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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심장기사단 1 (13화)
제6화 외교, 그까이꺼(1)
마을 입구에 주민들이 죄다 모여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가스파르는 주민들을 슥 훑어보았다. 빠진 사람은 마법 실험실에 처박혀 있는 울리엘과 올렌드뿐이었다.
“뭐야?”
가스파르의 뚱한 질문에 그나마 수다스러운 사베나가 대답을 했다.
“저도 와이번을 한 마리 기를까 하고요.”
“저희도요…….”
여자들이 고저 없는 목소리로 죄다 ‘저도요’를 합창했다.
“그럼 마을은 누가 지켜?”
“지킬 게 뭐 있어야지요.”
사베나의 말에 마을을 휘 둘러보았다. 대충 지은 통나무집,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살림 도구들. 난민촌이 따로 없었다.
오히려 그것들이 엘코크 폭포의 아름다운 풍치마저 훼손하고 있었으니 오히려 없어지는 것이 나을 정도였다.
“그래도 사베나는 안 돼.”
“왜요?”
“임신 중이잖아.”
사베나와 아기를 걱정하는 감정이 들어서가 결코 아니었다.
일행을 이끄는 리더로서 가스파르는 항상 최선의 선택을 해야 했다.
감정을 상실했다는 것은 리더라는 입장에서 냉철한 판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장점으로 작용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정함에서 냉철함은 파생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무정함은 그저 무정함일 뿐이다.
무감정한 상태였기 때문에 사람들의 애로 사항을 알지 못했다. 심지어 난관에 처한 당사자조차도 자신이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가스파르는 이렇듯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은 일행을 일일이 챙겨야 했다.
그에 대한 해결 방책으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고 상식과 지식을 일일이 끄집어내 대입해서 판단을 내려야 했다.
과거에 이럴 땐 이렇게 했었지, 하는 식으로 일일이, 하나하나.
그것은 감정을 잃은 가스파르로서는 대단히 복잡한 일이었다. 더불어 일행 하나하나를 살펴봐 줘야 만이 비로소 통제할 수 있었다.
또,
식사 시간이 되면 모두 집합한다.
냄새나는 배설은 숲에 가서 해결하고 온다.
무리를 단독으로 이탈할 때는 반듯이 보고한다.
세수는 아침저녁 하루 두 번 꼭 해야 한다.
등등, 아주 말초적인 규칙을 몇 가지 정하고 나서야 겨우 사람 사는 꼴을 어느 정도 흉내 낼 수 있었다.
가스파르는 계속해서 사베나를 설득했다.
“우리 엘코크 마을에 첫 번째로 인구를 불려줄 아이가 바로 그 뱃속에 있잖아. 이건 아주 중요한 거야.”
“중요한 건가요?”
“아마도… 그럴걸?”
대답하는 가스파르도 중요한지 아닌지 마음에 와 닿지 않아서 확신할 수 없었다.
“아무튼 조심해야 하는 게 맞아. 옛날에 기억을 잘 되짚어 보면 임산부가 함부로 외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을 거야.”
사베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나 떠올랐어요. 적당히 움직여 줘야 애가 순풍 나온다고 했어요.”
“와이번을 생포하는 일이 적당히가 아니거든?”
“와이번이 있으면 숲에 과일을 더 많이 따올 수 있을 듯해요.”
“그래도 안 돼. 빵 만들기 놀이하면서 놀고 있어.”
“밀가루를 다 썼는데요?”
그 많은 밀가루를 벌써 바닥을 내다니? 어이가 없어야 하겠지만 그런 것을 느낄 수가 없었다. 가스파르는 설득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명령조로 말했다.
“사베나의 것도 생포하고, 조련까지 마친 다음에 넘겨줄게. 집 지켜.”
사베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와이번만 얻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양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몇몇의 여자가 손을 들었다.
“저도 집을 지킬 테니까 제 몫의 와이번도 구해주세요.”
“알았어. 모두 챙겨줄 테니까 마을을 지킬 사람은 지금 빠져.”
스무 명의 여자들이 무리에서 빠져나왔다.
가스파르는 와이번 포획 원정대를 쭉 훑어본 뒤에 주드로를 향해 말했다.
“나도 마을에 남기로 하겠어. 주드로가 인솔자가 되어서 한 사람의 낙오자 없이 무사히 돌아오도록 해.”
가스파르의 말에 주드로가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양 고개를 끄덕이면서 확인하는 투로 물었다.
“들벅 마을 때문입니까?”
역시 주드로는 가스파르의 의도를 단박에 파악해 냈다. 이 때문에 은근히 통제 불능인 주민들을 주드로에게 맡길 수 있는 것이다.
“응. 기술자를 들벅과 주변 마을에서 영입해야 하잖아.”
“알겠습니다. 그럼 조련된 와이번들은 마을에 남겨놓고 다녀오겠습니다.”
“백여 마리가 한꺼번에 마을에 하늘을 날아다니면 눈이 어지러울 거야. 며칠이 걸려도 좋으니까 놈들을 포획하고 완벽히 통제가 되도록 조련을 단단히 한 후에 돌아와.”
“예, 가스파르님.”
주드로와 주민들이 인사를 하고 와이번 서식지인 붉은 협곡을 향해 등을 돌렸다.
엔젤의 손을 잡고 맨 뒤에 섰던 샤넬리아가 원정대와 가스파르를 번갈아 보면서 우물쭈물거렸다.
“엔젤. 유크가 보고 싶니?”
쿠엉?
엔젤은 애꾸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너도 유크가 보고 싶은 모양이구나. 그럼 우리도 마을에서 놀자.”
쿠엉?
이번엔 반대쪽으로 기울였다.
“그렇게 좋아?”
쿠엉?
가스파르가 보기에도 엔젤이 유크를 엄청 좋아하는 것으로 비쳤… 아니면 말고!
가스파르는 여자들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해산.”
절반의 여자가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여자들 중에서도 젊은 축에 속하는 여자들은 그만 멀뚱히 쳐다볼 뿐 흩어지지 않았다.
그녀들의 평균 나이는 스무 살 정도. 물론 여섯 살의 샤넬리아가 끼어서 대폭 어려진 평균 나이였다.
그중엔 만삭의 임산부 사베나도 끼어 있었다.
“왜?”
“유크네 마을에 가실 거예요?”
“응.”
“밀가루가 많겠죠?”
“그럴걸.”
“저도 유크네 마을에 갈래요.”
가스파르는 여자들이 왜 이러나 싶었다.
마을에만 갇혀 지내서 좀이 쑤시는 건가? 주변에 호기심을 느끼는 것일까?
무표정한 여자들 얼굴에서 언뜻 생기가 비치는 것도 같았다.
그들은 항상 수동적이었다.
무리 중에서 가장 능동적이고 활동적인 사람은 샤넬리아였다. 그나마 자기 주관을 뚜렷하게 내비치는 이도 샤넬리아였다. 그 예로 어미 잃은 엔젤을 거둬들여서 육아를 전담하고 있지 않던가. 엔젤을 보살피는 것은 샤넬리아의 확고한 의지였다.
두 번째가 가스파르 그 자신이었다. 그건 자의에 의한 것과 무관했다. 그가 무리를 이끌어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앞서서 생각을 해야 하고 먼저 행동을 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주입했던 탓에 된 것이었다. 즉 의무에 의한 능동적.
그런 것으로 세 번째는 주드로와 울리엘, 올렌드를 꼽을 수 있었다. 그 외 나머지는 모두 수동적이었다.
그런데 와이번 원정에 참가하겠다고 모여든 사람들은 자의로 움직인 것이었다. 와이번을 갖고 싶다는 마음. 먹을 것 외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사람들이 처음으로 소유욕을 드러냈음을 뜻했다.
‘죽었던 감정이 살아나려고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아주 바람직한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사베나 등이 타인에게 관심을 보인다면 그들과 안면을 익히게 해서 친분을 쌓게 하는 것이 나중을 위해서도 괜찮을 것 같았다.
“모두 유크의 마을에 가고 싶어?”
“예.”
여자들이 나른한 목소리로 합창을 했다.
“그럼 내 지시를 잘 듣고 따라야 해.”
“예.”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면 먼저 인사를 해야 해. 과거를 떠올려 봐. 사람과 사람이 만났을 때 어떻게 했는지 기억해 내서 자신이 누군지 소개를 하고,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해.”
“예.”
“또 상대가 자신에게 도움을 줬을 때는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 하고, 반대로 상대를 난처하게 만들었을 때는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야 해. 이건 마음에 없어도 상황을 잘 분석해서 그때그때 적절히 잘 써먹어야 사람들과 원만하게 사귈 수 있는 거야. 모두 그렇게 할 수 있겠어?”
“예.”
여자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대답했다. 스스로 확신을 갖지 못한 행동이었지만 가스파르는 차차 좋아지겠거니 생각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기술자들이 필요하다고 했지?”
“예.”
“그들을 우리 마을로 오게 하려면 먼저 그들에게 불쾌감을 줘서는 안 돼.”
“예.”
“우리는 외교를 목적으로 들벅 마을에 가는 거야. 즉 사절단으로서 의무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지. 들벅 마을 지원은 잘할 수 있는 사람만 참가하도록 해.”
여자들은 서로를 돌아봤다. 자신감 같은 것이 있지는 않았다. 또한 없지도 않았다. 그냥 아무 생각도 없었다. 여자들은 아무도 빠지려 하지 않았다. 그냥 되는 대로 밀어붙이기로 한 모양이다.
가스파르가 인사만 잘해도 성공적인 외교 활동이 될 것이라고 생각할 때였다.
“헉헉! 가스파르님!”
유크가 숨 가쁘게 뛰어오면서 그의 이름을 소리쳐 불렀다. 그 뒤로 한크도 숨을 할딱이면서 따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가스파르는 몸소 실천을 보이기로 하고 유크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하이, 유크.”
여자들도 따라서 인사를 건넸다.
“유크, 안녕.”
“예에엣? 아… 예, 아, 안녕들 하세요?”
유크는 어쩐지 눈에 띄게 당황한 표정을 하였다.
가스파르가 과거의 경험을 들어 비교 분석할 때 ‘이것들이 단체로 뭘 잘 못 먹었나?’ 딱 그런 표정이었다.
‘역시 사베나의 빵이 문제였나?’
가스파르는 자신의 대인관계, 사교성, 외교 문제에 대해서는 눈곱만큼도 의심하지 않았다.
* * *
엘코크 주민은 대륙을 횡단하면서 걷는데 이골이 났다. 하지만 빠르면서도 편리한 이동 수단을 두고 걷는다는 것은 비효율적인 일이었다.
빅브래드에 탑승해 비행하는 가스파르의 앞에는 무엇이 그리 신기한지 연방 울음소리를 내는 엔젤이 한 팔에 안겨 있었다.
꾸어엉! 꾸어엉!
“엔젤. 너도 눈썹이 휘날리니?”
꾸에에에엑!
가스파르의 등에는 그의 허리를 살포시 안은 샤넬리아가 아름다운 엘리고스 숲을 무감정한 얼굴로 내려다보면서 중얼거렸다.
빅브래드1처부터 6처까지는 마을간 외교 교섭에 따라나선 엘코크 여인들이 둘씩 탑승했다. 유크와 한크도 나눠서 엘코크 여인들의 뒤에 탑승하게 했다.
무례하게도 여인들의 허리를 으스러져라 꽉 껴안은 두 남자는 무엇이 그리 두려운지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눈조차 제대로 뜨지도 못했다. 그들은 와이번의 등에 타라고 했을 때부터 기절초풍을 하였고, 지금은 거의 실신할 지경에 이르렀다.
반면 엘코크 여인들의 얼굴에서는 두려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즐거움의 감정도 없었다.
그저 익숙한 승마를 하고 있는 양 와이번을 능숙하게 몰았다. 뒤에 남자들이 떨고 있다는 것조차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들이 편하니 다른 이들도 편한 줄 아는 것이다.
그런 것은 가스파르도 마찬가지였고, 오히려 더했다. 그는 들벅 마을과의 교섭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두 남자에게 잘 보이려는 의도로 와이번을 전속력으로 몰고 있었다.
너희 마을의 급한 불을 꺼주기 위해서 내가 이토록 서두르고 있다, 라는 성의와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 고속 비행을 선택했던 것이다.
“와이번이다! 와이번이 마을을 습격하고 있어!”
저 멀리 누군가 사색이 되어서 고함을 치는 모습이 작게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와이번의 등에 사람의 모습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들벅 마을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가 기겁을 해서는 또 우르르 건물 속으로 숨어들었다.
들벅 마을에 도착했을 때 유크와 한크는 결국 기절해서 굴러 떨어졌다.
덜퍽!
쿵!
“음. 비행이 지루했나? 그새 잠들었군.”
움찔!
기절한 유크와 한크가 순간적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고 생각되는 것은 순전히 착각일까?
“한크 형, 유크!”
건물에 숨어 있던 누군가가 뛰쳐나오면서 소리쳤다. 그 뒤로 경악한 여인에 자지러진 외침이 뒤따랐다.
“두크! 안 돼요, 돌아오세요, 두크! 두크!!”
그녀는 챈디아였다.
하지만 두크는 잔뜩 질리고 실성한 얼굴로 비칠비칠 뛰어왔다. 빅브래드가 돌아보거나 콧김을 내뿜을 때마다 화들짝 놀라서 뒷걸음질을 쳤다가도 끝내 널브러진 두 남자에게 와 그들을 끌어안고 통곡하기 시작했다.
“크흐흑! 몇 년 만에 형제가 모이자마자 이렇게 죽어버리다니! 형! 막내야! 으아아아아!”
가스파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유크와 한크의 얼굴을 살펴봤다. 두크가 억센 팔로 우악스레 껴안은 통에 기절했던 두 남자가 깨어나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서 꺽꺽거리고 있었다.
“컥컥… 숨 막혀!”
“혀엉. 두크 형…….”
두 형제가 살고자 버둥거리고 있었지만 두 사람의 목을 휘감은 두크는 세상이 떠나가라 울부짖느라고 도통 제정신이 아니었다.
가스파르는 건물 뒤에 숨어서 내다보는 촌장에게로 갔다.
“유크의 부탁을 받고 들벅 마을을 돕기 위해서 왔어.”
“저, 정말이십니까요?”
촌장이 심하게 말을 더듬으면서 주춤주춤 모습을 나타냈다.
“응.”
“한데 한크와 유크 형제는 어찌된 일입니까요? 왜 죽었습니까요?”
표정은 왜 죽였냐고 묻고 있었다.
“죽어? 쟤들 지금 자는 건데?”
“자, 자요?”
“음, 지금은 깨어났네.”
촌장은 황당한 표정으로 유크 형제들을 돌아봤다. 정말로 죽었다고 생각했던 두 형제는 살아서 두크를 떨쳐 버리려고 바둥거리고 있었다.
두 형제는 주먹으로 두크의 등과 팔뚝을 때리면서 놓아달라고 소리쳤다.
“내가 지금 정신 차리게 생겼어? 날 말리지 마란 말이야!”
두크는 다른 사람이 말리는 줄 알았는지 절규하면서 더욱 우악스레 껴안는 것이 완전히 요지부동이었다.
“아이고! 저러다가 진짜로 죽겠구먼!”
“형제들이 별로 안 친한가 봐. 아주 기회라고 생각하고 두 형제를 죽일 작정인 게 분명해.”
그 앞에 바짝 다가가 서 있던 엔젤은 세 형제가 하는 짓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재미있는 놀이라고 생각을 했는지 통곡을 하는 두크의 목을 휘감고 팍팍 조르면서 울부짖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