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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심장기사단 1 (10화)
제4화 심통 불감증Ⅰ(3)


잘 달리던 주드로가 우뚝 멈췄다.
순간 가스파르는 정지 명령어도 가르쳐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빅브래드에게 명령을 내렸다.
“정지. 응?”
명령을 내리던 가스파르는 명령어가 나오기도 전에 비행을 멈춰 버린 빅브래드의 행동에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빅브래드가 독심술도 하나?’
“어쨌든 잘했다, 빅브래드.”
가스파르가 빅브래드의 목을 쓰다듬으면서 칭찬할 때였다. 주드로가 그의 이름을 고함쳐 불렀다.
“가스파르님!”
“응?”
“돌아온 것입니까?”
“뭐가?”
“심통이요!”
“아니!”
“근데 왜 저를 놀리는 것입니까? 오전엔 눈썹이 휘날리도록 속도를 내시더니 지금은 어찌 굼벵이 속도로 비행을 하시는 것입니까?”
“속도 훈련 중이었는데?”
“…….”
주드로는 오전 내내 빅브래드를 몰아친 덕분에 멀미에 시달렸다. 그래서 돌아갈 때는 편한 속으로 가자고 걷는 것을 선택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유람을 하듯 빅브래드를 비행시킬 줄 알았다면 타고 가는 게 좋았다. 무엇보다 가스파르의 곁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주드로!”
“옛?”
“돌아왔어?”
“뭐가요?”
“약오르냐고!”
“아니요!”
“진심으로 축하해 주려고 했어!”
“…제 감정이 돌아오면 그건 어디까지나 가스파르님의 크나큰 은혜 때문일 것입니다! 애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하기는? 감정도 없으면서 감사는 무슨 감사?!”
그랬다.
그들은 감정을 잃었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도 미안한 마음도 상실해 버렸다. 그래서 유크에게 빵 재료를 받았을 때도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때론 예의란 것이 중요할 때가 있어서 없는 말을 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진심이 아닌 말은 상대를 이용하기 위해서 말치장으로 속이고 농락하는 위선 같았기 때문에 애써서 하고 싶지가 않았다.
주드로가 반격하듯 고함쳤다.
“가스파르님께 진심이 있기는 한 것입니까?”
“아니!”
그저 평범한 일상대화였다. 감정을 되찾고 싶은 이들의 대화였지만 거기에 간절함 같은 것은 전혀 내재되어 있지 않았다.
가스파르는 빅브래드에게 좀 더 빠른 속도에 명령어를 가르치기로 하고 아래다 대고 소리쳤다.
“주드로!”
“옛?”
“빅브래드를 훈련시킬 참이라서 그러는데, 좀 전보다 더 빨리 달려봐!”
“옙!”
주드로가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고, 그에 맞춰서 가스파르가 명령을 내렸다.
“쾌보!”
빅브래드가 단번에 명령어를 알아듣고 쭉쭉 미끄러져 나갔다.
“잘했어!”
이로써 사람이 걷고 달리는 속도의 명령어는 모두 가르쳤다. 이제 얼마나 숙지했는지 테스트를 해볼 참이다.
가스파르는 자신의 명령으로 주드로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달리고 있다는 현실을 망각한 채 빅브래드에게 명령을 내렸다.
“속보!”
빅브래드의 비행 속도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언뜻 숲을 달리던 주드로도 속도를 늦추는 것이 비쳤다.
“쾌보!”
빅브래드의 비행이 다시 빨라졌다.
“평보!”
비행 속도가 최하로 느려졌다.
“질보!”
이번엔 시원하게 쭉쭉 나간다. 역시 빅브래드는 단 한 번 알려준 명령어와 속도를 모두 숙지한 모양이었다.
가스파르는 뜻하지 않았던 빅브래드의 높은 지능에 녀석이 마냥 대견하고 기특해서 칭찬을 하였다.
“잘했어, 빅브래드!”
키우욱―
빅브래드는 기분이 좋은지 가르랑거리는 울음소리를 냈다.
“가스파르님!”
“응?”
주드로의 부름에 가스파르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아까 분명히 속보로 걷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봤다. 그런데 빅브래드를 시험하느라고 쾌보와 질보로 날아왔는데 속보로 걷던 주드로가 벌써 따라온 것이다.
웬일로 머리칼과 옷이 흠뻑 젖은 주드로가 다리를 후달후달 떨면서 소리쳐 물었다.
“설마 속보, 쾌보, 평보, 질보가 빅브래드에게 내린 명령어였습니까?”
“응!”
“비행 몬스터에게 도보 명칭을 가르쳤다고요?!”
“응! 새로 명령어를 만들려면 머리를 한참 과열시켜야 해서 그냥 사용하기로 했어!”
“…….”
순간 주드로가 휘청거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전에 멀미를 하고 오후에는 먼 거리를 달려와서 지친 탓일까? 천하에 강철 체력을 자랑하는 주드로가 그럴 리가 없지.
아마도 잘못 본 게 분명할 것이다.
“근데, 주드로!”
“네?”
“어떻게 나랑 딱 맞춰 왔네?”
“정말 안 돌아온 것이 맞습니까?”
“또 뭐가?”
“심통 말입니다앗!!”



제5화 심통 불감증Ⅱ(1)


엘코크 마을은 빵 굽는 냄새로 향긋했다.
하지만 실제로 먹을 만한 빵은 몇 개 없었다. 빵을 구울 수 있는 오븐도 마련되어 있지 않을 뿐더러 빵을 굽는 기술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도 몇 없었기 때문이다.
온통 타거나 반대로 설익거나, 물러서 휘거나 돌덩이처럼 딱딱하거나. 그저 냄새만 그럴싸했지만 오랜만에 먹는 곡물로 만든 음식이라 모두들 빵을 가장한 숯덩이를 뜯어 먹었다.
그리고 낮에 여인들이 뜯어온 야채는 그냥 물로 깨끗이 씻어서 뜯어 먹었다. 샐러드에 올릴 드레싱을 만들 수 있는 재료가 없었기 때문에 별수 없었다.
샤넬리아가 야채를 뜯어 먹는 가스파르를 말끄러미 올려다보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가스파르님.”
“응?”
“풀 뜯어 먹는 흑곰 같아요.”
샤넬리아의 말처럼 그를 비롯하여 마을 사람들이 야채를 맛없게 우적우적 씹어 먹고 있었다.
“샤넬리아는 풀 먹는 고양이 같아.”
“맛이 없어요.”
“야채를 먹어야 응가가 잘 나와.”
“그래도 먹기 싫은데.”
“안 먹어도 돼.”
“정말요?”
“응. 다만 똥꼬가 막혀서 나중에 응가를 못 보게 될 거야. 그럼 배에 응가가 가득 차게 되어서 입을 열면 응가 냄새가 나게 될 거고. 안 먹어도 돼.”
가스파르의 말에 샤넬리아가 다시 야채를 오물오물 갉아먹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마법사 올렌드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가스파르님.”
“응?”
“농사를 배워야겠습니다.”
“응.”
“외부에서 초빙해 와야 합니다.”
“응.”
“유크를 만나게 되면 적당한 사람을 보내달라고 전해주십시오.”
“응.”
만삭의 사베나도 그의 이름을 불렀다.
“가스파르님?”
“응.”
“요리를 배워야겠어요.”
“응.”
“오븐을 만드는 기술자도 필요하고요.”
“응.”
“유크에게 전해주세요.”
“응.”
마을 여자 중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쥬데일리도 입을 열었다.
“가스파르님. 새 옷을 만들어 입어야 해요.”
“응.”
“옷감이 필요하고, 재단사도 필요해요. 겨울에 입을 것도 미리 준비해야 하고요.”
“응.”
“유크에게 전해주세요.”
“응.”
여자 중에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모아네도 건의를 해왔다.
“비가 오면 지붕이 새고, 바람이 불면 바람이 들이쳐요.”
“응.”
“욕실도 필요하고,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게 온방 시설이 잘된, 집 같은 집을 지어야 해요. 건축가가 필요해요.”
“응.”
그 뒤로도 마을 사람들의 요청이 끊이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하나하나 요청을 하는 것에는 그만큼 자신들이 삶에 필요한 기술을 하나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뜻했다.
왜냐면 엘코크 주민 전원이 귀족이기 때문이었다.
귀족은 태어나서 시중을 받는 것 외에 타인을 위해서 뭔가를 하고, 누군가를 위해 생산적인 일을 해본 바가 없다.
수발을 들던 수많은 하인과 노예들을 잃은 현 상황에서 100% 귀족들만 모여 있다 보니 그들의 생활은 문명에서 거리가 멀어져 있었다. 그저 미개인보다 조금 나은 수준의 생활을 겨우 이어나가고 있는 것에 불과했다.
아니, 먹고 싶으면 있는 대로 먹고, 자고 싶으면 아무 데서나 누워 자고, 싸고 싶으면 숲 속에 들어가서 볼일을 해결하는 그들의 모습을 타인이 볼 때 미개인과 동급으로 보일지도 몰랐다.
그들은 그저 소비하는 것에만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귀족이었다. 그러던 그들이 비로소 생산적인 활동에 대해서 필요성을 느낀 모양이었다.
그런데 왜 다들 유크의 이름을 한 번씩 꼭 거론하는 것일까?
가스파르는 마을 사람들의 요청을 하나하나 귀담아 들으면서 돈이 정말 많이 필요하겠다는 결론을 도출해 냈다.
문득 현상금을 나누자는 유크의 사업 제안이 떠올랐다.
생각은 이어져서 엘코크 폭포에 정착을 하게 유도했던 베간커 자작과 며칠 전 사베나가 해치웠던 기사단의 문제도 떠올랐다.
현상금 헌터 한크의 얼굴까지 떠올리면서 자신들의 위치가 세상에 널리 퍼져 나가게 되리라는 것을 예측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는 건가?’
가스파르는 두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방법을 궁리했다.
‘역시 빅브래드만 한 게 없는 것 같군.’
명쾌하게 방책을 강구해 낸 가스파르는 주민들을 향해 통보했다.
“라지브래드.”
“…무슨 말씀입니까?”
그의 곁에서, 마치 여물을 씹는 말처럼 야채를 우적우적 씹고 있던 주드로가 뚱한 얼굴로 물었다.
“내일은 더 큰 것을 잡으러 간다.”
“네…….”
주드로는 라지브래드의 뜻을 파악하고 있었던 듯 뚱하게 대답했다.
“근데, 가스파르님.”
“응?”
“이름부터 지어놓는 것은 좋은데, 이름을 짓기 전에 먼저 말씀을 해주십시오.”
“왜?”
“작명 센스가 너무… 구수해서 그럽니다.”
주드로가 적당한 말을 고르려는 듯 잠시 뜸을 드리다가 말했다.
“응. 주드로도 마음에 쏙 든다는 소리구나? 나도 그래.”
“…….”

짙게 내려앉았던 어둠을 가르며 안개와 함께 찾아드는 파란 여명이 엘리고스 숲을 더욱 신비롭게 물들였다.
가스파르는 라지브래드란 이름에 어울리는 와이번을 사냥하기 위해서 일찍 눈을 뜰 참이었다. 하지만 그의 잠을 깨운 것은 밖에서 이는 소란 때문이었다.
그가 밖으로 나왔을 때는 주민 모두가 깨서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다섯 명의 남자가 그의 집 뜰 위까지 올라오다가 그가 나오는 것을 보고는 바닥에 넙죽 엎드리면서 다짜고짜 통사정을 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나이가 꽤 지극한 노인이 입을 열었다.
“가스파르님 도와주십시오!”
들벅 마을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눈에 익은 유크의 모습은 없었다.
“철없는 것이 그만……!”
“싫어.”
“…옛?”
막 하소연을 하려던 남자들이 황당한 표정을 짓거나 말거나 가스파르는 먼 동쪽을 바라보았다. 아직 해 뜰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새벽보다는 밤에 더 가까운 시각이었다.
숙면은 충분히 취해야 한다.
시간을 가늠했던 가스파르는 두 시간 정도 더 자도 될 것 같아서 몸을 돌렸다.
“이 엘코크 마을과 관련이 있는 일입니다! 문제가 터지면 같이 위험해진다고요! 글쎄 제 못난 막내 아들놈과 청년들이 돈 욕심에 눈이 멀어서 베칸거 자작 영지로…….”
“빅브래드.”
그의 집 옆에서 웅크리고 잠을 자고 있던 빅브래드가 제 이름을 알아듣고는 눈을 번뜩이면서 고개를 치켜들었다.
카우우우.
주인의 부름에 빅브래드는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냈다. 하지만 녀석의 애교가 과했을까?
“으헉!”
“헉! 와, 와이번!”
들벅 마을 사람들이 끔찍하다는 듯 경기를 일으키면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저, 저리가, 오지 마…….”
“빅브래드. 시끄러운 것들은 먹어도 돼.”
카르르르.
“으윽!”
“큭!”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빅브래드가 알아들을 리는 없었다. 빅브래드는 그저 와이번 특유의 울음소리로 가르랑거렸을 뿐이었다.
하지만 들벅 마을 사람들이 듣기에는 ‘감사히 먹겠습니다!’란 대답 소리로 들려왔는지 경악스럽고 참담한 얼굴이 되어서 입을 꾹 다물었다. 자못 그 모습이 필사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가스파르는 집안으로 들어가서 침대에 몸을 던졌다. 몸을 조금 뒤척여서 편안한 자세를 취하자마자 잠이 나른히 몰려왔다.
“하아아암…….”
고요하고 조용한 새벽녘에 잠은 늘 그렇듯 꿀처럼 달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