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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재천 2(17화)
5장 드러나는 비사(秘史)(4)
화아아악!
무숙의 몸은 순식간에 빛에 휩싸였다.
우우우우웅!
빛에 휩싸인 무숙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고 공간이 진동했다.
“응? 이것은!”
복희가 놀란 표정을 짓더니, 무숙을 감싼 빛을 거두어들였다.
“호오, 그런 것인가?”
복희가 턱을 쓰다듬으며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
“아무래도 지금은 자네를 온전히 회복시킬 수 없을 것 같군. 하지만 어느 정도 필요한 정보는 다시 되찾았을 것이네.”
그러나 천성은 복희가 하는 말을 한마디도 이해할 수 없었다.
“허, 이곳은 아공간인가?”
무숙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렇다네.”
“그대는 누구인가?”
“나는 여와의 사자인 복희라 하네.”
“여와라면…… 초월자!”
놀란 표정으로 무숙이 복희를 바라보았다.
“그렇지. 나는 그분의 분신이라 할 수 있지.”
그제야 무숙은 그간의 모든 것들이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아직은 정보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미흡한 부분이 있었으나, 그래도 상당한 의문점들이 풀린 것이다.
복희가 초월자의 분신이라면 당연히 그 능력도 대단할 것이었다.
중원의 인간들에게 영력을 심어 사용법을 가르치고, 또 다시 회수하는 것 역시 가능했을 것이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천성이 알아들을 수 있는 부분은 복희가 여와의 분신이라는 정도였다.
초월자란 무엇이고, 복제체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초월자는 생명과 존재를 초월한 자들, 존재이되 존재가 아닌 자들, 의지만으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른 자들을 말한다. 인간들이 신이라 부르는 존재와 비슷하다 보면 된다.”
천성의 마음속을 읽었음인지 무숙이 초월자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제야 천성은 여와와 복희의 존재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한데 어째서 천성을 알고 있는 것인가? 대체 무슨 이유로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지?”
“너무 서두르지 말게, 제법 긴 이야기니.”
복희가 잠시 숨을 고른 후 이야기를 시작했다.
초월자는 감정이 없는 존재라 들었는데, 복희는 분신이라서 그런지 여러 가지 표정들을 풍부하게 보여 주었다.
“내가 인간들에게 영력을 가르친 것은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지. 이곳은 정말 자연지기가 풍부한 곳이어서 여러 문명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지. 지난 삼십억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다른 문명의 침입이 여러 번 있었고, 그로 인해 많은 종족이 멸종해 버렸지. 이 땅의 생명들을 사랑하신 여와께서는 그러한 전철을 다시 밟지 않길 바랐다네. 그렇기 때문에 결국 나를 통해 인간들에게 힘을 주기로 결정하신 것이지.”
“결국 인간이 멸망에 이르지 않도록 스스로의 지킬 힘을 내렸던 것이군요.”
천성의 말에 복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초월자인 여와가 생각하는 사랑과 인간이 생각하는 사랑과는 분명 다른 의미일 것이다.
“그래, 결국엔 그것이 실수였어, 나는 사실 오래전에 그대들을 만날 것을 알았지. 사실 이것은 거대한 운명의 시작에 불과하다네. 어차피 자세한 건 때가 되면 알게 될 테니 지금은 우선 자네에게 한 가지 작은 부탁을 해야겠군.”
천성은 무언가 귀찮은 일에 엮이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일단 사양하겠습니다. 하하하.”
복희의 제안을 서둘러 거절한 천성은 얼른 돌아나가려 했으나 나가는 방법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물론 강요하는 것은 아니니 걱정 말게. 들어 보고 그대가 스스로 판단하여 원치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네.”
그나마 스스로 판단해도 된다는 복희의 말에 천성은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하하, 그럼 들어 보도록 하죠.”
“지금 그대가 손을 대고 있는 열쇠는 오행 중 수기를 품고 있는 것이야. 이 중원 땅 곳곳에는 나머지 오행기를 품고 있는 이와 같은 열쇠가 네 개 더 있다네. 또한 음(陰)과 양(陽), 두 가지 촉매가 존재하지. 그대가 이 열쇠들을 모아 내가 남긴 유물을 찾아 주게. 그리하면 신농 일족도 천형에서 풀려날 것이네. 찾은 유물은 인간들에게 돌려주든, 직접 사용하든, 아니면 파괴하든 그대의 뜻대로 하게. 단, 좋지 못한 목적을 가진 자의 손에 들어가지 않게만 해 주면 되네.”
얼핏 듣기에는 별로 어려운 일 같지 않았으나, 실상 너무도 불확실하고 광범위한 일이었다.
열쇠를 일곱 개나 찾아야 하고, 전 중원을 누벼야 하는 일이다.
시간은 물론, 엄청난 심력이 소모되는 일이었다.
거기다 한 일족의 운명까지 책임져야 하다니, 당연히 천성으로서는 피해야 할 상황이었다.
천성이 어떻게든 거절하려 하는데 복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차피 자네는 치우 일족과 마무리지어야 할 일이 있지 않은가. 그들과 부딪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이 일에 엮이게 될 것이야. 대신 내 제안을 따른다면 작은 도움을 주도록 하지.”
천성이 미간을 찡그렸다.
곡용천의 일을 잠시 잊고 있던 것이다.
아무리 잠깐이라지만 어떻게 그 일을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천성은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런 마음을 읽은 무숙이 천성을 달랬다.
“자책할 필요 없다. 너무 혼란스러운 일들을 겪다 보면 누구라도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확실히 그런 면은 있었다.
이곳에 와서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들을 겪었고, 궁극적으로는 신의 존재까지 거론되는 거대한 사건과 엮이게 된 천성이었다.
생각이란 것 자체를 할 틈조차 없던 것이다.
마음을 가다듬은 천성이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곡용천의 복수를 하려면 결국 치우 일족과 부딪쳐야 했다.
뱀가면이 놈들과 관련되었을 것이 거의 확실했기 때문이다.
놈들은 이 사건의 중심에 있다.
결국 복희의 말대로 복수를 포기하지 않는 한 천성이 피해 가기 힘든 상황이었다.
‘결국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천성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열쇠를 찾는 일은 결국 그대에게도 큰 도움이 되지. 열쇠 안의 순수한 오행기가 영안을 확장시키는 데 제법 쓸모가 있거든.”
물론 방금 전에 순수한 수기의 물결 속에서 천성은 머릿속이 맑아짐을 느꼈지만, 크게 영안이 확장되거나 기문이 넓어짐을 느끼지는 못했다.
한데 열쇠가 영안의 확장에 대체 무슨 도움이 된다는 것인지 의아했다.
“후후, 잠시 후면 알게 될 거야. 이제 내가 그대에게 할 말은 다 했네. 결정은 이곳을 나간 뒤에 천천히 해도 되네. 다음 열쇠를 찾으려면 동정호로 가게. 모든 것은 순리대로 이루어질지니, 스스로를 깨닫는 순간 준비된 길을 가리라!”
마지막 말을 끝마친 복희가 점점 흐릿해져 가며 이윽고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뒤에 남긴, 마치 예언과도 같은 외침에 천성이 찜찜함을 느끼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온몸이 털끝 하나 꼼짝 못할 정도로 굳어 버렸다.
“이, 이게 무슨 일이지!”
당황한 천성이 어떻게든 움직여 보려 발버둥 치는 순간, 천성의 미간으로 푸른 빛줄기가 작렬했다.
파지지직!
빛줄기는 천성의 미간을 관통하는 듯하더니, 이내 온몸을 휘돌았다.
기문으로 받아들인 기운과는 다르게, 영안으로 직접 들어온 빛줄기는 세포 하나하나를 태우듯 거칠게 천성의 몸을 질주해 다섯 기문으로 향했다.
슈아아악!
다섯 갈래로 나뉘어져 각 기문에 도착한 빛줄기가 기문을 감싸고 회오리쳤다.
점점 속도가 빨라지더니, 기문이 빛줄기에 휩쓸려 조각조각 부서지고 산산이 흩어져 버렸다.
그러자 온몸에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몰려왔다.
‘엇, 기문이 사라지다니!’
천성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설마 복희가 간악한 술수를 써서 기문을 파괴한 것인가!’
그때였다.
기문을 삼켜 버린 빛줄기들이 마치 실처럼 가늘게 변하더니, 서로 엮이며 새로운 기문을 형성해 나갔다.
이전의 기문이 투명한 원의 형태였다면, 새로 만들어지고 있는 기문은 마치 푸른 빛의고리―물론 천성의 심상으로만 보이는 상태였지만―처럼 보였다.
[허허, 대단하구나, 기문이 훨씬 더 커지고 단단해졌어. 아마도 자연지기를 받아들이고 내보내는 양과 속도도 몇 배로 늘어났을 것 같구나.]
무숙이 새로 생성되고 있는 기문을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형태는 무숙조차 알지 못한 것이었다.
또 하나 신기한 점은, 다섯 기문이 조금씩 진동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다섯 기문이 진동하면서 천성이 의식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연지기를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말로만 듣던 현상을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되다니, 복희가 너에게 큰 기연을 내렸구나.]
영력은 몇 단계에 걸쳐 마치 껍질을 깨듯이 발전해 나간다.
크게 나누어 총 다섯 번의 단계가 있는 것으로 전해져 오고 있으며, 각각의 단계마다 영안이 부서졌다 다시 생성된다고 했다.
첫 번째 단계는 영안에 희미하게 핵이 자리 잡는 것.
천성에게 눈동자 모양의 핵이 흐릿하게 생성된 것도 바로 이 첫 번째 단계였다.
첫 번째 단계를 통과하면 음속을 인지하게 되고, 영안에 맺히는 심상이 선명해지게 되며, 기탄을 동시에 여러 발 발사할 수 있게 된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영안의 핵이 또렷해지는 단계로, 음속을 초월하고 하늘을 날 수 있게 된다.
영안이 인식하는 범위 또한 십 리에 이르게 된다.
심상의 원근이 선명해지게 되며, 염동력을 본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핵이 회전하게 되고 기문이 부서졌다 다시 생성되는데, 영력을 강기처럼 사용할 수 있으며, 염동력을 자유자제로 사용할 수 있다.
음속의 서른 배가 넘는 속도를 갖게 되며, 영안의 범위가 삼십여 리로 늘어나게 된다.
또한 강력한 의지력으로 상대방의 정신을 제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천성은 아직 두 번째 단계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세 번째 단계에서나 발생하는 기문의 재생성이 이루어진 것이다.
기문의 재생성이 과연 천성에게 새로운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 줄 것인지, 아니면 그저 자연지기의 출입 속도와 양만 많아진 것뿐인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로 인해 천성의 영력은 그 위력이 훨씬 강력해지리라는 것이었다.
사실 무숙이 천성에게 원하는 단계는 네 번째 단계인데, 영안이 자신의 몸 밖으로 확장되면서 기문들이 광사라는 빛의 실로 연결되게 되는 단계였다.
이 단계가 되면 빛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일 수 있으며, 시간을 조율―물론 상대적인 시간이지만―할 수 있다.
또한 자신의 영력이 미치는 백 장의 공간 안에서는 모든 기의 흐름을 조절할 수 있다.
이 단계에 이르면 태초의 파편을 노리는 무리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하지만 네 번째 단계에 이른다는 것은 어렵고도 먼 길이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다섯 번째 단계를 이루면 바로 초월자가 되는 것이다.
초월자는 곧 신을 의미했다.
물론 천성이 초월자가 되길 바라는 것은 아니었지만, 네 번째 단계 역시 그에 못지않게 지난한 일이었다.
어쨌든 무숙은 세 번째 단계에서나 발생하는 기문의 재생성을 이룬 상황이 두 번째와 세 번째 단계를 돌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