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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심장기사단 1 (9화)
제4화 심통 불감증Ⅰ(2)


우적우적!
아이는 옥수수를 내려다보며 입술을 옴찔옴찔, 급기야 목젖이 보이도록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는 울음을 터트렸다.
“으아아아앙! 내 옥수수! 아아아앙!”
“아니, 이 사람들이 왜 애 것을 빼앗아 먹고 울리고 그러는 거야?”
애 아빠가 아이를 안고 달래면서 가스파르와 주드로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그러다가 옥수수를 우물거릴 때마도 옴폭 파여 들어가는 가스파르의 볼우물에 시선을 고정시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른쪽에만 들어가는 볼우물? 분명히 처음 보는 얼굴인데 인상이 꽤 익네?”
아이의 울음소리에 돌아본 다른 남자들도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면서 중얼거렸다.
“사파이어 같은 파란 눈동자… 나도 저 눈동자가 눈에 익어 보이는구먼.”
“까만 머리… 수려한 외, 헉! 가, 가스파르!”
한크, 유크 형제의 개싸움 구경을 하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가스파르에게로 날아들어 꽂혔다.
“지, 진짜로 100만 골드의 그그그그… 가스파르다!!”
“허억!”

“가스파르님!”
유크는 무슨 힘이 어디에서 솟아났는지 한크를 허공으로 냅다 집어던지고는 가스파르에게로 달려왔다.
“응.”
그의 무미건조한 대답에 유크가 골치가 지끈거린다는 양 버럭 고함을 쳤다.
“이런 빌어먹을! 우리 들벅 마을은 왜 오신 겁니까? 으악! 저놈을 벌써 길들인 겁니까? 이이잇 미친!”
유크는 뜨거운 콧김을 고요히 내뿜고 있는 빅브래드를 손가락질로 가리키다가 제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절규하는 등 어수선한 모습이 도무지 제 정신이 아닌 듯 보였다.
마을 사람들도 그제야 존재감 없이 숨죽이고 있던 빅브래드를 발견하고는 또 경악해서 후다닥 뒤로 물러났다.
“으허억!”
“와, 와이번!”
“악! 사람 살려!”
“아아아아악! 와이번이다! 와이번!!”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거나 말거나 가스파르는 주드로가 늘 등에 메고 다니던 자루를 유크에게 내밀었다.
그건 첫 번째로 뽑은 암컷 와이번의 이빨과 발톱 한 세트였다.
“이거.”
“뭡니까?”
유크가 빅브래드의 눈치를 살피며 주춤주춤 다가와 자루를 받아서는 가방 속을 들여다보았다. 이어지는 긴 신음 소리.
“으으으……!”
“옥수수도 끼워줄 수 있나?”
“에휴우우!”
가스파르의 질문에 유크는 어처구니없다는 양 한숨을 또 길게 내쉬었다.
“안 되나?”
유크가 포기했다는 듯이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우리 마을에서 이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도시에 나가서 처분을 해야 하는데 시간이 좀 걸려요. 이걸 팔 때 구하게 된 과정을 설명해야 하는데 그럼 소문이 밖으로 새나갈 수 있어요.”
거기까지 말한 유크는 그의 표정을 살폈다. 수배 중인데 위치가 노출될 수 있다는 간접적인 설명으로 여겨졌다.
“또 밀을 실어오려면 운반과 호위를 위해서 많은 사람이 밖으로 나가야 하고, 그러면 수수료 문제도 있고… 아!”
짜증이 난다는 투로 설명을 하던 유크가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탄성을 내면서 마을 사람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우리 들벅 마을에 호버트 상단이 들어오는 날이 언제죠?”
대답은 유크의 느닷없는 괴력에 나가떨어졌던 한크가 비칠비칠 다가오면서 했다.
“하, 항상 말일에 들어오니까 낼모레잖아. 근데 너 저 위험인물들하고 접선하고 있었던 거였어? 그래서 여태 나한테 개겼던 거였어? 이 미친 새끼!”
한크가 본격적으로 욕설을 쏟아내려고 했지만 유크는 가스파르를 돌아보며 말했다.
“내일모레 호버트 아저씨가 들어오면 이걸 구입할 의향이 있는지 알아볼게요. 호버트 아저씨가 이걸 구입한다면 밀을 운반하는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
가스파르는 유크의 설명을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호버트 아저씨는 화전 마을을 순회하면서 생필품과 곡물을 맞교환해 주는 꽤 양심적인 상인이에요. 필요한 물품이 있으면 호버트 상단과 거래를 하면 돼요. 밀과 옥수수 외에 더 필요한 건 없어요?”
가스파르는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막연해서 주드로를 돌아봤다. 주드로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였다.
“알았어요. 그럼 밀하고 옥수수를 바꾼 나머지는 돈으로 받아두면 돼요. 돈이 물물교환보다 더 사용하기가 편하다는 것은 아시죠?”
“응.”
“직접 흥정하시겠어요?”
“아니.”
“그럼 제가 호버트 아저씨와 흥정을 하고 물품을 받아놓을 테니까, 물건은 직접 가져가셔야 돼요.”
“응.”
“호버트 상단을 직접 상대할 생각이 없으시면 3일 후에 오세요.”
“응.”
“다음은 가스파르님과 저 유크와의 거래입니다. 음. 사업이라고도 말할 수 있어요.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유크는 으깨진 감자같이 울퉁불퉁한 얼굴에도 불구하고 결연한 눈빛으로 가스파르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말했다.
“응.”
“우리 레비우스 왕국은 북쪽에 야만족 야무렌 왕국과 분쟁 중에 있어요. 지금도 국경에서는 크고 작은 마찰이 끊이지 않고 있고, 곧 양국 간에 격돌이 본격적으로 일어날 거예요.”
그렇게 서두를 꺼낸 유크는 가스파르의 눈치를 살피면서 못내 조심스러워 하는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우리 레비우스 왕국에서 가스파르님을 수배한 것은 바렌치노 왕국에서의 사건 때문이 아닌 것 같아요.”
“…….”
“물론 그 사건으로 인해서 가스파르님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게 되었을 테지만, 그 능력 때문에 저희 레비우스 왕국으로 영입하고자 현상 수배를 한 것이라 저는 예측하고 있어요. 야무렌과의 전쟁을 하게 되면 많은 기사가 필요할 테고, 그중에서도 압도적인 힘을 지닌 기사를 확보하게 되면 전쟁에서 승리할 확률이 높아질 테니까요.”
가스파르는 유크의 그럴싸한 추론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5:5로 해요.”
“응?”
“가스파르님이 직접 왕궁으로 가면 모양새가 안 날뿐더러 우리 레비우스 왕국과 협상할 때도 많은 것을 얻어내지 못해요.”
거기까지 들은 가스파르는 유크가 무엇을 두고 거래하자고 하는지 단박에 파악할 수 있었다.
50만 골드는 대귀족들의 기분 여하에 따라서 하룻밤에 유흥거리로 날려 버릴 수 있는 금액이다. 또 사업에 수익으로 단 하루 만에 가뿐히 벌어들일 수 있는 금액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평민 3인이 평생 먹고 살기에 필요한 돈은 1000골드 정도다. 그 정도면 평민에게는 차고도 넘치는 큰돈으로, 50만 골드면 500가구가 풍족하게 살 수 있는 엄청난 금액인 것이다.
의당 욕심이 나지 않을 수가 없는 유혹인 것이다.
“그러니까 제가 가까운 영주성으로 가서 가스파르님이 엘리고스 숲에 터를 잡았다고 신고를 하고 상금을 반반씩 나누자는 거예요. 그러면 영주성에서는 왕궁에 보고를 할 테고, 왕궁에선 가스파르님을 정중히 모셔오라고 할 거예요.”
가스파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유크가 긴장했던 표정을 완만히 펴면서 설명을 이었다.
“그럼 가스파르님은 배짱을 퉁겨가며 협상을 할 수 있고, 높은 작위와 비옥하고 넓은 영지를 받아낼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렇게 되기까지 저희 들벅 마을에서 정성을 다할 테니까 수수료로 상금의 반을 달라는 이야기예요.”
유크는 여태 한크를 향해 재앙 덩어리라고 독설을 퍼부어댔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가 눈앞에 나타나자 마을 사람 그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거래를 하자고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있었다.
유크는 역시 재미있는 인간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면서, 한크를 향해 고함쳤던 말이 떠올랐다.
‘나락 끝까지 몰리면 머리가 돌아버리거나 심장이 얼어버리거나 둘 중에 하나라고?’
가스파르는 자신이 미친 것이었나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다.
‘둘 다일지도.’
미친 것 같기도 했고, 심장이 얼어버린 것도 같았다. 확실히 그는 그 사건이 있고부터 제정신이 아니었고, 감정도 온전치 못했다.
사색에서 깨어난 가스파르는 기대 어린 표정을 짓고서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유크를 보았다. 숲 속에 숨어 사는 촌놈임에도 불구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고, 잔머리 돌리는 게 제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크가 보채는 투로 물었다.
“솔직히 나쁜 제안은 아니잖아요?”
“응.”
확실히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그럼 저와 거래를 하는 겁니까?”
유크의 뒤에서 긴장한 채 이야기를 듣고 있던 들벅 마을 사람들도 눈동자를 빛냈다. 희망에 가득 찬 눈빛들.
“아니.”
“왜요?!”
실망한 듯 얼굴을 팍 일그러뜨린 유크가 따지듯이 물었다.
“레비우스의 왕이란 놈. 유크의 이름을 걸고 보증할 수 있어?”
“흐음!”
침음을 흘린 유크가 잠시 턱을 문지르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언제 국왕 폐하를 뵌 적이 있어야 보증을 하든지 말든지 하죠. 쳇!”
가스파르의 신뢰할 수 있냐는 물음에 국왕의 존엄함보다 일개 약초꾼인 자신의 이름을 더 높이는 발칙함을 보이는 유크였다. 그러고는 돈 벌 좋은 기회를 놓쳐서 아깝다는 양 입맛을 쩝쩝 다셨다.
그건 완전한 포기를 의미했다.
유크는 빅브래드를 힐끔 보면서 말했다.
“올렌드님께 포션을 받았는데 약초 값으로는 과한 듯해요. 집에 밀이 좀 있는데 드릴게요.”
마침 짐꾼도 있으니 가져가라는 투의 말이었다.
가스파르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밀 값은 올렌드가 포션으로 대신 지급했다고 하지 않던가. 당장 오늘 저녁부터 빵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만족스러워서 고개를 끄덕였다.
유크의 창고엔 열 포대에 밀이 있었다. 그리고 분유, 치즈, 버터, 설탕, 베이킹파우더, 견과류 등 빵을 만들 수 있는 재료들이 담긴 자루가 셋이었다.
딱 보기에 일부러 준비해 둔 것으로 여겨졌다.
“제가 비싼 포션을 두 개나 받아서요. 효과도 엄청 좋고… 팔면 엄청 비싸다고 하더라고요.”
유크는 괜히 뒤통수를 벅벅 긁적거리면서 변명을 했다.

* * *

말 등에 짐을 실을 때처럼 줄로 자루의 허리와 허리를 묶어 연결한 후 빅브래드의 등에 실었다.
빅브래드는 열세 자루나 되는 식 재료를 등에 얹어 놓았는데도 무게감을 못 느끼는 것처럼 굳건히 서 있었다.
가스파르는 몸을 날려 빅브래드의 등에 올라탔다.
“소관은 걸어가겠습니다.”
“왜?”
그의 물음에 주드로가 식은땀을 흘리면서 대답했다.
“멀미 때문에요.”
“응.”
가스파르의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려 하지 않던 주드로였다. 한데 얼마나 멀미가 심했으면 따로 떨어져서 가겠다고 말을 다 할까.
엘코크 폭포에 자리한 마을은 들벅 마을에서 세 시간 거리였다. 걷기에 무리가 없는 거리였고, 해도 아직 한참이라서 고개를 끄덕였다.
가스파르는 고삐를 가볍게 잡고 고저 없는 목소리로 명령어를 읊었다.
“이륙.”
빅브래드가 다리를 굽혔다가 땅을 차올리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그렇게 상공까지 올라와서는 다음 명령을 기다리는 양 고도만 유지한 채 날갯짓 외에 다른 움직임을 멈췄다.
지상에 들벅 마을이 작게 보였다. 때마침 엘코크 마을을 향해서 들벅 마을을 나서는 주드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흠. 빅브래드가 방향 명령어는 완전히 숙지한 것 같으니까 돌아가는 길에는 속도 조련을 해야겠어.’
빅브래드의 장기는 단연코 고속 비행이었다. 무뎌지고 무뎌져서 심장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로 무감각해진 심장이었다. 그런 것에서 오그라드는 감각이 깨어날 정도로 빅브래드는 쾌속을 자랑했던 것이다.
이번엔 반대로 얼마나 느리게 비행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훈련을 시키기로 했다. 발꿈치로 빅브래드의 옆구리를 가볍게 누르며 명령을 내렸다.
“평보.”
비행하는 이동 수단에게 평보란 명령어는 적합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이 보통 걸음으로 걷는 것과 같은 속도로 유지하는 것을 비행 용어로 달리 만드는 것 자체가 귀찮아서 그냥 있는 대로 차용해 쓰기로 했다.
빅브래드가 천천히 앞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정말 얼음판을 곧게 미끄러지듯이 빅브래드의 비행은 유연하고도 매끄러웠다. 금방 주드로를 앞질러 나갔다.
“천천히.”
고삐를 평행으로 부드럽게 당기며 명령했다. 곧 속도가 늦춰졌다.
“그래, 이 속도가 평보야. 잘했어.”
빅브래드에게 명령어를 숙지시키기 위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주드로의 이동 속도에 맞춰서 비행 조련을 하기를 30분. 위를 힐끔 올려다본 주드로의 걸음이 갑자기 빨라졌다.
“빅브래드. 조금 빠르게 날아보자. 속보.”
빅브래드의 옆구리를 지그시 눌렀다.
쿠우우―
빅브래드가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내며 앞으로 쭉 나갔다. 빅브래드는 지능이 높았다.
밑에 숲 속을 헤집고 다니는 인간이 자신의 등에 올라탔던 사람 중에 하나였고, 현재 자신을 조종하고 있는 인간의 동료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동료와 떨어진 가스파르가 주드로의 도보 속도에 맞추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주드로의 머리 위를 고수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가스파르의 빅브래드 조련은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10분 정도를 빠르게 걷던 주드로가 뛰기 시작했다.
“질보.”
빅브래드는 한 치 오차도 없이 주드로와 속도를 맞췄다.
“잘하는구나, 빅브래드. 너 혹시 사람 말귀를 알아듣는 것이니? 어떻게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딱 질보 속도로 맞춰서 비행을 할 수가 있는 거지?”
가스파르는 그저 빅브래드가 영특하여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