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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재천 3(6화)
2장 철혈문의 위기(3)


파츠츠!
뇌전을 머금은 채찍이 마치 뱀처럼 꿈틀거리며 무지에게 덮쳐 갔다.
나선을 그리며 돌진하는 채찍의 움직임이 무지의 온몸을 노렸다.
무지는 양손에 강기를 일으켜 채찍에 대항했다.
쩌저적!
마치 땅바닥이 깨져 나가는 듯한 커다란 굉음이 터져 나오며 사방으로 뇌전의 파편과 강기의 조각이 흩날렸다.
순간, 무지의 장강(掌剛)과 채찍이 부딪치는 것과 거의 동시에 뇌룡의 왼손에서 한 줄기 뇌전이 뻗어 나와 무지를 강타했다.
채찍만을 방비하던 무지로서는 예상치 못한 공격이었다.
그렇다고 쉽게 당한다면 화경고수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무지는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번쩍!
무지가 뇌전의 위력을 상쇄하기 위해 뒤로 한 걸음 물러서자 채찍이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무지를 뒤따랐다.
무지는 양손에서 강기덩어리를 만들어 날아오는 채찍을 쳐 냈다.
그러나 뇌룡이 손목을 비틀자 채찍은 이리저리로 방향을 바꾸며 집요하게 무지를 노렸다.
좌우로 빠르게 움직이며 공격을 퍼붓는 뇌룡은 화경고수인 무지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 실력이었다.
까다로운 채찍의 움직임에 인상을 찡그린 무지가 공력을 더욱 끌어 올렸다.
상대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곧이어 무지의 양손에 어른 머리통만 한 강기구(剛氣球)가 생겨났다.
이전과는 다른 십성의 공력을 담은 강력한 강기구였다.
양손에서 일어난 강기의 구가 하나는 채찍을 향해 또 다른 하나는 뇌룡을 향해 날아갔다.
마침 뇌룡이 채찍을 날리며 무지에게 돌진해 오던 시점이어서 미처 피하지 못하고 강기구와 충돌하고 말았다.
쿠아아앙!
땅바닥에 긴 고랑을 남기며 무려 칠 장 정도를 밀려난 뇌룡이 흙먼지에 휩싸였다.
서서히 흙먼지가 가라앉자 양팔을 교차해 앞을 막은 채 온몸에 뇌전을 두른 뇌룡의 모습이 나타났다.
흑의가 여기저기 찢어지고 몸 곳곳에 혈흔이 보이는 낭패한 몰골이었다.
재빨리 뇌전을 끌어 올려 막아 냈으나 상당한 피해를 입은 것이다.
“크크크, 제법이로구나! 이제 나도 제대로 상대해 주마!”
뇌룡의 두 눈에 번쩍이는 뇌전이 흘렀다.
파지지직!
머리털이 곤두서고 몸에 두른 빛줄기들이 요동쳤다.
공기 중으로 전해 오는 뇌전의 위력에 온몸이 찌릿거릴 정도였다.
“하압!”
쩌어어억!
기합 소리와 함께 뇌룡이 두 손을 뻗어 내자 수십 줄기의 뇌전 다발이 무지와 나머지 두 노인을 덮쳤다.
도연과 검치가 재빨리 몸을 날려 뇌전을 피했다.
하지만 수십 가닥의 뇌전이 끊임없이 쏟아지며 계속해서 세 사람을 공격했다.
파츠츠츠츠!
“내가 상대하지!”
여유 있게 뇌전을 피하던 검치가 자신의 기다란 검을 뽑아 들며 앞으로 나섰다.
순간, 검치로부터 절대자의 기세가 뿜어져 나오며 뇌전들이 거짓말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우우우우웅!
마치 태산처럼 버티고 선 검치의 장포가 막강한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이리저리 펄럭였다.
쩌저저저적!
다시 한 번 뇌전 줄기를 뿜어내며 뇌룡이 이를 악물었다.
‘젠장, 대체 이 괴물 같은 노인네는 어디서 나타난 것인가!’
미친 듯이 날뛰며 세 사람에게 쏟아지던 뇌전이 검치의 몸을 둥그렇게 둘러싼 채 감히 침범하지 못하였다.
검치의 호신강기를 뚫지 못한 것이다.
그때, 검치가 자신의 검을 사선으로 부드럽게 베어 내렸다.
뇌룡은 마치 세상이 반으로 갈라지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파사검법 후오식 중 제이식, 단혼참(斷魂斬)이 펼쳐진 것이다.
그러나 천룡이 펼친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위력이었다.
콰르르르릉!
그야말로 천둥이 치는 듯한 소리가 울리고, 뇌룡의 뇌전이 검치의 일검에 끌려 땅으로 사라져 버렸다.
밑으로 향한 검치의 검이 그대로 다시 방향을 바꾸어 위로 움직였다.
순간, 부챗살 모양으로 퍼진 검강이 뇌룡을 향해 날아갔다.
제삼식, 파사탄강(破邪彈剛)이었다.
하나하나가 강력하기 그지없는 두 초식을 마치 하나의 초식인 양 물 흐르듯 펼쳐 낸 것이다.
“이익!”
뇌룡이 이를 악물며 혼신의 힘을 다해 채찍을 휘둘러 검강을 막았다.
쿠아아아앙!
두 힘의 충돌에 천지가 진동했다.
충돌의 결과는 놀라웠다.
뇌전을 줄기줄기 뿜어내던 채찍이 산산조각이 나 흩어지고, 뇌룡은 뒤로 오 장이나 밀려나 있었다.
왼쪽 어깨부터 오른쪽 옆구리까지 사선으로 길게 검상이 새겨져 핏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치명상은 면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상처였다.
뇌룡은 지금의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은 팔신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화경고수와 만난다 하여도 결코 밀리지 않을 그였다.
한데 그런 그가 단 두 수 만에 채찍이 박살 나고 큰 상처를 입게 된 것이다.
그것은 자신 앞에 있는 맹인 노인이 현경을 넘어선 고수라는 이야기였다.
무림맹주와 구천마련주를 제외하고 현경의 고수가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물론 소림이나 무당의 은거기인들 중 현경의 고수가 존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세상일에 관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체 저 괴물 같은 노인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뇌룡으로서는 역부족.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순 없었다.
이 사실을 회천궁에 알려야 했다.
영력을 쓰는 흑의인과는 비교도 안 되는 큰 문제였다.
현경의 고수는 강호의 판도 자체를 바꿀 수 있는 존재이기에.
당연히 일족의 대계에도 막대한 위협이 될 것이 분명했다.
생각을 마친 뇌룡은 도주하기로 결심을 했다.
“모두 공격하라!”
뇌룡이 남은 열 명의 흑의인에게 돌격 명령을 내렸다.
흑의인들이 비장한 눈빛으로 검치에게 달려들었다.
무심한 눈으로 그 모든 과정을 쳐다보던 검치의 검이 움직였다.
스아악!
다시 한 번 파사탄강이 이번엔 횡으로 시전되었다.
거대한 초승달 같은 강기가 부챗살처럼 퍼져 나갔다.
마치 검집에 검이 스치는 듯한 작은 소음만 일었을 뿐인데 결과는 무시무시했다.
달려들던 열 명의 흑의인이 동시에 몸이 상하로 분리된 채 나무토막처럼 떨어져 내렸다.
흑의인들의 눈동자는 아직도 자신들이 무슨 일을 당한 것인지 알지 못하는 듯 당황에 물들어 이리저리 움직였다.
한 호흡도 안 되는 순간에 흑의인들이 전멸해 버렸다.
뇌룡도 어차피 오래 버티리라 생각진 않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잠깐의 시간이 그에게는 생명줄이었다.
온몸에 끌어 올린 영력을 쏟아 내어 검치와 나머지 두 노인에게 이제까지와는 다른 강력한 위력의 뇌전 다발을 날렸다.
아직 흑의인들의 분리된 상체가 땅에 떨어지기도 전이었다.
퍼퍼퍼퍼엉!
마치 폭탄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사방을 울리며 세 노인의 모습이 흙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뇌룡은 혼신의 힘을 다해 반대쪽으로 달아났다.
순간, 흙먼지 속에서 초승달 모양의 강기가 빛살처럼 쏘아져 뇌룡을 관통했다.
“크아악!”
핏물이 튀고 뇌룡의 잘려진 왼팔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뇌룡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걸음을 멈추는 순간, 자신은 목숨을 잃게 될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검치가 흙먼지를 헤치고 나왔을 땐 이미 뇌룡은 왼쪽 어깨에서 피를 뿌리며 시야에서 멀어져 가고 있었다.
물론 검치가 마음만 먹는다면 일각 안에 놈을 잡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뒤에 지원 세력이 있다면, 삼선이 떠난 뒤 철혈문을 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에 일부러 무리하지 않고 철혈문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철혈문 입구에는 굉음에 놀란 문도들과 궁혁제, 궁혁도 형제가 밖으로 나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세 노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벌써 천룡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인가.”
무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용 가면을 쓴 자는 천룡이라 해도 쉽지 않은 상대야. 대체 놈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없군. 앞으로 천룡이 위험할 수도 있겠어. 좀 더 신경을 써야겠군.”
무지의 말에 나머지 두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철혈문은 삼선의 방문이라는 천운에 힘입어 멸문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3장 천하영웅대회(1)


창천소룡(蒼天小龍) 남궁인.
현 무림맹주이자 이제(二帝) 중 한 명인 창천검제(蒼天劍帝) 남궁영의 손자.
현재 정파의 후기지수들 중 누구나 첫째로 꼽는 실력자.
이미 초절정을 돌파했다고 알려진 고수이자 뭇 여인들의 방심을 흔드는 관옥 같은 외모의 소유자!
어디 하나 흠 잡을 곳 없는 청년이 바로 남궁인이었다.
“하하, 그간 잘 지냈느냐? 엇! 이런, 수련이와 유란이도 있었구나! 오늘 내가 운수가 대통했나 보다. 그 유명하신 사봉 중 두 명에다 얼음공주 유란이까지 한자리에서 만나다니!”
남궁인이 친근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 왔다.
그에 제갈수련과 서문유란이 고개를 숙여 남궁인에게 화답했다.
“허, 남궁 시주의 눈엔 아리따운 소저들만 보이고 우리는 뒷전인 게로군요, 하하!”
뒤늦게 객잔에 들어온 청명이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남궁인을 책망했다.
“아이구, 청명 도사. 무슨 말씀을 그리 모질게 하십니까. 제가 어찌 그대를 모른 체하겠습니까. 하하하!”
남궁인이 짐짓 앓는 소리를 하며 청명에게 변명했다.
청명과 남궁인은 같은 오룡의 일원이다 보니 자주 만나 호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였다.
그래서 청명이 오랜만에 만난 남궁인을 짓궂게 놀린 것이다.
남궁인 또한 그것을 잘 알기에 즐겁게 받아들인 것이고.
“형님,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그사이, 영호명이 공손하게 인사했다.
그 역시 남궁인이 가끔 화산에 왔을 때 인사를 나누곤 했다.
“아, 명이도 있었구나. 반갑구나.”
일행을 살피며 시선을 돌리던 남궁인의 눈에 순간 이채가 떠올랐다.
천룡을 발견한 것이다.
천룡의 자연스러운 자세와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를 통해 자신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 고수라는 것을 느낀 것이다.
이미 초절정 초입을 넘어선 남궁인이었기에 느낄 수 있는 경지였다.