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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재천 2(8화)
3장 화산파(2)


천룡 일행은 천하영웅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대회 당일까지는 아직 두 달이 넘는 여유가 있었기에 서두를 필요가 없던 것이다.
한여름의 날씨가 제법 따갑게 느껴졌지만,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여행에 큰 지장을 주지는 않았다.
가장 어린 감세령은 오히려 일행의 맨 앞에서 씩씩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 와중에 감석보는 주위 사람들을 황당하게 만드는 엉뚱한 언행으로 항시 일행의 긴장을 늦출 수 없게 했다.
“어째서 이 넓은 산에 산적이 하나 없단 말이냐! 아, 천룡 소협과 나의 영웅행이 시작되는 순간인데, 적절한 먹잇감이 없구나!”
철없는 오라비의 행동에 감세령은 한숨을 푹푹 쉬었다.
아니, 미치지 않고서야 화산(華山)에 산적이 있을 리가 없었다.
‘저놈은 대체 뇌 구조가 어찌 생겨 먹었는지 정말 궁금하군!’
천성은 진심으로 감석보라는 인간에 대해 흥미가 생겼다.
서안을 빠져나온 일행이 화산에 이르게 된 것은, 사문의 어르신과 사형제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가자는 감세령의 제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연문이 화산의 속가이다 보니 두 사람은 그간 자주 드나들며 안면을 많이 익혀 둔 상태였고, 특히 감세령은 귀여운 외모와 명랑한 성격으로 인해 제법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도 많았다.
천룡과 천성 또한 대문파인 화산의 모습이 무척 궁금했기에 감세령의 의견에 대찬성했다.
감씨 남매가 아니라면 자신들로서는 함부로 들어가지도 못할 곳이었기 때문이다.
화산은 예로부터 도교의 명가였다.
혹자들은 전진파의 갈래 중 하나라 말하는 사람도 있고, 송나라 때 도사인 진단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이는 화산파가 본디 하나의 문파가 아니라 예전부터 화산에서 수련을 해 온 여러 계파의 도인들이 모여 만들어진 문파이기 때문이다.
서악에 속하는 화산은 그 험준함이 오악 중 제일이었는데, 화산파가 위치한 연화봉까지 가는 길 또한 무척 가파르고 험해서 감세령의 경우 무공을 익혔음에도 쉽지 않은 길이었다.
[이 산은 기운이 꽤 강하구나!]
순간, 무숙이 무척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동시에 온 산에 가득한 자연지기가 천성의 몸을 관통했다.
예로부터 수많은 도인들이 이곳에서 수련해 왔던 이유가 바로 화산의 기운이 중원에서도 손꼽을 정도로 뛰어나기 때문이었다.
천성은 자연지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화산을 올랐다.
[자연지기가 다른 곳에 비해 많이 응집되어 있는 곳이구나. 그러니 화산파라는 곳이 성세를 누리고 있겠지.]
‘화산파를 어떻게 아시는 거죠?’
그간 무숙을 보아 온 결과, 분명 무림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것이 없는 상태였다.
한데 어찌 화산파를 알고 있다는 말인가.
[그간 네 머릿속에 저장된 무림에 대한 정보를 모두 훑어보았거든. 무림이라는 곳이 참으로 재밌는 곳이더구나. 좀 원시적이긴 해도 상당히 발전된 기의 사용법을 갖추고 있어.]
천성은 무숙의 말을 도무지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어쨌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무숙이 천성의 머릿속 생각을 제멋대로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건 사생활 침해라구요!’
[괜찮다. 우리 사이에 사생활쯤이야 내가 감수하마.]
천성은 뻔뻔하기 그지없는 무숙의 말에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도 처음에 비해서는 점점 더 정상인에 가까워지고 있음에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천룡 공자, 내가 이 화산파에서는 제법 힘 좀 씁니다. 사형제들이 제가 부탁하면 거절하는 일이 없지요! 다들 이 감석보 이름 석 자만 대면 언제든 천룡 공자를 도울 것입니다! 그리고 또…….”
감석보 특유의 허풍이 또 발동했다.
‘에잇!’
감석보의 끝도 없는 허풍을 멈추기 위해 천성이 염동력을 사용해 숲 속에 있던 돌멩이를 날렸다.
화산의 풍부한 기운을 이용하여 영력을 수련하려 했는데, 감석보 때문에 집중을 하기가 어려웠던 탓이다.
퍽!
“억! 누구냐? 감히 누가 함부로 돌을 던진단 말이냐! 비겁하게 숨어 있지 말고 당당히 모습을 보여라! 천룡 공자, 아무래도 매복이 있는 것 같소! 조심하시오!”
감석보가 검을 뽑아 든 채 몸을 잔뜩 웅크리며 두리번거렸다.
천성은 감석보가 지나가는 바람에 착각해서 괜한 호들갑을 떤다고 나무랐고, 다른 사람들도 워낙에 감석보가 엉뚱한 행동을 일삼으니 천성의 말에 동의했다.
화산에 매복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거기다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돌이 날아온 쪽을 잠시 확인했던 천룡도 아무런 이상도 없자 곧 관심을 접었다.
감석보는 억울함을 항변했으나, 아무도 들어주지 않자 풀이 죽어 축 늘어진 모습으로 산을 올랐다.
천성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화산의 기운을 호흡해 영력을 단련했다.
아무래도 체력이 가장 약한 감세령을 배려해서 일행은 중간에 쉬기도 하면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한참을 움직인 일행은 이윽고 화산파의 정문에 다다랐다.
열여덟아홉 즈음 되어 보이는 두 명의 젊은 도사가 입구를 지키고 있었는데, 금세 신색을 회복한 감석보가 손을 흔들며 두 사람에게 아는 척을 했다.
“어이! 자네들, 오랜만이구만! 잘 지냈는가!”
“아, 감 사형이시군요. 오랜만입니다. 감 사매도 함께 왔군요.”
서로 아는 사이인지 도사들이 감씨 남매를 반갑게 맞이했다.
감석보의 이야기가 아주 허풍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사실 감씨 남매는 어릴 때 화산에서 오 년 동안 속가제자로 무공을 익힌 적이 있었는데, 그때 사제 관계를 맺은 또래의 도사들인 것이다.
“그래, 어인 일로 오셨습니까?”
“오랜만에 사형제들 얼굴도 보고 화산파에 귀한 손님 한 분도 소개시켜 줄 겸 들렀지. 이번에 정말 대단한 젊은 영웅을 한 명 알게 되었거든. 사형과 사제들도 보면 매우 감탄할 거야!”
신이 나서 떠들어대는 감석보의 이야기를 듣고 두 도사는 함께 온 천룡 형제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두 도사는 얼핏 보기엔 일류 정도로밖에 안 보이는 두 사람 중 누가 감석보가 말하는 사람일까 궁금해했다.
“여기 궁천룡, 궁천성 형제는 감숙 철혈문분들이시네! 특히 천룡 소협은 선검문을 도와 흑암문주를 순식간에 물리친 초절정의 고수이시네! 초절정 말이네, 초절정! 아마 후기지수들 중에는 천룡 소협을 능가할 인재가 없을 것이네!”
감석보가 초절정을 특히 강조하며 천룡을 입이 마르게 칭찬했다.
감석보의 말에 두 도사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선검문과 흑암문 사이의 일은 화산에도 이미 소식이 전해져 있었다.
개중에는 약관도 안 된 청년 고수가 흑암문주를 물리쳤다는 말도 있었다.
선뜻 믿기 힘든 소문이었지만 목격한 사람들이 워낙에 많았기에 반신반의하고 있었는데, 그 소문의 주인공이 눈앞에 있는 것이다.
두 도사는 유심히 천룡을 바라보았다.
흑암문주를 이겼다면 최소한 초절정 초입의 고수였다.
초절정은 무사들이 평생을 수련해도 오르기 힘든 경지였는데, 얼핏 봐도 자신들과 비슷한 나이의 천룡이 초절정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게다가 평소에도 워낙 허풍이 심한 감석보이다 보니 더욱 믿기 어려웠던 것이다.
“하하…… 그렇군요. 위에 기별을 넣어 드릴 테니 접객당에서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두 도사는 만일 천룡이 소문의 주인공이라면 귀한 손님인 것이 분명했기에 윗분들께 기별을 드리기로 했다.
한편, 천룡의 겉모습만으로 쉽게 판단하지 않고 신중히 행동하는 화산파 제자들의 모습에 천성은 역시 명문대파는 그릇이 다르구나 하고 생각했다.

접객당에서 일각 정도를 기다리자 중년의 도사와 아직 약관도 안 된 듯한 젊은 제자가 함께 천룡 일행을 찾아왔다.
중년 도사는 턱수염을 제법 멋들어지게 기른, 사십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편안한 인상의 사내였는데, 소매에 매화 세 개가 수놓아져 있었다.
화산은 매화의 개수로 서열과 무공 실력을 나타냈는데, 세 개의 매화라면 중년인이 장로 급 신분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화산에 온 걸 환영하네. 난 접객당주 진명이라 하고, 이쪽은 매화검수인 이대제자 영호명이라 하네.”
중년 도사가 자신들을 소개했다.
영호명이라 불린 청년 도사는 천성의 또래인 듯 큰 눈과 하얀 얼굴이 조금은 귀여워 보이는, 아직은 소년 티가 많이 나는 앳된 외모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닌바 실력은 상당히 뛰어난 듯 소매에 한 개의 매화가 자리하고 있었다.
보통 매화검수는 일대제자들이 주를 이루기 마련이었는데, 간혹 오성이 뛰어난 이대제자들이 매화검수가 되는 경우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이대제자조차 보통 이십대 중반의 나이임을 감안할 때, 약관도 안 되어 보이는 영호명이 매화검수라는 사실은 매우 파격적인 것이었다.
매화검수가 되려면 최소한 절정의 경지를 충족시켜야 함을 생각해 볼 때, 영호명은 이미 절정의 벽을 깼음이 분명했다.
이는 지금 후기지수라 불리는 이들 중 최고의 기재라는 오룡사봉과도 견주어 볼 만한 실력이었다.
아마 이삼 년 후 영호명이 오룡의 나이쯤 되면 최소한 그들과 어깨를 맞댈 수준에는 올라 있을 것이다.
“영호명이라 합니다. 최근 흑암문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우신 철혈신룡 소협이 오셨다기에 직접 뵙고 싶어 이리 실례를 무릅쓰고 나섰습니다.”
약간은 상기된 표정의 영호명이 포권을 하며 천룡 일행에게 인사했다.
홍조를 띤 귀여운 얼굴로 조금은 머뭇거리는 모습이 풋풋한 느낌을 주었다.
천룡을 바라보는 크고 맑은 눈동자엔 약간의 호승심도 담겨져 있었다.
“철혈문의 궁천룡입니다. 소문이란 것이 부풀려지기 마련인지라 허명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하하하!”
천룡은 자신의 활약이 화산파에까지 알려졌다고 생각하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후후, 역시 대문파라 사람 보는 눈이 있구나!’
겸손한 겉모습과는 다르게 혼자만의 즐거운 상상에 빠지는 천룡이었다.
“어허, 무슨 말씀! 내가 두 눈으로 직접 본 사실인데! 아, 글쎄, 이형환위는 기본이고, 무슨 검으로 회오리를 만들어서 상대방 검기를 싸악 먹어 버리더라니까요!”
방방 뛰며 자기 일처럼 열을 내는 감석보의 호들갑에 천성은 인사도 못하고 멀뚱히 서 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