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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재천 2(22화)
7장 구천마련(2)


정마대전 이전에는 신교―지금은 마교라 불리는―가 널리 중원 땅에 퍼져 있었는데, 일반 백성들 중에도 신교를 믿는 이들의 수가 제법 되었다.
그러나 마교가 정마대전에 패한 뒤 교도들이 뿔뿔이 흩어져 신강으로 쫓겨나게 되자, 미처 함께 따라가지 못한 일반 백성들은 마교도로 낙인찍힐까 두려워 산속이나 오지로 숨어들어 명줄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마교도는 잡히는 순간 모두의 공적이 되어 처형되거나 지금 이들처럼 혹독한 고초를 겪게 마련이었기 때문이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악의 씨앗을 제거한다는 명분하에 인간 사냥을 당해야 했던 그들은 결국 사람이 드문 곳에 숨어 지내는 수밖에 없었다.
한데 그런 이들을 양도문에서 우연히 찾아 이렇게 끌고 온 것이리라.
“마교도라 하나 힘없는 여인과 아이들일 뿐이지 않습니까? 사정을 봐주신다 하여 그들이 무슨 해코지를 하겠습니까?”
천룡이 정중하게 부탁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요? 마교도는 마교도일 뿐이오! 인간이 아닌 악마의 종자들이란 말이오! 그리고 이것들은 우리 공자님께서 천하영웅대회에 참가하시기 위해 무림맹에 전달할 증표란 말이오! 한데 그대가 우리 공자님의 참가를 막겠다는 것이오?”
사내가 삿대질을 해대며 언성을 높였다.
천룡은 그제야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이들은 천하영웅대회의 참가 조건에 맞추기 위해 마교도를 잡아가는 것이었다.
양도문처럼 이름이 알려지지 않고 실력도 모자란 문파에서는 공을 세워 인정을 받거나, 사마의 무리를 잡아서 끌고 가지 않으면 천하영웅대회에 참여할 수 없었다.
한데 산적을 토벌하거나 이름난 악적들을 잡는다거나 하는 것은 양도문처럼 실력이 부족한 작은 문파에게는 지난한 일이었다.
그러니 이런 편법을 써서 천하영웅대회에 참여하려는 것이다.
마교도를 무림맹으로 데려가면 참가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그러니 힘도 없고 무공도 모르는 마교의 식솔들은 그야말로 손쉬운 먹잇감인 것이었다.
지금 중원 전역에서는 이와 같은 일이 비일비재로 일어나고 있었다.
무림맹의 잘못된 한 수가 힘없는 이들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무림맹에서는 그렇다 하여 이들을 위해 조치를 취하거나 규칙을 바꾸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자들을 천하영웅대회에 참가시켜 주었다.
왜냐하면 이런 현상 역시 그들이 노리던 바였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로 인해 마교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 아닌 괴물이나 악마가 되어 무림맹과 정파는 악마와 괴물에 맞서는 의로운 자들로서 백성들의 지지를 받게 되는 것이다.
“마교는 모두 사라져야 하오!”
“무슨 짓이냐! 마교도를 두둔하는 것이냐!”
“악마의 종자들, 썩 꺼져라!”
“저놈도 한패인가 보다!”
흥분한 군중들이 천룡에게도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천룡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난감해졌다.
쉬아아악!
스걱!
순간, 한줄기 칼날 같은 기운이 마교도들이 묶인 밧줄을 조각조각 자르고 지나갔다.
“웬 놈이냐!”
양도문의 무사들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십여 장 정도 떨어진 그곳에서는 방금 기운을 날린 듯한 덩치 큰 흑의 복면인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복면인으로 변신한 천성이었다.
음식과 여러 가지 필요한 물품들을 구해 오던 도중 양도문에게 끌려가는 여인과 아이들을 보고 재빨리 흑의인으로 변신해 달려온 것이었다.
그 순간, 이를 악물며 상황을 지켜보던 혁련무광과 왕추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
“……!”
“저런 방법이!”
둘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재빨리 객잔 뒤로 사라졌다.
그사이, 양도문의 무사들이 천성의 앞을 막으며 소리쳤다.
“정체를 밝혀라! 어찌 마교도를 구하려 하느냐!”
“천하영웅대회는 강호의 젊은 영웅들을 선발하기 위한 대회다. 너희같이 치졸한 자들이 아녀자와 아이를 대가로 한 다리 걸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대체 저들이 너희에게 무슨 잘못을 했단 말이냐? 너희의 재물을 훔쳤더냐, 아니면 너희에게 머리카락 한 올만큼의 상처라도 입혔더냐! 그저 제 한 몸 지키며 근근이 살아가는 이들이 아니더냐! 도처에 이름난 악적들은 두려워 손도 못 대면서 힘없는 아녀자와 아이들이나 핍박하는 너희가 정도를 논할 자격이나 있느냐!”
천성의 말에 양도문의 소공자 진용화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들로서도 사실 그다지 자랑할 만할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에 얼굴이 빨개진 진용화가 천성을 손가락질하며 공격을 명령했다.
“뭣들 하느냐! 마교를 옹호하는 자다! 모두 달려들어 제압하라!”
“하하하! 하기야 말은 필요없지!”
순간, 크게 웃어젖힌 천성의 모습이 사라졌다.
확장된 영안이 감각을 극도로 활성화시켜 천성을 제외한 세상이 모두 느려진 듯 느껴졌다.
동시에 온몸의 근육이 음속의 압력에 저항해 탄력적으로 꿈틀거렸다.
앞으로 달려 나가던 양도문의 무사들이 갑자기 사라진 천성의 움직임에 눈을 부릅뜬 채 당황한 모습이 보였다.
팔과 다리가 느릿느릿 아주 조금씩 앞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조금은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다급히 소리치는 진용화의 입에서 튀어나온 침들이 허공에서 천천히 떨어져 내렸다.
터더더덩!
파아아아앙!
어느새 양도문 무사들의 틈새로 파고든 천성의 주먹이 작렬했다.
압축된 공기가 터지는 듯한 경쾌한 타격음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앞에 나섰던 다섯의 무사가 먼지를 뿌리며 뒤로 튕겨 나갔다.
마치 스스로 뒤로 몸을 날린 것 같은 모습.
비명을 지르는 양도문의 무사들이 두 다리가 땅에 떨어진 채 서서히 공중을 미끄러져 간다.
그사이, 극도의 의식 집중으로 인해 천성의 머리에 살짝 두통이 느껴진다.
“뭐―어―어―야!”
당황한 진용화의 목소리가 왜곡되어서 천성의 잔상을 뒤쫓는다.
천성의 팔 근육이 부풀어 오르고 양손이 번갈아 주먹을 뻗어 냈다.
퍼퍼퍼퍽!
그러나 희끗희끗한 천성의 잔상만이 장내를 채울 뿐, 순식간에 열 명의 무사가 어떤 수법에 당한지도 모른 채 나가떨어져 정신을 잃었다.
퍽!
진용화의 놀란 눈이 정면을 향하는 순간, 천성의 손바닥이 명치에 작렬했다.
진용화 역시 앞서의 무사들과 마찬가지로 비명 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뒤로 쓰러져 실신했다.
어차피 죽일 마음은 없었기에 손속에 사정을 둔 것이다.
천성의 신형이 사라지고 진용화와 열다섯 양도문 무사가 모두 쓰러지기까지는 그야말로 눈 한 번 깜빡할 시간에 불과했다.
“대단한 움직임이군. 저 체구에 저런 빠르기라. 기운 또한 무척 독특하군.”
천룡은 그야말로 감탄을 했다.
빠르기만으로 본다면 자신이 따라잡기 힘들 정도였다.
거기다 중원 무공과는 다른 색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공력이 일류 수준도 안 되어 보이는 데도 불구하고 한 수 한 수가 강력한 파괴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저 흑의인의 일갈이 참으로 통쾌하군요. 정파라 자처하는 자로서 마교도라는 이유로 저들을 구하기를 잠시 망설였다는 사실이 정말 부끄럽습니다.”
그때, 옆에 있던 영호명이 진지한 표정으로 스스로를 반성했다.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옳은 일을 행하는 저자야말로 진정 영웅이 아닌가!”
천룡 또한 기꺼운 마음으로 흑의인을 칭찬했다.
“에이, 시선은 의식한 거 같은데? 복면을 한 걸 보니 말이야.”
감석보가 쓸데없는 참견을 했다.
그때, 갑자기 두 명의 복면인이 더 등장했다.
눈 밑을 대충가린 백발의 노인과 눈썹이 치켜 올라간 청년이었다.
왕추와 혁련무광이 급히 객잔 뒤쪽에 널어놓은 빨랫감을 걸쳐 입고 얼굴을 대충 가린 채 나타난 것이었다.
“엇! 벌써 끝났는데?”
“이, 이런. 이제 어쩌죠?”
재빨리 뛰어나왔으나 이미 양도문의 무사들은 모두 쓰러져 있고, 마교의 식솔들은 포박에서 풀려 있었다.
그만큼 천성의 움직임이 빨랐던 것이다.
천성은 갑자기 나타난 두 사람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대체 이들은 또 누구란 말인가.
복면을 한 걸 보니 양도문과 한패는 아닌 것 같았다.
또 당황한 모습을 보니 아마도 마교도를 구하려 한 듯 보였다.
“어? 저 노인은 아까 객잔에 있던 백발노인 같은데?”
그때, 한쪽에 물러서 있던 감석보가 객잔에서 슬쩍 본 노인의 모습을 떠올리며 소리쳤다.
‘헉! 저 쳐 죽일 놈이!’
왕추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어허, 난 저 객잔에 들어가 본 적도 없는데 무슨 헛소리냐! 절대 아니다!”
왕추가 손사래를 치며 부인했다.
“에이, 그렇게 정색하는 거 보니까 맞는 거 같은데요!”
얄밉게도 감석보는 물러서지 않았다.
“이런 쳐 죽일 놈. 나는 나일 뿐인데 왜 네 멋대로 다른 사람으로 만들려 하느냐! 내 존재를 부정한 네놈을 용서할 수 없다!”
퍽!
철학적인 것 같으면서 전혀 말이 안 되는,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대사를 날린 노인이 얼른 감석보를 때려서 기절시켰다.
그 순간, 천룡의 눈이 빛났다.
자신이 미처 대응하지도 못할 빠르기로 감석보를 때려 기절시킨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방심을 하고 있던 상태이긴 했으나, 더 놀라운 것은 그 속도로도 감석보를 단지 기절만 시켰다는 것이었다.
이는 노인이 이미 자신의 몸과 그에 깃든 기의 수발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극강의 고수라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최소한 화경의 고수인 것이다.
“커험, 난 절대 저 객잔 안 갔다!”
“내가 증명할 수 있소. 이분은 절대 저 객잔에 가지 않았소!”
옆의 젊은 복면인, 혁련무광이 정색하며 왕추의 말을 거들었다.
이마가 벌게져서 외치는 왕추의 모습을 보며 천성은 실소를 흘렸다.
기운을 보니 일전에 마차 옆을 스쳐 지나간 인물들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몸에 숨겨진 기운은 거칠고 패도적인데, 하는 행동은 무척 재미있는 자들이었다.
그때, 광무패왕 왕추의 눈길이 피투성이가 되어 꼭 껴안은 채 떨고 있는 여인과 아이에게로 향했다.
그들의 몰골은 가히 인간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다.
흙과 먼지로 더럽혀진 온몸은 성한 곳이 없었고, 그중 몇 명은 이미 일어서 걸을 힘조차도 없는 듯 땅바닥에 늘어져 있었다.
“이, 이, 개 같은…….”
뱃속에서부터 끓어오른 분노에 왕추가 본신의 마기를 끌어 올렸다.
복면을 한 이상 더 이상 마기를 감출 필요가 없는 것이다.
“감히 너희 버러지 같은 것들이 신교의 아들딸을 핍박하였더냐! 어디 한 번 나에게도 돌을 던지고 침을 뱉어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