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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재천 2(16화)
5장 드러나는 비사(秘史)(3)


꽈르르르릉!
그때, 갑자기 거대한 굉음과 함께 천지가 진동했다.

기어코 너희가 나의 뜻을 저버리고 손에 형제의 피를 묻혔구나!
이 어리석은 종족이여, 어찌 잠깐을 참지 못한단 말이냐!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장소성에 모든 일족은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댄 채 덜덜 떨었다.
복희의 목소리가 온 세상을 뒤흔들었다.
모든 생명체들은 두려움에 몸을 숨겼고, 천둥 벼락이 대지 위로 거세게 떨어져 내렸다.
그렇게도 위세 높던 황제 역시 땅에 엎드려 눈치만 살폈다.

허허, 이 모든 게 나의 잘못이로다.
아직 걸음마조차 못하는 너희에게 나는 법을 가르쳤구나!
단지 약하디약한 너희를 불쌍히 여겨 종족을 보호하고 발전시킬 힘을 주었건만, 결국 그것이 스스로를 망치게 만들었구나!

복희가 한탄을 했다.
아직 인간은 영력을 사용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러니 어떻게 보면 아이에게 불을 맡긴 것과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가 불장난으로 초가삼간을 다 태워먹었다.
강회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본의는 아니었으나 결국 스승의 뜻을 저버리고 형제의 목숨을 취한 것이다.

너희에게 주었던 힘은 다시 거두어 갈 것이다!

번쩍!
순간, 하늘에서 뇌전이 번쩍이더니 빛줄기가 사방을 가득 채웠다.
“크아아악!”
뇌전의 줄기는 한 사람도 놓치지 않고 모든 이의 몸을 관통했다.
번개에 격중당한 모든 일족들이 땅 위로 허수아비처럼 쓰러진 채 온몸을 떨었다.
황제 또한 머리에서부터 발바닥까지 관통한 뇌전에 눈을 뒤집어 깐 채 쓰러졌다.
일각 가까이 뇌전이 계속 떨어져 내렸고, 인간들은 땅에 처박혀서 경련했다.
뇌전이 사라지고 땅위에는 쓰러진 인간들만이 남아 있었다.

너희의 영안을 모두 부수고, 영력을 모두 거두었다.
너희 세대에서는 결코 영력을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너희에게 내렸던 가르침과 신물들은 너희가 범접할 수 없는 곳에 봉인할 것이다.
훗날 너희의 정신이 그것을 받아들일 정도의 그릇을 갖추었을 때, 너희는 다시 힘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복희의 추상같은 불호령이 떨어져 내렸다.
강력했던 힘이 모두 사라져 버린 일족들은 이제 복희가 그들을 거두어 주기 전처럼 약하고 어리석은 인간에 불과했다.
맹수들의 위협과 대자연의 혹독함을 스스로 힘들게 이겨 내야 하는 것이다.
“복희시여! 어리석은 저희를 용서하시고 한 번 더 기회를 주시옵소서!”
황제는 온몸을 가득 채우던 힘의 공백에 이제야 자신이 큰 잘못을 저질렀음을 깨닫고 복희에게 사죄하며 울부짖었다.
그토록 위풍당당하던 모습은 오간 데 없고, 욕심에 가득 찬 눈빛뿐인 추악한 늙은이만 남아 있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인간 세상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지금부터 스스로의 힘으로 모든 위험에 맞서야 할 것이며, 자연은 인간에게 혹독한 시련을 내릴 것이다.
마지막 남은 연민으로 봉인을 열 수 있는 일곱 개의 열쇠와 나의 유물이 있는 곳을 찾을 수 있는 지도를 내리니, 훗날 구원자가 이 땅에 내려와 그 힘을 찾고 너희에게 다시 돌려줄 것인지 판단할 것이다.
그때까지도 너희의 모습이 지금과 같다면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신농은 비록 헌원에게 속아 피치 못하게 죄를 지었으나 형제를 믿지 못하고 또한 그 형제를 상하게 하였으니 그 죄가 적지 않다.
너희는 나의 유물을 지키는 문지기가 되어 그 죄를 갚도록 하라!
너희는 죽을 수 있는 자격조차 박탈될 것이며, 구원자가 이 땅에 내려와 너희의 금제를 풀어 줄 때까지 천형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

“죄인, 스승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크흐흑!”
강회가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복희시여! 저희는 간악한 치우가 우리의 소중한 자식들을 납치하여 단지 그에 대한 정당한 응징을 했을 뿐입니다!”
빤히 드러날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한 황제가 엎드려 외쳤다.
그만큼 힘에 대한 갈망이 절실했던 것이다.

네놈의 더러운 욕망으로 인해 이 모든 참극이 벌어졌음인데도 아직 뉘우침이 없구나!
너희 헌원 일족은 앞으로 절대 영력을 몸에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너희 스스로 나라를 세우고 통치자가 되지도 못할 것이다.
단지 어둠 속에 숨어서 음모를 꾸미는 쥐새끼처럼 살게 되리라!
만일 너희가 왕이 되려 하거나 세상의 앞에 나서려 한다면, 내 친히 그 대가를 치르게 해 줄 것이다!

복희는 신농 일족이 유물과 열쇠의 곁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금제를 가했고, 영수(靈獸)들을 내려 열쇠를 지킬 수 있도록 했다.
황제에겐 모든 힘을 빼앗고 문명의 이기를 회수했으며, 삼백 년이 넘던 수명을 백 년으로 줄여 헛된 욕망이 덩어리를 이루어 커지는 것을 제지했다.
모든 치죄를 마친 복희가 빛무리와 함께 사라지고, 이 땅엔 버림받은 인간들만이 남았다.
황제는 싸움에서 이겨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지만, 복희가 두려워 감히 앞에 나서지 못했다.
단지 뒤에서 세상을 암암리에 조종하며 이익을 취했다.
신농은 참회하며 스스로 열쇠의 수호자가 되었다.
치우는…… 처참하게 몰락했고, 전설로만 남았다.

* * *

회상이 끝난 강휘성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렇게 우린 스스로를 망치고 스승의 은혜를 저버렸지.”
회한이 가득한 한숨을 토해 낸 강휘성이 복잡한 눈빛으로 잠시 천성을 바라보았다.
“난…… 스승께서 예언한 구원자가 자네라 믿네.”
“하하, 무언가 잘못 알고 계시는 것 같은데, 저는 절대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저는 당신들의 금제를 풀어 드릴 방법도 모릅니다.
천성이 당황해서 손사래를 치며 부인했다.
그로서는 이런 일에 엮이고 싶은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사조께서 남기신 말씀에 따르면, 구원자는 우리가 처음 가졌던 순수한 영력을 사용하는 자라 하셨지. 자네의 영력은 최초에 스승께서 우리에게 전해 준 바로 그것과 같았네. 지금 이 땅에서 그런 순수한 영력을 사용할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네. 오직 자네 하나뿐이지. 난 그래서 자네가 구원자임이 틀림없다고 보네.”
강휘성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거기다 더욱 명확한 증거는, 자네 왼쪽 가슴에 새겨진 문양이지.”
복희가 남긴 예언에 의하면, 구원자는 심장에 소용돌이 문양이 새겨져 있다고 했다.
[흐음, 대체 복희라는 존재의 정체가 무엇이기에 미래를 예언하고 영력을 심고 거두기를 자유자재로 한단 말인가.]
그 말대로라면 참으로 신에 가까운 놀라운 능력이었다.
왼쪽 가슴에 새겨진 문양은 무숙이 천성을 살리면서 생겨난 것이다.
한데 그것을 오천 년도 전에 예언했다는 것은 무숙의 존재까지도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일지도 몰랐다.
천성이 위기를 맞이하고, 무숙을 만나고, 영안을 열어 영력을 사용하게 되고…….
이 모든 게 미리 정해진 운명이란 말인가.
무숙이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잠시 말을 멈췄다.
그때, 강휘성이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던 천성에게 말했다.
“자네가 구원자인지 아닌지 판단할 확실한 방법이 있다네.”
“어떤 방법인가요?”
천성이 재빨리 물었다.
얼른 자신이 구원자 같은 게 아니란 것을 증명하고 쓸데없는 일에 엮이지 않고 싶었다.
얼핏 들어도 그 파급 효과가 짐작이 되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천성이 어릴 때부터 궁혁도에게 배운 것은 남의 일에 관여해 봐야 득보단 실이 더 많다는 사실이었다.
“열쇠에 자네의 손을 올려 보게.”
강휘성이 열쇠를 가리키며 천성을 바라보았다.
천성은 침을 꿀꺽 삼키며 열쇠를 향해 다가갔다.
‘별일은 없겠지요?’
불안한 목소리로 천성이 무숙에게 물었다.
[혹시 모르니 영안을 열어 최대한 위험에 대비해라.]
천성은 무숙의 말이 옳다 여겨 영력을 미간으로 집중했다.
슈아아악!
확실히 예전과는 달라진 영안의 위력이 느껴졌다.
동시에 석실 안 기의 흐름이 하나하나 선명하게 보였다.
열쇠를 중심으로 수기가 뻗어 나와 석실을 휘돌고 있었다.
양 갈래로 나뉘어져 석실 벽을 타고 뒤쪽 계단 밑에서 만난 수기가 하나로 합쳐져 다시 열쇠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실로 아름다운 광경.
순수한 수기가 푸르게 온 석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었다.
천성은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열쇠로 가져갔다.
팟!
열쇠와 손끝이 만나는 순간, 갑자기 눈앞이 하얗게 변하고 잠시 동안 눈부신 빛줄기들이 천성의 뇌리를 두드렸다.
빛줄기들 사이로 하나의 형상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 형상은 머리를 틀어 올려 황금 비녀로 고정시킨 중년의 사내였다.
중년인은 용 문양이 수놓아진 검정색 장포를 입고 있었는데, 무척 자애로워 보이는 인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여와의 사자, 태호 복희라고 하네. 환영하네, 하늘에서 떨어진 자여!”
마치 기다렸다는 듯 복희가 천성을 반겼다.
‘이 사람이 그 태호 복희라고?’
얼떨떨한 모습으로 천성이 복희를 바라보았다.
“놀랄 필요 없네. 난 그대에 대해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다네.”
[이상하군. 인간이 아니야. 흠, 뭔가 기억날 듯도 한데…….]
무숙이 혼란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호오, 정보 복제체인가? 나와 비슷한 존재군.”
잠시 무슨 소리인가 하던 천성은 그제야 그가 무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동안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던 무숙의 존재를 단숨에 알아차린 것이다.
“정보 복제체?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으음, 익숙한 단어이긴 한데.”
모습을 드러낸 무숙이 찡그린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흐음, 기능에 문제가 있는 것인가? 아무래도 내가 좀 도와줘야겠군.”
순간, 복희의 몸에서 빛과 함께 알 수 없는 문양들이 뻗어 나와 무숙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