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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심장기사단 1 (23화)
제9화 열혈 바보들(4)


유크가 호버트 상단주를 꾀이기 위해서, 와이번이 말에 열 배 속도를 낼 수 있기 때문에 수도까지 하루면 충분하다고 말한 바가 있었다. 실제로 와이번은 짧은 순간 열 배 이상 속도를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실상은 두 배조차도 속도를 내지 못했다. 그 첫 번째 이유가 와이번 비행 멀미가 심한 유크 때문이었다. 두 번째는 와이번의 최대 비행시간이 네 시간 이상을 넘기기 힘들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래서 중간중간 휴식을 취해주어야 했다.
그 때문에 말이 달리는 것보다 조금 빨리 날다보니 수도 근교까지 도착하는데 4일이나 걸렸다. 목적지까지는 반나절을 더 가야 했다.
가스파르는 와이번들을 풀어주고 점심을 준비하는 유크를 도우러 갔다. 웬슬라니 성의 하녀들은 그녀들의 직업이 시중을 드는 것이기에 의당 시중을 받았었다.
하지만 유크는 그의 하인도 시종도 아닌 길라잡이였다. 하인도 부하도 하수인도 아닌 엄연한 동료.
가슴이 죽어버린 가스파르였기 때문에 누군가의 위에 서서 군림하며 우쭐함 따위를 느낄 마음이 전혀 일지 않았다. 그렇기에 막대한 신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유크를 인간 대 인간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엔젤에게 닭을 쫓게 한 샤넬리아까지 합세하였다. 가스파르와 샤넬리아가 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가스파르는 불을 피우고, 잡아온 멧돼지의 가죽을 벗겨내고, 커다란 쇠꼬챙이에 꿰여서 굽는 정도였다. 샤넬리아는 커다란 솥에 유크가 준비하고 양념까지 끝낸 수프가 눌어붙지 않도록 젓는 일을 도맡았다.
겨우 셋이 먹을 것인데 멧돼지를 통째로 굽고, 수프를 커다란 솥에 끓이는 이유?
식사가 끝나고 설거지를 하는 일도 샤넬리아가 맡았는데, 그건 정령술사 가문 출신답게 샤넬리아가 물의 정령을 부릴 줄 알았기 때문이다.
요리를 끝내고 먹을 만큼 담은 접시를 나무 그늘 아래 깔아놓은 돗자리로 옮겼다. 셋이 나란히 앉아서 막 수프를 뜰 때였다.
두두두두두―
굉장한 진동과 함께 엄청난 먼지 구름을 일으키면서 질풍처럼 달려오는 20의 인마.
“또 딱 맞춰서 왔네.”
4일 동안 벌써 다섯 번째 조우였다. 그것도 식사 때만 되면 찾아오는 기막힌 우연.
눈이 따갑도록 번쩍거리던 갑옷은 먼지를 잔뜩 뒤집어써서 그 화려했던 빛을 잃었고, 멋들어지게 휘날리던 망토는 올이 다 풀려서 너덜너덜해졌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던 준마, 미인도 아닌 것이 감히 뭇 사내들의 가슴을 발랑발랑거리게 만들던 준마는 피골이 상접해 당나귀가 코웃음을 칠 정도로 홀쭉해졌다. 녀석들을 얼마나 몰아쳤는지 모두 거품을 뿌글뿌글 뿜어내기고 있었다.
“헉헉! 저, 정지.”
키이이잉…….
중년기사가 단내를 훅훅 풍기면서 말을 터덕터덕 몰고 왔다.
“헉헉! 와, 와이번… 그놈들 어디로 갔나? 헉헉!”
“저기.”
멀리 숲 상공을 배회하는 와이번이 하루살이만큼 작게 보였다. 녀석들이 사냥감을 포착하고 기회를 잡고 있는 모양이었다.
“헉헉… 다음에 또 봄세. 기사단 도, 도올겨억.”
“…이, 이랴아.”
터덕터덕…….
키헹, 키헹…….
달려올 때는 제법 맹렬했는데, 한번 멈추자 준마들은 속도를 내지 못했다. 뛰는 것은 물론 걷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키헤에헹…….
쿵!
끝내 준마들이 픽픽 나자빠지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덩달아 기사들도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으헉!”
“이크!”
중년기사가 낭패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저놈들이 수도까지 쳐들어오다니. 행여 폐하께 위해가 된다면, 어허! 이렇게 망연히 보고 있자니 내 검이 눈물을 흘리는구나.”
중년기사는 와이번들을 단칼에 베지 못함이 안타깝다는 양 한숨을 크게 내쉬고는, 나무 그늘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가스파르에게로 왔다.
“다시 한 번 신세 좀 지세.”
“응.”
중년기사가 신세를 지겠다는 말은 음식을 나눠 먹자는 말이었다.
“고맙네.”
자빠진 김에 축 늘어져 있던 기사들이 가스파르의 승낙을 듣자마자 발딱 일어나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잘 구워진 멧돼지 고기를 먹을 만큼 잘라내고, 수프를 뜨고, 빵과 야채를 접시에 담고, 우유 혹은 싸구려 와인을 지참하고 다니던 컵에 따라서 나무 그늘 아래로 몰려들었다. 애초에 멧돼지를 통으로 구운 이유는 바로 이 식충이들 때문이었다.
“잘 먹겠소.”
“번번이 고맙소.”
인사치레는 하였지만 그 이상 통성명은 하지 않았다.
상대도 묻지 않았고, 이쪽에서도 묻지 않았고, 서로에게 관심도 없었다.
가스파르가 식사를 끝냈을 때쯤 하루살이만큼 작게 보이는 와이번들도 점심을 끝낸 모양이었다. 하늘에 떠 있는 와이번들은 하나로 포개져 있었다.
“저저저, 저놈들이 또 그 짓을! 까드득… 지치지도 않나? 힘도 좋은 놈들!”
중년기사가 왠지 모를 분통을 터트렸다. 와이번들은 막간을 이용해서 종족 번식의 의무를 다하고 있었을 뿐인데, 놈들을 추적하는 중년기사의 입장에서는 그게 약을 올리는 것처럼 느껴졌던 모양이다.
가스파르는 와이번들의 작태를 보고선 곧 태어날 사베나의 아기를 떠올렸다.
사베나에게 아기의 이름을 지어달라는 부탁 받았었는데 좋은 이름을 짓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또 아기가 사내아이인지 여아인지도 몰라서 두 개를 다 준비해야만 했다.
“미꾸라지같이 교활한 놈들! 오늘이야말로 요절을 내고 말 터이다!”
중년기사와 기사단이 쓰러진 준마를 추슬렀다. 그리곤 한창 바쁜 와이번을 급습하러 떠났다. 지치지도 않는다는 비아냥거림의 말은 와이번들이 아니라 중년기사와 기사단에게 더 적합한 말인 듯싶다.
와이번들이 또 한바탕하고 있으니 돌아오려면 두어 시간은 걸릴 것이다.
가스파르는 조금이라도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 수도를 향해 먼저 출발을 했다. 와이번들은 늘 그렇듯 볼일이 끝나면 돌아올 것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수도에 도착했을 땐 파란 하늘이 붉은 하늘과 막 교대를 하려는 시점이었다. 또 동남쪽에선 성미 급한 까만 하늘이 붉은 하늘과 교대를 하기 위해서 부지런히 달려온다. 그 앞에는 두 마리의 와이번이 까만 하늘을 인도하고 있었다.
카오오오오오―
키아아아아아―
먼 거리를 비행하면서 작은 단위에 마을은 지나쳐 왔지만 여태 도시 한복판을 횡단한 적이 없었다. 인간들의 도시, 그것도 수도 깊숙이 들어와 활보한다는 사실이 이채로웠는지 빅브래드와 1처가 희열에 찬 괴성을 질러댔다.
그 덕분에 시민들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고함과 비명을 치고 아우성쳐 대며 난리를 쳤다. 간혹 창을 든 병사, 도끼를 꼬나 쥔 용병, 말을 달려 쫓아오는 기사가 여기저기서 모여들고 있었다.
키아아아악!
빅브래드가 또다시 포효하였다. 지상에 무력 집단의 심상찮은 행동에서 적의를 읽었는지 야성과 전의가 들고 일어나는 모양이었다. 녀석은 한껏 고취되어서 ‘오호! 니들 잘 만났다!’라는 투로 눈을 번뜩이며 연방 흉성을 터트렸다.
크오오오……!
“시끄러워.”
끽…….
흥분한 빅브래드를 간단하게 잠재운 가스파르는 웬슬라니 남작이 그려준 약도와 후작 저택의 특징을 상세하게 적고 외관을 그린 그림을 살펴봤다.
“저거랑 닮았네.”
고딕 건축 양식을 띤 고풍스럽고도 웅장한 저택의 외형은 직사각형 형태였다. 7층 높이에 빛바랜 파란 지붕과 각 축에는 네 개의 첨탑이 높이 솟아 있었고, 중앙에는 그보다 더 웅대한 첨탑이 우뚝 솟아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거기까지 웬슬라니 남작이 그려준 그림과 일치했다. 그리고 도시 전체를 둘러봐도 5개의 첨탑이 솟아 있는 저택과 특징이 일치하는 것은 없었다.
“저기로 가자.”
가스파르는 북쪽을 향해 고삐를 틀었다. 마치 물고기가 헤엄을 치듯 머리를 튼 빅브래드가 유연하게 쭉 미끄러져 나갔다.
세노이크 후작 저택에서도 난리가 났다. 병사와 기사들이 우르르 몰려나오고 있었다.
“이쪽으로 온다!”
빅브래드가 흥분해서 광포하게 울부짖은 덕분에 유크의 의도와는 조금 달랐지만 어쨌거나 광고 효과가 확실히 나타나고 있었다.
저택 하늘에 도착했을 때 가스파르는 유크의 팔뚝을 잡으면서 말했다.
“유크. 뛰어내릴 거야.”
“네, 그러세요.”
전에 웬슬라니 성에서 유크 자체가 악마처럼 보이게 만들기 위해서 스피릿 비스트를 씌워놓고 가스파르 혼자 뛰어내린 적이 있었다. 유크는 그때에 기억을 떠올렸는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빅브래드. 강하.”
키오오오오―
빅브래드가 날개를 접고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악!”
허공으로 붕 뜨는 유크의 팔을 잡아당겨 겨드랑이에 손을 끼워 넣었다. 그리곤 조각배에서 호수로 입수하듯 몸을 옆으로 굴리면서 명령을 내렸다.
“빅브래드 대기.”
“으아악! 살려주세요! 아아아악!”
빅브래드의 등에서 떨어져 나온 가스파르는 몸을 옆으로 빙그르 굴리다가 허공에서 균형을 바로 잡았다. 그리곤 깃털처럼 사뿐히 바닥에 내려섰다.
척.
그런데 곧바로 들려오는 자지러진 비명 소리와 격한 충돌음.
까오오오오옹!
쿵!
꺄요오옷!
돌아보니 샤넬리아와 엔젤이었다. 가스파르가 하는 것을 보고 샤넬리아가 따라 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가스파르가 유크의 몸을 안아서 가뿐히 착지를 한 것과 다르게, 샤넬리아는 엔젤을 쿠션으로 삼아서 떨어졌다.
샤넬리아는 치마가 머리까지 홀라당 뒤집혀서 팔다리를 마구 휘저어 댔고, 밑에 깔린 엔젤은 한스럽게 울부짖어 댔다.
바둥바둥!
까웅! 까우우웅!
“…….”



제10화 아기, 그리고 심장적출(1)


와이번을 발견하고 전의를 불태우며 맹렬히 달려오던 기사들은 샤넬리아의 행동으로 그 뜨겁고도 예리했던 기세를 깡그리 잃어버린 후였다. 버둥거리는 샤넬리아와 엔젤을 황당무계한 표정으로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모두 물러서게!”
저택의 총관이 뛰어나오면서 기사와 병사들을 제지했다.
“…….”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기사들을 향해 총관이 재차 물러나라고 손짓했다.
“내가 책임을 지겠네.”
그제야 기사들이 뽑아 든 검을 땅으로 향하게 내렸다.
총관이 저택 지붕을 힐끔 올려다보며 물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지붕엔 착륙한 빅브래드와 1처가 뺨을 맞대고 부비부비를 하고 있었다. 와이번이 간혹 격하게 뺨을 부빌 때마다 돌 부스러기가 와르르 흘러내렸고, 총관은 그때마다 움찔거렸다.
“후작을 만나러 왔어.”
“후작 각하께옵선 출타 중이십니다.”
“언제 와?”
“예정대로라면 삼사 일 안으로 귀가할 것입니다.”
3, 4일이면 너무 길었다. 못해도 이틀 후에는 출발을 해야 사베나의 출산에 맞춰서 도착할 수 있었다. 아기가 더 빨리 나온다면 이틀 후도 늦었다.
“어디로 갔는데?”
“아를로스 백작 영지입니다.”
“아를로스 백작이요?”
유크가 아는 곳인지 끼어들었다.
“걔 알아?”
“네. 베간커 영지와 튀링겐 북쪽으로 코미크 영지가 있다고 설명 드렸지요? 그 위쪽에 있는 영지가 바로 아를로스 백작 영지예요. 첫날 점심을 먹었던 들판 기억하시죠?”
“응.”
“그곳이 아를로스 백작령 서쪽 지역이었어요.”
“그럼 지나온 거네.”
가스파르는 등을 돌렸다.
“아를로스로 가자.”
“잠깐만요!”
총관이 다급히 불러 세웠다.
“후작 각하께옵선 벌써 출발을 하셨을 것입니다. 이대로 돌아가시면 길이 어긋나게 될 겁니다.”
어쩐지 그들을 잡아두려고 애쓰는 기색을 역력히 내보였다.
후작가의 총관.
그 위치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범인은 아니라 할 수 있었다. 후작가의 천문학적인 재산을 관리하고, 후작이라는 지위에 맞는 연중 크고 다양한 행사들을 주도하고, 많은 대귀족을 접하는 자리가 바로 총관이었다.
총관이라는 자리는 원래 있던 재능에 더하여 사람을 파악하는 안목을 자연적으로 높이게 했고, 상황 판단력도 남들보다 비상하게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야생 와이번을 길들여 이동 수단으로 이용하는 가스파르 일당이 결코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단박에 간파한 것이다.
무엇보다 총관은 주인의 성향을 낱낱이 파악하고 있었다. 가스파르가 무슨 연유로 후작을 찾아왔는지 몰랐지만, 후작은 와이번을 순한 양, 말처럼 다루는 가스파르에게 관심을 보일 게 분명했다.
그런 인물을 그냥 보낸다면 결과적으로 자신의 실책이 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