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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심장기사단 1 (15화)
제6화 외교, 그까이꺼(3)


두두두두두!
키히히히힝!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놓치지 마라!”
“모두 찢어 죽여라!”
멀리 50의 인마와 200의 병사와 용병들이 뒤섞여 뿌연 먼지구름을 일으키면서 급속도로 달려왔다.
가스파르는 고요히 검을 뽑아 들었다. 다소 무미건조하게 느껴질 정도로 느릿한 움직임은 지휘관으로서 부하들에게 사기를 불어넣어 주는 박력이고 패기고 사기진작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었다.
“마을 안이 피로 물드는 것은 보기 좋지 않겠지?”
“네.”
샤넬리아가 원피스 위에 덧입은 조끼 주머니에서 포크를 꺼내들면서 대답했다. 엔젤은 늘 그렇듯 샤넬리아가 하는 짓을 똑같이 흉내 내려고 하였다.
까웅!
“나가서 싸우자.”
저벅저벅.
그의 명령은 위엄은커녕 권위적이지도 않았다.
총총총총.
가스파르의 넓은 보폭으로 엘코크 여인들은 다소 빠른 걸음으로 따랐다. 마을 사람들과 조금 멀어졌을 때 그가 목소리를 낮춰 명령을 내렸다.
“들벅 마을 사람들의 환심을 사야 한다. 최대한 화려하게 싸워야 해.”
가스파르의 몸에서 황금빛 아지랑이가 뭉클뭉클 일어났다.
스스스스―
“예.”
“네.”
먼저 대답을 하는 사베나의 몸에서는 선홍빛 아지랑이가 피어났고, 뒤이어 대답한 샤넬리아에게선 짙푸른 아지랑이가 피어났다.
다른 여인의 몸에서도 초록빛, 주홍빛, 보랏빛, 흑빛, 회색빛, 갈색빛, 붉은빛, 투명한 빛 등등 알 수 없는 기류가 일어났다.
까웅?!
샤넬리아의 뒤를 따르던 엔젤이 움찔거리면서 두려움에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그들의 몸에서 일어난 그것들은 점점 어떠한 형상을 갖추어갔다.
고오오오오―
뒤에서 장크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 뭐야? 뭐냐고? 유크! 저게 대체 뭐냐?”
“몰라요… 저도 처음 보는 거라고요…….”
대답은 엉뚱한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눈을 부릅뜬 한크가 공포에 찬 목소리로 극심하게 말을 더듬으며 중얼거렸다.
“저, 저게 바로 그그그그… 그건가? 스, 스피릿 비비비비…….”



제7화 스피릿 비스트(1)


말발굽만큼이나 굳은살이 단단히 박인 투박한 손바닥이 한크의 뒤통수로 날아들었다.
따악!
“악! 아부지!”
“야, 이 자슥아! 서른이 넘은 사내자슥이 뭔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게 하냐? 이런 게 장남이라고, 똑바로 말 못해!”
“아! 변했다! 황금사자잖아!”
격앙된 얼굴에 유크가 허공에 검지를 내지르며 소리쳤다.
“저, 정령인가?”
가스파르의 금빛 아지랑이는 사자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신비한 갑옷처럼 가스파르의 전신을 감싸고 있었다.
그런데 사자의 얼굴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기쁨을 주체 못하겠다는 양 입꼬리가 쫙 찢어지게 웃고 있는 희열에 찬 모습이 참으로 괴이쩍었다.
그때 베간커의 사병들에게서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으하하하!”
“아하하하!”
사나운 고함과 광폭한 함성을 지르며 돌격하던 기사와 사병들이 갑자기 기분 좋게 웃기 시작했다. 그것은 광기와는 사뭇 달랐다.
“죽여라! 하하하! 죽여라! 하하하!”
“하하하! 죽어라! 하하하! 죽어라!”
어떻게 보면 해맑게도 비치고, 알 수 없는 기쁨에 찬 사병들은 실성한 사람처럼 웃으면서 죽어라를 미친 듯이 외쳤다.
흡사 황금빛 아지랑이 사자와 같은 표정이었다.
가스파르는 그저 무미건조한 얼굴로 걸어갔다. 하지만 그가 뒤집어쓰고 있던 황금빛 야수는 환하게 웃으면서 적들을 향해 짓쳐 나갔다.
카아앙!
황금빛 아지랑이 야수가 아가리를 쩍 벌리며 울부짖었다.
하지만 그 가공할 포효는 아지랑이 야수의 아가리에서 나온 소리가 아니라 가스파르의 성대를 통해 폭발한 소리였다.
베간커 자작의 사병들과 20여 미터나 떨어진 가스파르가 검을 사선으로 베었다.
막 베간커 자작의 사병에게 다다른 황금빛 아지랑이 사자가 가스파르의 검의 경로를 따라 앞발을 휘갈겼다.
부아악―
추아악!
“하하… 컥!”
“끄아아악!”
“악! 하……”
머리에서 겨드랑이, 혹은 어깨부터 옆구리까지 사선으로 갈리면서 단말마를 지르며 죽어가는 사병들.
그러나 허물어져 내리는 그들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환하게, 너무도 기쁘게 웃으면서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죽음이 그렇게도 기쁜 것일까?
가스파르가 팔을 들면 금빛 아지랑이 사자가 앞발을 들었고, 발을 옮기면 사자의 뒷발이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가스파르가 황금빛 아지랑이 야수인지, 황금빛 아지랑이 야수가 가스파르인지. 그 둘은 둘인 듯 하나였고, 하나인 듯 둘이었다.
사베나의 몸을 감싼 핏빛 아지랑이에 곰의 형상은 분노와 광포함을 담고 있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곰의 분노가 전의되는 것같이 뭔가 울컥울컥 치밀어 올라서 종국엔 염화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만 같았다.
그녀에게는 분노한 기사와 병사들이 광전사처럼 달려들었다.
“갈가리 발겨주마!”
“계집! 배때기만 부르지 않았어도 첩으로 삼아주는 건데! 어떤 새끼가 침 발라 놨는지 걸리기만 하면 사타구니부터 도려내 주겠다! 빌어먹을! 크아아!”
사베나의 아지랑이 불곰이 맞서 나가면서 울부짖었다.
캬아아앙!
역시 소리는 사베나의 붉은 입술에서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그녀의 손발이 어지럽게 움직였다.
바악―
“크아악!”
퍽―
“칵!”
아지랑이 불곰의 날카로운 발톱이 사병들의 가슴을 후벼 파고들어 가 심장을 갈가리 찢어버렸다.
불곰의 억센 주먹에 사병들의 머리통이 수박처럼 부서지면서 핏빛 잔해가 그 주변으로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샤넬리아의 아지랑이 괴조는 흡사 전설상에나 등장한다는 불사조의 형상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아지랑이 괴조는 붉은빛이 아니라 눈이 시리도록 차가운 짙푸른 색이었고, 표정은 슬픔으로 넘쳐서 하늘빛 아지랑이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흐으으윽!”
“크흐흑!”
샤넬리아의 슬픈 괴조를 보는 사람들의 가슴엔 알 수 없는 슬픔이 홍수처럼 급격히 차오르고 눈에선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샤넬리아는 포크로 허공을 찔렀다.
키아아아!
짙푸른 아지랑이 괴조가 쏜 화살처럼 패도적으로 쏘아져 나가서 하염없이 울고 있는 베간커 사병들의 몸통을 관통하였다.
샤넬리아의 포크질이 현란해지면서 베간커 사병들의 몸통에 바람구멍을 내버리는 괴조의 모습은 눈으로 쫓기에 버거울 지경에 이르렀다.
슬픔에 잠겨 샤넬리아에게 달려들었던 베간커 사병은 모두 울면서 무너져 내렸다.
그런 것은 다른 엘코크 여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아지랑이 야수들의 색상이 달랐고, 표정도 제각각이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지랑이 야수의 색상이 선명할수록 표정도 뚜렷한 윤곽을 드러낸다는 점이었다.
더불어 아지랑이 야수의 뚜렷한 표정에 따라서 사람들의 가슴속에 스며드는 각각의 감정 변화와 동요를 일으키는 것에 차이가 크게 나타났다.
기쁨.
슬픔.
분노.
공포.
때론 웃다가 울다가.
기쁨에 겨워 환호성을 치다가 어느덧 공포에 비명을 지르다가.
들벅 마을 사람들은 이 기이한 현상에 그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마을 사람들을 모두 찢어 죽이겠다고 살기등등하게 달려오면서 두려움과 공포를 심어주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실성한 사람이 따로 없었다.
심혼이 통째로 뒤흔들리는 감정의 격류.
그것은 들벅 마을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오직 베간커 사병들에게만 일어났다.
베간커 사병들은 분노하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공포에 빠져 숨을 헐떡이다가 눈도 감지 못하고 끝내 고개를 푹 꺼꾸러뜨렸다.
장크와 그의 아들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베간커 자작군이 왜 저러지? 단체로 실성했나?”
“아부지. 제 눈에 헛것이 자꾸 보이는구만요. 제가 정신을 차릴 수 있게 뒤통수 한 대만 쳐주세요.”
기세 좋게 달려오던 베간커 자작의 기사들과 사병들이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분쇄가 되어서 모래성처럼 우르르 허물어져 내렸다.
그래서 눈앞에 보이는 현상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려웠다. 차라리 치열한 전투였다면 현실로 받아들이기가 훨씬 쉬웠을 것이다.
베간커 사병들 중 서 있는 자는 없었다. 모두 기기묘묘한 표정을 지은 채 바닥에 널브러져 버렸다.
그리고 허공에 떠 있던 정체불명의 야수들 형체가 대기 중에 녹아들면서 불투명한 아지랑이가 되었고, 그것들은 각자의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슈우욱―
슉슉슉!
유크가 한크의 팔을 잡으면서 물었다.
“큰형. 저게 뭐라고?”
한크가 대답을 하려는 찰나 형제들의 아버지 장크가 끼어들었다.
“또 말을 더듬으면 그 쓸모없는 아가리를 콱 찢어버리겠다!”
장크의 으름장에 움찔한 한크는 심호흡을 한 뒤에 천천히 대답했다.
“스피릿 비스트요.”

* * *

한크가 스피릿 비스트에 대한 명칭에 대해서 아는 것은 그의 직업이 현상금 헌터였기 때문이다.
그는 100만 골드의 엄청난 현상금이 걸려 있는 가스파르를 잡기 위해서 그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취해야 했다.
하지만 고작 얻은 정보가 동쪽으로 하염없이 이동하고 있다는 것과 그들이 가진 신비하고도 파괴적인 힘이 스피릿 비스트라는 것뿐이었다.
장크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정령이 아니고?”
신화나 전설 속에서나 곧잘 등장하는 정령들. 이야기 속에 단골로 등장하는 정령이 어떻게 생겨 먹은 것인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장크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무형의 비물질임에도 형상화해 사람들의 눈에 투영된다는 정령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스피릿 비스트들처럼 신비스럽고 환상적일 것 같았다.
한크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정령이 아니면 그럼, 아, 악마인가?”
“스피릿 비스트의 정체는 아무도 몰라요. 저들이 스피릿 비스트를 소환하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은 모두 몰살당했다고 했거든요.”
“그럼 너는 이 경악스러운 정보를 어디서 주워들은 거냐?”
“몰살당한 사람들 중에서도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목격자가 있었겠죠.”
“흠! 하긴 완벽한 비밀이란 있을 수 없지.”
“스피릿 비스트에 대한 이야기는 여태까지는 소문만 무성했어요.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또 그렇게 일파만파로 퍼져 나갔어도 스피릿 비스트에 대한 신빙성과 존재 유무 자체를 대부분은 부정하고 있어요. 그저 떠벌리기 좋아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야깃거리로 삼을 뿐이지 진짜라고 믿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그런 것을 직접 목격하게 되다니…….”
“목격자를 모두 죽인다면… 지금 우리 엄청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는 거 아니냐?”
“…….”
장크의 불길한 지적을 들은 사람들이 침음을 흘렸다. 더러는 불길한 얼굴로 비틀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마을 사람들에게서 불안감을 읽은 유크가 재빨리 나섰다.
“몰살 위기에 처해 있던 우리 마을 사람들을 구해준 분들이 바로 저분들이에요. 그리고 목격자를 해치우려고 했다면 스피릿 비스트들을 돌려보내지 않았을 거예요.”
유크의 추측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었다. 완전하게는 아니지만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서 불길함과 긴장감이 다소 걷혔다. 몇몇은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는 양 고개를 힘주어 끄덕이기도 했다.
가스파르와 여인들이 목책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촌장이 유크의 등을 떠밀었다.
“유, 유크. 네가 앞서거라.”
“제가 왜요?”
“니가 가스파르님과 많이 친하잖아.”
“별로 안 친한데요?”
“내가 가서 무릎을 꿇고 사정할 때는 본 척도 안 하셨어. 니가 가니까 당장 달려오셨잖아. 그거만 봐도 친한 거지.”
“그래. 아까… 제일 아름다운 부인께서 다리도 보여주시고, 험험.”
얼굴을 붉히면서 맞장구를 치는 이는 다름 아닌 장크였다. 사베나가 유크의 이름을 부르고 치마를 걷어 올렸던 부분을 지적한 거였다. 마을 사람들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유크는 하는 수 없이 가스파르를 맞으러 갔다.
“가스파르님 마을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응.”
겸손의 말 따윈 할 줄 모르는 가스파르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들벅 마을 사람들이 보기에는 대단히 거만하게 비쳤다. 거기에 더해서 마을 출입구를 향해 오만하게 턱짓을 하면서 말했다.
“가서 치워.”
“네?”
“시체.”
“아! 네에.”
유크와 마을 사람들은 출입구로 우르르 몰려갔다. 출입구가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