려들어서 저렇게 뒹굴고 있잖아.”
“그러게. 우리 들벅 마을에서 우애하면 한크 형제들이었는데. 2년 만에 만나서 저리 원수를 대하듯이 싸워대다니. 쯧쯧쯧!”
“하지만 유크의 말이 백 번 옳아. 그 살인마를 잡으면 자손만대가 잘 먹고 잘 살 수 있지만 까딱 잘못되면 자손은커녕 자식도 못보고 제 집안에 씨를 말리는 화를 불러들일 수 있다고. 유크는 우리 들벅 마을의 안녕을 위해서라도 한크가 현상범을 쫓는 것을 그만두라는 것이잖아.”
“하긴. 그 흉악범에게 걸리면 왕족도 귀족도 깡그리 몰살이라고 했으니까. 하지만 생각해 보라고 한크가 어디 저희 형제들끼리만 잘 먹고 잘살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니잖는가? 100만 골드면 남작령 정도의 큰 영지를 살 수 있는 돈이네. 마을 사람들을 모두 이주시켜서 다른 귀족들의 눈치 안 보게끔 떳떳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했잖은가. 모험을 해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부모 형제 자식새끼 다 죽을지도 모르는데 모험은 무슨 모험? 우리같이 미천한 것들이 그런 걸 바라면 하늘에서 날벼락이 떨어져. 정신 차려, 이 사람아!”
의견이 서로 다른 사람들의 뒤로 다가가던 가스파르의 발걸음은 어느덧 멈춰 있었다. 그런 그의 발치에는 잔뜩 구겨져서 버려진 종이 뭉치가 있었다. 언뜻 자신의 이름 몇 글자가 보여서 집어 들었다.

[현상 수배]
이름:가스파르 사파이어(19세)
특징:바렌치노 왕국 아카데미 최연소 수석 입학
졸업을 한 달 남겨놓고 자퇴, 행방 묘연
언변이 좋고 쾌활한 성격으로 상당한 호감형
항상 웃는 얼굴에, 모든 여성에게 친절함
오닉스와 같은 흑발에 약간 곱슬머리
사파이어와 같은 블루 아이
오른쪽 뺨에만 들어가는 볼우물
엘프의 평정심을 무너뜨릴 수려한 용모의 소유자
신장은 대략 185cm
특이 사항:바렌치노 국왕 살해, 국왕 일가 몰살
애플럭스 공작 살해, 공작 일가 몰살
센터너 후작 살해, 후작 일가 몰살
테레오반트 후작 살해, 후작 일가 몰살
그 외 8명의 로드와 그들의 가족 몰살
신고 접수처:레비우스 왕국의 모든 영주성
현상금:1,000,000골드

가스파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쾌활한 성격이었던가? 늘 웃는 얼굴이었다고? 난 과거에 행복했었던 것일까?’
행복한 것이 어떤 느낌이었는지 기억이 나지가 않았다. 그런데도 그에 대한 상실감조차 들지 않는다.
유크의 발악적인 외침이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가라고! 형이 하는 일치고 되는 게 하나도 없었어! 이 재앙 덩어리, 돈에 환장한 인간아! 당장 꺼지란 말이야!”
울긋불긋 피멍이 든 얼굴이 오크처럼 변한 유크가 자신의 몸에 타고 앉아서 멱살을 틀어잡은 남자에게 소리쳤다.
유크 못지않게 얼굴이 난장판이 된 한크도 맞서 고함을 쳤다.
“야, 이 멍청한 자식아! 내가 그렇게 설명을 해도 못 알아 처먹겠어?”
“몰라! 알고 싶지도 않으니까 가버리라고!”
“아후… 서쪽에서 온 그들이 두 달 전에 엘리고스 숲에 들어오는 것을 본 목격자들이 한 둘이 아니야. 그리고 동쪽 웨일락 숲에서는 목격자가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어. 그게 뭘 뜻하는 것인지 정말 모른단 말이냐?”
한크의 호통 섞인 설명에 유크가 신랄하게 비꼬았다.
“아하! 그랬구나. 2년 만에 고향을 찾아왔던 것이 아니라 돈을 쫓아서 오다보니 그게 고향 마을이란 뜻이었구나! 가족이 보고 싶어서도 아니고, 고향 사람들이 보고 싶어서도 아니고 돈 때문에 왔다는 소리였잖아!”
“이 자식이? 그들은 분명히 이 엘리고스 숲에 있다고!”
“몰라!”
밑에 깔린 유크가 바락 소리치면서 몸을 비틀면서 빠져나오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한크는 꼼짝도 않했다. 유크는 상황이 여의치 않자 한크의 팔뚝에 손톱을 박아 넣고 꼬집기에 이르렀다.
“으윽!”
한크는 유크의 손을 뿌리치고 유크를 엎어 놓았다. 그리곤 머리채를 잡고는 소리쳤다.
“두 달 전에 몬스터를 토벌한다고 엘리고스 숲에 들어왔던 베간커 자작과 300명의 병사들이 숲에서 실종되었어! 그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서 주변 영지에 기사들이 베간커 영지로 몰려들고 있고, 곧 수사단이 결성되면 이 엘리고스 숲으로 밀어닥칠 거야!”
“그게 뭐 어쨌다고?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라는 건데?!”
“우리가 먼저 찾아서 신고하지 않으면 왕국군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어서 엘리고스 숲에 모든 화전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 것이란 뜻이야! 이러나저러나 우린 몰살당할 처지에 있다는 뜻이라고!”
“에이 씨! 알게 뭐야! 가! 꺼져!”
“만날 산만 휘젓고 다니더니 독버섯이라도 따먹고 뇌가 녹아버렸냐? 간이 부었냐? 아니, 간이 콩알 만해졌냐? 이 겁쟁이 새끼야?!”
“콩알만 하다고? 국왕의 50만 군대보다 심장이 얼어붙은 수배범 하나가 더 무서워서 간이 깨알 만해졌다. 어쩔래?”
“뭐가 얼어붙어?”
한크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을러댔다.
“바깥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산전수전 다 겪어봤다고 했지? 그럼 죽음의 고비고비가 매순간인 지옥에서 살아서 기어 나온 사람들의 심정을 알 것 아니야? 죽임을 당하고 또 당하고, 살기 위해 죽이고 또 죽여야 하는 데서 오는 사람들의 피폐해지는 심정을 말이야!”
“에엥?”
“머리가 홱 돌아서 미쳐 버리거나, 아니면 심장이 싸늘하게 얼어붙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이 나락 끝까지 몰린 사람들의 심정을 알 것 아니냐고! 미친 사람보다 더 무서운 게 심장이 얼어붙은 사람들이라고!”
“갑자기 웬 뚱딴지같은 소리야?”
한크는 인상을 와락 쓴 얼굴로 유크의 머리통을 살펴봤다. 어딜 잘못 맞아서 헛소리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얼굴로 다그쳤지만, 유크는 두서없는 고함을 멈출 생각이 없는 듯 계속해서 악을 썼다.
“천진무구한 얼굴로 개구리 똥구멍에 갈대를 꼽고 바람을 집어넣어서 배를 빵빵하게 부풀려 터뜨려 죽이면서도 죄의식을 갖지 못하고 해맑게 까르르 웃는 순진무구한 아이들처럼 무서운 존재가 바로 심장이 얼어붙은 인간들이란 말이야! 이 헛똑똑이 등신 머저리야!”
“이 멍청한 새끼가 자꾸 무슨 헛소리를 해대는 거야? 그리고 버르장머리 없게 어디서 감히 형님에게 개겨대, 엉?”
한크가 유크의 머리채를 흔들어대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더 구경할 것도 없는 개싸움이었다.
가스파르는 싸움 구경을 하고 있는 네 살가량의 사내아이에게로 가 눈높이를 맞췄다. 그리곤 이빨로 옥수수를 한 알씩 깨작깨작 떼어먹고 있는 사내아이를 물끄러미 봤다.
“엉?”
가스파르의 시선을 느낀 아이가 돌아봤다.
꼴깍.
아이의 시선이 가스파르의 율동하는 아담스 애플로 옮겨졌다.
그게 신기했던지 제 입에 물고 있던 옥수수를 그의 앞에 내밀었다. 소년의 입과 옥수수 사이에 걸쭉한 침이 쭉 늘어지면서 구름다리가 놓여졌다.
“한 입만 먹어.”
가스파르는 손도 안 대고 옥수수를 한 입 베어 먹었다.
우물우물.
처음 먹어보는 옥수수는 딱히 맛있는 음식물은 아니었지만 구수한 맛이 괜찮았다.
아이는 입 자국이 커다랗게 난 옥수수를 보고 좀 놀란 표정을 하였다. 거의 절반의 옥수수 낱알이 사라진 것이다.
비칠비칠 다가오는 소리가 났다. 그림자가 어리더니 옆에 쭈그려 앉는 주드로의 모습이 비쳤다. 멀미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는 와중에도 먹을 것에 집념을 불태우는 주드로였다.
아이는 또 주드로에게 옥수수를 내밀었고, 구름다리는 출렁거리면서도 끊어지지 않는 견고함을 자랑했다.
“쬐끔만, 쬐금만 먹어.”
주드로가 한 입 물어뜯었다. 가스파르가 베어 먹을 때보다 입 자국이 더 큰 것은 물론이고 아예 옥수수 대공까지 뜯겨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