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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재천 2(13화)
4장 재회(4)


갑자기 등장한 천성의 공격에 위험을 느낀 원숭이사내가 괴성을 멈추고 기탄을 피했다.
순간, 천성의 몸이 가속이라도 붙은 듯 쭉 늘어났다.
이미 천성은 선검문의 덩치 큰 흑의인으로 변신한 상태였다.
퍼퍽!
천성의 주먹을 허용한 원숭이가면이 뒤로 나가떨어졌다.
“조심해! 그놈도 영력을 사용하는 놈이다!”
섬응이 천성의 모습을 알아보고 경고했다.
천성의 출현으로 거의 마지막까지 몰렸던 절벽사내는 간신히 목숨을 구했다.
하지만 이미 온몸을 두르던 푸른빛도 사라져 버리고, 내상까지 입은 상태여서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저자는 또 누구인가? 엇! 혹시!’
사내가 천성의 모습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천성이 여세를 몰아 원숭이사내에게 기탄을 날릴 때였다.
쉬이이이이이잉!
두 개의 원반이 천성의 뒤통수를 공격해 들어왔다.
‘젠장, 이 소리는 역시 익숙해지지 않는군.’
잠시 멈칫한 천성이 고개를 숙여 원반들을 피했다.
하지만 원반들은 마치 살아 있는 듯 선회해서 다시 천성을 공격해 왔다.
‘헛, 원숭이 녀석도 염동력을 사용하는 건가? 어떻게 원반을 마음대로 움직이는 거지?’
천성이 깜짝 놀라 속력을 높여 몸을 피했다.
끼아아아아앙!
그러나 원반은 천성이 움직이는 곳으로 귀신처럼 따라붙었다.
[이런! 저놈이 소리를 이용해 원반을 조종하는 것 같구나!]
영안을 더욱 집중하여 원숭이가면을 살피니 아주 미세한 음파가 두 개의 원반을 향해 쏘아지고 있었다.
그렇게 발출된 음파들이 원반에 뚫린 여덟 개의 구멍을 이용해 원반을 이리저리 날리는 것이었다.
‘피하기만 해서는 끝도 없겠군!’
결심을 굳힌 천성이 기문을 최대한 열어 자연지기를 받아들였다.
그러자 기문을 통해 생성된 영력이 미간으로 솟구쳐 올랐다.
한 바퀴, 두 바퀴…… 회전하는 모습이 천성의 영안에 흐릿하게 잡혔다.
두 주먹에 영력을 집중한 천성은 원반들의 밑면을 향해 주저없이 휘둘렀다.
따당!
원반들이 천성의 강력한 주먹에 멀리 튕겨졌다.
순간, 천성의 신형이 한 번 더 가속했다.
슈우우욱!
부릅뜬 원숭이가면의 눈동자가 어느새 코앞에 도달한 천성의 모습으로 가득 찼다.
퍼억!
천성의 일격을 허용한 원숭이가면이 피를 뿜으며 뒤로 튕겨졌다.
최대한 고개를 젖히며 피했으나 한쪽 광대뼈가 내려앉을 정도의 강력한 일격이었다.
천성은 그에 멈추지 않고 원숭이가면을 향해 다시 한 번 돌진했다.
그때, 섬뜩한 느낌이 오른쪽 옆구리로 다가왔다.
쉬익!
“후압!”
간신히 돌진을 멈춘 천성의 앞으로 두 개의 아미자가 지나갔다.
뇌전의 충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섬응이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 아미자를 던진 것이다.
워낙 힘이 많이 떨어진 상태인데다 이제 일각의 시간이 지나 영침의 위력도 사라진 터라 천성은 갑작스런 섬응의 공격을 피해 낼 수 있었다.
“우어어어어어어어어!”
그때, 가면 밑으로 피를 뚝뚝 흘리며 일어선 원숭이가면이 다시 한 번 괴성을 질렀다.
천성이 몸을 피한 후 제대로 자세도 잡지 못한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닥친 음파의 공격이었다.
절벽사내가 당했던 때보다는 위력이 반절로 감소되었으나, 그럼에도 여전히 강력한 위력이었다.
“크윽! 걸렸다!”
아미자를 던진 후 주저앉아 몸을 추스르던 섬응이 쾌재를 불렀다.
“으윽!”
음파가 천성의 온몸을 압박했다.
뇌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듯한 고통이 온 머리를 뒤흔들자 무숙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신 차리고 영안을 열어라! 저들의 영력은 불완전한 것! 기문을 최대로 열고 음파의 기운을 흘려라!]
우우우우웅!
기문이 빠른 속도로 회전하면서 음파를 흘려보냈다.
천성은 입술을 깨물고 정신을 집중했다.
눈에 핏발이 서고, 온몸의 핏줄들이 몸 밖으로 튀어나왔다.
“크으윽!”
[저 소리를 계속 낼 수는 없을 거다. 정신 차리고 조금만 더 버텨라!]
천성의 피부가 조금씩 갈라져 핏물이 배어 나왔다.
특유의 재생력으로 피부들이 다시 붙고 갈라지는 기괴한 상황이 계속 반복되었다.
그러나 천성에게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정신이 점점 가물가물해졌다.
여기서 조금의 틈이라도 보이게 된다면 온몸이 한 줌 핏물로 변하리라.
‘크윽, 너무 쉽게 봤구나!’
선검문의 대결 이후로 은연중에 자신의 실력에 대해 자만하고 있던 것이다.
그 결과는 너무도 뼈아팠다.
온몸의 감각들도 점점 사라져 가고 있었다.
천성의 정신이 점차 심연으로 침몰했다.

“크크크, 주제도 모르는 놈이 힘 좀 얻었다고 설치더니, 꼴좋구나!”

순간, 자신을 비웃던 뱀가면의 모습이 떠올랐다.
‘놈!’
눈을 부릅뜬 채 허공으로 떠오르던 곡용천의 머리가 기억났다.
천성의 가슴 깊숙한 곳에서 분노가 일어났다.
뱀가면을 추적할 단서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곡용천의 복수도 하지 못한 채 놈들에게 이렇게 쉽게 무릎 꿇을 수는 없었다.
‘이대로 무너질 순 없다!’
“으아아아아!”
강력한 의지가 천성의 희미해져 가던 의식을 붙잡았다.
심연 속을 헤매던 의식이 깨어나며 온몸을 찢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이미 한 번 죽음을 경험했던 나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천성은 미간에 정신을 집중했다.
후아아아악!
천성의 심상 위로 아직은 콩알만 한 영안이 보였다.
명칭은 영안이었으나, 그 모양이 눈동자와 같지는 않았다.
그저 작은 구멍에 불과했다.
점점 의지가 집중되고 기문이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원숭이가면의 음파는 물론, 주변의 자연지기까지 빨아들였다.
그리고 음파와 자연지기가 압축되어 위로 솟구쳐 올랐다.
우우우우웅!
엄청난 양의 기운이 미간에 집중되며 주변의 움직임이 점차 느려졌다.
마치 천성을 제외한 모든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듯 보였다.
머리가 깨질 듯한 통증이 엄습했다.
음파를 쏘아 내는 원숭이가면의 모습이 석상처럼 멈춰 서 있었다.
그 한참 뒤쪽에서 섬응이 서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크으으!”
천성의 입술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미 한계치를 넘어선 엄청난 양의 영력이 영안으로 무섭게 몰려들었다.
결국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콩알만 한 영안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쩌저적!
콰아아앙!
한순간, 커다란 굉음이 뇌리를 강타하며 영안이 터져 나갔다.
그러더니 머릿속에서 빛줄기가 폭발했다.
“아!”
온몸을 관통하는 황홀한 기분에 천성이 탄성을 내뱉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온 우주와 자신이 소통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놈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어서 해치워 버려! 쿨럭!”
섬응이 힘들게 몸을 일으키며 원숭이가면에게 소리쳤다.
원숭이가면도 천성에게서 풍겨지는 위험을 느꼈다.
놈이 무언가 벽을 깨고 있음을 알 수 있던 것이다.
온몸의 영력을 쥐어짜 음파를 날린 원숭이가면이 무리를 해서 두 개의 원반까지 천성에게 뿌렸다.
끼이이이이이잉!
원반의 기괴한 소리에 머리를 가득 채우던 빛줄기들이 점점 사라지자 아쉬움 가득한 탄성이 천성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아……!”
빛줄기가 사라지자 그곳에는 깨어졌던 영안이 다시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전보다 세 배는 더 커져 있었고, 구멍 안에는 희미하게 눈동자 모양이 자리 잡고 있었다.
천성은 영안을 활짝 열어 주변을 살폈다.
전에는 투명하고 회색으로 보였던 사물들이 또렷하게 인식되었다.
아직 색상이나 원근이 완벽하진 않으나, 참으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자신의 몸속을 통과하는 기운들이 하나하나 세세하게 느껴졌다.
시선을 돌리자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두 개의 원반과 원숭이가면이 쏘아 내고 있는 음파가 보였다.
신기하게도 원반은 지루할 정도로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음파 또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드디어 음속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에 천성이 영력을 최대로 끌어 올렸다.
기문이 쉴 틈 없이 자연지기를 받아들여 영력으로 변환시켰다.
영안을 통해 온몸으로 충만하게 퍼진 영력이 천성의 의지에 반응했다.
스윽!
천성이 움직였다.
자신에게 쏘아져 오는 음파를 피해 낸 천성의 신형이 순식간에 원숭이가면 앞에 이르렀다.
천성의 오른 주먹이 원숭이가면의 명치에 작렬했다.
퍼억!
“크악!”
무려 십 장을 넘게 날아간 원숭이가면이 땅에 몇 번 튕긴 후 나무에 처박혔다.
그 위로 천성이 기탄을 날렸다.
첫 번째 기탄의 뒤를 이어 두 번째 세 번째가 연달아 꼬리를 물었다.
기탄의 연사가 가능해진 것은 물론, 위력까지 이전보다 훨씬 높아진 것이다.
시차가 거의 없이 세 개의 기탄은 동시에 원숭이가면을 강타했다.
퍼퍼펑!
원숭이가면이 급히 원반을 되돌려 막았으나 이미 크게 내상을 입은 터라 별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튕겨 나갔고, 피를 토해 내며 정신을 잃었다.
[오호, 대단하구나. 이렇게 빨리 영륜(靈輪)을 만들어 내다니!]
무숙이 호들갑을 떨며 신이 난 듯 외쳤다.
영륜을 형성하려면 최소 삼 년은 걸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천성은 고작 삼 개월 조금 넘은 시점에서 두 번째 관문조차 건너뛴 채 영륜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런 속도라면 일 년 뒤 즈음에는 완벽하게 영안을 각성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목표로 했던 영안의 대확장은 아직도 먼 이야기였지만, 이런 속도라면 그것 역시 생각보다 빠른 시간 안에 이룰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이제 천성의 온몸에서는 강력한 영력의 파동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한쪽에 쓰러져 있던 절벽사내가 그러한 천성의 모습을 믿을 수 없다는 듯 힘겹게 바라보고 있었다.
‘저럴 수가! 저 청년이 스승께서 말씀하신 구원자란 말인가!’
천성의 영력은 자신들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자신들의 영력이 흙탕물이라면, 천성의 영력은 티끌 하나 섞이지 않은 맑은 계곡물처럼 순수했다.
‘일족의 염원이 드디어 이루어지는 것인가!’
부디 그렇게 되길 간절히 기도하며 사내가 정신을 잃었다.

천성은 주위를 살폈다.
절벽사내는 이미 정신을 잃어 위험한 상태였다.
한데 섬응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사이 도망친 것인가?’
천성이 영안을 확장시켰다.
그러자 오백 장 너머로 이미 화산을 거의 벗어나고 있는 섬응의 존재가 느껴졌다.
‘정말 빠른 놈이군.’
늘어난 영안의 한계로도 더 이상은 쫓을 수 없는 거리였다.
사실 섬응은 천성의 상태가 심상치 않을 때부터 이미 이번 일이 틀어져 버렸다는 것을 느꼈다.
하여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임무라도 완성해야겠다는 생각에 천성이 새로이 각성하기 전에 첫 번째 열쇠를 훔쳐내 달아난 것이다.
생명력까지 끌어 써 가며 마지막 힘을 발휘한 결과였다.
섬응의 속도가 아니었다면 시도조차 못했을 것이다.
‘또 놓쳤군!’
선검문에 이어 다시 한 번 섬응을 놓친 천성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아직 원숭이가면이 남아 있었다.
큰 부상을 입긴 했으나 목숨을 잃을 정도는 아니니 놈을 심문하면 뱀과면과 놈들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